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70화 (170/307)

〈 170화 〉 169화.

* * *

[선라이즈가 작정하고 만든 대 오타쿠 종결무기feat.한국산여우]

[인터넷 가수가 이렇게까지 노래 부르는 거 본적 없다. 나가수 출연각?]

[일본 버튜버가 실감나게 연기하는 ‘고자라니’]

[선라이즈 역대급 도네이션 채팅에 혼이 나가버린 아리아]

한국 버튜버 커뮤니티는 유창하게 한국어를 말하는 버튜버를 만나게 되었다.

글로벌 소속의 프로젝트 : 드림으로 데뷔한 구미호 아리아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은 빠른 속도로 영상으로 만들어졌으며, ‘고자라니’밈을 통해서 확실하게 팬들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진짜 한국인?

­발음만으로 모름, 딕션이 너무 정확해서 영어/일본어/한국어 다 모국어처럼 들림

­그래도 일본인데 일본인 아닐까?

­ㄹㅇ 나모는 이런 애 어디서 데려왔냐?

­한국 노래도 신청하면 받아주려나..?

한국에 우호적인 버튜버들은 많았다.

과거라면 모를까, 근래 들어서 국내의 버튜버 시청자들을 대다수 끌어모았다고 생각하는 선라이즈는 외국어 교육과 확장에 적극적이었다.

물론 옆 사무소의 폐해를 들은 탓에 ‘그 나라’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렇다면 메이드 ‘라’도 혹시?

­그녀의 수상할정도로 뛰어난 롤 실력은 설마…

­확실히 구미호 일때는 모르겠는데, 초창기 메이드는 자기가 협곡 잘한다고 말했어

­ㄷㄷ

­빼박이다.

­빼박은 무슨, 미친것들아 일본이면 몰라도 롤 고수라면 중국이나 유럽에도 많이 있거든?

이것은 실로 재미있는 현상이었다.

일본인들은 그녀의 국적이 당연히 일본이라고 생각했고, 미국인들은 미국인, 캐나다인은 캐나다인, 한국인은 한국인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국적을 추측하는 건 쉽지 않았다.

광란의 슈퍼챗 리딩이 끝난 이후, 그녀는 시청자들의 관심과 사랑에 보답하고자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음악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포문을 당당하게 독특하다 못해 특별한 곡으로 시작을 했다.

“사랑의 계절이여~~”

­아 골때리네 ㅋㅋㅋ

­엔카라니 ㅋㅋㅋㅋㅋㅋ

음악 방송중에 일본의 전통 음악,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트로트같은 노래를 맞깔나게 부르는 모습은 확실히 일본인처럼 보였다.

심금을 울리는 서정적인 곡이 끝난 다음, 그녀는 힘차게 저음을 내면서 게이머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온 서양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뿔피리 소리와 함께 웅장하게 들려오는 비트

“허, 후, 흐어!”

방금 전 높고 가느다란 소리로 불렀던 사람과 전혀 다른 짙은 미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도바킨 도바킨! 그대의 명예를 걸고서! 모든 악을 물리치노라!”

­골 때리네 ㅋㅋ

­드래곤본ㅋㅋㅋ

­아 스카이림 못참지 ㅋㅋ 역시 양덕이라니까 ㅋㅋ

“푸스 로 다!”

곡 중간에 쉬어가는 드립과 자신의 가슴을 두들기면서 부르는 서양 RPG의 명작 스카이림의 노래를 부르는 그 모습은 자신의 끼를 발산하는 미국인 스트리머와 닮았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채팅에 재미난 이야기가 많네요.”

“제가 무슨 국적이냐구요?”

“저는 글로벌 키츠네랍니다. 세상의 틈새에서 지냈기 때문에 기억이 없네요.”

“일 천 년 동안 살아봐요, 태어난 곳이 기억이 가물가물하죠.”

구미호의 능청스러운 대처에 심술난 시청자들이 도네이션 채팅으로 그녀의 심기를 긁었다.

[치매 구미호]

[할머니]

“Hey What?!”

“Nah! 그런 반응으로 제 국적을 알아내려는 건 소용이 없어요. 무다무다무다!”

“네에 네에, 그렇게 많은 추측을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중요한건 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점 아닐까요?”

짐짓 화나고 놀란척을 해서 그들의 관심을 흘린 후 아리아는 말없이 기타연주를 시작했다.

슈퍼챗이 활성화 되고, 구독을 할수 있게 된 시청자들은 그녀의 아이덴티티 컬러인 짙은 파랑색 형광봉을 흔들면서 그녀의 기타 연주를 들었다.

세련되고 노련한 기타 연주는 아니었다.

하지만 듣기에도 나쁜 곡이 아니었기에 시청자들은 이 다재다능한 여우가 하고 싶어하는대로 연주를 들어주었다.

