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 19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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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게임
제한된 시야를 시스템적으로 약한 캐릭터로 돌아다니며 사람에게 거부감과 공포감을 주는 기괴한 생명체나 상황에서 탈출해가면서 게임의 목적을 수행하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들에게 위기가 닥치는 순간은 항상 사람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공포스러운 음악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는 돌발성이 존재 했고, 이런 ‘언젠가는 일어날 무서운 일’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긴장을 하는 순간 심적 피로도가 높아져서 다가오는 공포에 더욱 취약해지는 게 묘미라면 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터넷 방송인들을 관찰하는 시청자들은 방송인들이 공포 게임을 하면서 평소에는 보기 힘든 겁에 질린 모습과 체면을 잃고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보며 환호한다.
평소에 의기양양하고 자신감 넘치면서 적극적으로 좋아한다고 감정 표현을 하면서 다른 버튜버 선배들에게 들이대는 에오스가 평소와 180도 다른 텐션으로 겁에 질려서 바들바들 떨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진행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상기의 이유와 같았다.
“와, 선배 심박수 높은 거 장난 아닌데요? 아직 게임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 했는데요?”
메이드 라 시절부터 공포 게임을 개발자들과 게이머 사이에 거는 심리적인 줄다리기라고 해석하는 구미호 아리아는 겁이 많은 에오스의 공포 게임 부적(그러니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존재)로 참여한 체 그녀의 옆에서 자기 혼자 즐거운 텐션으로 에오스의 진행을 도왔다.
“선배 파이팅!”
“싫어어어어...”
ㅋㅋㅋㅋㅋㅋㅋ
아 왜 이렇게 귀엽냐 ㅋㅋㅋ
에오스 울먹이는 거 실화야?
근데 아직 본격적으로 게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심박수가 113인거 보면 진짜 ㅋㅋㅋ
옆의 아리아는... 에오스 놀리는 순간에만 잠시 올라가고 심박수가 평온하네...
공포게임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열심히, 그리고 진심을 담아 놀라고 두려워하는 리액션을 보여주는 호스트와 그런 호스트 옆에서 게임이 막히지 않도록 진행을 돕는 게스트의 존재 덕분인지 에오스는 이전에 방송한 적 있었던(그리고 포기했었던) 공포 게임 방송과는 다르게 제법 용기있게 앞으로 나아갔다.
“아리아 도와줘!”
“아, 이건 보아하니까 건물 내부로 잠입을 해야하는데 정문이 잠긴 케이스네요?”
“그, 그러니까 우리는 왔던 길로 되돌아가면 되는 거 맞지?”
공포 게임의 소개 문구와 프롤로그의 심상치 않는 이야기만 보고도 겁에 잔뜩 질린 에오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희망 사항을 밝혔으나, 어림도 없다는 듯 아리아는 답을 찾아주었다.
“어 선배, 저기 상자들 타고 올라가면 공사중인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 같네요.”
“싫어~~~!!”
입으로는 싫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게, 에오스가 조작하는 캐릭터는 차분하게 건물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내, 내가 조작할 거야!”
“선배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돕는 귀여운 후배의 어시스트가 달가운 건 아닌가요?”
“공포를 향해 다가가는 거잖아, 내가 조작할거야!”
그렇게 성큼성큼 나아가던 캐릭터는, 겁을 잔뜩 먹은 에오스의 마음을 대변하듯 조심스럽게 살금살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전에 프롤로그 부분에 30분 넘게 걸린 것에 비하면, 에오스의 이번 진행 속도는 확실히 빠르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윽고 메인 테마가 되는 공포의 저택에 들어간 에오스의 본격적인 탐사가 시작되었다.
아이템을 모으고, 퍼즐을 풀고, 그것들을 위해서 공포스러운 생명체들이 돌아다니는 공포의 저택을 돌아다니는 컨셉의 게임답게 쫄보 에오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
“으에에에엥.”
방송을 위한 연기로 우는 소리가 아닌, 진짜로 울음을 터트린 아사히의 얼굴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티슈로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면서 등을 토닥여주었다.
BPM이 120을 넘는 긴장상태를 유지하던 에오스는 예상 못한 끔찍한 괴물이 등장해서 흉악하고 거대한 이빨 속으로 조사자 캐릭터를 씹어삼켜진 이후 30초 넘게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상당히 마니악하고 흉물스러운 디자인에 나조차도 놀랄만한 타이밍에 나타난 괴물은 에오스는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공포 게임의 내성이 약한듯한 에오스의 시청자들의 멘탈도 터트린 듯, 그녀의 채팅창에는 평소 공포게임을 하는 스트리머를 놀리는 내용보다는 위로의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선배, 제가 옆에 있잖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ich bin an deiner Seite. es ist in Ordnung, es ist in Ordnung)”
그리고 그녀만을 위해 내가 전날 밤 혀에 때려박은 독일어로 그렇게 말해주었다.
