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69화 (169/307)

〈 169화 〉 168화.

* * *

제철 요리라는 말이 있다.

해당 계절에 먹을수록 좋은 음식들인데 대게 제철 식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요리가 많았다.

마치 가을철에 전어를 먹고 여름철에 수박을 먹는것과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고타츠에서 나베를 먹는 것은 제철 요리라고 볼 수 있었다.

카가와 가키가 사는 201호에 올라간 나는 한창 다먹어가는 나베에 기꺼이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예상보다 훨씬 늦게 끝난 슈퍼챗 읽기 방송 덕분에 늦게 나베 파티에 도착한 나는 허겁지겁 .

이미 자리에는 방송을 하기 위해 자리를 떠난 카가를 대신해서 카기와 나에 언니, 그리고 츠유와 츠무기가 나베가 맛있어지도록 야채와 고기를 넣어주었다.

“후아아아, 나베 만세에에.”

슬슬 날이 풀리기 때문에 치워야하는 고타츠

고타츠의 마지막 온기를 느끼며 나는 지친 목을 달래기 위해 뜨뜬한 국물을 후룩 마시면서 하루를 마감했다.

한편 나를 쏙 빼고 시작한 나베 파티에서 나의 방송을 보던 이웃들은 나에게 많은 질문들을 했다.

결국 이런 질문이었다.

“와, 유나 씨 되게 인터넷 밈에 밝네요?”

나에게 큼지막한 닭고기 경단을 퍼준 카기씨가 순수하게 감탄했다.

하긴 세 언어와 그 언어에 유명한 드립을 아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다른 사회인들이라면 인터넷에서 유명한 밈들을 잘 아는 건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없으나, 적어도 인터넷 방송인들에게 만큼은 인터넷과 커뮤니티의 밈에 밝다는 것은 긍정적인 요소였으니 말이다.

나는 겸손하게 말했다.

“이거 다, 나에 언니 매니저 일 하면서 커뮤니티 반응 보면서 알게된거에요.”

커뮤니티에 쓰이는 인터넷 밈들은 정해져 있었다.

자주 사용하는 밈들은 잘 알아둘수록 좋았으며, 매니저 활동을 시작하고 오타쿠 문화를 배우게 되면서 열심히 공부했던 인터넷 밈들은 이렇게 내가 방송인으로서 활용할 수 있는 무기가 되었다.

“굉장하다…”

밈을 얼마나 많이 소화했냐면, 아이돌을 꿈꾸는 구미호 버튜얼 아이돌 대신에 천 년 동안 인터넷에서 버튜버 덕질을 한 히키코모리 구미호의 이미지마저 생겼을까?

뭐, 개인적인 감상으로도 나쁘지 않았다.

“그냥… 인터넷 오래 둘러보는 게 주 업무였을 때가 있었으니 어찌보면… 인생의 경험인거죠.”

닭고기 경단을 우물우물 먹은 내가 말했다.

“그리고, 한 나라의 언어로 보면 사실 그렇게 깊은것도 아닌데, 일본어 한국어 동시에 쓰다보니 그런거에요.”

“맞다, 유나 언니 한국인이었지…”

츠유의 옆에서 귤을 까먹고 있던 츠무기가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귀여운 볼을 잡아당기고 싶은 욕망을 억누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츠유는 잘 쉬고 있니?”

“저야 잘 쉬고 있었는데, 언니 덕분에 괜히 방송 욕심 생기네요. 콜라보 해금도 슬슬 되어가죠?”

선라이즈의 버튜버들은 동기생을 제외하고는 방송 데뷔이후 일정 시점까지는 다른 선배와 합동방송을 허락하지 않았다.

캐릭터성이 확립되기 이전에, 다른 개성 강한 선배들에게 잡혀버리게 되면 본인이나 회사가 원치 않는 이미지가 정착하기 때문이었다.

“응, 사실 슈퍼챗 이전부터 해금되어있었는데…”

“말 하는거 깜빡했어요?”

“으응, 솔직히 언더테일 키면서 슈퍼챗 방송 끝나고 말하려고 그랬는데…”

“아…하긴”

그 이후로는 대화 주제는 오늘 있었던 슈퍼 채팅 방송으로 이어졌다.

그날 이루어진 슈퍼챗의 횟수는 3431건이었으며, 방송에서 집계된 금액은 571만엔이었다.

여러 버튜버들끼리 나와서 합동 방송을 하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도달하기 어려운 그 커다란 금액을 달성한 나는 확실히 ‘대단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아, 부럽다. 나도 언젠가 그런 금액 한 번 찍어보고 싶네요.”

“으, 확실히 저도 5기생들하고 같이 합동방송해야 그 정도 금액이 나올까말까 한데… 역시 언니는 대단해요.”

선라이즈 사상 개인이 진행하는 단일 방송중 역대 최고 액수와 슈퍼챗 횟수를 도달한 아리아의 첫 슈퍼챗 방송은 버튜버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는건 알고있었다.

하지만 나는 왠지 ‘나 돈 잘벌어’라고 말하는 게 부끄러웠다.

무엇보다도 나는 2020년의 버튜버 판이 되기 이전에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온 그녀들에게 괜히 방송 성과나 돈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이…

“흐응, 유나는 지금 두려워하는구나? 성과에 대해서 우리들 앞에서 이야기 하는것을?”

그 기색을 알아차린 언니가 내 볼을 쿡 찔렀다.

