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 161화.
* * *
으아아아, 힘들다…
침대에 몸을 던진 나는 피곤함을 호소했다.
그도 그럴게, 생각 의외로 빵을 만드는 일은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오오오, 이게 수제 빵이라는거군요.”
침대에 몸을 파묻은 체, 게으른 여자가 된 나는 고개를 까딱거리면서 카가의 말에 대답했다.
업계 선배에 대한 태도보다는, 이웃에 대한 태도에 가까웠다.
얼핏보면 무례하게 볼 수 있는 나의 태도를, 카가씨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내 첫 두 방송이 성황리에 끝난 이후, 바쁜 데뷔 기간을 무사히 마쳤다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무언가 도전해보고 싶다는 요리가 있다고 나에게 부탁했다.
방송에서는 미즈나시 오르페라는 전설적인 버튜버이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아직 수술의 후유증을 앓고 있어 나가기가 불편한 이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나도 도전거리가 될 수 있는 제빵의 영역에 도전했다.
“히히히 유나야 이것봐라, 밀가루 반죽 괴물~”
“꺄아악 쿠로가와 씨! 침실에 밀가루 날려요!”
물론 나의 동거인인 나에 언니와 카가의 동거인인 카기도 함께였다.
바쁘다고 볼 수 있는 한창 전성기의 나에 언니와, 명실상부 5기생의 대장으로서 새로운 기획을 벌리는 카기의 소중한 시간을 뺏는것이 아닐까? 나는 잠시 걱정했지만…
“이런 신선한 경험이야 말로 좋은 토크 소재가 되는걸?”
“맞아요. 늘 하던것만 하면 머리가 금새 지쳐버린다구요.”
“흐흥, 이런 말 하는 거 보면 아직 우리 유나가 어리긴 하네.”
130만 구독자를 보유한 선라이즈의 용 오르페
90만을 돌파해서 마의 벽인 93만대에 도달한 유리아
그리고 58만 구독자로 60만의 벽을 역대 세 번째 성장속도로 두들기는 루미에
명실상부한 숙련된 방송인들인 그녀들은 나를 놀렸다.
다른 영역이라면 모를까, 방송에서만큼은 그녀들은 확실히 나의 선배들이었으니 말이다.
“후후, 유나야, 아예 세상을 찢었구나 찢었어.”
“설마 목소리를 평소에 깔아두면서 말하실거라고는 상상 못했어요.”
“응, 우리 유나 은근히 기만자라니까?”
세 사람이 능글맞게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그녀들의 장난에 힘차게 반발을 할 나였지만…나는 반죽에 지나치게 힘을 쓴 것에 대해 후회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대충 좀 칠걸! 하고 말이다.
비겁하고 치사하게 3:1로 나를 놀리는 그녀들의 ‘오구오구’에 당해낼 수 없을 정도로단시간에 힘을 잔뜩 쓴 나는 시끄러워요 라고 대답하고는 베게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무튼 이제 반죽을 발효시키면 되는거지?”
“네, 온도계 잘 맞춰서 잘 해봐요.”
“이거 선배를 부려먹는 못된 구미호 요괴가 있다?”
“카가, 자꾸 까불면 카레에 핫소스 확 넣어버린다?”
나의 다정하고 상냥한 말에 어린애 입맛인 카가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산지 얼마 되지 않는 발효 기계에 반죽을 집어넣었다.
음식을 만들고 쿠키를 만드는 일이 신난 모양인지(사실 나도 그랬지만)카기는 그런 카가의 옆에서 잘 지켜보기 시작했다.
나에 언니는 손을 씻고 와서는 침대에 누운 나의 머리를 살짝 들어올리고는 무릎배게를 해주었다.
그러고는 작은 손으로 나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우리 유나 참 장하다 장해, 언니보다 훨씬 훌륭하게 스타트를 끊었네?”
“저야 뭐, 영어가 되니까 일본 구독자들과 영어 구독자들을 동시에 노리는…”
“뭐? 후후후후 아니야 유나야, 언니가 말하는 것은 , 구독자 수를 말하는 게 아니란다.”
내 대답이 생뚱맞다고 느꼈는지 언니는 살짝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구독자 수는 시류를 잘 타면, 츠유의 코모레비가 그러하였듯이 잘 올라올 수 있지.
유튜브 알고리즘, 키리누키… 그런것들로 인해서 언젠가는 오를 숫자야… 내가 말하는건…”
언니는 고개를 확 숙였다.
언니의 고운 머리카락이 내 뺨을 간질거리고, 언니의 따스한 두 눈이 봄의 햇살을 받아서 반짝였다.
말 없이 나를 그렇게 가까이 바라보며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 언니는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우리 유나가 방송후에도 멘탈이 흔들리지 않고, 운동도 꼬박꼬박 하면서 방송의 반응에 사사롭게 매달리지 않는 게 너무 보기 좋아… 나는 그랬거든?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일부러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반응도 확인하고… 그러다가 가끔씩 보이는 칭찬에 기뻐하고…”
나는 초창기의 언니를 알지 못한다.
어느정도 안정기에 집어들었다고 말하는 30만 구독자 시절에 언니를 만났으니 말이다.
“그때는 참 힘들었어, 유나가 없던 나는… 정말… 유나에게 들려주기 싫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 아니었는 걸…”
“언니…”
“그래서 언니는 살짝 걱정했단다.
