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93화 (193/307)

〈 193화 〉 192화.

* * *

동질감이라는 감정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은 곳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고, 친근감을 느낀다는 것은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낯선 외국인이 자국어를 한다는 이유 만으로도 알 수 없는 친근감을 느끼는 행위 또한 동질감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외국인이 자국에서 유행하는 국민 게임을 즐겨하고 자국어를 모국어처럼 유창하게 활용하고, 커뮤니티에 유행하는 언어를 줄줄이 꿰고 있다면?

남자면 형, 여자면 눈나가 된다.

그런 면에서, 아리아는 한국의 버튜버 팬들에게 ‘눈나’가 되었다.

[아리아의 충격적인 협곡 티어, 이것이 엘리트?]

[버튜버 협곡 멸망전의 절대자 메이드 ‘라’, 인터뷰에서 자신의 본래 티어를 밝히다!]

[아리아의 정체는 한국인? 그에 대한 10가지의 근거있는 이유]

­눈나 나 죽어

­그러니까 외국어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아이돌처럼 청초하고 심성은 첫 월급을 전부 기부할 정도로 대단한데, 게임도 초고수고 심지어 협곡의 초고수라고?

­하나만 해 하나만ㅋㅋ

­아니 근데 시즌 4부터 챌린저면 근본이잖아 ㅋㅋㅋ

­미친 이 사람 정체 뭐냐고ㅋㅋㅋㅋ

게임을 잘 하는 인터넷 방송인은 드물지 않다.

그 중에서 협곡을 잘하는 방송인은 조금 드문 편이었고

그 중에서 방송을 기가막히게 잘하는 방송인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다른 방송인이라면 티어와 성별가지고 훌륭한 방송 콘텐츠를 만들었을만한 인재가, 선라이즈에서 버튜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인터넷 방송인 판을 한 번 달아오르게 할 만한 대단한 뉴스였다.

­아니 전적봐 무친ㅋㅋ 심지어 본캐 탑라이너잖아?

­근본이 망나니 ­탑­인데 이번 멸망전에는 정글로 간거임?

­아 그래도 그렇지, 게임을 너무 잘하잖아 ㅋㅋ

­한국 서버 그마면 타 서버 마스터 썰어 재끼는거 문제 아니지 ㅋㅋ

­아 그래서 일부러 대회 규정보다 낮게 팀원들 잡았구나 ㅋㅋ

­지금 시즌이 정글 한 번 뒤집히면 절대 못 뒤집히는 구도라 그런지 타격이 더더욱 크네 ㅋㅋ

­미드 탑 원딜 존버픽한다음 아리아가 다 쓸어버리는 구도네 ㄷㄷ

­어허, 아리아는 롤 한 적 없어요. 메이드하고 아리아는 다른 존재임 아무튼 본인이 그랬음

게임을 잘하는 버튜버, 그런데 협곡도 잘하는 버튜버

심지어 화끈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탑­라인에다가 오랜 시즌동안 상위권을 차지한 고인물 플레이어

그런데 게임만 잘하는 게 아니고 노래나 방송기획 또한 재미없다고 느껴질만한 요소는 없고, 영어로 진행하는 방송이라 교육에도 도움이 되는 기가막히는 버튜버의 존재는 버튜버를 보지 않았던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게 했다.

­아 씹덕들아 그만해 좀.

­그래봤자 컨셉잡고 3D 탈 뒤집어 쓴 버튜버인데 너무 떠드네

­너네 게시판으로 좀 꺼져!

­한국어로 하는 것도 아닌데 한국에서 게임 좀 한다고 빨아주기는 ㅉㅉ

물론 인터넷 방송인들을 보는 사람들 중에서는 오타쿠적인 요소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버튜버들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국에서는 음지 문화라고 볼 수 있는 버튜버의 언급에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참지않고 한 마디씩 거들었고, 자신이 욕을먹건 말건 ‘츄라이 츄라이’하며 영입을 하는 사람들끼리 치고박고 싸우면서 아리아에 대한 소문이 한국의 버튜버 판을 넘어선 인터넷 방송인 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

“이, 이게 뭐지?”

그날도 평소처럼 신나게 링피트로 1시간 30분 정도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면서 방송을 진행한 다음, 최근 들어서 같이 마인 크래프트를 진행하면서 나에게 게임의 기초를 알려주는 클라티에와의 합동 방송이 끝난 후 간만에 한국인 커뮤니티를 확인한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말았다.

“왜 그래 유나야?”

날 대신해서 설거지를 끝내고 과일을 가져 온 언니가 내 옆에 앉으면서 그렇게 물었다.

