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96화 (196/307)

〈 196화 〉 195화.

* * *

기존에 계획되어있었던 아리아가 참가한 GB 1기생의 우노 합동 방송은 기존 계획되어있었던 3시간을 훌쩍 넘긴 다섯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그도 그럴게...

“선배에에 어째서 끝을 내지 않는것입니까냥!”

“흐헤헤헤, 하지만 아리아가 냥냥 붙이는 거 귀여운 걸?”

“너무합니다냥!!!”

아리아의 벌칙 수행으로 말끝마다 –냥을 붙이는 냥체로 말을 해야 하는 게임

몇 번이고 카드를 한 장 내면 라운드를 끝낼 수 있는 ‘우노’를 만들고도 일부러 카드를 먹으면서 아리아가 벌칙 수행하는 기간을 늘리는 마나의 플레이 이후

세 선배는 합작이라도 한 듯 아리아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어머어머~ 참 심술궂은 선배님들이시네요.”

“그런데 언제까지... 저에게만 공격 카드를 쓰시는 건가요?”

“후후훗, 정말이지 너무 후배 언니를 좋아하는 거 아닌가요?”

이후에 나온 것은 누님 모드의 아리아.

“으에에엥, 너무해요! 어째서 저만 노리는 건가요?”

“이를거에요! 매니저에게 이를거에요! 이건 직장 내 괴롭힘이라구요!”

이어서는 어린아이 모드의 아리아가 나왔다.

계속되는 아리아의 집중 견제 플레이에 시청자들이 눈살을 찌푸릴 법만 하지만, 아리아의 기가 막힌 목소리의 음역과 자판기처럼 누르면 누르는 대로 튀어나오는 아리아의 연기 톤으로 인해서 오히려 아리아가 낯선 GB의 기존 팬들에게 그녀의 매력을 제대로 어필하는 무대가 마련되었다.

물론 아리아의 반격도 날카로웠다.

이 자존심 강한 후배는 놀리는 대로 놀려지기는 해도, 그래도 한 번 당한 건 잊지 않는 듯 선배들을 상대로 열심히 싸워나갔다.

“저는 못합니다. 말을, 그러니까 얼른 끝내줘!”

일본어를 잘 못하는 클라티에에게 일본어로 말하기를 시키기도 하고

“뀨뀨, 뀨뀨? 뀨뀨규!”

안 그래도 어린 것에 대해서 살짝 신경쓰는 편인 마나에게 모든 말을 어린아이의 옹알거림으로 대표되는 뀨로 대신하게 말하는 가 하면...

“셀레네를 돌려 줘 이 나쁜 여우야!!”

에오스가 사랑해 머지 않는 셀레네를 빼앗아간(NTR) 시츄에이션을 주문하기도 했다.

물론 게임은 언제까지나 1:3 구도로 흘러가지 않았다.

“뭐? 초록 카드가 없다고? 나는 네가 초록 카드가 있는 줄 알았어!”

“야! 상식적으로 초록 카드를 다섯 장이나 내면 내가 초록이 없는 게 당연하잖아!”

“아 몰라! 우노!”

“이 배신자!”

이 종잡을 수 없는 광기의 토크 게임쇼는 누가 누구에게 엿을 제대로 먹이느냐에 몰입한 나머지 아군 사격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언제나 이성적인 판단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올라온 텐션으로 인해서 ‘될대로 되라’라는 식의 분위기가 흘러간 이후 게임은 광기의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이게 우노야 정치야

­미치겠네 ㅋㅋㅋㅋ

­서로가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이 모습이 참 보기 아름답습니다...

­광기와 혼돈이 여기를 지배한다.

­그래서 예측 불허라 미치겠음ㅋㅋ

­아리아가 억제기가 될 줄 알았는데 억제기인 클라티에를 벗겨버려서 네 사람 다 광기임ㅋㅋ

그렇게 그 우노 게임 방송은 정말로 재미있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흡사 춘추전국시대를 연상하게 하는 끊임없는 동맹과 배신, 그리고 나올 때마다 감탄사를 지어내게 하는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나오는 벌칙들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가령 유아적인 외모와 어린 목소리를 가진 마나가 ‘가슴이 커서 스트레스 받는 섹시한 여성 연기하기’를 뽑히는 장면이나, 말괄량이 이미지가 몹시 강한 에오스에게 ‘차갑고 냉정한 영국 귀족 연기하기’가 뽑히는 장면은 벌칙 수행을 랜덤으로 뽑는 사이트가 해킹을 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들게 하였다.

