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 19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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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튜버끼리 커플링을 공식으로 선언하는 경우는 의외로 드물었다.
다만 초창기에 버튜버끼리 커플링 선언을 한 이후 편하게 대하는 태도를 ‘애정이 떨어졌다’ 라거나 ‘권태기네’같은 비아냥거리는 반응과 ‘사이가 좋으면 무조건 이래야 해!’하는 시청자들의 과한 열기에 몇 번 커플링을 공식으로 선언했던 이들이 철회발언을 한 경우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평소에 사이좋게 꽁냥꽁냥거리면서 기분 좋은 연애 무드를 내면서도 공식적으로는 좋아한다는 커플링 선언을 하지 않는다거나, 아니면 일방적으로 호감을 비추는 쪽과 얼버무리거나 밀어내는 형식의 커플 아닌 커플이 방송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후자 형식의 커플 방식에 있어서 유명한 조합이 있었으니 무한 긍정과 열정적인 힘으로 들이대는 에오스와 냉소적이고 이성적으로 밀어네는 셀레네, 이른바 에오스&셀레네의 콤비였다.
셀레네를 향한 에오스의 사랑이 어찌나 대단한지, 툭만하면 사랑해, 사귀자, 우리 이미 결혼했지 참? 하는 식으로 말을 하면서 셀레네의 반응을 얻으려고 하고, 셀레네는 그녀의 말에 하나하나 반응 하기 보다는 참고참다가 말하는 모습이 인기였다.
문제는 싫어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행동하는 것들은 아무리 봐도 애정이 담기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반응인지라, 초기의 셀레네의 반응과 현재의 셀레네의 반응을 비교하는 영상들은 하나같이 ‘우리 에오스 셀레네는 흥한 맛집 커플링입니다’라는 식으로 홍보를 했다.
둘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애교 넘치고 활발한 어머니와 감정 표현을 절제하는 과묵한 아버지의 조합이 떠올랐으니 말이다.
선라이즈 GB의 인기 밈이라고 할 수 있는 에오스 셀레네의 커플링은 데뷔 초부터 이어져온 전통깊은 커플링이었고, 다른 백합의 가능성을 찾는 리스너들도 여기에 대해서만큼은 별로 사사로운 해석을 내놓지 않았다.
그래, 에오스와 아리아의 첫 합동 방송 전 까지만 말이다.
[여신마저 홀리는 카사노바 구미호]
[가장의 위기, 에오스의 사랑은 어디로?]
[피아노 반주를 입혀본 아리아의 독일어 자장가, 조회 수 10만 돌파]
공포 게임으로 멘탈이 무너진 에오스를 모국어로 하는 짧은 위로와 자장가만으로 에오스를 다시 일으켜세운 후, 아리아가 요리 해주고 간(실상은 마리네이드 한 고기를 구운 것일 뿐이다) SNS 사진이 올라온 이후 철옹성같은 에오스&셀레네의 커플링이 흔들리고 에오스&아리아라는 기가막힌 조합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 여우의 행보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
“요~ 오늘도 잘 부탁해.”
“유나 선배~!”
이틀 만에 찾아온 말리아와 아사히의 집은 여전히 좁으면서도 활기가 넘치는 저택이었다.
나는 상경해서 자취하는 딸들의 집을 둘러보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다시 주방으로 갔고, 내가 저번에 두고 간 반찬들을 많이 먹은 그녀들의 모습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들이 설거지해둔 양념 고기통을 가방에 챙기며, 냉장고를 열어서 재료의 상태를 점검했다.
“뭐야, 파이 반죽은 완벽하네?”
“저 이래 보여도 농가 출신이라구요. 파이 반죽정도야 가능하죠.”
오늘의 방송은 공포 게임 오프라인 합동 방송이 아닌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것처럼 진행하는 요리 방송이었다.
생방송인 만큼 기존에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하기 때문에 재료를 하나하나 점검하던 나는 의외로 흠잡을 데 없는 말리아의 준비에 놀란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게,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뛰쳐나온 케이스라면 대게 자취생활 초년차의 주방 상태는 엉망이기 마련인데 오늘 자세하게 둘러본 이 집의 주방은 필요한것만 딱딱 있는 훌륭한 상태였다.
