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59화 (159/307)

〈 159화 〉 158화.

* * *

“으으으…”

회의실에 들어온 유키하라 유이는 속이 쓰린듯 약을 삼켰다.

그도 그럴게 신입 연수 교육을 마친지 두 달이 되고 본격적으로 매니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자신이다.

아무리 자신이 연수생활 동안 가장 뛰어난 성적을 보이긴 했어도…

그녀가 담당하는 버튜버가 ‘전직 매니저 선배’라는 사실은 간이 꽤 크다고 자부하던 그녀에게도 버거운 일이었다.

하물며, 그 선배가 회사에 전설을 써내린 선배라면 더욱이나!

그리고 그 선배의 외모가 동성을 홀릴 정도로 빼어나고, 언행이 실로 교태스러워서 자연스럽게 반해버릴 것 같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아니자, 정신차려!”

유키하라는 자신의 얼굴을 양손으로 착! 하고 때리며 망상을 떨쳐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일요일 방송의 여파다.

유나 선배님은 엘리트 출신의 이지적인 여자다.

매니저로서 그녀의 능력은 회사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으며, 휴가에 대한 강력한 건의로 직원 복지의 향상을 이끌어 낸 고맙고 대단한 사람이다.’

물론 같은 여자로 질투하게 되는 뛰어난 외모와 사람을 주목시키는 굉장한 몸짓을 보유한 여성이긴한데…

유나를 알고 있는 그녀는 버튜버 아리아와 실제의 유나의 모습을 오버랩 하면서… 방송을 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

.

“글렀다.”

캐릭터에 과한 몰입을 보여서 현실세계에도 영향을 받는 게 가치코이라고 했던가?

자신이 딱 그꼴이었다.

도저히 유나 선배와 구미호 아리아를 분리해서 볼 수 없었다.

매니저인 자신은 그녀의 데뷔 방송에 문제점을 찾고자 몇 번이고 돌려보았지만 알게 되는거라면 그녀의 매력적인 포인트 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 매력에 너무 빠져버렸다.

최근 들어서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연속으로 맡아버린 것 같은… 그러니까 무슨 현대 소설에서 극적으로 시작하는 신입 사원 주인공처럼 되어버린 자신을 돌아보았다.

입사하고 우수한 교육 성적을 낸 신입 프로듀서

그런 프로듀서가 담당하게 된 전직 업계 선배 겸… 인터넷 방송 업계의 핵폭탄 같은 담당 (버튜얼) 아이돌…

시끄러운 미디어, 주목되는 관심, 벌써부터 오기 시작하는 이적 제의와 광고 제의…

커뮤니티를 지배하는 키워드 ‘구미호 아리아’ ‘메이드 라’

이 모든것을 차분하게 돌이켜 본 유키하라는 결국 정신줄을 놓았다.

“은퇴하자… 퇴사하자…”

담당 버튜버를 냉철한 제3의 시선에 보다 못해 아예 빠져버리다니 매니저 실격이다.

“어머나 퇴사라니, 유키하라는 나의 소중한 매니저인걸?”

“히이이익!”

얼굴에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과 함께 방금 먹은 약이 위를 때리는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매혹적인 여성이 차가운 캔 커피를 들고 있는 채 싱그럽게 웃고 있었다.

무슨 일상 하나하나가 광고 모델같은 그녀의 모습에 오히려 나간 이성이 돌아왔다.

자신감 넘치는 몸짓과, 같은 여성으로 반하게 되는 패션센스를 보유한 그녀의 눈가에 깃들어있는 피로감을 읽은 유키하라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도 방송인으로서 노력을 하고 있으니까… 이런거겠지? 하는 마음을 가지며 말이다.

“선배님! 아니… 유나…씨?”

“저는 더 이상 매니저가 아니니 유나씨라고 불러도 되요.”

유키하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캔 커피를 땄다.

