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화 〉 18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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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하다 보면 그런 게 있다.
실력이 비슷하고 호흡이 잘 맞는 사람과 게임을 하면 서로가 원하는 부분을 긁어주다고 해야할까나, 혼자서 할 때에는 나오지 않는 퍼포먼스가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저 하늘을 채우는 빛이 되어서”
“흐르는 별에 마음을 쏘아 올려~”
인간의 목소리로 내는 멜로디와 멜로디가 어울러진다.
음의 부족함을 채우는 화음이 귀를 풍성하게 하듯, 나의 높은 음정을 한 키 낮춰 부르는 츠유가 채워준다.
고음만 듣다보면 귀가 피곤해지지만, 그 피곤함을 달래줄 파트너의 노래는 마음 잘 맞는 게임 파트너 이상으로 호감이 들게 했다.
“자아, 컷컷! 완벽했어. 두 사람 이대로라면 정말 가요계 나가도 되겠는데?”
만족한 듯 우리들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내는 프로듀서 겸 작곡가인 마미 선배가 칭찬을 했다.
메이드 녹음이 끝난 후 시작한 음악 녹음
목이 나가버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완벽하게 연습을 해 온 츠유 덕분에 우리들은 빠르게 녹음을 마칠 수 있었다.
오히려 음정과 호흡을 잘 못고르는, 그러니까 연습 부족으로 인한 실수는 내 쪽에서 많이 나왔다.
“미안해요. 두 사람…”
“아니야, 뭐 이 정도면 실수 되게 적은거지. 나도 좀 까다롭기도 했고.”
“아니에요, 전 유나 언니랑 노래 부르는 것 만으로도 아티스트로서 성장하는 기분이 드는데요.”
실수해서 마음이 미안한데 두 사람이 저렇게 말해주니 참 고마웠다.
슬슬 아리아의 일정이 늘어나게 되면서 메이드의 활동을 겸업하다 보니 개인적인 시간이 줄어든 편이었는데, 그 시간도 언니에게 연기 지도를 받느라 더더욱 줄어들었다.
뭐 그 덕분에 방송 자체 스트레스가 이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기는 했어도, 성대에 대한 소모값을 생각하지 않으면 오래 달릴 수 없기에 나는 확실히 노래 연습에 대해서는 좀 태만했다.
“그러게, 당분간은 노래 방송 줄이라니까?”
“맞아요, 아리아는 아이돌 컨셉이기 이전에 구미호쪽 판타지 컨셉 세게 잡고 나간 편이잖아요? 저도 바쁠때 이 주일에 한 번씩 음악 방송 하는데 언니 너무 잦은거 아니에요?”
“끄응… 그래도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게 아무래도 음악 방송이다 보니…”
“쿠로가와 씨한테 이른다?”
마미 선배의 기습적인 그 말에 나는 당황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너 버튜버로 이중 활동 하는 것도 보통 아닌데, 노래 방송 한 번 불렀다 하면 두 시간은 기본에, 내킬때마다 언아카이브(기록이 남지 않는 방송)방송으로 한 시간씩 내지르잖아?”
“맞아요, 그리고 언니가 부르는 곡들 중에서는 쉬운 곡도 없고, 성대 혹사시키는 쪽이 많은데 방송 도중 잡담 길게 이어가면서 쉬지도 않잖아요.”
“… 듣고보니 그렇네.”
기록에 남지 않는 언아카이브 방송 때에는 저작권 문제 때문에 쉽게 부르지 못하는 노래들을 마음껏 부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가끔씩 깜짝 게릴라 방송으로 노래를 불렀다.
코로나 기간동안에 노래방을 가지 못한 것 때문일까?
아리아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고삐가 풀린 한국 여고생 시절 꺼진줄만 알았던 노래방에 대한 사랑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방송으로까지 이어져서 나는 노래 방송을 자주 부르게 되었다.
문제라면 그 덕분에 육체적인 휴식과 별개로 성대에 대한 휴식이 조금 부족하다고 해야할까, 아무리 관리를 열심히 해도 기본적으로 쉴 때는 쉬어줘야 하는데 나는 그러질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치만 방송이 재미있는걸! 시청자들이 내 사인에 맞게 야광봉 아이콘 쏴주고, 눈 아프게 앵콜 앵콜! 이러는 채팅 보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데!”
나는 이전에 ‘일이 너무 좋아 휴식 하지 못하는 버튜버들에게 휴식을 가지게 하자. 휴식을 벌로 주자’라고 주장한적 있다.
처음에는 일을 좋아하고 일을 사랑해서 휴식을 가지지 않으려는 버튜버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정작 내가 버튜버가 되어보니 방송 활동은 짜릿했다.
전 세계인과 소통하고
그들이 내가 게임 하는 것을 지켜봐주면서도
노래를 하는 것을 들어준다.
시시콜콜한 잡담을 대충 컨셉에 맞게 말하고, 좋아하는 버튜버들과 덕질을 하며 수다를 떠는 것 만으로도 사람들이 좋아해준다.
무엇보다도, 다른 지상파 연예인들이나 프로게이머와 다르게 실수를 해도 그렇게 엄격하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직 자기평가로만 이루어지는 자기 만족도만 충족한다면, 내가 못해서 받는 스트레스는 크게 없었다.
그러면서도 통장에 돈은 차곡차곡 들어오고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나의 발언과 나의 행동들이 올라온다.
그림 사이트에서는 나에 대한 많은 팬아트가, 버튜버 커뮤니티에서는 나에 대한 온갖 추측글과 재미있는 밈이 만들어지고, 회사에서는 나의 캐릭터를 이용한 물품 제작에 대한 의뢰를 해온다.
이 광활한 인터넷 바다에 나만의 영역을 구축해나가는 이 기분
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했다.
