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54화 (154/307)

〈 154화 〉 153화.

* * *

유나씨는 천재다.

신인 매니저 유키하라 유이는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이게 어딜봐서 1년 전에는 파이널 판타지, 드래곤 퀘스트조차도 모르던 일반인이란 말인가?

캐릭터 회의에서 이야기한 그녀의 제안은 간단했다.

“메이드 라의 데뷔가 아닌, 새로운 캐릭터의 데뷔를 하죠.”

“… 사람들은 메이드의 데뷔를 바라고 있던 거 아닐까요? 물론, 그 안의 사람이 유나씨인건…”

“사실 제가 메이드로 활동하면서 이 캐릭터에 정이 들었거든요.

MC로 버튜버들 중재하는 것도 재미있고, 버튜버들의 억지에 시달려주는 역할도 재미있어서 포기하기 싫어요.

그리고… 유리아의 메이드를 제가 아니면 누가하겠나요?”

“우와…”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러고보니 유나 씨, 유리아의 매니저이기도 하면서 엄청난 오타쿠셨지?

“하지만… 사람들에게 이미 인지된 캐릭터 파워가 있는데 굳이 새로운 캐릭터 메이킹을 해야할까요? 무엇보다도 버튜버에게 중요한 목소리가…”

“후후, 목소리라구요?”

그렇게 낮게 웃은 메이드씨는 목을 풀듯 아­ 아­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자, 지금은 어떻게 들리시나요?”

???

나와 사니씨는 어벙한 표정이 되었다.

평소의 유나씨의 목소리는 여자인데 낮은 톤의, 허스키하면서도 선명하게 들리는 특이한 목소리였다.

외국인 특유의 억양과 정확한 발음을 고집하는 그녀의 발성습관 덕분에 그녀는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낮은 음성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그, 그건…”

“사실 이게 제 원래 목소리에요. 제가 일본어를 배울 때에는 음… 보컬 연습때문에 의도적으로 낮은 음으로 말을 했거든요. 제가 한국어를 할때는 원래 평소에 이렇게 말해요.”

그렇게 말하는 유나씨의 목소리는 다른 여자처럼 여성이 가지는 높은 성조의 톤이었다.

아니, 다른 여자… 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맑고 강했다.

마치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배우들의 딕션이 그러하듯, 유나씨의 말은 굉장히 흡입력이 있었다.

아니 이 여자 도대체 뭐지?

이 목소리를 왜 여태껏 숨겨온거지?

“어라? 왜 그리 놀란 반응을 보이세요? 저 노래 방송할때 이 목소리가 기본인데요?”

“그, 그건 당연히 가성인 줄 알았죠! 아니, 그, 그럼 가성은 어떻게 되는거에요?”

성악으로 비유하자면, 그녀의 평소 어투는 낮은 음역대인 콘트랄로였다.

그녀가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낮게 깔면 미성의 남자 목소리와 다를 바 없었고, 실제로도 평범하게 말하는 건 마치 걸크러시의 강한 여성들처럼 낮은음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맑고 고운 소프라노였다.

그야말로 극과 극을 오가는 목소리의 영역

아니 이 사람은 도대체 여기서 뭐 하고 있지?

성악? 아니다, 이 목소리는 오타쿠들을 홀리는 목소리다.

선라이즈의 목소리 치트키인 이나리는 다섯 시간 떠드는 목소리를 들어도 귀가 아프지 않는 맑은 목소리와 ‘귀여운 여자아이 목소리다’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유리아 같은 경우에는 독보적인 귀여운 영역으로, 옹알이를 하는듯한 뭉게진 발음으로 가끔 포인트를 주고 여린 음색이 말 그대로 모에 보이스

타마 또한 유리아처럼 여린 음색이었으나, 그녀 같은 경우에는 특유의 자신감 없는 ‘외톨이 말투’로 독보적인 영역을, 클레스타인은 강한 성량과 귀여운 목소리, 유혹하는 목소리를 오가는 천부적인 재능이다.

“그건… 비밀!”

“아!”

