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03화 (203/307)

〈 203화 〉 202화.

* * *

화난 언니는 무섭다.

하지만 삐친 언니는 더욱 무섭다.

생각해보면 언니는 나에게 삐친 감정을 잘 내지 않는 편이었다.

화를 냈으면 화를 냈고,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말을 해주었고, 가끔 나의 사랑을 확인할 때에는 확실하게 언니 쪽에서 다가와 주었다.

그래서 언니는 이런 식으로 삐치고 토라진 적은 예전에 딱 한 번, 라이브 연습을 하는 동안 미숙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회사에서 나를 멀리한 태도를 보고 오해한 내가 ‘아, 언니가 더 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해서 나 또한 언니를 감정적으로 밀어냈을 때 한 번이었다.

아무튼 그날 이후 회사 사람들 앞에 화끈하게 공개 키스를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또 언니가 삐치고 토라진 감정을 내다가 어떻게 나에게 그 감정을 풀지 걱정이 되었다.

“유나야….”

하지만 이번에 토라진 것은 뭐랄까

이전과는 좀 다른 게 느껴졌다.

아주 오랜만에 자존감 낮은 언니의 모습을 본 나는 언니가 단순히 밀당을 하기 위해 토라진 감정을 내비친 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야말로 방송 피로와 수면 부족의 피로가 한 번에 날아가는 듯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자존심 낮아진 모습 때문에 나는 아주 오랜만에 매니저 시절로 돌아간 감정을 느꼈다.

“네, 언니.”

“영어라는 거, 나같이 고등학교도 겨우 졸업한 나쁜 학생에게는 닿기 힘든 거야?”

“에?”

언니가 나를 올려다본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돌보지 않고, 그 예쁜 외모를 관리하지 않고 자신감을 가지지 않아서 늘 소심하고 우울한 태도를 유지했었던 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영어 방송용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유나가 하는 말 들어보면 하나도 모르겠어.

학습 프로그램으로 나름 영어에 대해서 조금 자신감이 붙었는데, 방금 유나가 말하는 거 알아듣지 못해서 너무 속상해….”

언니의 성장에 큰 역할을 기여한 것은 귀여운 아기 발음으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영어 교육 방송이었다.

그 때문인지 언니는 주기적으로 영어 방송을 진행하면서 해외 시청자들과 소통하려는 모습을 자주 보이려고 했고, 덕분에 언니의 방에는 해외 시청자들이 많은 편이다.

방송을 보면 빠른 채팅 사이로 언니가 했던 말을 실시간으로 번역해서 치는 해외 팬들이 매번 모습을 보일 정도로 언니의 방송은 영어권 시청자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언니의 영어 실력은 좋게 쳐줘야 중학생 3학년 정도의 수준이었지, 결코 뛰어난 잉글리시 스피커가 아니었다.

방송을 진행할 때는 천천히 그리고 의도적으로 쉬운 단어를 골라서 말하기 쉽고 전달이 확실한 표현을 자주 쓴다.

표현하자면 방송을 하기 위해 선택했던 영어 수준이 기껏해야 미국 중학교~ 고등학교 레벨이라면, 조금 전 마나와 내가 나누었던 대화는 비즈니스 급 영어였으니 말이다.

하물며 언니는 마나가 말했던 말을 듣지 못하고 내가 했던 말만 들으면서 맥락을 헤아려야만 했으니 난이도는 절대 낮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알고 싶어 하고, 내가 영어로 방송하는 날에는 항상 수십 개의 키리누키 영상을 보고 다니면서 내가 영어로 했던 말들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언니는 능력의 부족을 체감했을 것이다.

“언니.”

나는 섣불리 ‘대학에 자퇴했으니 저는 고등학생 졸업이에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일본인 학생들이라면 들어가길 소망하는 명문대에 입학한 내가 하기에는 너무 기만이었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선라이즈 내부에서도 잘나간다고 볼 수 있는 방송인으로 있을 수 있게 한 달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니의 울먹이는 얼굴을 보니 아무런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든 나는 그냥 말없이 언니를 껴안고 토닥였다.

“유나가 부러운 게 아니라 내가 미워.

어릴 때 조금 더 노력할걸,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도 꾸준히 공부할걸, 방송에서는 가볍게 공부해도 다른 사람들처럼 제대로 공부할걸…. 지금 후회하고 있어.”