“…”

나베의 증기와 왠지모를 부끄러움 때문에 나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돈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게 껄끄러운 유교걸이기 때문에 이런것이다…라고 자기세뇌를 하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나의 이웃들과 언니의 시선을 피해 내 그릇에 고개를 박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언니는 젓가락질이 멈춘 나를 대신해서 야채와 고기를 담아주면서 말했다.

“뭐어, 솔직히 부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야 신인이 세운 슈퍼챗 방송은 대단한 기록인걸? 그렇지 츠유야?”

“어… 네. 솔직히 부럽긴 해요. 아, 물론 언니가 그만큼 대단한 건 알고 있지만…”

특히 돈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츠유 앞에서는 가급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던 슈퍼챗은 더더욱 언급하기 껄끄럽게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무말이나 내뱉고 말았다.

“사실… 나는 뭐랄까, 츠유나 나에 언니가 닦아온 버튜버 시장에 편하게 낼름 들어온…”

따악

나는 이마에 따끔거리는 충격을 느끼고 이마를 감쌌다.

언니가 다소 화난 얼굴로 허리에 손을 올린 채로 말했다.

“자기 비하 금지! 유나가 예전의 나에게 그렇게 말했잖아?”

확실히 나는 예전의 언니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그대로 돌려준 언니는 내 변명을 듣지 않겠다는 듯이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서 내 입에 집어넣었다.

이게 무슨 병주고 고기주고도 아니고…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으나 나는 언니의 지시대로 고기를 우물거렸다.

다소 늦게 참가한 나베 파티인만큼 국물은 그만큼 많은 고기와 야채의 육수를 먹어서 감칠맛이 뛰어났고, 무엇보다도 언니가 직접 먹여주는 고기는… 조금 각별했다.

그렇게 먹는것에 집중하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을 간질거린 죄책감이 가라앉았다.

실로 신기한 일이었다.

“유나는 유나의 노력대로 아리아를 만들어 나간거고, 우리는 우리대로 이 길을 만들어 나간거야.

물론 유나가 우리 사무소가 아닌 다른 사무소에 들어갔으면 이만큼 인기를 끌지 못했겠지? 그건 사실이야.”

“맞아요. 솔직히 유나 씨 그렇게 말하는거 되게 별로인거 알아요?

그렇게 되면 저와 함께 노력하고 있는 저희 5기생은 뭐가 되나요?”

조용히 나를 바라보던 카기씨가 살짝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방금 전 나불거린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그냥 대단한 건 대단한거야. 대단한 유나가 대단한 방송을 했고 그냥 그거야.”

“거기에는 다른 요소는 크게 생각하지 말아요. 유나 언니도 알고 있잖아요?

언니 보컬실력이면 이미 일본 가요계의 탑 레벨이라는 사실을요.

선라이즈 보컬 대장인 코모레비가 인정하는 노래 괴수라구요.”

“그래, 그냥 유나는 어느 시대에 데뷔를 했던 간에 이정도 성과를 냈을거야.”

“그래도 쿠로가와씨 그건 아닐걸요?”

감정을 추스린듯 원래의 목소리로 돌아온 카기가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샤야 양?”

“아리아의 인기에는 메이드의 희생이 있었죠.

정확하게는 그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나아가야할 자리를 아리아가 대신 받은 셈이죠.

그래서 저는 유나씨의 데뷔를 아리아의 데뷔라고는 하지만… 메이드의 새로운 데뷔라고 생각해요.”

“그, 그래요?”

“왜냐면 저도 메이드를 돈으로 패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말한 카기는 자신의 휴대폰을 켜서 한 장의 스크린샷을 보여주었다.

1만엔의 슈퍼챗 송금 내역

아이디 이름은 ‘어둠의 메이드단 83’

그 다음으로 보여준 스크린샷은 라인 채팅방에는 ‘메이드 빨간 봉으로 후려패기 작전 성공’이라는 채팅 내역이었다.

카기씨 너였어!?

나는 단검에 찔린 카이사르마냥 입술을 부르르 떨면서 카기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버튜버 루미에스러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사람 마음 들었다 놓았다 하는데 건방지게 돈을 쓸 기회를 안 주더라구요?”

“흐응, 나도 그럴 걸 그랬다.”

“쿠로가와 씨도 이 방에 들어올래요? 메이드 덕질하는 단체인데…”

“앗, 저도 가입할래요.”

그렇게 세 버튜버 선배들은 ‘메이드 라’인 나를 내버려두고 내 눈앞에서 비밀 팬클럽에 가입을 했다.

실로 기가차는 행동에 나는 스스로가 멍청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때문인지… 이전과 다른 기분이 되었다.

뭐랄까

적어도 내 친구들은 내가 돈을 얼마나 벌건, 내가 얼마나 기록을 세우건…

그 성과를 시기하기는것보다 나를 골릴 궁리를 하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보.”

여기 현실에 굉장히 대단하고 예쁜 여동생이 있는데, 구태여 어둠의 메이드단에 가입을 하고 온 바보 언니가 내 옆에서 그렇게 속삭였다.

그런 언니에게 바보 소리를 듣는다니…

그만큼 내 걱정은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그래, 언니 말이 맞다.

나는 참 바보였다.

그날 내 이웃들이 보인 미소는 내가 먹은 뜨뜻한 나베보다, 봄이 찾아오기 직전 마지막 온기를 선사하는 고타츠의 내부보다 훨씬 따뜻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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