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 166화.
* * *
아무튼 그렇게 매니저 한 명을 땀내나는 헬스의 세계로 빠지게 된 날
버튜버의 팬들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들이 자주 애용하는 SNS인 플랫폼에서 신을 영접한 광신도처럼 기다리던 그들은…
아리아의 방송으로 처들어갔다.
GB소속 답게 영어로 대화를 하다가 일본어로도 말을 한다.
그녀가 하는 이야기가 끊어져서 맥락을 못 따라가고 방송에 집중을 하기 어려울 수 있었으나 그녀의 어조 만으로도 방송에 몰입하기 충분했다.
영어권 시청자가 60%에 비영어권 시청자가40%인 특이한 방송환경
하지만 그녀를 찾아온 비영어권 사용자들은 방송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따끔 스토리에대한 감상을 위해서 말을 할때에는 메모장을 직접 켜서 동시 통역을 해주면서 진행해주었기 때문에 시청자들 대다수는 아리아의 말과 생각을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었고…
진짜 일본인인데 도움 많이 됩니다.
어설픈 학교 선생님의 발음보다 듣기 좋아
아리아 방송 100일 보고난 이후 토익쳐본다 ㅋㅋ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접근하기 까다로운 GB 소속의 버튜버의 방송을 들으면서 공부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독특한 방송 스타일은 완전히 정착에 성공했다.
언어에 대한 압박감이 적은 외국인의 방송
그래도 타국의 언어를 듣게 되면 발생하는 스트레스란 어쩔 수 없는데 그녀의 방송에서는 그걸 느끼기가 어렵다.
그도 그럴게, 진행이 시원시원했다.
오 마이 갓, 그러니까 이게 첫 언더테일이라고?
아이템을 저렇게 쓰지 않다니…
파피루스가 아무리 상냥한 친구라고 해도 노히트는 대단하긴 하네…
전투는 스피드런을 하는것처럼 신속하게
회복 아이템은 장식품이었고, 피지컬이 좋은 사람들이 게임 방송을 하면 왜 인기가 좋은 지 보여주는 듯한 시원시원한 진행은 훌륭했다.
“그… 그러니까 음… 이건 제가 데이트 하는 게 아니라… 그, 여기 있는 ‘V튜버 오타쿠’가 데이트 하는거에요.”
살짝 부끄러운 듯(여기서 채팅창이 환희의 비명으로 터졌다) 말하는 아리아의 연기와 함께 공략을 위한 NPC와의 데이트 이벤트를 마치면서 그녀는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진행해보았는데 왜 명작인 지 알것 같네요.”
“얘들을 지배하겠다는 생각은 이제 포기! 생각해보니 요괴의 왕이라고 해도 꼭 이 언더테일의 왕이 되라는 법은 없잖아요?”
“왜냐면 저는 예쁘고 착하고 친절한 구미호니까요.”
개~~뻔뻔해
고인물이 저런 말 하니 왠지 킹받는다
그래도 좋아, 오히려 좋아
근데 게임에 몰입 제대로 하네, 솔직히 말해서 보기 좋다.
“그러게요, 저도 버튜버 덕후로서 몇 번 본 내용이라 다를 줄 알았는데 확실히 마음에 와닿는 게 있네요.”
이런식으로 소통을 이어나가면서도 전투는 빠르게, 그리고 공략을 잘 모르겠다 싶으면 기꺼이 훈수를 받아들이는 모습 덕분에 그녀의 게임 진행은 가끔씩 저지르는 인간적인 실수를 제외하고는 진행하기 편했다.
오히려 한 번 실수를 하면 좀 대차게 어벙한 모습을 보이는 탓에 그것이 또 귀여웠지만 말이다.
그렇게 방송은 물흐르듯 진행되어, 새로운 지역의 보스들을 격파…하지 않고 그들을 어루만져준 아리아는 소소한 이벤트를 즐기면서 나아갔다.
“자아, 오늘은 여기까지.”
예정보다 10분 일찍 이른 시간이었지만 시청자들은 납득했다.