“하아, 전직 매니저라는 녀석이 이럴 줄이야…”
“헤헤, 역시 역지사지 입장이 되어 보아야…”
자꾸만 뺀질거리는 나의 말대꾸에 마미 선배는 특유의 붉은 머리카락 사이로 사납게 나를 노려보았다.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나를 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너의 앨범 프로듀서로 말하는데 제발 좀 방송 쉬면서 해라. 물 많이 마시고 뜨거운 수건 두르고 집에 가습기 잘 틀어두고.”
“맞아요, 언니 자꾸 그러면 미우랑 함께 손 잡고 밑집으로 처들어가버린다구요? 걔 요즘 진행하고 있는 게임 시리즈 탐방 끝나면 시간 비는 거 알죠?”
방송인으로서 한창 잘 가던 시절에,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과감히 방송을 쉬고 학업에 몰두하다가 돌아온 사케이 미우
그녀는 복귀방송과 동시에 100만명의 구독자를 달성하게 되었고, 자신의 새로운 의상을 발표하고, 이전부터 공언한 고전 게임 시리즈 돌파 방송을 선언하고 난 이후 매일 6시간이 넘어가는 장기 방송을 이어오고 있었다.
복귀한지 한 달이 넘어가는 지금, 그 장기 방송이 끝나가고 있는 지금 이사를 마치고 내 집에 처들어오겠다, 이거였다.
“그러니까, 내가 노래 방송을 하면 말이지?”
“전 언니의 노래 파트너니까 그 정도 요구는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프로듀서로서 동의한다.”
“선배!”
“그러니 알아서 처신 잘하려구나.”
그 말을 끝으로 언니는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음악 작업을 할 때에는 누가 곁에 있는것을 끔찍하게 싫어했기 때문에 나와 츠유는 언니에게 인사를 하고 녹음실 밖을 빠져 나왔다.
나와보니 어둑어둑한 하늘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회사 인근의 스튜디오였기 때문에 우리는 걸어서 회사로 돌아갔다.
정확하게는 내 차가 주차되어있는 회사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면서 길을 걷다가(주로 나는 나에 언니 이야기, 츠유는 여동생 츠무기의 이야기였다) 차에 올라탄 츠유가 말했다.
“어서 언니에게 빚 다 갚고 자동차 사고 싶네요.”
“어, 응? 왜?”
“그래야 제가 언니를 태워주고 다니죠.”
안전벨트를 점검하던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번달의 2주년 콘서트 이후 이웃집에 살면서도 여러 녹음과 수록으로 바쁜 덕분에 만날일이 드문 츠유는 그 사이에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약을 먹었는지, 놀랄정도로 성숙해져 있었다.
그녀 특유의 가느다랗고 섬세한 속눈썹이 부드럽게 휘면서 묘한 분위기를 내었는데,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패기와 당당함이 느껴졌다.
“요 아가씨가 술 마시고 엉엉 울던 아가씨가 맞나?”
“원래 여자는 우는 만큼 성숙한다고 하죠?”
그렇게 대답한 츠유는 그녀가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나에게 둘러주었다.
그녀의 체온을 그대로 간직한 따스한 목도리가 기분 좋게 내 목을 감쌌다.
“우리 프로듀서님이 내 파트너 성대 잘 챙겨주라고 했으니까, 이제 정말 무리한다 싶으면 문 열고 처들어갈거에요?”
“…”
“나에 언니도 유나 언니 건강 챙긴다 하면 아예 열쇠를 주실 거 같은데 이참에…”
“욘석이, 못하는 말이 없네.”
유치하게 손장난을 몇 번 친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두 사람 다 바쁜 편인데, 이렇게 일상 속에서 시덥잖는 말장난과 손장난을 치면서 유치하게 티격태격 하고 있자니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머릿속에서 싸악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들뜬 기분 만큼이나 수월하게 걸린 엔진 시동음을 들으며 나는 말했다.
“차를 사고 싶다면 어느 종류? 생각해둔 회사는 있어?”
“잘 모르죠, 그러니까 언니와 함께 고르고 싶네요.”
“차를 산다면 경차?”
“아뇨, 츠무기를 좋은 고등학교로 보낸다면 좀 크고 좋은 차 타야겠죠?”
“오호라, 명문 사립 고등학교의 원거리 통학을 생각하고 있는거야?”
“그런 것도 있고, 저도 언니처럼 다른 버튜버들 태우고 드라이빙 데이트라도 즐기고 싶어서 그래요.”
하긴
현대인에게 있어서 자동차는 있는 편이 좋지
코로나다 뭐다 하지만 오히려 코로나 시대니까 안전하게 접촉을 차단할 수 있는 자동차를 가지는 편이 훨씬 좋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자동차는 크고 튼튼한게 최고지. 다루기는 힘들어도 사고가 나도 좀 안전하기도 하고…”
“그리고…”
“응?”
“솔직히 언니처럼 큰 차 몰고 다니면 멋있잖아요? 뭔가 나는 능력있는 여성이고, 독립적인 여성이다… 뭐 그런 느낌이 난다고 해야할까.”
“…아하?”
“솔직히 언니 차 모는 모습에 반했어요. 뭔가 아이돌들 뮤직 비디오에 나올법한 멋진 언니? 그런 모습에 동경하게 되어버린다구요.”
“천하의 아이돌 코모레비가 동경해준다니 영광이네.”
난 그렇게 대답하며 옆 좌석을 슬쩍 보았다.
차내의 은은한 조명 아래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확실히 붉어져 있었다.
역시… 아이돌은 귀엽다.
그래도 본인 입으로 동경해준다고 말하니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그 때가 되면 잘 부탁해요 언니.”
“그래, 언니에게 맡기렴.”
역시 아이돌은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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