음주 방송이 아닐까 의심이 되는 미친 듯한 분위기의 방송이 끝난 이후

일본의 선배들하고만 합동 방송을 해서 GB의 타이틀을 괜히 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아리아에 대한 불만 가득한 의견은 사라지고, 제발 그들과 합동 방송을 해달라고 애원하는 글들이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근본은 근본, 아리아가 앞으로 GB와 잦은 콜라보 방송을 가져야 할 10가지 이유]

[2개월간 일본 선배들하고 놀았으니, 4개월간 GB 선배들과 놀자]

[아리아 일본 거주 아님? 에오스 셀레네 3인 합동 방송 각?]

[후배들이 생겨서 기쁜 GB 1기생들 너무 좋아 ㅠㅠ]

클라티에와 함께 하는 그림 방송은 어찌 보면 잔잔한 분위기에다가 그림을 배우려는 명백한 공부 방송에 가깝기 때문에 클라티에의 팬이나 아리아의 팬들은 부드럽게 즐길 수 있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텐션이 높아지기 어려운 환경인건 부정할 수 없었다.

때문에 이번 첫 우노 방송이 나간 후, 특히 아리아에게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는 마나나, 상대방이 300만 구독자를 바라보는 괴물 선배건 아니건 상관없이 그녀를 ‘장난 좋아하는 발랑까진 꼬맹이’ 취급하는 아리아의 모습에 매력을 느낀 기존의 영어권 팬들은 그대로 아리아의 채널에 방문해서 구독 버튼을 눌렀다.

**

“흐아아아암.”

“오늘도 고생 많았어 유나야. 아니 어제인가?”

“언니이이... 놀리지 말아요...”

퀭한 눈을 한 나에게 커피를 가져다 주는 언니는 분명히 천사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아무리 천사의 사랑과 축복이 담긴 커피라고는 해도, 세 시간 수면을 하고 일어난 나의 잠을 몰아내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졸리면 더 자지, 왜 그렇게 고생해서 아침에 일어나려고 해?”

“음...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는 언니가 예쁘니까요?”

그 말이 정답인 듯, 언니는 자신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입 머금고는 내 입에 그대로 키스해주었다.

강렬한 커피향 사이에 풍기는 언니의 아찔한 체향이 졸린 내 몸을 일깨웠다.

그야말로 벼락을 맞은 것처럼 졸리고 나른한 생각이 달아나게 하는 언니의 키스 덕분에 나는 빠르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제 정신이 좀 드나 보네?”

“...”

“뭐, 그러고 보니 어제 방송에는 이 정도로 부끄러워하는 유나의 모습은 공개되지 않았네?”

“언니도 봤어요?”

“응, 내 방송 끝나고 도중부터 봤어. 언니 그래도 예전과 다르게 영어를 아예 못 알아듣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언니의 영어는 중학생과 고등학생 사이 수준이라고 보는 게 맞았다.

그런 언니도 어느 정도 우리들의 방송을 이해할 수 있었다니, 그 말을 들으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구독자 중에서는 영어가 완벽하지 못한 비영어권 팬들이 제법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의도적으로 쉬운 영어를 쓰려고 노력을 했는데 좋은 결과를 낸 거 같아 마음이 놓였다.

“근데 유나가 늦게 잔 거는 어제 방송이 늦게 끝난 게 아니라... 그거 끝나고 통화한 거 때문이었지?”

“네, 방송 정리하고 대충 작업을 하고 있는데 마나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더라구요.”

“마나라면 그... 범상어 꼬맹이?”

“네. 방송 중에 자신의 과한 장난기를 받아줘서 고맙다고 따로 말을 했더라구요.

그 말을 보자마자 예전에 제가 GB쪽 업무 일을 맡을 때 그녀의 고민거리가 생각나서 그녀와 좀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내 말을 들은 언니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눈으로 ‘그게 뭔데?’라고 묻는듯한 언니의 눈에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그 때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사실 마나같은 경우에는 좀 저희 업계에서도 비정상적으로 구독자들이 늘어난 케이스잖아요? 아 물론 그녀가 과대평가 되었다, 이런 건 아니에요.