“열 명이 넘어가는 터프한 아웃백 환경에서 장녀로 살아남는 게 어디 쉬운 줄 아나요?”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말리아의 그 모습에 왠지 모르게 한국의 장녀로서 비슷한 책임감을 느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 명이 넘어가는 농촌의 집에서 억세게 자란 그녀는 사회에서는 아기일지 몰라도 집을 케어하는 것 만큼은 숙련된 주부의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안 그래도 꼼꼼한 성격으로 유명한 그녀가,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생긴 지금 집을 관리하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참, 유나 선배 그거 아세요? 드디어 인근에 코스트코가 들어선데요.”
“아 그래?"
“어라, 모르세요?”
“응…아무래도 최근 들어서 방송하느라 바빠서 말이지”
“유나 선배는 차가 있으니까 언젠가 같이 가요! 거기에 파는 물건들이라면 저희들의 요리의 폭이 좀 더 늘어날지도 몰라요!”
왠지 모르게 흥분한 그녀가 내 손을 붙잡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금발벽안의 전형적인 서양의 미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말리아의 적극적인 태도에 살짝 기가 눌린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말리아, 초기에는 굉장히 상처 많이 받은 티를 내는 시니컬한 아이였는데 이제는 마음 편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구나….
“아하하, 말리아 오늘 왜 이렇게 텐션이 높아?”
“유나 선배랑 방송 하니까 그렇지, 그녀는 내 인생의 은인이라고.”
이전에 내가 말리아랑 친해보인다는 이유로 불꽃놀이 축제에서 나와 그녀의 관계를 의심하며 혼자 드라마를 쓰던 아사히는 어디가고, 그녀는 말리아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다가왔는데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였다.
알게 모르게 은근히 나를 날선 태도로 대하던 아사히가 자연스럽게 좁혀오는 감각에 놀란 나는 저도모르게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말았다.
“응? 유나 선배 왜요?”
그런 내 시선을 천연덕스러운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받아넘긴 아사히의 묘한 눈빛에, 나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어, 응? 아냐아냐.”
그나저나 유나 ‘선배’구나.
버튜버 아리아는 후배인 입장이지만 매니저인 유나가 그녀들보다 먼저 입사했으니 선배인건가?
방송에서는 아리아 후배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유나 선배라…
하긴, 나에게 있어서 두 사람은 도합 250만 구독자를 보유한 버튜버계의 거물이라기 보다는 이제 일본 생활에 적응해서 마음 놓고 자신의 일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사회 초년생의 아기들처럼 보였다.
뭐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대학교 중퇴하고 매니저 일을 하다가 버튜버 생활을 하는 나도 아기처럼 보이겠지만 그런들 어떠한가?
경험은 상대적인 것이니 말이다.
특히 이제 성인은 되었을까 말까 하는 말리아의 앳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왠지모르게 나는 대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혼자 표정이 이리저리 바뀌는 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거에요?”
“그냥, 우리 선라이즈 GB의 자랑스러운 두 사람이 대견스러워서.”
명문대학 유학생이라는 신분을 가지고도 외국인으로 일본에서 적응하는 게 쉬운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였다.
일본인과 유사하게 보이는 한국인으로도 그랬는데, 척 봐도 이질적인 외모를 지닌 두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측은한 마음이 들자 저도 모르게 나는 두 사람을 쓰다듬었다.
“이러니까 진짜 엄마 같아요…”
서양의 프라이버시 존중 문화 때문에 싫어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두 사람은 나에게 편하게 안겨왔다.
이러니까 대형견 두 마리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 같아서 왠지모르게 기분이 좋아진 나는 방송이 시작되기 전까지 두 사람을 쓰다듬었다.
잠시 후
주방 세팅을 마치고 촬영 준비까지 마친 나와 말리아는 방송을 켰다.
“안녕 세상아? 좋은 아침 점심 저녁이야!”
“요 다들 잘 지냈어? 잇츠 미, 셀레네.”
검은 장갑을 낀 말리아와 하얀 장갑을 낀 나는 손을 신나게 흔들었다.
비록 제한된 앵글에서만 촬영이 가능한 요리방송이지만, 이미 이런 경험이 잦은 나는 능숙하게 방송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오늘 할 요리는, 저번에 몇 번 내가 보인 적 있는 비프 웰링턴이야.”
