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 16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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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아리아의 능숙한 대처는 금새 커뮤니티를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그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다음과 같았다.
신인이 너무 재능이 뛰어나다.
보통 뛰어난 수준이 아니고 다방면으로 뛰어남을 보인데다가 단독 데뷔를 했다.
스스로 뛰어난 점을 알고 있는 천재가 과연 선배들을 존중해줄까?
기존의 팬들 중 일부는 공감할만한 비판점
특히 자신의 최애가 방송에서 ‘요즘 선라이즈 신인이 대단해서 무서워’ ‘버거워’ 등의 발언을 한 적이 있는 팬들은 더더욱 공감했다.
버튜버의 엄마, 즉 캐릭터 디자이너의 사니의 지원을 받은 건 그렇다 치더라도
업계에서 뛰어난 작업 퀄러티에 비해서 연간 맡는 건수가 적은 버튜버의 아빠, 츠치노켄의 이중 푸쉬를 받았기 때문에 ‘선라이즈는 다른 버튜버들에게 소흘한게 아니냐’라는 말을 나오게 한 점은 더더욱 비판점이 되었다.
때문에 ‘어디 한 번 두고보자.’ 는 식으로 그녀의 두 번째 방송
즉 자신의 데뷔 방송을 돌아보면서 자신에 대해서 더 소개하는 방송을 통해서 그들은 구미호 아리아가 그들과 똑같은 ‘버튜버 오타쿠’라는 점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가령 클레 선배님이 2019년 10월에 진행한 ㅁㅁ기획부터 시작해서 2018년 4월5일 진행한 ㄴㄴ프로그램에서 진행한…”
선라이즈에 소속된 버튜버들의 주요 밈들을 말하면서, 밈이 탄생한 배경과 방송 날짜까지 언급한 ‘진짜’스러운 면모는 그들에게 큰 어필이 되었다.
영어와 일본어의 동시 소통
그리고 가요계의 유명한 가수들과 비견되는 가창력
다양한 작품의 스펙트럼을 읊는 덕력
그리고… 선배들에 대한 주접을 멈추지 못하는 버튜버 덕질은 동질감을 부여했다.
오타쿠가 이렇게 영어를 잘 할 수 있구나
사실 재미교포 혹은 혼혈인이 아닐까?
왜, GB 1기생도 닛케이 계열이잖아…
커뮤니티는 빠르게 아리아를 받아들였다.
정확하게 그녀의 지나치게 뛰어난 재능에 거부감을 느꼈던 이들의 편견이 자리잡기 전에 이미지가 확 바뀌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럼에도 그녀의 천재성으로 인한 교만함을 걱정한 이들은 다음의 영상을 통해서 깔끔하게 걱정을 떨쳐내었다.
유튜브에 빠르게 만들어진 하나의 영상, 20초 남짓의 짧은 영상을 통해서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해명하는 영상이었다.
[메이드 라=구미호 아리아 본인 피셜 아니라고 함]
“사람들이 제가 ‘메이드 라’라고 묻네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메이드씨?”
“전혀 다른사람입니다.”
“자, 다른사람이라고 하네요. 이것으로 질문 타임 끝!”
본인이 직접 목소리를 바꿔가며, 심지어 입이 움직이는 버튜얼 모델을 숨기지도 않는 채 뻔뻔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그 태연자악한 모습에 사람들은 메이드 라의 새로운 모습이면서도, 구미호 아리아의 뻔뻔하다 못해 당당한 기가 차는 매력을 알게 되었다.
미친 뻔뻔함
본인이 ㅋㅋ 아니래 ㅋㅋ
아무튼 아니라잖아ㅋㅋ
아 알겠어 ㅋㅋ 아니라는 거 알겠어ㅋㅋ
이봐 메이드, 치맛자락을 들춰보자! 거기에 꼬리가 있겠지!
아무튼 본인이 아니라고 하니 팬들은 ‘아 일단 알았어 ㅋㅋ 알겠다고’ 하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 이들은 깔끔하게 메이드 라의 행적을 정리하면서 논란을 종결지었다.
[그래서 구미호 아리아의 전생(?)인 ‘메이드 라’는 어떤 존재인가?]
그렇게 쓰여진 레딧의 글은 메이드에 대해서 잘 모를 수 있는 서구권 버튜버 오타쿠들에게 깔끔하게 정리를 해주었다.
JP 소속중 가장 많은 서양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고, 아직도 인기가 좋은 쿠로시로 유리아의 매니저 출신 버튜버라는 소개를 시작으로
‘유리아가 그녀를 집착하면서 만들어낸 얀데레 밈’
‘유리아가 그녀의 품에 안기면서 바들바들 떨면서 공포게임을 하는 밈’
‘유리아가 그녀와 함께 영어 공부를 하면서 만들어지게 된 밈’
등등을 소개하였다.
메이드의 방송 스타일을 요약하자면 ‘헌신’ ‘보조’ 그 자체였다.
본인을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를 ‘방송 어시스턴트 메이드’라고 소개하는 컨셉에 어울리게 많은 버튜버들의 합동 방송에 들어가면서 결코 과하게 튀지 않았다.
짧은 드립과 행동만으로 시청자들에게 신선함을 각인시키고, 합동 시간은 짧더라도 그 짧은 시간 동안 호스트가 별 다른 걱정 하지 않게 방송을 분위기에 맞게 진행시키는 진행력은 선라이즈 소속의 인기 합동 방송 버튜버들과 비교할 만 했다.