장난스럽게 윙크하는 유나씨의 장난에 잔뜩 가진 기대감이 꺼졌다.

하지만 뭐랄까, 느낌이 달랐다.

‘원래의 목소리’ 로 말하는 그녀는 마치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아름다운 매력이 흘러넘쳤다.

아니 세상에, 왜 이런 목소리를 봉인하고 다니지?

“아무튼 메이드는 평소에 낮은 음성으로 말했으니, 이 음성으로 말하면 음… 괜찮겠죠?”

“…”

“그리고 사실은 일본어가 아니라 영어를 들으셔야죠. Listen to me, Check my voice, One Two Three, You hear me?”

일본인들은 유학을 가지 않고서 얻을 수 없는 네이티브한 영어 발음이 흘러나온다.

맑은 동양 미인이 말하는 그 영어는 흡사 GB의 괴물, 마나와 유사했다.

마나쪽이 좀 더 어린아이라면 이쪽은 좀 더 성숙한 여인의 목소리?

비음하나섞이지 않는 순수한 맑은 음성은 듣기만 해도 동경하게 되어버릴 정도였다.

“하아… 유나 씨 왜 진작에 데뷔 안하셨어요?”

따지듯 말하는 사니씨의 말에, 나 또한 공감했다.

도대체 유나 선배님은 무슨 괴물인거지?

대 오타쿠 결전병기인거야? 그런거야?

“게, 게임하느라구요.”

궁색한 변명

아, 이사람 궁지에 몰리면 눈을 오른쪽으로 굴리는구나, 체크해야겠다.

아무튼 그녀의 재능이 차고 넘치다 못해 내가 방송인이었으면 다음 날 채널을 날려버릴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그 덕분에 ‘메이드 라’ 캐릭터를 유지하고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 데 다 동의했다.

“자, 그러면 슬슬 세계관도 짜야하겠죠?”

유나 선배가 데뷔할 소속은 엄밀히 말하자면 GB쪽이다.

우습게도 선배는 일본 쪽 매니저이면서도, 선라이즈의 ‘집사부’에 소속되어있는 예능인이고, GB쪽에서는 일종의 일본 담당 지부의 고문 매니저? 그런 역할이라고 했다.

이제는 글로벌 쪽 회의에 참여하지 않지만 여전히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던데… 아무튼 그 만큼 영어를 잘 하는 유나 선배는 영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송출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아쉽다, JP특유의 판타지 세계관에 어울릴거라 생각했거든요.”

“GB도 엄밀히 말하자면 신화쪽에 모티브를 땄으니까, 결국 판타지 아니겠어요?”

“그래도 프로젝트 하나를 위해서 새로운 세계관을 짠다는 게…”

“이렇게 된 이상, GB 1기생들이 신들이니까…”

“이참에 3기생같은 ‘전자세계 아이돌’컨셉은 어떤가요?”

“그래도 GB와의 연결점을 생각해보면… 조금 더 거창한 컨셉같은 게 어때요?”

“맞아요. 가령 시간의 감시자­라던가, 대마법사라던가…”

이후에는 다양한 의견들이 맞물려가면서 유나의 새로운 캐릭터 디자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존의 메이드가 아닌, 새로운 캐릭터

그러면서도 GB 특유의 신화적 이야기와 JP의 판타지에 어울리는 캐릭터 구상을 위해서 말이다.

예쁜 목소리, 뛰어난 춤 솜씨, 듣기 좋은 노래, 미인 체형, 가슴(사니씨의 엄청난 강조가 들어갔다), 의외로 만능, 의외로 허당(유나 선배님이 극구 부정했다), 페로몬 덩어리(유나 선배님이 결코 그럴 일 없다고 소리질렀다) 등등이 들어간 결과… 한 명의 캐릭터가 탄생했다.

선라이즈의 대모 손에서 빚어낸, ‘메이드 라’와 다른 캐릭터가 말이다.

***

기나긴 회의 끝에 기진맥진하게 된 내가 집으로 돌아왔다.