타카나시 아사히가 연기하는 에오스는 당당한 여신이라는 컨셉을 유지하다가도, 본인 스스로 망가트리면서 개그 캐릭터로 밈화되는 경우가 잦다.
방송인이 본능적으로 캐릭터를 그렇게 연출하고 연기하는 경우라고 보면 되는데, 이런 공포 게임에서 만큼은 그런 방송인의 태도를 유지할 수 없는 모양인지 그녀는 보기 드물게 팬들이 ‘찐텐’이라고 부르는 진짜 마음으로 울고 있었다.
아무튼, 그런 내 서툰 독일어를 들은 아사히의 눈이 크게 떠졌다.
“Guten Abend, gut 'Nacht(좋은 저녁이 되세요, 편안한 밤이 되세요)
Mit Rosen bedacht(장미로 뒤덮인)
mit Näglein besteckt(가시 나무 장식의 요람에서)”
놀란 가슴을 달래줄때에는 이렇게 등을 토닥이면서 자장가를 불러주면 좋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독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자장가를 어색한 발음으로 불러주었다.
그래도 쉬운 발음에 부드러운 어조, 단조로운 멜로디 덕분에 나는 1절의 자장가를 불러주는 데 성공했다.
그제야 울음과 간혈적으로 올라오던 딸국질을 그친 채,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사히가 나에게 무어라 말했다.
“Aria, hast du das Wiegenlied gesungen? (아리아, 네가 독일어로 자장가를 부른거야?)”
윽, 미안해요 선배.
내 독일어는 번역기 교수님이 2시간 지도한 게 다란 말이야!
“Hast du alleine Deutsch gelernt? Nein, es wurde für mich vorbereitet.
(독일어를 이전에 공부했었니? 아니, 그럴 리 없지. 나를 위해서 준비해온 거구나)”
그녀는 내가 독일어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독일어로 나에게 무어라 말하면서 빠르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듯 눈을 감았다.
“Ich habe Liebe in einem fremden Land gefunden und dachte, ich hätte jemanden gefunden, dem ich mein Leben widmen möchte, Mein liebendes Herz zittert.
(낯선 땅에서 사랑을 찾았는데, 한 평생 좋아할 사람을 찾았는데, 내 마음은 흔들리는구나)”
당연히 나는 유창한 독일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리액션이라고는 목소리를 최대한 예쁘고 점잖게 내면서 “응응, 네네” 라고 말하면서 분위기에 어울려주는 것이었다.
이윽고 독일어로 빠르게 무어라 말한 아사히는 눈물을 마저 닦고는 내 뺨에 진한 키스를 해주었다.
쪽
어찌나 진한 키스인지, 방송용 마이크 너머에 생생하게 전달되었을 것이라고 100% 확신할 수 있는 진한 키스였다.
기습적으로 받은 뺨의 키스에 나는 순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하고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 저저저저기 선배?”
“고마워 아리아, 네 덕분에 힘을 낼 수 있게 되었어.”
기습적으로 나에게 진한 뺨에 키스한 아사히는 누가 듣더라도 감동에 가득 찬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가볍게 그녀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준비한 독일어 공부가… 그녀의 마음에 쏙 와닿았던것 같았다.
그런데, 그 와닿는 정도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마음에 들었나 보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전부터 나를 살짝 밀어내는 듯 경계하던 아사히가, 본능적으로 두었던 거리감을 확 좁히려는 듯 내가 앉아있는 의자를 좀 더 그녀 쪽으로 끌어당겼다.
어찌나 공간을 좁혔는지, 성인 여성이 감당하기에는 조금 작은 책상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서, 선배 조금 답답해요.”
“이 조그맣고 귀여운 후배 녀석, 그렇게 선배의 마음을 가져가려는거야?”
“그, 그런게 아니라….”
모니터앞의 음산한 배경음악을 재생하는 게임을 내버려 둔 체
아사히는 5분이 넘게 나를 끌어안으면서 서양 문화권 특유의 격한 감정 반응을 해주었다.
그나마 활발하게 올라오는 채팅창을 보고 방송이 나쁘지 않게 진행되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직감한 나는 그녀의 감정이 진정될 때까지 그녀의 행동에 어울려주었다.
그렇게 한 번 방송 중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시원하게 멘탈이 부서지고 울음을 터트린 아사히는 다시 에오스가 되어서, 열심히 공포게임을 이끌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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