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79화 (179/307)

〈 179화 〉 178화.

* * *

링피트의 개발 목적은 운동량이 적은 게이머들을 위한 홈 트레이닝 겸 체력 단련을 위한 게임이다.

하루 30분 정도가 최소 권장 운동량이고 1레벨부터 30레벨까지의 운동 부하를 정하는 것으로 자신에게 알맞은 운동 강도를 설정할 수 있다는게 매력적인 게임이다.

많은 트레이너들과 전문가들도 운동이 부족한 사람에게 링피트는 훌륭한 운동이 되는 게임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 운동이 부족한 사람들은 말이다.

­아그니도 K.O 선언

­파라오가 패배선언이라니 어이어이ㅋㅋ

­이제 남은건 최후의 용사뿐

­이게 마왕이란 말인가? 무섭다!

­지치지 않는 체력ㅋㅋㅋㅋ

하지만 아리아에게는 아니었다.

심장이 하나 더 달린 괴물도 아니고, 그녀는 자기 혼자 최고 부하 레벨인 30인 상태로 거리낌없이 운동을 한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아아악! 아리아야 살려줘!”

“구미호야 나 죽어... 나 죽는다...”

“아리아님 제가 잘못했어요. 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

곡소리가 울려 퍼진다.

헬스장에서 ‘하나만 더’라고 말하는 트레이너들에게 PTSD가 온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방송에 잠시 빠져나갔을 정도로 교묘하게 사람을 몰아붙이는 구미호가 선배들을 몰아세운다.

주 된 타겟은 당연히 운동 부족인 카린

그리고 상대적으로 틀린 자세가 잦았던 아그니였다.

게임의 허락? 그런건 인정할 수 없었다.

그녀는 지엄한 법정의 판사가 되어 틀린 동작을 허락하지 않았다.

행여나 무릎이 조금이라도 틀어지게 되면 다시! 라고 외칠 정도로 박력이 뛰어났다.

애초에 초반의 20분 플레이 만으로 기세가 넘어갔다.

데뷔 기간이 2년 빠른 선배이건, 100만 구독자를 보유한 선배이건 그런건 상관 없었다.

아리아의 게임 플레이 화면과 다른 버튜버들의 게임 플레이 화면을 본 사람들은 이에 공감했다.

­나도 내 옆에서 부하 30걸고 링콘(링피트 조작 기계)가 박살날정도로 근력을 보이면 거부 못할 듯

­이상하다, 내가 헬스장에 있나?

­카린 진짜 죽는 거 아니야?

­카린 처음에는 아리아가 만져준다면서, 느낀다면서 좋아했는데 지금은 숨소리 뿐이야

­어이어이ㅋㅋ엘프의 체력ㅋㅋ너무 허접이라고

그렇게 남아있는 사람은 단 한명, 용사 에이아였다.

선라이즈 내부에서는 드물게 외향적인, 그러니까 오타쿠들이 인싸라고 말하는 그녀는 실제로도 스포츠를 선호하였고 외부 활동도 잦았고, 무엇보다도 한 시간동안 라이브를 진행하고도 멀쩡할만큼 체력이 튼튼했다.

하지만 그녀는 두려웠다.

눈앞의 구미호를 보면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자, 아그니씨 무릎 조심하게 오므리고...”

“허벅지 안쪽 근육을 당긴다고 생각해보세요. 네 바로 그렇게요.”

“만지는 게 야하다구요? 무슨 소리에요? 저는 선배들의 건전한 운동을 위해 자세를 바로잡아주는 훌륭한 후배인걸요?”

저 괴물은 자기 분량의 스쿼트 80회롤 모두 채우고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채 선배들을 농락...아니 지도하고 있었다.

체력이 무한이라도 되는 듯 그녀는 게임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선배들을 지도해주는 게 목적인마냥 선배들에게 기합을 불어넣으면서 운동을 시켰다.