­아 이거 ㅋㅋ

­메이드 라 발표곡이잖아?

­어허, 메이드하고 구미호는 다르다니까?

­하지만 자기 곡을 직접 연주하는 건 숨길 생각이 없는거잖아 ㅋㅋ

­근데 그 곡 아직 정식 발표 한건 아니지 않나?

기타의 선율이 멈추었다.

“그, 그런가요?”

누가 들어도 당황한 구미호의 목소리에 시청자들은 일제히 ‘ㅋㅋㅋㅋ’를 날렸다.

어설프게 놓여진 물건이 있으면 정리하고 싶어하는 마음처럼, 그녀의 어설픈 이중생활을 목격하는 시청자들은 왠지 모르게 그녀를 괴롭히고 싶어했다.

“아, 아니라구요. 그 사람 곡 곧 발표한데요.”

“누가 그런다고 했냐구요? 제, 제 룸메이트요!”

“어허! 거짓말이라뇨! 아리아는 정직과 신뢰를 모토로 삼는 선량한 구미호라구요.”

음악 방송 대신에 구미호 청문회 비슷한 채팅 분위기가 되었지만 뭐 어떠한가?

시청자들은 신나게 아리아를 놀렸다.

“흥, 그러면 저 화낼거에요. 화 낼거라구요!”

“여러분들이 제 고향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니까 아예 불을 질러버리도록 하죠.”

그렇게 삐친 얼굴을 한 아리아는 기타를 치면서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당신에게­ 드릴게 없어서­ 제 마음을­ 드려요”

“나지막한 인사에, 수 많은 내 마음을 고이 담아~”

“그대에게 건내면 내 마음 조금 알까요~”

그것은 선명하게 아름다운 노래였다.

일본을 강타하다 못해, 방송된지 삼 주차만에 일본의 넷플릭스를 점령한 명작 ‘사랑의 불시착’의 곡인 ‘마음을 드려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와 미친

­이런 인싸곡을?

­발음이 한국인인데?

­아니야, 그냥 외국어 발음을 원어민처럼 한 거 아닐까?

­순간 아이유인줄ㅋㅋㅋ

오타쿠들에게는 유명한 곡이 아닐 수도 있었으나, 현재 일본에서 강타하고 있는 한류 붐을 상징하는 곡을 알고 있는 시청자들이 꽤 많았기에 그녀의 선곡은 꽤나 적절하다고 볼 수 있었다.

“어떤 이유로 만나, 우리 사랑을 했던, 지금 이순간처럼~”

하지만 씨익 미소를 지은 아리아는 3절을 일본어로 개사해서 부르기 시작했다.

그 발음 또한 일본인이 부르는것처럼 곱고 아름다워서 그녀의 국적을 추측하려던 사람들은 이 다재다능한 여우의 끝을 알아내지 못하고 두 손 두발을 다 들었다.

­와아, 오타쿠라서 무슨 드라마인줄은 모르겠지만 좋았다!

­원래 모르는 나라 언어를 이렇게 직접 듣는 게 아리아 방송의 매력이지

­근데 얇은 음과 짙은 남성의 음, 그리고 탄탄한 가성이 나오다니 완전 자판기네

­노래만 들어도 행복해…

“자아, 여기까지 왔으니 한국어 관련 공지를 하고 싶어요.”

“저는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고, 한국어를 방송에서 사용할만큼 능숙합니다.”

“하지만 제 방의 시청자들은 영어와 일본어에 친숙한편이니, 부득이하게 한국어 코멘트에 대해서는 반응을 잘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소통 방송에서는, 게임을 하고 있거나 무언가에 집중을 하고 있지 않을 때에는 이렇게 다른 나라의 언어로 기재를 해 줄테니 걱정하지 마요.”

“여러분의 구미호는, 꽤 유능하답니다.”

차분한 한국어로 시작된 그녀의 공지는 말하면서 동시에 영어로 기재되었다.

시청자들은 실시간으로 그녀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고, 한국인들은 난생 처음으로 선라이즈 소속의 버튜버가 한국어를 길게 말하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수준이 아닌, 이렇게 유창한 한국어라니… 그야말로 감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과 함께 윙크를 하고 손가락 하트를 날리는 그 모습은, 실로 요망하기 그지없는 구미호와 다를 바 없었다.

­누나 나 죽어요.

­헤으응

­정말 나 죽을 거 같아.

“OMG, 한국인 시청자들이 죽을 거 같다는데?”

“죽지 마요!”

“죽지 말아야 하니까, 눈이 번쩍 떠지는 곡을 부를게요.”

“별을 돌려라 세상의 한 가운데에서!”

일본의 전통깊은 시리즈인 마크로스의 명곡인 Lion을 부르기 시작했다.

“네가 지키는 문의 열쇠는 엉망 투성이야~”

듀엣 곡을 아리아의 아름다운 가성과, 메이드의 달달한 저음으로 나누어 부르면서 혼자서 1인 2역을 하면서 말이다.

