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87화 (187/307)

〈 187화 〉 186화.

* * *

“네, 다음 버튜버 뉴스입니다. 3월 23일에 있는 클레스타인의 100만 구독자 기념 겸 생일 라이브 티켓이 판매 중에 있습니다. 복귀 방송 이후에도 열심히 활약을 하는 클레스타인 양의 멋진 행보, 많은 응원 바라겠습니다.”

선라이즈를 발칵 뒤집고 커뮤니티를 화끈하게 불태운 비즈니스 연애 발언 이후, 아무렇지도 않게 태평하게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메이드 라는 확실히 데뷔 1년차라고 생각되지 않는 노련미가 가득했다.

일주일간의 버튜버 계의 소식들을 전하고 회사의 중요한 기획이나 전달 사항을 대신 전하는 선라이즈 뉴스 코너의 메이드는 언제나 그렇듯 한 점의 흐트러짐 없이 차분하게 소식들을 전해 나갔다.

­아오, 저 뻔뻔한 거 봐

­어떻게 목소리 하나 떨리지 않고 저러지?

­역시 우리 메이드님, 대단해

­ㅋㅋㅋ 얘들아 진정해, 가치코이 하는것도 아닌 데 너무 열내지 말자

­맞아, 아리아가 모든 커플링 지지한다고 했잖아

“아울러 최근 선라이즈 소속의 버튜버인 모 여우씨의 발언이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데 말이죠.”

­무친

­그거 니 이야기잖아

­어허, 메이드하고 구미호하고 다르다잖아요

­아무튼 본인이 그랬음

“모 여우씨의 발언에 대해서는 회사 측에서는 별다른 공식 입장을 재기하지 않을것이라는 전달 사항이 있습니다. 당사의 아이돌들의 사생활에 관련되어서는 회사의 기밀 유지 사항을 어기는 등의 커다란 계약 위반행위가 아니고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커다란 문제점이 아니라면 본인의 재량에 맡기는 것이라는 지침이…”

­하렘은 사회 통념에 어긋난 거 아닌가요?

­사람 홀리는 여우와 사람 쳐내는 메이드가 만났다.

­아무튼 적당히 불타오르라는 말이잖아

­본인 뉴스를 본인이 전하는 기묘한 상황인데 메이드라 그런지 너무 그럴싸한데

­아무튼 저 차분한 쿨 톤 메이드와 애교 넘치는 구미호가 같은 사람인게 사기다 사기.

그렇게 본인의 입으로 본인에 관련된 뉴스를 깔끔하게 정리한 메이드는 무사히 방송을 마쳤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사람이다.

방송 진행 능력도 그렇고 멘탈 관리도 그렇고, 뻔뻔함도 대단한대다가 요즘 들어서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대답을 내어주지도 않고 일부러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서 화제 전환을 하는 식으로 시간을 잘 끌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애태우게 하면서 자신에게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움직임을 모를 리 없는 유키하라는 다시 한번 자신이 이 대단한 사람의 매니저라는 사실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고생하셨어요. 유나 씨.”

그리고 유나에 대해 알게 된 또 하나의 다른 점

그건 다름 아닌…

“언니이~ 저 힘들어요~”

이 대단한 방송인은 친해졌다 싶으면 거리낌없이 거리감을 훅 좁혀온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덥썩­하는 소리와 함께 다 큰 성인 여성이 아이처럼 자신에게 안겨온다.

처음에는 놀랐고, 심장이 떨어지는 게 아닐 정도로 두근거렸지만 그녀의 나이가 고작해야 스물인걸 감안하면 아직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애기나 다름 없었다.

“고생했어요. 유나 씨.”

그렇게 유키하라는 자신에게 안겨 온 유나의 등을 토닥여주면서 그녀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었다.

애교 많고 유쾌하고 활발하지만 의외로 속이 여리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기 때문에 온 몸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편인 자신의 버튜버는 이렇게 애정 표현만 받아주면 제 일을 알아서 잘 한다.

“세상에… 유키하라씨하고 유나 씨 사이 좋은 거 봐요…”

“과연, 선라이즈의 페로몬…”

“신입 매니저도 벌써 코가 꿰였네요… 세상에나…”

물론 이런 자세한 내막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수군거렸지만 말이다.

유키하라는 내심 억울했다.

본인도 매니저 생활을 한 덕택인지는 몰라도 업무 계획과 기획은 다른 매니저들의 양식처럼 깔끔했다.

본인의 호불호는 확실하게 표현하면서도, 업무적인 일로 보내는 메일은 정중하게 그지 없었으며 외국인이라고 생각되기 어려울 정도로 의사소통의 디테일이 확실했다.

오타쿠들이 많은 버튜버 업계에서 사회인의 기본적인 약속과 교양을 몰라서 매니저들의 억장이 무너지는 사례가 한 둘이 아니지만 유나는 그런 일 하나도 없이 약속도 잘 지키고 이따끔 가족 안부나 코로나 발병에 대해서 세세하게 묻는 그런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일도 잘해 사회성도 좋아, 대인 관계에 있어서는 스트레스보다는 행복감을 주고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는(?)이 매력적인 업무 파트너를 포웅하고 토닥이는 정도의 애정 표현으로 원활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데 누가 안 그러겠냐는 말이다.

“킁킁, 언니 린스 바꿨어요? 이전에 맡던 냄새하고 다른데? 네일 색깔도 좀 바꾼거 같기도 하고.”