내 컴퓨터 화면을 잠시 바라보던 언니는 한국어로 가득한 게시판을 더듬더듬 읽다가 나에게 설명을 요구하듯 바라보았다.

“어… 그러니까, 제 이름이 지금 한국에 엄청 많이 알려지게 되었네요.”

“저번에 클라티에랑 한국어로 떠든 이후 좀 많이 알려진 거 아니야?”

“그, 그것도 있긴 한데…”

나는 언니에게 버튜버들끼리 진행하는 협곡 멸망전에 대해서 잠시 설명했다.

그리고 한국의 협곡이 얼마나 인기 있는 ‘국민 게임’인지 설명하고, 나의 티어가 어느정도에 위치한지 알려주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네, 에이펙스도 준 프로나 프로정도 되면 버튜버들이나 다른 인터넷 방송인들끼리 합동방송을 자주 하고 그것 만으로도 먹고 살만한 수준이 되잖아?”

“그쵸.”

“그런데 유나 말대로라면 그 게임은 전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있고, 일본에 비해서 PC 온라인 게임 활성화가 잘 되어있는 한국이라면 더더욱 인기가 높은 데다가, 유나는 거기서 초고수의 영역이지?”

“그렇죠.”

“그렇다면 이렇게 알려지는 게 당연하겠지, 오히려 유나가 아리아가 아닌 메이드로 게임을 진행해서 더 알려지게 된 거 아닐까? 아직까지 청초함을 유지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가진 아리아라면 진행하기 힘든 이 공격성 강한 매운맛 게임이 어울리지 않지만… 도도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가진 메이드라면 나름 어울리기도 하니까.”

“사실 그런 이유때문에 일부러 메이드로 진행을 하긴 했는데요… 아니 애초에 이 멸망전 제의를 받았을 때에는 아리아가 태어나기 이전이었으니 이대로 한 건 맞는데요…으으!”

“왜 그래, 새삼스럽게 유명해지는 게 싫은거야?”

언니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사각사각 하면서 과일을 베어먹은 언니는 먹고 남은 반쪽을 내 입에 가져다대었다.

언니의 애정어린 사과를 받아 먹은 나는 사과를 씹어 삼킨 후 대답했다.

“아니… 뭐 싫은 건 아닌데요. 뭐랄까, 협곡으로 유명해지는 건 한국인으로서 좀 감회가 새롭다고 헤아할까… 너무나도 강한 아이덴티티라 여기에 삼켜지는 게 싫어서요.”

“으음, 이해가 잘 안 가네.”

“뭐랄까, 타마처럼 에이펙스로 유명해지는 한 게이머가 되는 것보다, 다방면으로 활약하는 버튜버가 되고 싶어요. 타마처럼 유명한 게임의 고수가 되고 거기에 인기를 얻는 게 나쁘지는 않지만… 그 캐릭터성에 잡히기 싫다고 해야할까.”

“응응.”

“다방면의 게임이나 콘텐츠를 진행하는 쪽이 다른 버튜버들하고 합동 방송하기 좋잖아요?”

“근데 애초에 우리 회사에서는 그 협곡이라는 게임의 방송 송출을 금지하고 있잖아? 이번에 있었던 일은 편법에 가까운데… 어차피 이벤트성 참가로 끝날 일 아니야? 왜 그렇게 걱정하니?”

“한국 커뮤니티 반응을 보면 조금… 너무 일방적으로 협곡 유저로서 알려지는 게 되어서 걱정이에요.”

한국 커뮤니티 내의 나의 이미지는 기존이라면 ‘한국어를 좀 잘 하는 다재다능한 괴물 신인 버튜버’ 에서 순식간에 ‘챌린저 버튜버’라는 이미지로 고정되어버렸다.

그만큼 한국 내의 구독자 증가 추세가 무시무시하게 늘고 있지만, 다양한 콘텐츠를 지향하는 나에게 있어서 이런 이미지 일변화는 좋지 않았다.

특히 유튜브 코멘트에 ‘뭐야 이 사람 협곡 안해요?’라는 코멘트가 슬금슬금 달리는 것을 보니 알게모르게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 이 망겜이 선라이즈 내부에서 ‘유나가 하는 게임’이라는 이유로 방송 송출이 허가되고, 다른 버튜버들이 이 게임을 하는 게 너무너무 싫어요. 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이 하게 하지, 방송을 송출하게 된다면…”

나는 눈을 감고 ‘아 정글차이!’ ‘망나니 뭐하냐?’ ‘바텀 숟가락들이 또!’ ‘ㅁㄷㅊㅇ ㅈㅈ’ ‘15 ㄱㄱ’를 친 버튜버들이 서렌버튼을 연타하는 모습을 잠시 상상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차암 신기하네, 하긴 유나는 유명해지는 게 당연한 존재니까 어떤 방식으로 유행해지는 게 중요한건가? 그 유명해지는 과정 속에서 다른 버튜버들에게 악영향을 주기 싫고?”