­메이드 라! 메이드 라!

­아리아! 아리아!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저음의 메이드 목소리와 함께, 그날의 방송 또한 5만명대의 시청자를 기록하면서 종료되었다.

***

“후아아, 큰일 날 뻔 했다! 아 언니 고마워요!”

확실히 메이드와 구미호를 오가는 이중생활 아닌 이중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씩 깜빡깜빡할 때가 있었다.

결론적으로 뻔뻔함으로 무마시켰지만… 모래 발표하는 메이드 라의 타이틀곡을 기타로 치는 건 내 실수였다!

“유나도 참, 고생이네… 슬슬 게임 방송들도 좀 하면서 목 아끼지 그래?”

“아아, 그래도 평소에는 저음으로 말하고 다니니까 괜찮아요.

그래도 목 관리는 소중하게 해야하니까… 안 그래도 슬슬 합동 방송 기획을 잡으려구요.”

“역시 시작은 마인 크래프트부터야?”

“아뇨, 이거 부터 할거에요. 안 그래도 타마가 자기랑 같이 안 놀아준다면서 삐치더라구요.”

나는 손을 총 모양으로 만든 다음 빠앙­하고 쏘는 시늉을 했다.

언니는 장난스럽게 총을 맞아 쓰러지는 연기를 해주었다.

정말이지, 이전의 언니와 다르게 참 재미있는 반응이었다.

“쳇, 언니랑은 안 놀아주고.”

“언니랑 같이 할만한 게임 중 제 아드레날린을 자극할만한 거는… 공포 게임인데 괜찮으세요?”

“……”

“아리아와 유리아의 폐허 탐방이라던가, 흉가 탐방… 안 그래도 요즘 새로운 신작 호러 게임이…”

“흠흠, 당분간 언니는 동기생의 자랑거리, 100만 구독자의 클레랑 놀거니까, 아리아랑은 정.말.아.쉽.게.도.합.방.못.하.겠.는.걸?”

“흐으응…”

“뭐, 왜! 뭐!”

바보같은 언니

그냥 같이 음악 방송을 하자고 하면 되는데, 요즘 들어서 내가 목을 많이 쓰기 시작한다고 생각 했는지 노래를 부르는 거에 회의적이였다.

자기도 방송인이라서 이 정도로는 성대에는 무리 가지 않다는 거 잘 알면서… 방송인이 된 나를 왠지 물가에 내놓은 아기 취급하기 시작한 언니는 이래저래 잔 걱정이 늘은 것 같았다.

내가 주로 하던 가사도 언니가 하기 시작하고, 혼자서 관리하던 집은 이제 언니가 가사 활동을 도우면서 나의 부담을 덜게 했다.

유나는 이제 매니저가 아니니까, 이 정도는 동거인으로서 같이 해야한다고 말하며 내가 사용하던 청소기를 뺏는 언니였다.

그런 언니를 어떻게 사랑스럽게 바라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유나야, 내가 누차 말하지만!”

“인터넷 방송인들은 목소리가 중요하다구요. 알았어요. 알았어요.”

“흐으음, 제대로 듣고 있는 거 맞지?”

내가 앉아있는 의자에 다가 온 언니는 뚫어져라 나를 의심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언니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

“맞다, 언니. 내일 간만에 이로하네 집에 놀러갈건데 같이 갈래요? 마침 마미 선배도 쉬는 날이니까 네 명이서 놀아봐요.”

“유나, 너어!”

“흐응, 왜요?”

급작스럽고 장난스러운 키스에 전혀 대비를 하지 못한듯 언니는 얼굴을 붉게 붉히며 내 가슴을 콩콩쳤다.

이전이라면 가볍게 받아줄 언니의 애교에는, 지속적인 운동과 건강 관리로 탄탄하게 붙은 근육 때문인지 꽤나 아팠다.

왠지 장난기가 오른 나는 언니를 번쩍 들어올리고 비행기를 태워주웠다.

허공에서 언니는 바둥바둥 거렸지만 어림도 없었다.

“슈웅~ 슈웅~ 날아간다!”

“나, 아이 아니라고! 나 언니라고!”

“네에 네에, 저를 너무나도 아껴주는 언니죠~”

“유나 건방져!!”

그렇게 언니와 유치한 장난을 하고 있을 무렵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나의 위층에 살고 있는 귀여운 이웃인 츠유와 츠무기였다.

“유나언니 내일 뭐해요? 방송 일정 없던데, 저랑 같이 놀러 갈래요?”

두 자매를 본 나는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유나 언니?”

“???”

“에휴.”

대충 내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 지 파악한 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렴 어때,

노는건 같이 놀아야 재미있는걸.

내일은 버튜버 4인 합방이다. 내가 방금 그렇게 정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