“아… 집안 용품은 제 여동생이 사두는 편인데 아무래도 바꾼거 같네요.”

“세상에, 그럼 네일도 여동생이 골라주는 거에요?”

“어… 응.”

“우와, 센스 되게 좋다. 이런 옅은 핑크 색은 소화하기 어려운데 언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만큼 신경 써준거 같은데요?”

“글쎄… 새 신발 사면 서로 밟아주는 사이인걸.”

“뭐에요 그거, 사이 되게 좋잖아!”

사이가 좋다기 보다는 웬수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자신에 가족에 대해서 칭찬을 해주는 데 싫어하는 언니가 어디있겠는가?

“흠흠, 아무튼 유나는 참 예민하네, 이런 거 하나하나 다 알아차려주고.”

“뭐, 제가 유별나긴 하죠. 좋아하는 사람의 변화에는 민감하다고 해야할까? 친구가 신경써서 패션을 바꿨는데 알아차려주지 못하면 섭섭하잖아요.”

그렇구나

이게 바로 인싸의 눈이라는건가?

확실히 사람들의 변화에 민감하게 눈치채주고 호응해주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인싸람 참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말이었다.

“아니 잠깐, 그보다 좋아하는?”

“전 언니가 좋은데, 왜요? 언니는 저 싫어요?”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묻는데 싫다고 대답할 사람이 누가있겠는가?

하물며, 평소에 호감이 가는 미인이 이렇게 물어온다면 이성애자라고 해도 싫다고 대답할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것이다.

“제, 제가 그럴 리 없죠.”

“히힛, 그럼 문제 없겠네요.”

처음에는 선배라서, 선라이즈의 매니저 업계에서 대단한 업적으로 남기고 간 사람이라서 어른처럼 보였다.

완벽한 자기 관리에서 나오는 당당함, 그것은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천재들이 풍기는 엘리트의 포스와 다름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방송을 보고, 방송의 이면을 보아온 유키하라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유나라는 사람은 겉보기에는 성숙하지만 속은 장난기가 넘치는 여동생과 다름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감이 넘치고 그에 받쳐주는 능력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인정 욕구가 강한 사실을 말이다.

자신을 소중한 보물을 바라보듯 내려다 본 유나는 다시 한번 장난스러운 몸짓으로 자신을 진하게 껴안고 갔다.

5초간 서로의 심장 박동소리를 나누고, 체향을 나누고, 연상인 자신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손으로 빗은 그녀는 우아하게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럼 저 먼저 가볼게요~”

정말이지, 한국이라는 나라가 친밀함의 표현으로 사람의 몸을 툭툭 친다거나 건드리는 건 알고 있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애정 표현을 하는 게 참…

“그래, 먼저 들어가봐요.”

“언니도 같이 오면 좋을텐데…”

“아뇨, 괜찮아요. 유나도 편하게 일 봐요.”

이윽고 스튜디오를 지배한 유나가 사라지고 나서야 사람들은 다시 자신들의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유키하라 또한 알게 모르게 부담이 갔는지 숨을 다시 들이켜쉬며 방금 있었던 해프닝을 생각했다.

아직도 존대와 반말이 오가는 자신과 유나 사이다.

이렇게 대화가 끝나고 돌이켜 볼 때면 얼마나 엉망진창 커뮤니케이션인지, 이게 만약 아이돌 프로듀싱 게임이었더라면 호감도가 떨어지는 대사만 팍팍 고르는 자신이 밉다고 해야할까…

“고생 많으셨네요.”

“아, 사니 선생님.”

“흐흥,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백합…”

“알피에스(현실 인물을 기반으로 하는 창작)는 법적으로 고소 가능한거 아시죠?”

“히잉…”

“히잉…은 무슨 히잉입니까? 유나 씨를 그렇게 보고싶어 했잖아요? 그런데 왜 저번 업무 회의와 다르게 구석에서 숨어서 관찰하신건가요?”

“그치만, 백합에 여자 난입은 용서할 수 없는걸요? 저는 일종 고정충이라…”

“…”

천재들의 머릿속은 정말이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사회인의 틀을 쓴 유나는 알기 편했는데, 겉 보기에는 유나처럼 멀쩡하지만 속은 완전히 알 수 없는 이 일러스트레이터 사니는 정말이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주접 떨면 좀… 선라이즈의 어머니로서 격이 떨어지잖아요.”

“그것보다 고정충이니, 알피에스같은 말을 하는 게 더 격이 떨어지지 않나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유키하라 매니저씨에게 조곤조곤 말하잖아요? 저희 둘 멀리서 보면 앨범 자켓 디자인 논의하는 평화로운 아가씨들이라구요?”

“…”

음습한 오타쿠의 욕망 결정체와 다름 없는 사니의 말을 듣고 있자니 유키하라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참, 이번에 아리아 팬클럽에서 아리아x코모레비의 백합 아트들을 참고해봤는데요, 현재 아리아의 노래 속성에 있어서는 버튜버 업계의 여왕님같은 이미지가 붙었고, 코모레비는 노력해서 성장해 온 정통 아이돌같은 느낌이 되어서…”

손 빠르기로 유명한 사니 선생님의 러프를 보는 오타쿠들은 하나같이 감격에 휩싸인다고 했는데, 그 러프를 하루에 스무 장 씩 보고 심도있게 고민하는 유키하라는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는것을 느꼈다.

‘퇴근하고 싶다.’

정말이지

잘 나가는 버튜버의 매니저로 산다는 것은 피곤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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