이 앞은 보스전이었고, 한 번 진행하게 되면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기 때문에 사전에 정한 2시간 방송은 약속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금요일 저녁인만큼 조금 더 진행해도 괜찮았지만… 사실 시청자들은 이 이후의 방송을 기다렸으니 말이다.
“좋아요, 그러면 첫 슈퍼쳇 방송을 8시에 진행할게요!”
그러고는 1분 동안 시청자들이 떠들어댈 수 있게 방송 대기 애니메이션을 재생한 후, 수익화를 할 수 있는 방송방을 새롭게 팠다.
[제 첫 슈퍼챗 리딩! 영어, 일본어, 한국어 OK, 다른 언어는 번역기로!]
영어로 쓰여진 깜찍한 방송 제목, 다른 나라의 언어까지 번역기로 돌려서 읽는다는 그녀의 열정에 사람들은 감탄했다.
하지만 특정 국가는 아니었다.
다름 아닌 한국
스트리밍 콘텐츠 파워가 강한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버튜버와 콘텐츠가 겹친다고 볼 수 있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노캠 방송인과 캐릭터 컨셉을 잡고 연기하는 캐릭터 유튜버의 존재, 그리고 애니메이션에 거부감이 있는 편인지라 팬들의 숫자는 적은 반면 충성도는 높은 편이었다.
그리고 2020년에 들어서도 끝나지 않는 코로나로 인해서 점점 더 버튜버를 보는 한국인이 늘어나는 시기에 급작스럽게 인기를 몰기 시작한 버튜버가 한국어를 한다?
이 소식은 한국 커뮤니티를 타고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2020년 2월 28일
전 세계에 퍼진 버튜버의 팬들을 사로잡은 아리아의 첫 수익화 방송이 시작되었다.
20시에 예고한 방송시간과 다르게, 5분정도 일찍 방송을 켠 아리아의 화면은 심플했다.
화면 반을 차지하는 아리아의 예쁜 모델
그 옆의 채팅창과, 그 사이에 존재하는 본인이 직접입력하는 번역창
“다시 한번 핼로 월드~ 구미호 아리아에요. 모두들 좋은 아침 점심 저녁 밤 새벽이 되시기를!”
그렇게 인사를 한 아리아는 짧게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저는 지금 이렇게 여러분과 말하는 게 행복해요.”
“저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고, 혼자서 살아갈 때와는 다르게 제 사소한 중얼거림조차도 소중하게 들어주는 팬분들이 있으니까요.”
“혼자서 아무리 빛나봐야, 진흙속에 있는 한 알아봐주는 이들이 없다는 것이죠.
제가 선라이즈에 들어오게 된 것은 너무나도 큰 영광이고, 제가 빛날 수 있게 이 길을 닦아온 선배들과 선라이즈의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제가… 한 마리의 여우로 태어나 구미호가 되고, 이렇게 인간 여러분들 앞에서 제 모습을 보이게 될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이제 정말로 이 길을 걷게 됨을 느끼네요.”
평소와 다른 살짝 침착하고 떨림마저 느껴지는 그 목소리에 사람들은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게, 구미호 아리아도 물론이고 메이드 라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이들은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그녀는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기에 선라이즈의 매니저로 들어오고, 방송에 발을 담구게 되고, 그리고 이렇게 버튜버로 데뷔를하게 된 것일까?
“그, 그러면 슈퍼챗 설정을 풀게요.”
버튜버의 대기업인 선라이즈
선라이즈의 푸쉬를 받으며 홀로 데뷔한 버튜버 구미호 아리아
세상에 뚜렷하게 자신의 캐릭터를 각인시키고,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끈 이 유망한 신인 버튜버의 첫 슈퍼챗은 이거였다.
“A”
그녀의 선배로서 세상에 자신의 존재감을 먼저 드러낸 선배 마나의 대사
그 이후에는 형형색색의 슈퍼챗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그것은 테트리스와 같았다.
금액에 따라 다른색깔로 보이는 형형색색의 슈퍼챗들이 채팅창을 가리기 시작했다.
1만엔 이상 지불해야 낼 수 있는 붉은 슈퍼챗이 자주 보이고, 500엔부터 999엔의 초록색, 1000엔부터 1999엔의 노란색 2000엔부터 4999엔의 주황색 채팅이 물결을 쳤다.