“언제인가, 아리아가 마계 공주님에게 해준 것을 본 적 있었지. 그게 너무 맛있어 보이는거야, 우리 후배는 레시피를 잘 지키는 훌륭한 요리사거든.”
“네? 저는 해준 적이 없는데요?”
“잠깐, 네가 메이드가 아니야?”
“아뇨? 메이드 라 씨는 제 친구에요! 사람들이 흔히들 하는 오해인데 저는 메이드가 아니랍니다. 이 살랑거리는 꼬리를 보세요.”
선라이즈에 입문한지 일주일이 지난 뉴비들조차 다 아는 사실이건만, 여전히 아닌데요~ 다른사람인데요~ 라고 고수하는 메이드의 태도에 피식 웃음을 터트린 셀레네의 터프한 웃음소리를 시작으로 그녀들의 요리 방송이 진행되었다.
요리 방송은 편집본이면 모를까, 직접 보는 건 꽤나 지루한 일이다.
그녀들은 숙달된 요리사가 아니고 방송인들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 요리를 생중계 하는 건 의외로 방송으로서 난이도가 높았다.
하물며 준비에 시간이 걸리고 조리에도 시간이 걸리기에 이런 방송은 알맞지 않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심심하지 않게, 에오스도 같이 참여를 해서 비는 사운드를 채워주고 요리를 도왔다.
그덕분에 다른 요리 방송들과 다르게 카메라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해서 지루할 수 있는 부분을 채워줄 수 있었다.
“에? 이 나라에서는 정육점에 가는 게 고기 바리에이션이 넓구나.”
“그렇죠, ‘제 친구’가 말하기를 일본은 삶는 방식의 고기가 아니면 얇게 먹는 게 잦은 편이기에 원하는 수준의 고기 두께를 원한다면 정육점에 가는 걸 추천해줘요.”
그녀들의 토크 방송은 마치 아침 주부들이 보는 방송처럼 실생활에 유익한 지식을 담고 있거나...
“맞다, 아리아 혹시 이번에 나온 애니 봤어? 아카데미아 4기!”
“아, 그거 제 룸메이트랑 같이 보고 있어요. 이번에도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뽑았던데요?
에오스 선배는 뭐 기다리고 계세요?”
“나랑 셀레네는 다음 분기에 방송하는 카구야님 이야기 2기!”
아니면 자신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하면서 덕질을 하는 방송이기도 했으며
“와, 팬질에 익숙하시네요? 셀레네 선배님 죽음의 여신치고는 굉장히 잘 다루시는데요?”
“원래 죽어간 동물들에 대한 예우로, 요리를 하는 데 있어서 낭비를 하지 않는 게 명계의 원칙이지.”
“앗, 그런데 간은 안보셨죠?”
“앗 맞다!”
본래의 방송 목적에 충실한 요리에 대한 소소한 어드바이스를 알려주는 방송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들의 방송은 재미있었다.
요리에만 전념하는 두 사람과 그 사람들 사이에서 가벼운 심부름을 해주거나 두 사람이 말이 없을 때 그녀들의 행동을 설명해주는 에오스의 존재 덕분에, 그들은 무사히 양념을 잘 바른 구워진 스테이크를 생햄과 버섯볶음을 파이 반죽으로 감싼 후 오븐에 넣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평온하고 복작복작한 생기가 넘치는 주말 아침의 방송을 떠올리게 하는 그녀들의 인터넷 생방송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티키타카... 좋구나...
왠지 모르게 단란한 가정의 일상을 엿보는 거 같아서 미안하네.
삼각관계? 그런거 없어도 된다... 사람들 자체가 워낙 케미가 좋아서 어울리네.
렬루 에오스 셀레네 두 사람이 있으면 항상 핑크핑크한 분위기로 몰고 가서 아리아가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맞아, 아리아가 대놓고 에오스 꼬셔서 삼각관계 가는 줄 알았는데...
그냥... 소소한 라디오 방송에 고기를 곁들인 게 되었네?
나름대로 삼각관계다 뭐다 하면서 이슈를 생각하고 들어왔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손 망상을 멈추게 하는 그녀들의 포근한 방송 분위기에 녹아내렸다.
선배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영어로 말하며 녹아내린 아리아의 합동 방송으로 인해, 아리아를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사람들 또한 그런 생각을 쏙 들어가게 했기에 그야말로 대성공적인 방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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