그녀와 같은 버튜버 재능은 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대단한 재능이니까요.

사실 저도 버튜버 컨셉을 잡고 채팅 관리같은 거 할 때 마나의 방송 스타일을 분석한 회사 자료가 큰 도움이 되었거든요.”

마나

해저의 옛 신을 컨셉으로 한 GB의 버튜버

노래 부르기를 사랑하고 영어권의 밈에 대해서 해박하면서도 발음이 깔끔하다.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귀엽게 들리는, 말 그대로 변성기를 거치지 않는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가끔 치는 영어권 특유의 욕설이나 섹드립은 웃음을 자아낸다.

화제성을 잘 고르고 방송 분위기를 읽는 데 천부적인 감각을 지니고 자신의 개성과 무기를 잘 살릴 줄 안다.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완벽하게 숨기지 않고 오히려 어수룩한 모습을 보이면서 팬들의 호감을 극도로 이끌어낸 그녀는 그야말로 인터넷 방송을 위한 인재였다.

“뭐...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는 너무나도 뛰어난 재능 덕분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100만 구독자가 빠르게 달성 될 때에는 기쁨이었지만 그게 200만이 될 때에는 부담이 된거죠.

그래서 의도적으로 200만 축하 방송을 240만이 되고 나서야 한 점도 있어요.”

“요컨대... 천재의 고독같은건가?”

“그렇다기 보다는... 부담감이기도 하죠? 특히 자신의 존재 때문에 동기들이 버튜버의 길을 포기하지 않을 까 굉장히 무서워했다고 해요.”

“아... 이해할 수 있겠다.”

만약 자신과 같이 시작한 동기가 훨씬 앞서나간다면?

물론 동기간의 차이가 어느 정도 나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방송의 스타일과 시간대, 그리고 지닌 바 초기 재능에 따라서 구독자의 격차가 나는 건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게 보통의 규격을 넘어선다면?

150만의 구독자가 차이가 난다면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엄청난 인기는 빛과 그림자가 존재했다.

엄청난 인기를 이끌어낸 빛에 짓눌리지 않도록, 그녀와 함께 데뷔한 이들은 피나는 노력을 했으며, 마나는 그런 자신의 동기에게 내색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에게 과도하게 쏠린 관심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꿋꿋하게 동기들을 믿고 자신의 길을 걸었으니 말이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GB의 1기생 다섯 명 모두 자기만의 강력한 팬덤을 이루어 낸 대단한 버튜버들이지만... 그 과정에는 마나의 마음 부담과 다른 네 명의 피나는 노력이 있음을 회사는 물론이고 팬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녀의 스트레스는 자신의 고민을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다.

자신이 잘나가기 때문에 다른 동기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동기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발언이기에 말하지도 못하고, 그냥 속으로 혼자 앓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 말이다.

“특히 후배들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다고 해요.

버튜버들 중에서는 지나치게 압도적으로 높은 인기를 가지고 있다 보니, 자신을 어려워하고 거리를 둘까 봐 굉장히 두려웠다고 했어요.”

“그렇구나...”

“그래서 다른 버튜버들하고 친구처럼 어울리는 JP 특유의 분위기를 너무 부러워했다고 해요.

심지어 자신 때문에 GB 2기생들을 고르는 기준이 너무 엄격해져서 그들의 데뷔가 늦어지는 게 아닌지 정말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그거...”

“사실은... GB의 경쟁률이 2500:1이라서 문제죠.”

이미 선라이즈의 GB 2기생을 뽑는 채용 공고는 한참 전에 시작되었다.

문제가 되는 점이 있다면 지원하는 인원들의 숫자가 어마어마 했다는 점이다.

다섯 명을 뽑는 데 무려 1만2천5백명이나 지원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GB의 2기생들은 아직까지 한참 걸린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저에게 한참을 걸려서 이야기한 거죠.

저의 존재만으로도 부담감이 줄어들어서 자기는 엄청 행복하데요.”

나의 존재가 누군가의 부담을 덜어준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이미 버튜버를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 생각을 읽었기 때문일까?

언니는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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