그 덕분에 게임의 인지 기능의 허점을 이용해서 날먹을 못하게 된 두 사람은 한계 끝까지 쥐어짜이고 장렬하게 쓰러졌다.

분명히 로테이션 제도로 세 명이 번갈아가면서 게임을 하건만, 저 무식한 괴물은 혼자서 둘을 쓰러트렸다.

­용사님 파이팅!

­승리를 믿어요!!

­진짜 에이아 너 밖에 없다!

­선배의 위엄을 보여줘!!

그렇게 마왕을 토벌하기 위해 떠난 용사 일행 중 엘프와 파라오가 쓰러지고 용사 홀로 남게 되었다.

그야말로 애니메이션에서나 볼법한 장절한 풍경에 시청자들의 가슴이 웅장해졌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생글생글 웃고있는 아리아를 보고 있는 에이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자, 이제 에이아 선배 혼자 뿐이네요? 우후후.”

매혹적으로 아름다운 목소리

하지만 그것이 1시간동안 하드 트레이닝을 하고도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음성이라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에이아 선배는 어디를 좋아하시나요? 특별히 선배가 원하는 부위로 승부에 임해드릴게요.”

“저기, 아리아 힘들지 않아? 괜찮다면 조금 쉬었다가...”

“아니요? 이렇게 적당하게 몸이 달아올랐는데 얼른 운동을 해야죠. 자 선배 도망가지 마시고...”

그렇게 용사와 구미호, 두 사람간의 싸움이 지속되었다.

***

“후아~~ 링피트 은근히 운동이 되네요? 생각보다 단련이 되는구나 이거.”

방송이 끝난 후, 나는 아그니 선배의 집에 있는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온 후 그렇게 말했다.

“괴...물...”

“저, 저리가!”

“하하...”

나를 괴물 최급하는 샤디아 선배, PTSD가 온듯한 반응을 보이는 유메미, 그리고 난처하게 머리를 긁적이는 아오이가 있었다.

“유나 씨 정말 지치지도 않으세요? 어제는 메이드 분량의 방송 녹음도 했잖아요?”

“아하, 그래서 샤디아 선배가 이 제안을 수락한거군요?”

“당연하죠, 선라이즈의 운동 괴물 유나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어쩐지, 나름 인도어에 가까운 샤디아 선배가 내 쪽에서 제안한 링피트 합동 방송을 수락해줄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는데 그런 배경이 있었구나.

나는 녹초가 되어서 완전히 다운되어버린 유메미를 발로 툭툭 건드리면서 물었다.

“그래서 이 체력 고자 유메미는 어쩐일로 저에게 덤벼들었나요?”

“그게... 방송 수록 후 피곤한 유나가 하드하게 링피트 어드벤쳐 즐기면 쓰러질테니 그 틈에...”

진심인지 가심인지

구분이 가지 않겠지만 그 대상이 유메미니 반쯤은 진심이라고 보겠지

나는 안마라는 명목 아래 그녀의 등을 사뿐히 즈려밟아주었다.

“아아악! 잘못했어요! 살려 줘! 매니저!! 에이비쨩!! 너의 아이돌 죽는다!!”

“후아, 그래도 유나랑 이렇게 방송 하게되니 즐거웠다.”

“그러게, 나도 메이드가 아닌 이런 버튜버로 함께 방송 즐기게 될 줄 몰랐어.”

완전히 쓰러진 유메미를 뒤로한 채, 유우키가 친근하게 어깨동무를 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1시간 만에 쓰러진 두 사람을 대신하여 30분 넘게 운동을 이어나간 유우키는 확실히 다른 사람들보다 건강한 편이었고, 그녀와 함께 운동하는 건 내 입장에서도 퍽 즐거웠던 터라 나도 부드러운 미소가 나왔다.

“이야, 그래도 나도 자기 관리 한다고 생각했는데... 유나는 대단하네?”