“그렇죠! 그런데 이번에 저하고 미카엘의 구독자들이 폭증한거 보면, 회사가 실적을 위해 ‘협곡 허가함!’이라고 말할까봐 무서워 죽겠어요.”

공식 방송 활동이기는 해도 외부 활동 참가라는 점에 불과한데, 다양한 국적의 협곡의 팬들이 나와 미카엘의 방송에 흘러들어온 숫자가 가볍지 않았기에 ‘선라이즈 내부에서 협곡 송출’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게 너무나도 두려웠다.

“참 내, 유나는 가끔씩 바보같은 고민을 한다니까?”

“네?”

“유나가 잘 하는데로 시청자들 애태우면 되잖아? 아리아는 그런 게임 안해요~ 모르겠어요~ 메이드? 모르는 사람이네요. 협곡은 그 사람이 한다고 하는데, 언제 하는지 모르겠네요~라고 말하면 되잖아.”

언니는 나의 흉내를 내듯 상당히 뻔뻔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말하는 내용이 심상치않았다.

그러니까, 이것도 그냥 발뺌 하라고?

메이드=아리아 라고 알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나는 그런 사람 아니라고, 뻔뻔하게 발뺌을 하라는…이말인가?

“근데… 메이드는 1인 공식 방송을 안하는게 제 원칙인데요?”

언니의 말대로라면 ‘아리아’의 방송에서는 협곡을 하는 일이 없고, 송출하는 일이 없다.

대신에 ‘메이드’의 방송이라면 가능하다.

그런데 ‘메이드’는 개인 방송 송출을 하지 않고, 무조건 협동 방송만 송출한다.

“운영진에게는‘협곡의 나쁜 점 10가지’ 뭐 이런식으로 강하게 어필을 해서 공식에서 허가 나오지 않게 주장을 하고, 시청자들에게는 협곡을 해줄까~ 말까~ 하는식으로 조교해버리렴. 공략 불가능 캐릭터에게 매달리는 오타쿠로 만들어버려.”

언니의 말을 들은 나는 소름이 끼쳤다.

도대체 이 여자가 무슨 말을 한다는 건가?

줄듯 말듯 시청자들을 견제하라고?

이 어그로성 강한 이슈를 그냥 차단하지 말고 애태우면서 반응을 즐기라고?

이게 사람의 발상이란 말인가?

최애가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덕질 행위를 해줄듯~말듯~ 선을 타라고?

참지 못한 내가 말했다.

“우와 언니 진짜 사악해요.”

“이 정도 가지고 뭘? 어차피 선라이즈에서는 협곡에 대해서 송출 안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는데 여기에 매달리는 오타쿠들이 나쁜 게 아닐까?”

“…”

“억울하면 메이드에게 찾아가라고 해, 물론 그녀는 코멘트 안 읽고 공식 방송만 하는 방송 도우미니… 결과적으로 유나의 협곡 게임을 바라는 2차 어둠의 메이드 단원들이 만들어지는 셈이겠네?”

무섭다.

언니가 작년 말쯤에 시청자들을 조교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혹독하게 조교를 할 줄은 몰랐다.

“언니…. 정말 무섭네요.”

“물론 확실하게 ‘안해요’ 라고 말하는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이런 빅 이슈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해줄듯~말듯 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게 인터넷 방송인에게 있어서 나쁜 건 아니야.

무엇보다도 너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잖아? 메이드로 활동하다 보면 언젠가는 협곡 방송을 할 거 같으니 말이야.”

적어도 미카엘 그 꼬맹이가 협곡을 접지 않는 한, 그럴 것 같았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일 년에 두~세번 정도 게임을 하기는 해도, 협곡 플레이어라는 사실은 어디 안가니 말이야.”

나는 언니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발상이 사악하기는 해도, 협곡 안해요~ 라고 말해놓고 메이드로 게임 하는 것 보다 언젠가 할 것처럼 말하면서 애태우는 쪽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물론 거짓말을 하지 않는 만큼 시청자들을 애태우는 게 문제라지만…

언니 주장대로라면 내 시청자들은 은근히 애태우는 걸 좋아하는 어둠의 메이드단…들이 많았으니 괜찮지 않을까?

나는 그런생각을 했다.

“언니 고마워요.”

“유나가 인터넷 방송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걸 도울 수 있어서 영광이야.”

나와 언니는 서로의 손을 잡고 씨익 미소지었다.

마왕성의 악마 공주 유리아와, 사람 홀리는 구미호 다운 사악한 미소였음을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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