“에…에……에?”
일반 채팅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이 방송은 돈을 내야 채팅을 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엄청난 속도로 쏟아지는 슈퍼챗의 물결은 능숙한 방송인인 아리아의 말문을 막게하였다.
“어… 오…”
만약 그녀가 이렇게 내는 소리를 연기라고 할 수 있다면 그녀는 당장 배우를 하는게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리아의 방에 들어온 사람들은 가상의 여우를 돈뭉치로 패면은 말을 잃어버린다는 좋은 교훈을 얻었다.
“그… 그러니까…”
슈퍼챗 읽기의 방송은 시청자들이 읽어주기를 원하는 유료 채팅을 읽어야하는 컨텐츠다.
하지만… 시작한지 5분이 지나도 물결치는 이 슈퍼챗의 향연은 단언하건데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어…음…네? 자, 잠깐만요.”
메이드 라의 팬들은 쾌감을 느꼈다.
그들에게 단 한번 허락된 슈퍼챗이 있었다.
아주 예전에, 다비의 아침 방송에 나온 어리숙한 메이드를 돈으로 후려팼을때 이런 반응을 보인것을 기억하는 그들은… 기꺼이 돈으로 패기 시작했다.
이번 슈퍼챗은 아리아에게 보내는 게 아닌, 고약한 메이드에게 보내는 돈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모아둔 돈을 풀기 시작했다.
“저기 그, 아니 이건…!”
발음이 깔끔하여 모두에게 찬사를 받았던 영어 발음이 뭉개진다.
성우를 연상하게 하는 일본어 발음이 뭉개진다.
그리고 10분째 이어지는 연속된 슈퍼챗의 폭격에 겨우겨우 읽기 시작하며 소통을 하던 아리아의 말은 멈추어졌다.
쌓여가는 슈퍼챗의 숫자가 아무리 적게 계산해도 500개가 넘긴 시점에서, 이것은 미친 일이었다.
눈동자가 갈길을 읽고 허공을 바라본다.
“읽을… 읽을 시간을 주세요…”
여기에 자신감 넘치던 구미호는 없었다.
난생 처음 겪는 돈의 폭풍 세례에 정신을 못 차리는 사회 생활 부족한 니트 구미호만 존재했다.
간절하게 읽을 시간을 바라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땡큐라고 말하는 그녀는 고장난 기계였다.
그래도 14분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드디어 슈퍼챗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 일반 채팅이 화면에 잡혔다.
비율상으로는 8개의 슈퍼챗과 12개의 일반 채팅이 잡히는 환경이 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목을 가다듬고 말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유행한 Wasssup 광고를 기깔나게 따라하면서 시청자들의 채팅을 읽던 그녀에게 새로운 재앙이 닥쳤다.
마치 주식 영화에서 작전주 세력의 지시에 따라 투입된듯, 20초 간 총 30개의 붉은 슈퍼챗이 이어지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거기에 아리아는 완전히 멘탈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자, 잠깐만요. 일단 진정해주세요! 아니 이건…”
일본어와 영어, 그리고 한국어가 섞인다.
능수능란하게 방송을 진행하던 아리아의 고장난 모습에 사람들은 소액이나마 돈을 보탰고, ‘아니 이건’이라고 말한 한국어를 들은 한국인들은 본능적으로 슈퍼챗을 보냈다.
뭐야, 다시 시작이야?
다음에 풀 채팅 이번에 풀어버리자 ㅋㅋ
돈으로 버튜버 괴롭히기 개꿀ㅋㅋ
이렇게 슈퍼챗이 한꺼번에 쏠리는 경우는 없었다.
버튜버들을 보아온 시청자들 또한 이런 일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기꺼이 화력을 보탰다.
30개의 붉은 슈퍼챗의 폭격세례에 이어서 슈퍼챗과 일반채팅의 비율이 3:7정도로 떨어진 채팅창은 다시 6:4로 역전되었다.
