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화 〉 1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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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프로게이머라는 직종은 꽤 고된 직군이다.
과거에는 ‘게임을 하면 돈을 벌어?’라는 말로 일방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직군이었지만, 화려한 그들의 일상 아래에는 호수위에 우아하게 떠있는 백조처럼 끊임없는 발길질이 밑바탕 되어야만 했다.
E스포츠가 커진 이후 많은 자본들이 몰려들고, 이전과 다른 많은 스타들이 탄생하게 된 지금 프로 게이머는 단순히 게임을 좋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최고를 향한 압박감을 버텨내고 수양을 할 수 있는 진정한 재능 넘치는 이들이 지원한다.
높아진 입금, 커져가는 시장, 넓어져가는 인재들 사이에서 최고를 위한 여정을 밟아야하는 그들의 삶은 결코 게임만을 하기에 편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그들의 플레이 하나하나는 책임감이 서려있는 숭고한 여정이기도 하다.
동생을 통해 그런 삶을 알고 있는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삶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아니 물론 나도 내 방송에 책임감을 지게 된다.
하지만 나에게 대한 온전한 스포트 라이트가 있는것도 아니고, 유리아와 타마라는 귀여운 여성들이 나에게 쏟아지는 일방적인 관심을 나눠가지고, 빈 오디오를 채워주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가족보다 더 아끼는 그녀들 사이에서 하는 게임이 싫을리가 없었다.
아리아 진짜 개 쩐다 개웃겨 ㅋㅋㅋ
미치겠네 ㅋㅋㅋ 군기잡힌 여우 ㅋㅋ
유리아/타마에게 군기 잡히는 버튜버가 있다?
루미에라면? 어림도 없지 바로 아싸 선배들 몰아붙이기 ㅋㅋ
나는 메이드같은 느낌 기대했는데 이것도 좋은데?
아무튼, 최고였다.
그리고 게임을 하고 칭찬받고 돈을 받는다고?
동생인 프로게이머의 삶에 비해서 버튜버는 확실히 근사한 직업이라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불안한 미래에 대한 우려가 없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시장이라는 것은 언제나 잠재적인 적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과 스트레스 보다, 버튜버 아리아가 되고 난 이후 꽂히는 월급은 나에게 어마어마한 쾌감을 선사했다.
아니… 사실 금액은 알고 있었다.
이제는 아니지만 한 때 언니의 재산 관리 측면에서 언니의 수입을 본 적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들어오는 이 돈은… 확실히 컸다.
그냥 컸다.
아주 컸다.
그 전날 있었던 업무가 인터넷 게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이 직업은 나에게 적성이 맞는 직업일지도 모른다.
나는 놀라운 행운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복권 담청자처럼 차가운 이슬을 맞으며 정원을 거닐었다.
심지어 어제의 월급은 그냥 고정 월급과 성과금이며, 저번의 슈퍼챗 수익이 아직 환산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냥 말이 되지 않았다.
돈 돈이다. 돈
돈이 있으면 많은걸 할 수 있다.
차를 바꿀까?
아니면 새로운 가구를 하나 사버려?
이참에 그래픽 카드 대란에 3080을 FLEX해버려?
평소에 꿈꾸지 못했던 맥킬란 25주년을 아예 병 채로 사버릴까?
집 안에 근사한 맥주 자판기를 가져다두고, 수십병의 맥주캔을 넣은 다음 랜덤으로 뽑아 마시는 것도 좋겠지
커피를 좋아하는 스트리머들이 많으니 천 만원짜리 커피 머신을 사는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
나는 나에게 닥친 이 놀라운 행운을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배풀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즐겁게 아침 이슬의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걸음을 계속했다.
“하, 재산 관리인이라…”
물론 그것은 상상에 그쳤다.
뭐 그래도 맥킬란 25주넌은 한 번 마셔보고 싶기는 한데…
그래도 진짜 버튜버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받는 첫 월급을 무언가 의미있게 쓰고 싶었다.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재산을 관리하는 재산 관리인을 떠올렸다.
그러고보니 내가 지금 거닐고 있는 이 집의 주인… 그러니까 이로하와 마미 선배는 회사 주식을 가지고 대박을 쳤다고 했지?
뭐 그런 식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나의 눈에는 손을 잡고 즐겁게 등교하는 아이들이 들어왔다.
한국과는 다르게 3학기 제도를 도입하는 일본의 초등학교는 4월에 입학을 해 7월말에 방학을 시작해 8월 말까지, 12월 말과 1월 첫째 주 까지 방학을, 그리고 3월말과 4월초까지 방학을 한다고 한다.
때문에 2월이 꺾여가는 지금 시점에 등교를 하고 있는 학생들은 다가올 방학을 떠올리며 즐겁게 가는 것일까?
그런 호기심이 든 나는 주머니 안의 마스크를 쓰고 때마침 지나가는 초등학생에게 다가갔다.
이상하게도 중학생들부터는 나를 보고 어는 애들이 많은데, 초등학생들에게는 내 외모가 위압감을 주지 않는지 그들은 나를 ‘예쁜 누나’라고 부르면서 잘 따랐다.
실제로도 내가 지금 보는 두 아이, 하루토 군과 히마리 양은 이전 할로윈때 나에게서 사탕을 받아간 아이기도 하다.
“안녕 얘들아~”
“앗, 한국 언니다!”
“안녕하세요!”
란도셀과 초등학생 교복을 입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마스크를 끼고 있음에도 충분히 어른들에게 느낄 수 없는 생명력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해 보였다.
“등교를 하고 있는 거니?”
“네, 간만에 학교에 가서 기뻐요!”