울먹이는 언니의 목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아파져 온다.

잘나가는 나, 나와 비교당하는 타인, 그런 과정에서 낮아지는 자존감

‘어째서 나는 유나처럼 하지 못하는가?’를 자신에게 묻고, 타인이 그렇게 물어오는 환경은 나에게 익숙했다.

그것은 마치 사라진 줄 알았던 과거의 그림자가 급작스럽게 방문하는 것 같았다.

기억 저 멀리 보내버린 줄 알았던 연습생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만 같은 압박감이 내 가슴에 납덩이를 단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못난 언니라 미안해, 하지만 이렇게 유나랑 같은 공간에 살아도 유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내가 알지 못하고, 소통을 이어나가지 못하면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거, 나 너무 무섭고 싫어.

그런데 이걸 유나에게 탓하지 못하겠어, 언니가 되어서 유나가 나아가는 걸 붙잡기는 더더욱 싫으니까 말이야.”

다른 사람들이 ‘아리아가 또 누구 꼬신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른 사람과 거리를 좁히면서 교류하기 좋아하는 나를

같은 집에 살고 있어도 내가 데뷔하고 난 이후부터 밤낮이 뒤바뀐 날이 늘어나서 낮에는 자고 밤에 일어나서 내 멋대로 활동하는 나를

같은 버튜버로서 동거하고 있음에도, 어느 순간부터 ‘데뷔하느라 바쁜 신인의 시기’를 보낸다는 이유로 가사 활동이 뜸해진 나를 이해해주고 견뎌내 준 언니지만

내가 GB의 버튜버들과 소통하기 위해 영어로 말할 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견디지 못한 언니에게 나는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친하고 편했기에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생긴 것이 있지만 그것을 나는 헤아리지 못했다.

언니라면 언제까지고 나를 기다리고 견뎌주겠지, 그런 막연한 생각하며 같이 살고 있으니까 언니를 너무 편하게 대한 스스로 혐오감이 들 정도로 나는 언니를 나만의 방식대로 편하게 대했다.

나 덕분에 소통이 늘어나고, 감정 전달하는 것을 좋아하고, 만화에서나 볼법한 과격한 감정 전달을 해준 언니였기에 이러한 소통의 부재가 더욱 크고 무섭게 다가왔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안해, 언니가 미안해. 참고 참으려고 했는데, 결국 나의 바보스러운 과거와 후회가 이렇게 열등감의 형태로 나타날지 몰랐어.”

혼자 슬퍼하고 아파하는 언니가 나에게 아프다고 말하고는 결국 상처를 삭혔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말을 하지 못했다.

두뇌의 피질을 거쳐서 언어로 무어라 표현하는 대신 나는 언니의 이마와 뺨, 그리고 입술을 부드럽게 키스해주었다.

말로 표현하는 소통이 줄어들고 생활 면에서 언니에 대한 배려가 줄어들었더라도, 언니를 좋아하는 마음은 여전하다는 마음을 담아서 진심을 가득 담아서 말이다.

키스하고 접촉을 할 때 언제나 언니가 먼저 움직였지만, 이번에는 내가 먼저 움직였다.

언니의 감정을 받아내던 내가, 처음으로 용기 내서 언니에게 나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일까?

감정을 받아내기만 했던 당시의 내가 간질간질하게 가졌던, 타인을 해치기 싫어서 꼭꼭 숨겨두었던 난폭한 마음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건 그러니까, 일종의 사고였고 폭발이었다.

언니를 부드럽게 안아주던 팔에 힘이 들어간다.

처음에는 달걀을 조심스럽게 운반하듯 부드럽게 접촉했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깜짝 놀란 언니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평소 억눌렀던 감정을 푼 탓에, 최근 들어 나에게 자주 보여주었던 ‘당당하고 능숙한 언니’의 모습이 아닌 작은 여성이 으레 보이는 상처받은 토끼처럼 연약해 보이는 초식 동물의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유, 유나야?”

“언니.”

무어라 말을 해야 했더라?

단어와 단어가 연결되지 않는다.

죄책감으로 시작된 감정에 열이 달아오른다.

누군가 말하길 사랑은 계단처럼 차근차근 오르는 게 아니라 스프링처럼 튀어 오른다고 했던가?

평소라면 예의를 차리고 반듯하게 언니의 사랑을 받아주던 나는 이 여성이 나보다 약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동물처럼 언니를 압박했다.