“방송인이 되었으니 안 그래도 더더욱 체력에 신경쓰게 되더라고.

의외로 매니저 업무들이 많은 편인데 그거 싹 안하게 되니 머리가 편해지고, 머리가 편해지니 몸도 느슨해지는 거 같아서 요즘 신경 좀 썼지.

아 고마워요 선배.“

“카르카데라고 하는 음료야, 히비스커스를 사용한 이집트 전통 차인데 무화과 시럽을 넣어서 먹기 편할거야.”

아름다운 석양빛과 같은 음료는 확실히 독특한 풍미가 있었다.

색다른 맛의 신맛이 아름답게 혀 안에서 맴돌았는데, 무화과 시럽 속 단맛이 신맛을 잡아주어서 굉장히 흥미로운 맛이었다.

그렇게 음료를 마시면서 우리들은 가볍게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완전히 방전된 유메미도 이따끔 대화에 끼어들면서 근황부터 시작해서 올해 계획등을 묻기 시작했는데 역시 화제의 대상이 된건 나와 아리아였다.

방송 경력으로 보나, 숙련도로 보나 나의 선배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세사람은 내 앞길을 축복해주었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자신들의 고유 방송에 합동을 제시하였는데...

“유나 씨, 그거 알아요? 이번에 새롭게 나온 유희왕 신작 게임이 있는데... 이참에 카드 게임의 세계로 들어오는 게 어때요?”

“유나야아아, 나랑 같이 야한 농담 하면서 놀자...”

“유나, 혹시 괜찮다면 나랑 같이 만화 책 읽기 하지 않을래? 왜, 너나 나나 덕력이 좀 부족하잖아.”

뭐 이런 식으로 앞으로의 방송을 제안하였다.

당연히 메이드가 아닌 아리아에 대한 제의였기에 나 또한 흥미롭게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래도 메이드였던 당시에는 목소리만 나오고 내가 1:1 게스트로 참여하는 방송을 꺼려했기 때문에 그녀들은 내가 모르는 나의 장점을 하나하나 읊으면서 제안을 했다.

슬슬 아리아의 캐릭터성이 확립된 이후, 일본 서버의 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면서 이참에 여기 있는 멤버들과 어떤 합동 방송을 할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본 샤디아씨는 왠지 모르게 모성애가 느껴지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선배... 왜요?”

“아니, 그냥 유나 씨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방송인이 되어서 다음에는 뭐 하면서 놀까~하는게 고민하는 게 귀여워서 말이에요.”

“그, 그래요?”

“네, 물론이죠. 여러분들도 그렇죠?”

두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시집 안 간다고 난리치는 애들이 먼저 가더라, 유나도 버튜버만큼은 결단코 반대하더니 결국에는...”

“저는 유나가 이 업계에 일할 때 열정을 가지고 있는 걸 봐서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유나는 재주가 많잖아요?”

“그, 그렇구나...”

“애초에 메이드의 일을 수락한 시점에서 끝난거죠 뭐. 유나 씨같은 재주 다양한 사람이 얌전하게 지내는 게 오히려 이상했답니다?”

“그래도 나는 다행이야, 유나랑 뭐랄까, 동등하다고 해야할까, 매니저와 버튜버의 관계가 아닌 업계에 일하는 사람으로서 편하게 된 그 느낌?”

“아, 알지알지,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유나라면 훌륭한 버튜버가 될 수 있으니 말이야.”

“아무튼.”

샤디아 선배는 나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버튜버가 된 걸 축하해요. 같은 동료로서,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랄게요.”

나 또한 선배의 손을 마주잡으면서 말했다.

“저도 잘 부탁드릴게요. 선배님.”

이전에는 매니저와 버튜버였더라면

이제는 버튜버와 버튜버의 관계가 된 나와 내 회사의 동료들과 새롭게 인사를 나누며 우리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바보같이 미소지었다.

정말이지, 버튜버가 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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