이거 제일 비싼건데, 용캐도 간만에 혀가 호사를 누리겠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물론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그녀는 필사적으로 뿜으려는 커피를 삼켰다.

“언니.”

유나가 말하는 ‘언니’라는 단어에는 무언가 굉장한 파괴력이 있었다.

듣는것 만으로 사람의 심장을 간질거리게 되는 힘이 있다고 해야하나?

매니저의 두뇌로는 이것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필사적으로 커피를 뿜지 않게 노력을 하면서 이성을 다잡은 유키하라는 켈록거리기 시작했다.

“켈룩켈룩.”

그리고 그런 그녀의 앞에 놓아지는 예쁜 손수건

자신의 담당 버튜버는 그야말로 센스 만점의 여자였다.

“미, 미안해요.”

“아니에요 언니, 일단 숨을 길게 들이쉬고…내쉬고…”

유키하라는 홀린듯이 그녀의 말을 따랐다.

분명히 연하의 여성이건만…어째서 이렇게 자신을 다루는데 자연스럽단 말인가?

아무튼 이런 일련의 해프닝이 있고 나서야 유키하라는 브리핑을 할 수 있었다.

“후… 일단 유나씨, 아리아의 데뷔는 성공적이었어요.”

자신의 성과를 듣는 유나의 얼굴은 더없이 평온했다.

아니, 마치 이 정도는 기본이야 라고 말하는 듯한 그녀의 스탠스

그야말로 여왕의 품격이었다.

사실 그녀는 진짜 요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하며 유키하라는 말을 이었다.

“일단 성장세를 보면 GB의 마나 씨…다음이시고요, 구독자 추이와 국가별 분석은…”

이어지는 브리핑을 신중하게 듣는 그녀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 덕분에 자신감을 되찾은 유키하라는 데이터 분석을 마치고 커뮤니티 분석으로 넘어갔다.

자신을 향한 다양한 분석글들과 영상을 본 유나는 마지막의 비판 의견을 보고 풉, 하고 웃었다.

“저기, 유나 씨?”

“차암, 제일 좋아하는 게 버튜버 덕질이라고 말했는데 알아듣지 못해서 슬프네요. 역시, 그만큼 제가 너무 끼를 보인 탓일까요?”

“으음… 네에.”

솔직히, 가요계에서도 전설로 분류받는 사람들과 비교하는 보컬 영상은 미친것같았다.

하물며 그녀의 음악 방송 환경이 전문 녹음실이 아니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순진한 사람들… 후후, ‘메이드 라’가 아닌 아리아로서 다른 버튜버들과 만나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이전에는 성실하고 착한 메이드라면 지금은…흐으음…”

“저기… 유나 씨?”

“아 물론, 저는 제가 대단하다는 거 알고 있고, 굉장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이 대단함을 함부로 선보이다가는 큰일난다는 것도 말이죠.”

자부심과 겸손이 깃든 이중적인 말에 그녀의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쵸?”

“안 그래도 ‘메이드 라’와 ‘아리아’에 대해서 묻는 거는 저는…이렇게 대처할게요.”

생각해온 게 있다는 듯 그렇게 말하는 유나의 대답에 유키하라는 감탄했다.

확실히 그냥 이런식으로 어필을 하면 ‘교만한 신예가 선배들을 깔보는 일’을 상상하기 어려울 터이다.

그도 그럴게… ‘메이드 라’는 모든 버튜버들에게 친절하고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성실한 방송 도우미였으니 말이다.

“그러면 오늘 밤에 바로 하실거에요?”

“물론이죠, 노이즈 마케팅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자신에게 발생할 문제를 미리 대비한다.

한 때 매니저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분석력이 뛰어난 탓일까?

그녀는 자기 객관화가 뛰어났다.

유키하라는 그녀에게 기가 죽는것을 느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연상을 제멋대로 다루는 유나를 힐끔 바라보았다.

