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92화 (192/307)

〈 192화 〉 191화.

* * *

보통 게임을 잘하는 사람들은 다른 게임도 곧 잘한다.

무지개 프로덕션 소속의 버튜버 하일은 자신도 그런 편이기 때문이기에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불쾌감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메이드 씨가 게임을 잘 한다고 해도 협곡은 다르지 협곡은.’

서비스한지 11년이 되어가는 이 고인물 게임은 단순히 피지컬 괴물들이 해쳐나갈 수 있는 쉬운 게임이 아니다.

많은 분석 공부와 연습이 필요하고, 메타에 따른 트랜드 파악과 신규 챔피언 연습과 아이템 분석 등 많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 상위 랭크의 요건이다.

“그럼 무난한 플랜으로 갈게요.”

“네.”

이미 몇 번 손발을 맞춘 팀원들이다.

티어들은 비록 부족할지언정 그래도 자신이 원하는대로 합류해주고 싸움을 볼 수 있게 훈련을 시킨 까닭에 하일은 이번 버튜버 멸망전이 오히려 기대가 되었었다.

‘이건 기회야.

선라이즈의 버튜버들이 합류해준 덕분에 비교적 일본에서 인기가 적었던 협곡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상태다.

비록 날 만나서 예선전에서 떨어지게 되겠지만...’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 다르게 게임은 다르게 흘러갔다.

“인베! 인베야!”

1레벨에서는 최하위 티어인 아이언이건 최상위 티어인 첼린저이건 똑같이 스킬 하나만 들고 있기에 약하다.

때문에 인베이드 전략은 약한 팀이 강한팀을 상대로 써먹을 수 있는 깜짝스러운 전략이었다.

“플래시 아끼지 마!”

“앗!”

하지만 늦었다.

상대 다섯 명 모두가 한 명이 망을 보고 있는 탑 쪽으로 들어와서 탑을 제압하고 시작했다.

방심하던 아군의 탑이 잘리고 시작하는 상황

심지어 킬을 먹은 이는 상대팀의 진짜 에이스라고 판단되는 메이드였다.

그 후 지옥문은 열렸다.

내심 마스터 티어인 자신이라면 비록 1킬 먹은 메이드의 템포를 쫓아가면서 균형을 맞춰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판이었다.

“카정이다, 지원 갈게!”

“아냐 오지마!”

상대방 정글에 들어가서 정글을 괴롭히는 카운터 정글 전략

솔랭이라면 모를까, 아군의 성장 대신에 교전 지원이 빠른 팀 전략에서는 그 가치가 떨어지는 위험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잡은 챔피언은 초반 카정 플레이에 강한 니달리와 자신이 잡은 픽은 비교적 후반을 보는 다이애나였다.

심지어 상대의 미드는 초반 깡패인 세트이지 않는가?

하일은 교전을 피하는 판단을 내렸고, 아군 미드는 교전각을 보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빼자는 핑을 늦게 찍은

자신의 잘못이었다.

부쉬에서 나타난 세트와 니달리가 아군의 오리아나를 공업용 프레스에 찍혀버린 고철더미마냥 찌그러트렸으니 말이다.

“미, 미안해!”

“아니야. 일단 열심히 해보자.”

그리고 게임은 ‘열심히’라는 말로 흘러가지 않았다.

**

“카정, 또 카정이네요.”

“너무 잔인합니다, 너무 잔인해요! 메이드! 두꺼비를 절대로 내어주지 않을 예정인가요?”

10분이 지난 게임에 벌써 글로벌 골드 차이가 7천을 넘어간다.

지독한 카정, 지독한 잘라먹기, 내주지 않는 시야플레이

아군은 든든하게 확정 CC있는 챔피언이거나 초,중반에 몰빵된 챔피언 구성이다.

후반?그딴 걸 왜 보지? 라고 대답하는듯한 숨막히는 운영이 계속된다.