어찌나 기가 빨렸는지, 방송 들어가기 일보직전의 나에 언니를 붙잡아 껴안으면서 오늘 있었던 회의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흐응, 그렇게 되었구나.”

오늘 있었던 일을 들은 언니의 반응은 이랬다.

“유나를 다른 정규 기수로 뽑기에는 다른 애들에게 미안하지.

‘메이드 라’는 잘 알려진 캐릭터고, 다른 애들은 새롭게 데뷔해야하는 아이들이니까.”

마치 다 큰 아이가 집을 나가 독립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언니는 무언가 모성애가 느껴지는듯한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게 마음에 안들었다.

“아니 언니는 제가 버튜버로 독립하는 게 그렇게 좋아요? 언니의 매니저가 아니게 되는데도요?”

“어머, 유나야 혹시 질투…하는거니?”

살짝 눈웃음을 지으면서 나를 놀리듯 되묻는 언니의 말에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질투?

내가 지금 언니의 일에 손을 놓게 되면서 질투를…하고있는건가?

나는 언니를 내려다 보았다.

이전의 병약하고 소심했던 여인은 없었다.

방송에서는 귀엽고 보호본능을일으키면서도, 가끔씩 내세우는 매료넘치는 카리스마로 시청자들을 휘여잡는 유리아.

아직도 놀리는 반응이 좋고, 스스로 망가지는듯한 개그고 즐겨하면서도 전과는 다르게 과감하게 무언가를 시도하고, 좌절당하고, 다르게 도전하는 끈기가 추가된 언니의 방송은 이제 선라이즈에서도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했다고 볼 수 있었다.

즉 언니는 더 이상…

“유나가 바보같고, 어리숙해서 나만의 사람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까치발을 들고, 손을 뻗어 내 코를 장난스럽게 만지는 언니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착하고, 유능하고, 다정한 유나는 나를 도운것처럼 다른 아이들도 도우겠지

그러면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선망을 받게 되는 보석같은 사람이니까.”

“…언니?”

“내 주머니 안에서 빛나는 보석이 될 바에, 세상을 비추는 별이 되어줘.

이전의 내가 아닌 지금의 나는 유나가 아무리 빛이 나도 거기에 바래지 않으니까

유나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가도 결국 나를 돌아보게 할 자신이 있으니까.”

씨익 미소 짓는 언니는

나에 언니라기 보다는… 마왕성의 공주님, 유리아였다.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빛을 내줘 유나.

언니가 힘들 때 너의 빛을 보고 길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물론 나도 지지 않을거야.

이래보여도 언니, 너보다 훨씬 연상의 방송 선배란다?”

그렇게 말하며 살짝 윙크하는 언니에게는 전에는 없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2주년 무대를 마친 언니는 확실히 사람이 달라진 것 같았다.

요정보다는 여왕같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녀의 부드러운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첫사랑을 바라보는 소녀처럼 수줍게 대답할 뿐이었다.

“…네에.”

“그래, 그래야 우리 유나지.

그럼 이만 방송 들어갈게, 그래도 오늘의 간식, 잊지는 말아줘.”

간식…

간식이라…

그러니까 방송인으로서의 유나가 되더라도

메이드로서의 유나는 양립하다는 거 잊지 말라는거겠지?

하긴, 내가 언니와 같이 살고 챙기는 건 매니저로서의 유나라기 보다는

메이드로서의 유나의 일이니까.

그러니까… 지금의 생활은 달라지지 않겠지.

내가 포기하는 건 언니의 매니저 역할 뿐이고, 메이드 역할은 포기하는 게 아니니까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일말의 죄책감과 부담감이 사라졌다.

이제는 정말로… 데뷔 프로젝트에 맞게 나의 재능을 갈고닦는 일만 남았다.

나는 달력을 바라보았다.

이전 미카엘과 함께 한 다른 사무실과의 콜라보 일을 뺀 모든 일정을 비웠다.

남는 시간에는 보컬 트레이닝과 댄스 트레이닝, 그리고 데뷔 프로젝트 준비 뿐이었다.

이제 나는 매니저가 아닌…버튜버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