그러고보니 슬슬 올림픽 연기 이야기가 나오게 되면서, 억눌러 있던 학교들이 폭발하여 아이들에게 교육권을 보장해야한다면서 정부 지침을 어기고 등교를 허락하는 학교들이 늘어났다.
아마 이 두 아이도 그 때문에 가는 거겠지.
문득 나는 초등학생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했다.
확실히 내가 살고 있던 사이타마의 저택은 인근에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없어서 그들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것저것 묻기 위해서 대충 옷을 걸쳐입고 그들과 함께 등교하기 시작했다.
“누나는 왜 한국인인데 일본에 살아요?”
“언니는 왜 그렇게 예뻐요?”
“누나는 일본어를 왜 그리 잘 해요?”
“언니는 남자 친구 있어요?”
두 아이의 개성넘치는 질문에 나는 그들의 양 손을 잡고 흔들면서 대답 해주었다.
그러다가 그들의 학교 생활에 대해서 여러가지 듣게 되었다.
가령, 올림픽 유치를 위해 학교로 통해 번지는 코로나를 막기 위해 온라인 수업을 강행했다는 이야기
자기네 집에는 인터넷을 잘 쓰지 않아서 이번 기회에 인터넷을 깔아서 와이파이로 포켓몬 고를 편하게 한다는 이야기
도쿄의 이런 통학 분위기가 싫어서 일부러 이사를 간다며 친구를 떠나보낸 이야기
마스크를 대충 썼다가 선생님에게 혼난 이야기 등등
완벽하게 나의 어린 시절과 달랐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도 국적을 불문하고 아이들은 아이들인 탓일까?
그들의 우울한 대답과 상반되게 그들의 분위기는 밝았다.
덩달아, 나도 삶에 대한 기쁨이 충만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나의 동심을 자극하는 즐거운 등교는 학교가 보이는 횡단보도 앞까지만 지속되었다.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 아이들의 등교를 돕는 도우미 어머니들이 일본에도 존재하는 모양인지 내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는지 횡단보도 앞에서 나는 제지당했다.
“얘들아 학교 조심해서 다녀오고!”
“예쁜 언니 고마워요!”
“누나도 좋은 사랑 하세요!”
아이를 떠나보낸 나는 나를 멈춰 세운 어머니를 보았다.
오오쿠 히사나라고 이름을 밝힌 아주머니는 이내 아이의 손을 잡고 등교하는 나에 대해서 가볍게 물었다.
다행히(?)도 독특한 머리 색깔 덕분이지, 아니면 젊은 두 여성이 근사한 집에 살고 있는 덕분인지 하나카와 댁은 아주머니들 사이에서도 꽤나 유명한 모양이다.
그들의 직장 동료라고 밝힌 나는 이내 할로윈의 이야기를 하였고, 아이들은 당시 우리의 저택에서 근사한 사탕을 받아간 탓인지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마미 선배와 이로하는 긍정적인 이미지였다.
“어휴, 저는 그것도 모르고.”
“헤헤, 그러실 수 있어요. 오히려 아주머니의 꼼꼼함 덕분에 이 마을에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다니는거 아닐까요?”
“어휴, 얘는 뭔…”
인터넷 방송 업계에 일한지 2년 다되어가는데 아주머니와 친해지는 일 쯤이야 금방이었다.
한 번 생기기 시작한 일본에 대한 호기심, 그러니까 대학생과 사회생활에서는 잘 얻을 수 없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시작하자 어머니는 모든 아이들이 등교하고도 나와 기꺼이 수다를 어울려주셨다.
이윽고 이번 할로윈도 잘 부탁(?)한다는 소리를 들은 나는 손사레를 치는 아주머니의 손에 따스한 캔 커피를 안겨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나는 줄넘기를 하고 있는 츠무기와 마주쳤는데 그녀가 중학생이라는 걸 기억한 나는 물었다.
“츠무기는 등교 안하니?”
참고로 그 날은 목요일이었다.
“아, 개교기념일이에요!”
그리고 그녀는 전가의 보도를 꺼냈다.
아 개교 기념일은 인정이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츠무기가 참 등교 생활 꼬박꼬박 하는 착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운동부원답게 어린 아이의 몸에도 잘 단련되어가는 아이 특유의 몸을 보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파자마파티를 하고 잔 덕분에 거실의 중앙에는 마미 선배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누워있었는데 괜사리 어제의 방송이 떠오른 나는 이로하의 볼을 심술궂게 쿡쿡 찌르고 (—그러자 흐에으우에잉 같은 귀여운 소리가 났다) 노트북을 켰다.
여러가지 검색을 하고 내 재산을 확인한 나는 첫 월급의 사용처를 정했다.
캐릭터 이미지에 변화가 갈만한 일이었기에 나는 매니저인 유키하라 언니에게 메세지를 보냈고 언니는 한 번 회사 규정을 확인해보겠다는 대답을 했다.
아침부터 작업을 했는지, 아니면 밤 새 작업을 했는지 모를 마미 선배가 귓가에 꽂힌 연필이나 목에 걸친 헤드셋을 벗지도 않는 채 슬리퍼를 질질끌고 커피를 들고 내 옆에 앉았다.
“유나 뭐 좋은 일 있냐?”
“글쎄요?”
“글쎄는 무슨, 내려가다가 너 초등학생들 손 잡고 학교 가는거 다 봤는데.
오타쿠들 사이에서 이러면 페도라는 거 알지?”
“참 내, 기가 차서…”
“아무튼 아침부터 헤실헤실 웃는 거 보니 참…”
“어때요 예쁘죠? 막 에너지가 샘솟고 그렇죠? 아이들이 저보고 예쁘다고 그렇게 칭찬을 하더라구요.”
“그래 잘났다 잘났어.”
그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휴대폰에는 매니저 언니의 연락이 왔다.
그것을 읽은 나는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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