그 바탕에는 끊임없이 상대 정글에 들어가면서 교전을 유도하고, 싸움을 뺀다면 확실한 카정을 치면서 상대방 에이스의 성장을 막는다.

모든 오브젝트를 챙기면서 상대적으로 신경을 안 써준 바텀 라인의 성장을 챙기면서도 후반 보험을 챙긴다.

그 바탕에는 레벨 3차이가 넘어가는 정글 운영이 밑바탕 되었는데, 상대방의 티어가 마스터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것은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양민 학살, 줄여서 양학이라고 불리는 잔인한 운영이었다.

“아... 20분에 글로벌 골드가 1만2천 골드 차이가 넘어가요.”

“정글이 서포터보다 가난해요 이게! 이게 말이 되나요?”

“정말... 와... 잔인한 플레이네요...”

“투창 한 방에 소나가 사라졌습니다. 네, 그냥 성장이 말도 안 되네요.”

“메자이 25스택은 너무하지 않냐구요!”

그것은 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미친...

­양학인데 이거?

­마스터가...터진다

­이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거 맞나?

­하일님 그래도 롤 대장님인데 ㅠㅠ

­게임 잘 모르겠는데 메이드가 얼마나 대단한 일 하고 있나요?

­5인 팀워크 게임인데 혼자 지분 80% 만들고있음.

“카이팅, 카이팅 들어가나요?”

“어림도 없죠, 4코어 나온 정글러가 원딜러를 순식간에 삭제시켜버리네요.”

그 후 게임은 일방적으로 그리고 폭력적으로 흘러갔다.

미드를 제외한 바텀과 탑 라인이 1천~2천 골드 차이로 불리했던 팀 [기프트]였지만, 이윽고 정글이 개입하는 순간 의미 없는 지표가 되었다.

일방적인 한타, 일방적인 오브젝트, 일방적인 넥서스까지

게임은 단 24분만에 끝이 났다.

­이게... 이번 시즌의 승리 방식이라는거야?

­정글 망겜...진짜네

­바위게 통제 들어가니 도저히 힘을 못펴네

­아니 근데 메이드는 그걸 어떻게 알고 초반 로밍 강한 챔프를 주문한거지?

­그걸 떠나서 그냥... 피도 눈물도 없이 압살하는게 너무 잔인해

게임에 대해서 진지하게 보는 사람들은 다르게 느꼈다.

매년마다 게임의 변화를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 메타를 크게 바꾸는 협곡에서는 1­2월달에는 바뀐 메타의 테스트 기간, 즉 프리 시즌 기간을 두고 2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배치를 보기 시작하고 프로팀들도 연구 성과를 자신의 채널에 공개하는 등 시즌의 흐름을 잡는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3월 중순에 공개된 메이드의 이 압도적인 운영은 사람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주었다.

이번 시즌에서 팀 게임이 이기려면 이렇게 해야한다고... 그렇게 말하는 듯 싶었다.

“네, 이어서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됩니다.”

“너무 허무하게 흘러간 첫 번째 경기, 과연 팀 [타임 룰러]는 자신들의 팀 이름대로 잘못된 시간선을 되돌릴 수 있을까요?”

“정글에 밴 카드가 들어갑니다. 역시 메이드의 챔피언들을 위주로 밴이 되네요!”

­근데 메이드의 정글 플레이가 너무 미치긴 했음

­솔랭이 아닌 팀 게임에서도 이런 공격적인 픽이 먹힐 줄이야

­그런데 예전과 다르게 정글이 한 번 죽으면 렙 차이 따라잡기가 너무 힘들어지네

­ㅇㅇ 그래서 정글러 역량이 크게 중요해진 듯?

­근데 저 플레이 한 번 망하면 끝 아니야?

­그걸 안망하니 문제지 ㅋㅋ

이윽고 사람들의 흥분과 기대에 가득 찬 시선을 담은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

“아이고 누님... 좀 적당히 하지.”

중국에서 활약하는 협곡의 프로 게이머들 중에서 인기 면에서는 항상 톱 5안에 들어가는 한국인 프로게이머 ‘마왕’은 쉬는 시간에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돌렸다.

