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화 〉 2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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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마나의 방송 진행능력은 버튜버들 중에서는 최고에 손꼽힌다고 봐도 무방했다.
나는 그 사실을 그녀와 방송을 하면서 아주 뼈저리게 겪고 있었다.
토크 방송일 경우 대화의 수위, 대화자간의 분위기, 대화의 주제, 긴장감의 끈 이 모든 것이 적절하게 갖춰저야했다.
수위는 적당하게 높은 편이 자극적으로 들리기 좋고 너무 높으면 야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가버린다.
화자간의 분위기 또한 중요하다.
꽁냥거릴 때는 제대로 꽁냥거리고, 경쟁 구도를 삼을 때는 제대로 다퉈준다.
확실한 견해차이(가령 음식의 취향)가 나지 않는 경우에는 비슷한 포인트에 웃는 편이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편했고, 아닐 때에는 확실하게 차이점을 보이며 캐릭터성을 드러내준다.
주제 또한 시청자들이 편하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부터 자신의 고유한 캐릭터성을 보여줄때에는 확실하게 보여주는 게 좋고
이 모든것을 조율하는 긴장감의 끈을 통해서 듣는 시청자들이 지치지 않게, 말하는 우리들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조율하는 게 중요했다.
그런 면에 있어서 마나는 확실히 최고의 방송 파트너다.
내가 당길때는 당겨져온다.
그러면서도 선을 넘지 않게 내가 말을 하면 귀신같이 언질을 알아차리고 그쪽에서 당겨준다.
밈과 드립에 해박해서 적절하게 분위기를 환기시키거나 시청자들의 공감을 원할 때에는 서로 드립을 받아주고, 서로가 아무 말이나 주고받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방송이 재미없어지는 순간을 서로 감지하고 적절하게 커버를 쳐준다.
캐릭터 성을 보아도 어린 외모와 목소리를 지닌 마나와 성숙한 외모와 미인의 목소리를 지닌 아리아의 케미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나이 차이가 확실한 만큼 캐릭터의 포인트를 잡고 연기에 들어가기 편했으니 말이다.
어린 아이와 성숙한 어른, 나이 어린 선배와 나이 많은 후배, 바다에서 살아 온 해상 동물과 육지에서 살아 온 포유류, 서양권의 가치관과 동양권의 가치관 등등 확실한 캐릭터 차이를 낼 수 있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가 편하게 방송을 진행하는 것을 느꼈다.
게임으로 치자면 서로의 플레이가 맞물려 1+1이 2가 아닌 3이 되는 정도의 시너지가 느껴졌다.
하물며 서로가 신경을 크게 안쓰고도 이런 케미가 났기 때문인지 방송하는 것에 있어서 스트레스 또한 제로에 가까웠다.
이상하게 표현하자면 서로의 뇌가 연결된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나의 츤데레 톤 연기로 시작한 QnA 방송은 사전에 모집한 50개의 질문을 모두 대답하는 것으로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다.
일방적인 정보 전달 방송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나와 아리아의 케미가 정말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뛰어나서 지루하다는 생각이 전혀 안들었고 말하는 우리들도 실황이 별 노력없이도 재미있으니 적절하게 미쳐 날뛰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방송을 진행하면서 가지게 되는 피로감이 거의 없는 게 기적에 가까울 정도였다.
오죽하면 방송을 마치고도 마나와 이렇게 디스코드를 이어나간단 말인가?
“에부부븝브, 아 정말 너무너무 즐거웠어 아리아!”
마나의 목소리를 들으면 활기찬 서양의 초등학생을 연상하게 한다.
실제로 하는 행동도 초등학생에 가까웠으니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말 한국인이라는 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영어를 잘하는구나?
음,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식으로 말하고 생각하는 포인트가 정확하다고 해야할까?
물론 아리아가 일본어와 영어로 소통하는 건 봐서 영어 실력에 대한 압박감이 없는 건 알겠는데…”
“제가 마나의 플로우를 따라가줘서요?”
플로우
영어로는 Flow라 쓰고 해석하자면 흐름이지만
내가 말하는 플로우는 마나 특유의 톡톡 튀는 화제 전환을 따라가면서도 그녀가 폭주할때는 내가 말을 줄이면서도 클립 각이 보이면 서로 티키타카를 해주는 방송의 흐름을 모두 일컫는 표현이다.
“거기에 말하는 것도 아시아 사람이라고 생각이 되지 않을 정도였어.”
말하는 방식 또한 중요하다.
예를 들자면 확실한 단어 표현에 맥락을 크게 생각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감정 전달
그리고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안다’처럼 중요한 말이 끝에 나오는 게 아니라 중요한 말부터 먼저 꺼내는 말하는 방식은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좋은 스피치’였기 때문에 서양인들 시청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마나의 합동 방송에서는 이러한 화법이 중요했다.