자료를 빠르게 읽어나가는 그 모습은 우아한 커리어 우먼 그 자체였다.

아니… 커리어 우먼이 아니라, 보고서를 빠르게 읽어 나가는 여성 CEO같았다.

“그럼 이따 준비실에서 봬요.”

“오늘은 아리아 방송이… 아, 메이드!”

“네, 유키하라 언니의 대본이 참 좋네요. 저도 이런식으로 할걸…”

“아, 아니에요. 전 그 유나씨, 그러니까 메이드의 방송을 본 토대로!”

“제가 임기응변으로 말했던 사실에 패턴을 찾아서 이런식으로 기재 해주셨잖아요.

덕분에 저도 좀 편하게 방송이 가능하겠네요.”

“그….”

“언니, 저 칭찬 잘 안해요~ 자부감 가져요.”

그렇게 말을 마친 유나는 유키하라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문을 닫히고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긴장이 풀린 유키하라는 테이블 위로 쓰러졌다.

이래서야 누가 언니고 누가 동생이고 누가 매니저고 누가 버튜버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후와아아…”

정말로 폭풍같은 사람이다.

아니, 사람을 끌어당기는 블랙홀같은 사람이었다.

좋은 향수 혹은 샴푸를 쓰는지 그녀가 앉았던 자리에서 기분 좋은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어찌나 좋은 향기인지, 유키하라는 그게 마치 페로몬처럼 느껴졌다.

사람을 홀리는 페로몬 말이다.

‘언니.’

장녀인 유키하라에게는 듣기 어려운 말이 아닌, 일상적으로 듣는 단어였다.

하지만 자신의 친여동생이 말하는 언니와 유나가 말하는 언니라는 단어는 오천만광년이 떨어진 거리감이 있었다.

뭘까, 이 간질거리는 기분은?

“미친 유이 정신차려!!”

벌떡 일어난 유키하라는 손 안에 든 커피캔을 꾸겼다.

그런 그녀의 눈에는 유나가 떠난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유나가 두고 간 손수건을 들어올렸다.

백합이 그려진 예쁜 손수건… 버린게 아니라 깜빡한거겠지?

아마 빨아서 돌려주는 게 예의겠지?­하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가방에 집어넣었다.

“아무튼 그녀는 참 대단한 사람이야…센스 넘치고 재능 넘치고 그에따른 자부감도 넘치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회의실을 정리한 유키하라의 눈에는 낯선 휴대폰이 들어왔다.

손수건은 그렇다 치더라도…휴대폰?

“저, 저기!”

문이 열리면서 다급하게 뛰어들어온 유나씨가 보였다.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고 머리를 긁적이는 그 모습은… 아침에 급하게 출근하는 자신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게다가 이전의 당당한 여왕같은 미녀는 어디가고, 당황함을 감추지 않고 눈을 여기저기로 굴리는 모습을 보니 갓 취입한 자신의 여동생과 다를 바 없었다.

“저, 저기요?”

“풉.”

마지막으로, 휴대폰을 놓고 가버린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린 듯 부끄럽게 말을 더듬는 유나의 모습을 보며 유키하라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래, 유나씨는 대단하게 보여도 자신보다 어린 여성이었다.

가끔씩 휴대폰을 두고 일어나는 서툰 모습도 보이는 그런 여성 말이다.

그녀는 닿을 수 없는 이상속의 존재도 아니고, 전설적인 매니저 선배도 아닌…

자신의 케어가 필요한 버튜버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고마워요. 언니.”

“이 참에 같이 올라갈까요? 저도 생방송으로 녹음하는 ‘메이드 라’의 뉴스를 듣고 싶거든요.”

“제 매니저라면 못할 것도 없죠.”

현재 선라이즈에서 가장 주목받는 버튜버 아리아

그리고 그 아리아의 매니저인 유키하라 유이

두 여성은 사이좋게 수다를 떨면서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언니 언니라… 참으로 교묘한 울림이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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