메이드라는 시종의 포지션에서 자신의 매력을 억누르면서 방송을 도우는 그녀의 스타일은 1년 가까이 이어졌고, 지금도 다수가 모이는 합동 방송에서 중재를 하거나 MC역할을 하며 방송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선라이즈 공식 메이드를 싫어하는 사람은 정말 없었다.
그렇게 버튜버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깔려야 가능한 그녀의 방송 스타일을 알고 있는 이들은, 그녀가 구미호가 된다 한들 버튜버들에 대한 존중을 하지 않을 리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메이드라면 그런 일 없겠네
오히려 선배들이 안심할걸?
근데 왜 저 재능으로 여태껏 데뷔 안했대?
그래서 이번에 했잖아 ㅋㅋㅋ
저기요, 메이드 라는 구미호가 아니거든요? 비록 그녀가 청소할때 꼬리털을 몰래 흘리긴 하지만 절대 아니거든요?
아무튼 아니래잖아 ㅋㅋ 본인이 ㅋㅋ
근데 이것마저 마케팅의 일부로 계획삼은거야? 소름돋는다.
이래야 버튜버 원탑 먹지… 만약 그녀의 데뷔 계획이 1년 전부터 기획된거면 정말 소름돋는다.
그러면… 유리아와 메이드는 비즈니스 사랑인거야?
그럴지도?
아니다 이 악마야
꺼져라 사탄녀석들아!! 메이드와 공주님의 사랑은 영원하다!!
예민한 전생 이야기와 우려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시점으로 메이드에 대한 이야기와 구미호에 대한 이야기로 덕질을 이어가는 평범한 커뮤니티에 돌아왔다.
“대단해…”
이런 커뮤니티의 반응을 지켜본 아리아의 매니저, 유키하라 유이는 소름이 돋았다.
정말로 그런걸까?
사실 이전부터 이야기는 많았다.
왜 ‘메이드 라’라는 굉장한 인재를 썩히고 있냐는 다른 회사의 질문에 곤혹스러워하는 대처를 한 두 번 본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사내에서는 모두가 선망하되 다가가기 어려운 미인에, 업무적으로도 뛰어난 어린 천재 선배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그녀는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었기에 그녀의 속마음을 물어볼 간 큰 사람들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코이즈미 COO님의 계획이었다면?
의도적으로 데뷔를 늦추고, 이 특급 유망주가 줄 수 있는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서 메이드라는 친숙한 캐릭터를 통해서 접근성을 낮추고, 모든 리스크를 제거할 계획이었다면?
매니저 계약 이전에 1년 후 제대로 된 버튜버로 데뷔한다는 계약을 전제로 한 이중 계약이었다면?
매니저 업무를 시킴으로서 유망한 아이돌 데뷔생이었던 일반인에 가까운 이 한국인 여성을 완벽하게 업계에 적응시키기 위한 훈련이었다면?
그것을 위해서 실제로 버튜버와 같이 살게 하면서 그들의 삶을 탐구하게 하고, 다양한 방송에 합동 방송을 보냄으로서 자신만의 방송 스타일을 확립하기 위해서였다면?
그렇게 한 번 시작된 망상은 생각과 소문을 잡아먹고 점점 더 덩치를 불렸다.
결국에는… 선라이즈의 GB진출마저도 그녀를 위한 교두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모든것은 어쩌면 유나를 위한 무대의 마련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런 회사의 1년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유나의 매니저를… 자신이 맡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니 자신의 어깨가 무거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쫄지 않았다.
눈을 감고, 그녀가 자신에게 빌려준 손수건을 본 유키하라는 그날 그녀가 알려준대로 심호흡을 했다.
그녀는 어려운 사람이 아니었다.
커피를 자신의 얼굴에 기습적으로 가져다 대는 장난기를 가졌고
커피가 묻는것도 신경쓰지 않고 손수건을 주는 상냥함을 가졌고
회의가 마친 후에 휴대폰을 두고 일어나는 어리숙함도 가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언니라고 부르는 유나는 자신보다 어린 여동생이다.
인생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20대 초반에 인터넷 방송인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도, 지나치게 튀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탓에 자신을 죽인 채 메이드라는 수동적이고 헌신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며 숨을 죽여온 인내의 역사를 가진, 대기 만성형 인재다.
그런 그녀가 마침내 자신의 그릇을 모두 채우고, 세상을 향해 활동을 시작한 지금, 자신의 부족함으로 그녀의 발을 잡을 수 없었다.
“힘 내자. 난 할수 있다 아자아자!”
고민을 하던 유키하라는 이전에 공부하다 말았던 영어책을 다시 들어올렸다.
단순히 일본 비즈니스를 위한 토익 공부가 아닌, 그 이상의 공부를 하기 위해서 말이다.
적어도 자신은… 해외의 팬들의 대처를 직접 읽을 수 있어야했다.
자신보다 어린 그녀가 동시 통역이 가능할 정도로 굉장한 실력을 갖추었다.
그런 버튜버에게 질 수 없었다.
다른 매니저들이라면 이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버튜버 역사상 최고의 원석이라 평가받는 아리아를 보조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버튜버에 걸맞는 뛰어난 역량을 가져야만했다.
그래야지… 그녀의 원대한 꿈을 같이 달려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와 본인이 가진 고질적인 망상증으로 무언가 단단히 착각을 하게 된 유키하라는, 이유가 어찌되었든 간에 결연한 마음으로 업무를 위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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