“저도 별 생각 안하고 있다가 마나 선배가 언급한 ‘아리아 약간 말하는게 구미호같아’가 의미하는 게 생활 상 뿐만 아니라 말하는 방식까지 포함된 거라는 생각이 딱 드니까 말하는 데 긴장끈을 좀 조이게 되더라구요.”
“솔직히 다른 회사의 아시아권 버튜버들하고 합동 방송을 하고 그녀들이 영어를 하는 것을 본 적 있었는데, 이런 담화같은 경우는 길고 깊게 가면 아무래도 영어적인 문제 때문에 알게 모르게 힘든 편인데 아리아는 그런 게 없어서 너무 편했어.”
“저야말로 마나 선배님이 모르는 인터넷 밈이 없어서 난감할때 친 드립들을 다 받아주셔서 좋았어요. 오히려 시청자들이 몰라하는 눈치던데요?”
“캬하하, 어차피 클립 따주는 애들이 설명 잘 붙여줄거야.”
“네? 아하하하하.”
악동처럼 사악하게 말하는 마나 선배의 말에 그만 웃음보가 터진 나는 숨이 헐떡거리기 전까지 웃고 말았다.
아무럼 어떤가?
게임이나 요리, 그림같은 방송은 메인 콘텐츠가 존재하는 방송이 아닌, 영어권 사람과 세 시간동안 대화로만 방송을 진행하는 것은 생각보다 난이도가 큰 방송이었는데
어지간한 라디오 진행자들도 두 시간이 넘어간다면 힘들다는 오디오 진행을 우리들은 리허설도 없이 세 시간동인 진행을 했으니 확실히 이 정도 긴장끈을 놓는 시간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실수를 해도 아리아가 받아줘서 고마워. 그 덕분에 나도 편하게 했고.”
“마나 선배 자꾸 제 칭찬만 하는데, 저도 마나 선배가 제 실수 다 받아준 덕분에 저도 편하게 했다니까요?”
얼굴도 모르고 나이도 모른다.
아는 것이라고는 서로의 목소리와 버튜얼 아바타 뿐인데도 우리들은 처음 단체 합동 방송에 서로의 본질을 알았고 두 번째 만남에 10년지기 친구가 된것처럼 서로에게 편해졌다.
“하아, 구독자는 너무 빠르게 늘어나는데 이게 불안하다고 토로할 대상도 없었고,
압박감을 나만 느끼는 게 아니라 내 친구들도 같이 느껴버리는 까닭에 정말 힘들었어…
특히 합동 방송때에는 내가 너무 튀어버리고 친구들이 압박감을 받게 되면 그녀들의 캐릭터성이 죽어버리지.”
“그렇게 되면 방송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위축되어버리죠.
캐릭터성을 보여야 각인이 되는 저희들은 더더욱 그런 사이클에 빠지면 안 되는데 심리적 요인이라는 게 참 다스리기 힘든 성질이죠. 그래도 다들 100만 구독자를 보유한 이후로는 어느 정도 괜찮아졌다고 생각하는데…”
구독자가 빨리 늘어서 힘들다.
10만 구독자는 커녕 1천 구독자도 달성하지 못하고 쓸쓸하게 은퇴하는 버튜버들이 많은 이 세상에 그 말이 얼마나 오만하고 폭력적으로 들릴 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 마나였다.
동기생들에게 털어놓기도 힘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 사실 버튜버 마나야’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회사에서는 그녀의 성장을 응원하고 새로운 음악이나 그림, 아티스트를 제공하기만 했지 그녀의 성장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케어해주는 거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이전에는 없었던 케이스였기에, 오직 마나만이 가지게 된 스트레스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아리아는 괜찮아? 너도 확실히…”
나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잖아?
그리고 너는 나와 다르게 주변에 다른 버튜버들이 존재했고, 그녀들 사이에서 눈치를 받게 되잖아?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어도, 왠지 모르게 그녀가 그렇게 물은것만 같았다.
“괜찮아요. 저는 좀 잘났으니까요.”
장난스럽게 가벼운 어조로
하지만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그 메시지를 읽은 마나가 혀를 차며 대답했다.
“Nah! 건방져 진짜.”
“하지만 제 인생이 정상대로 흘러갔으면 저는 이미 글로벌 케이팝 아이돌이였다구요?”
“알고 있으니까 더 얄미운거지 흥.”
그녀 또한 장난식으로 대답을 했지만 그래도 안심하는 듯 콧방귀를 끼는 게 들렸다.