***
드문드문 슈퍼챗의 블록이 끊기는 일이 있긴 했어도, 첫 슈퍼쳇 이후로 시작된 5분간의 고밀도의 채팅폭격이 이어졌다.
1분간의 휴식기(이마저도 슈퍼챗 비율이 25%였다)이후 다시 시작된 4분간의 채팅폭격,
10분이 지나서야 진정이 되는 듯 싶었지만…
특정 단체가 그러한것처럼 30개의 붉은 슈퍼채팅 이후… 3분간 광란의 슈퍼챗 폭격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시점을 이후로 “제발 그만 보내주세요!”라고 울먹이는 아리아의 반응에 다시 시청자들이 발끈해서 1분간 돈으로 때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아리아는 복받쳐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살짝 울먹이는 소리로 슈퍼챗을 읽기 시작했다.
버튜버 구미호 조교법 파악 완료
일단 돈으로 팬다
패고 또 팬다
근데 버생 역사상 이런 슈퍼챗 연속으로 쏟아내는 거 처음보는듯ㅋㅋ
더 이상의 폭격이 이어지지 않는지 5분이 지나서야 평상시의 목소리로 돌아온 아리아는 재치있게 슈퍼챗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것들 중에는 재미난 것들이 많았다.
“나의 몸은 철로 만들어졌다.”
유명한 애니메이션의 장황한 주문
“이 방송은 보시고 계시는 스폰서들에 의해 제공됩니다.”
애니메이션을 본 오타쿠라면 한 번쯤은 들은 안내문
“아이 엠 유어 파더.”
낮은 목소리로 깔고 말하는 명언
“향긋한 냄새여 영원하라! 올드 스파이스 새로운 제품 출시!”
“스막팕!”
미국인들의 가장 성대한 축제인 미식축구 NFL의 결승전인 슈퍼볼에서 1등을 차지한 광고에 나오는 사투리를 따라하려는 성의를 보였다.
“아 이 슈퍼챗은 말이죠…”
그렇게 자신이 읽은 슈퍼챗에 담긴 드립을 가볍게 설명하는 센스까지 보이면서, 영어권 드립이 낯선 일본인들에게 소개를하고, 반대로 일본의 밈을 이해하지 못하는 영어권 사람들에게 설명을 했다.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수상할정도로 많은 밈을 섭렵한 구미호는 시청자들의 드립을 맞깔나게 읽으면서 산더미처럼 쌓인 슈퍼챗을 소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한 도네이션 채팅을 보고 “What?” 이라고 말한다음 폭소했다.
“아, 이건 한국의 밈인데… 내가 이것을 첫 한국어 슈퍼챗 리딩이 되겠네요.”
“어… 이건 유명한 드라마의 장면에서 나오는건데… 일단 나중에 설명할게요.”
그렇게 말한 아리아는 목을 큼큼 하고 가다듬고는 말했다.
“뭐요? 날 보고 성 불구자가 된다고? 고자가 됐다, 그말인가? 고자라니! 아 고자라니! 내가 고자라니!! 에잌, 고자라니 내가 고자, 고자라니!”
처음으로 제대로 말하는 한국어
하지만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낮게 목소리를 깔고, 죽기 직전 발버둥치면서 처절하게 외치는 아리아의 실감나는 연기에 이유 모르게 소름이 돋는것을 느꼈다.
그리고 예쁜 목소리를 가지고 그에 어울리는 예쁜 구미호의 모습을 가진 아리아가… 진지하게 연기하는 ‘고자라니’ 드립을 들은 한국인들은 너나 나나 가릴 것 없이 폭소를 터트렸다.
그리고 아리아가 한국어를 할 수 있는 능력자라는 것이 밝혀지고, 온갖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선라이즈에 새로운 기록이 세워졌다..
게임 방송 이후 이어진 슈퍼챗 읽기 방송은 장장 두시간 반동안 진행되었으며, 그마저도 다 읽지 못해서 다음으로 미룬다는 양해의 말과 함께 닫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날 이루어진 슈퍼챗의 횟수는 3431건이었으며, 방송에서 집계된 금액은 571만엔이었다.
달러로는 49,335였으며 한화로는 6028만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