혹시 이렇게 강해보이는 유나가, 책임감이 강한 유나가, 관심을 받기 좋아하면서도 마음은 상냥한 유나가 상처를 받을 게 두려웠단다.”
“참… 고마워요. 하지만 언니도 알고 있잖아요? 저는 완벽하고 잘나고, 오타쿠들이 두려워 머지않는 인싸라는 걸요.”
나는 진심을 담아 살짝 우쭐거리면서 말했다.
오히려 언니가 걱정할 거 같아서 일부러 까불거리는 듯이 목소리를 장난스럽게 해서 말했다.
그 말에 언니는 내 얼굴을 만지던 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얄밉게 자기 잘난척을 하는 버르장머리 없는 입은 요 볼이냐? 아니면 요 주둥아리냐~”
“엉응니아아여(언니 아파요)!!”
게에에엑
언니에게 우쭐거린 대가는 금방 돌아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웃들도 금새 합류했다.
“유나 괴롭히기야? 나도 끼어야지! 카기! 너도 어서 와!”
“네? 저기 선배 그래도!”
“나에에게 제압당한 지금이 기회닷! 유나를 깔아 뭉개자!”
마치 중학생 친구들의 햄버거 장난처럼 카가는 내 몸에 주저없이 깔아뭉갰다.
그 위로 카기가 오르고, 카가가 오기 전 절묘하게 몸을 빼낸 언니는 그런 카기위에 올라탔다.
“요 기세 등등한 신입의 버르장머리를 고치자!”
“이거 사내 폭력이에요!”
“뭐? 푸하하하하.”
아무튼 저녁에 다들 방송이 있는 네 명의 버튜버는 그날 오전, 방송에 대한 이야기 없이 순수하게 반죽을 만들고, 제빵을 하고, 비는 시간동안 유치한 장난을 치면서 시간을 보냈다.
***
“라는 게 제 일상 보고에요.”
“그, 그래요?”
나의 매니저인 유키하라가 살짝 짜식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뭔가 기대에 배신당한듯한 그 표정에 나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설마 제가 매일같이 트레이닝하고 방송 기획을 위한 브레인 스토밍을 한다고 생각하셨어요?”
“아, 아뇨!”
“흐음, 우리 매니저 언니 생각은 다른 거 같은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딱 봐도 공부 잘하는 학생이 사실 게임을 매일 한다는 소리를 들은 아주머니같은 표정을 방금 지었는데!
“그래도 아리아의 캐릭터성이 이제 막 잡혀가기 시작했는데, 그 방송 소재로 선배들 캐릭터를 이야기 하는 건 조금…”
“아, 그럴 일은 없어요. 당분간 제 모습만 보여주기도 바쁜데 굳이 이런 이야기를 방송에 할 리는 없죠.”
“휴, 역시 유나 씨… 그럼 이 기획은 어떤가요?”
버튜버들의 인기 콘텐츠는 게임/노래/잡담 및 소통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서 어떤 게임을 하느냐, 누구와 하느냐, 어떤 텐션과 컨셉으로 하느냐로 시작해서 다양한 매력이 나오기 마련인데…
“역시 에이펙스죠?”
“역시 호러게임이죠?”
아
의견갈렸다.
그나저나 호러게임이라? 나는 의외의 선택에 놀랐다.
“으음, 역시 에이펙스를 고르실 줄 알았어요.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이어지는 설명은 합리적이었다.
현재 구미호 아리아에게 적용된 이미지는 다재다능이었다.
특히 게임 고수인 메이드가 동일 인물이라는 점을 보면 확실히 그러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 대한 기대감을 조금 더 빼야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망가질 수 있는 호러 게임은 확실히 먹힐만한 소재였다.
“어…”
만약 내가 호러 게임에 내성이 높지 않았다면 말이다.
심각한 문제에 도달했다는 것을 깨달은 우리들은 다시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하하, 미안해요 매니저님… 제가 좀 안일했네요.”
나답지 않는 실수였다.
실제로 내가 버튜버가 되어보니 캐릭터 객관화가 여간 쉬운 게 아니었다.
“아니에요, 메이드 라가 한 때 공포게임의 부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아는데… 제가 깜빡했네요.”
“그 당시는 워낙 초창기였으니…”
역시 이럴때는 다른 플랫폼인가…
나는 노트북을 켜고는 여러 사이트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내 눈에 들어온 게임.
항아리 맨 계열을 잇는 똥게임인데… 의외로 시청자들이 많았다.
“아, 이건 어때요?”
“아 트위치네요 이건… 근데 한국어? 아 맞다, 유나 씨 한국인이셨죠 참.”
“아무튼요… 이거 어때보여요?”
“… 괜찮아보이네요?”
내 특기를 살릴 수 있는 콘텐츠를 초창기에는 조금 피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기대감이 유지되도록 심심할 때 마다 깜짝 노래방송을 진행하는 방향이 좋아보인다고 우리는 판단을 내렸다.
때문에 고른것은 도전자의 멘탈을 흔드는 게임
그 후에 이어나가는 토크쇼나 커뮤니케이션 방송이 좋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우리는 회의를 마치고 커다란 방향을 정하는 회의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지는 버튜버 장비를 착용한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헬로 월드~ 선라이즈 GB 소속의 구미호 아리아라고 합니다. 좋은 아침, 행복한 점심 편안한 저녁시간이시길~”
익숙한 방송 멘트를 킨 나는 캐릭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부터 유나도, 메이드 라도 아닌… 아리아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