헹여나 내가 그녀처럼 급성장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나, 그런 선배스러운 고민을 했다는 게 참 나를 미소짓게 만든다.
정말이지, 끝까지 나에게 미소를 짓게 하는 최고의 파트너였다.
그렇게 나는 방송이 끝나고도 하하호호 웃으면서 디스코드로 수다를 떨다가 잠들었다.
***
“흐아아암.”
버튜버가 되고 나서 침대에 일어나는 게 힘들어졌다.
아무래도 퇴근을 하고 나면 업무가 거의 끝나는 매니저 생활에 비해서 버튜버의 업무는 다른사람들이 쉬는 시간일때가 많으니 말이다.
특히 나같은 경우에는 일본 소속의 선배들과 할때는 오후에서 밤이고, 해외의 선배들과 할때는 새벽과 아침 11시까지이기 때문에 거의 하루종일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 사이사이에 스튜디오 가서 3D 아바타 데뷔를 위한 녹화도 해야하고, 기획 회의도 해야하고, 앨범 발표를 위해서 스튜디오에서 녹음도 해야했다.
그나마 위안거리라고 하면 다른 버튜버들처럼 레슨이 많은 편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내 혹독했던 아이돌 연습생 시절의 자신에게 고맙다고 생각했다.
최근 들어서는 미국 역대 대통령 연설물이나 유명한 선언문 같은걸 공부하면서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기 때문에 안 그래도 부족한 시간이 더더욱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 때문일까?
언니는 상당히 불만인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
“유나 바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듣는 소리가 바보라니… 살짝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언니의 목소리에 담긴 서러움이라는 감정을 읽은 나의 마음은 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요즘 들어서 언니와 함께 보컬 트레이닝과 연기 트레이닝을 안 해서 그런가?
언니가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맨날 영어로만 말하고, 방송 끝나고 나서도 걔들이랑 수다 떨고 말이야.”
“어,언니?”
“흥, 몰라, 바보, 변태. 밥이나 먹어.”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시간이었다.
합동 방송이 이어진 까닭에 밤낮이 바뀐 나는 다른 사람들이 저녁을 먹는 시간대에 첫 끼니를 하게 되는 일이 가끔 있었다.
어둑해진 저녁 하늘을 살짝 바라본 후 식탁 앞에 앉기가 무섭게 언니가 갓 내린 커피를 내 자리에 가져다 주었다.
버터로 노릇하게 구운 연어 스테이크와 위를 즐겁게 해줄 톤지루 국
한국식으로 무친 매운 고춧가루가 들어간 콩나물 무침과 일본식으로 맛있게 절인 오이 장아찌와 마늘 절임
한 입 사이즈로 썰어진 차가운 두부와 그 위에 갈은 무와 간장으로 간을 한 냉두부 요리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브로콜리 구이까지
풍성하게 차려진 식탁을 본 나는 감동을 했다.
식사라고는 편의점 도시락이나 배달 음식만 먹던 언니가, 어느 사이에 이 정도의 식사를 차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니
세상사 알 수 없는 일 많다지만 이 식탁은 말 그대로 감동이었다.
“언니이…”
“바람둥이 유나, 밥이나 먹어.”
언니의 표정은 아무리봐도 ‘나 잘했지?’하는 생각을 숨기지 않는 것처럼 칭찬받고 싶어하는 어린 아이의 자부심과 뿌듯함이 서린 얼굴이지만
화난 것을 강조하듯 찌푸린 눈살과 심통이 난 어조로 말하는 언니의 말은 심술궂었다.
확실히, 내가 최근에 들어서 GB쪽과 일을 하면서 언니를 신경 못쓰기도 했지…
언니고 아리아와 GB의 관계성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런 합동 방송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말리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을 것이다.
내가 언니에게 신경 못쓰는 일이 늘어날수록 내가 잘 된다는 사실을 아는 언니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란것이 또 신경을 못 써준다는 사실에 섭섭함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말 보다는 행동이 더 와닿는다고
언니가 이렇게 정성들여서 차린 식탁을 보면 언니의 심통난 어조로 나를 힐난하는 말들은 내 식사를 더 맛있게 해주는 감미로운 조미료에 불과했다.
서브컬쳐 판에서는 이런 걸 ‘업계 포상’이라고 했던가?
“언니.”
“흥.”
“언니이이이.”
“밥이나 마저 먹어.”
“언니?”
“너, 일요일에 두고 봐.”
그렇게 날카롭게 말한 언니는 나와 살짝 멀리 떨어져서 앉았다.
그 모습이 마치 아무리 봐도 심통이 난 어린 아이같았기에, 마나와는 또 다른 귀여움이 느껴지는 언니의 모습에 나는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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