“뭐야, 세호야 너도 버튜버 보냐?”

“어, 응.”

차마 친누나가 버튜버라고 말할 수 없는 그는 대충 얼버무렸다.

버튜버들끼리 롤 리그를 하는 아마추어 대회가 있다는 것을 안 동료가 스윽 보더니 아는척을 했다.

“뭐야, 메이드잖아? 선라이즈의 구미호 메이드! 스코어가 장난 아닌데?”

화면 속의 메이드는 그레이브즈라는 또 다른 정글 챔피언을 들고 5킬 0데스 2어시라는 성적으로 게임을 지배하고 있었다.

“심지어 하일 저 사람은 마스터 플레이어 아니었던가?”

“메이드가 게임을 좀 잘하긴 하지.”

일단 그마~챌 왔다갔다 하는 수준이고, 자신에게서 이번 시즌 분석한 노트를 그대로 받아 갔다.

그것도 모자라서 모자란 시간 짬을 내서 자신에게 정글링 코치도 받고, 관전 피드백까지 받고간 자신의 누나는 프로 게이머 할 것도 아닌데 미친 듯이 자신에게 정보를 뜯어갔다.

그 덕택에 괴물같은 피지컬에 차가운 멘탈, 그리고 프로의 지식까지 더해져서 정말로 자신과 비교해도 그렇게 나쁘지 않는 실력으로 캐리 머신이 되어서 버튜버들 사이를 날뛰고 있었다.

“일방적이구나... 그런데 템트리가 너의 템트리랑 똑같네? 사실 마왕의 팬인거 아니야?”

“아, 뭐 그런 건 아니겠지.”

누나가 자신의 팬이라니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소름이 돋는다.

“역시 마왕, 일본의 버튜버들도 너의 독특한 템트리를 따라하는구나!”

“하...하...하... 내가 정글은 좀 잘하긴 하지.”

그렇게 말을 주고 받은 두 사람은 화면을 계속 바라봤다.

갱킹, 카운터 정글, 성장 격차, 바위게 낚시, 깜짝 이니쉬, 잘라 먹기 이 모든 팀워크가 아마추어 팀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높은 수준으로 나왔다.

적어도 다섯 사람 중 세 사람 정도가 똑같은 생각 똑같은 판단을 해야 나오는 장면에 솔직히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스킬샷이나 무빙 보면 랭크를 속인 거 같지 않는데, 뭐랄까... 버스 기사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느껴지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해야할 일이 딱딱 정해져 있는 것 같고.”

“아마추어, 그것도 자신의 개성을 살려야하는 BJ들은 이런식으로 말 잘 안 따라오는 케이스가 많은데 메이드의 팀에서는 그런 것도 없어 보이네, 적어도 메이드의 핑에 따라서 팀이 다 움직이는 걸 보니 그래.”

“근데 메이드 너무 잘 하는데? 저기서 뇌절 안 하고 딱 빠지는 거 진짜 보통이 아닌데? 혹시 전 프로게이머인가?”

이윽고 세호의 화면에 몰려든 다른 팀원들이 리그를 보면서 정확한 분석을 내렸다.

세호는 차마 자신이 그녀들에게 프로들의 훈련법 들 중 몇 가지를 공개했다고 말할 수 없어서 괜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뭐... 자신의 누나가 미친 듯이 활약을 하고 있는 모습은 보기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도 많은 일이 있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언제나의 누나였으니 말이다.

“참, 멋지긴 하다.”

“흐흐, 세호야 너도 어둠의 메이드 팬클럽에 가입하지 않을래?”

“... 뭐에요 그 이상한 이름은?”

“선라이즈의 메이드가 알면 알수록 매력있긴 하지, 그런 메이드를 따라다니면서 덕질하기 위한 어둠의 디스코드 채널이 있단다.”

그날

어둠의 메이드 단에 새로운 신입이 들어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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