“자, 잠깐만.”

“미안해요.”

그것은 죄책감에 따른 미안해요가 아닌,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 미안해요였다.

평소의 능글맞던 언니의 모습은 어디 가고, 그 모습이 연기고 가면이었다는 것처럼 살짝 두려워하듯 나를 바라보던 언니가 나의 이상한 상태를 알아차리고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하지만 그것이 계시였다.

방으로 도망가려는 듯 물러난 언니의 허벅지를 내 허벅지로 잡는다.

바둥거리는 두 팔을 한쪽 팔로 제압해서 벽으로 밀어붙인다.

이전과는 다르게 육체적으로 훨씬 성장한 언니였지만, 그래도 나와 언니의 근력 차이는 명확했다.

먹잇감을 탐닉하는 육식동물처럼 나는 당황하는 언니를 다시 탐하기 시작했다.

소통의 부재로 나에 대한 감정이 틀렸을까 봐 걱정하는 언니에게, 그 감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나는 스스로 거울을 보기 두려울 정도의 표정을 지으면서 언니를 압박했다.

입술을, 입술을, 또 입술을 탐하며 내 숨결과 언니의 숨결을 섞는다.

그럼에도 자극이 부족했기에 혀를 밀어 넣고, 손으로는 언니의 가녀린 등을 어루만지고 강하게 쥔다.

방송의 피로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불규칙적인 삶, 갑자기 찾아온 과거의 압박감, 이 모든 것들이 평소 내가 ‘예의 바르고 남 챙기기를 좋아하고 성실하고 친절한’ 나의 사회적인 가면을 부쉈다.

게임을 하면서 은연중 느꼈던 나의 내면의 폭력성이, 언니의 바둥거리는 몸짓을 받아 더더욱 깨어났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이대로만 무한히 흘러갈 것만 같은 나의 무너져 내린 이성은 언니가 방송을 지각하지 않게 맞춰두었던 알람이 울리면서 돌아왔다.

“언니, 이걸로 부족해요?”

그렇게 이성을 찾은 나는 내가 짓밟은 이 가녀린 여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신감 없는 수동적이고 버려진 인형처럼 엉망이었던 언니를 예쁘게 만들어 낸 내가 다시 언니를 망가뜨리듯 제멋대로 다루었다.

이성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나의 행동은, 본능이었다.

나의 본능을 받아내느라 잘 익은 사과처럼 달아오른 얼굴이 된 언니가 감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바보, 바람둥이, 멍청이, 이러면 내가…. 내가 좋아할 거 같아? 안심해 할 것 같아?”

그 말을 들은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렇게 강제로 스킨쉽을 당하면 반감을 가지고 미워해야 할 시선을 보내야 할 언니가, 부끄러움과 사랑이 담긴 매력적인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입으로는 전혀 반대의 말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부족해요?”

이 말을 내뱉는 나는 나 자신도 조금 쓰레기 같은 바람둥이 같다고 생각했다.

연습생 이후 미움받지 않고 선망받기 위해 철저하게 살아왔던 내가, 이 순간만큼은 조금 나빠져도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지 아무렇게나 말하고 만 셈이었다.

“너, 나빠.”

“그러게요, 그동안 착하게 살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

아마 누군가가 나를 본다면 사이코패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정말 아무 말이나 내뱉고 있었다.

실은,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술을 그토록 마셔도 나오지 않는 본성이, 언니의 풀죽은 얼굴을 보고 나온다니….

내가 생각해도 내가 미친 사람 같았다.

하지만 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언니였다.

나의 거친 감정 표현만큼이나 진심이 담긴 언니를 향한 내 마음을 알아차린 언니는 호흡을 가다듬고, 부끄러운 감정을 가라앉히고 평소의 당당한 모습으로 말했다.

“솔직히, 부족해. 하지만 그건 유나가 부족한 게 아니라, 유나의 그 거친 마음을 받아낼 수 없는 내가 부족한 거야.”

나의 일방적인 감정의 배설을 받아 낸 덕분에 엉망이 된 언니가 나의 품에서 빠져나오면서 말했다.

벽에 던져서 부숴버리고 싶을 정도로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을 끈 언니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말했다.

“서로 한 번씩 주고받았으니 미안하다고는 말하지 않고 원망하지도 않을게.”

그 목소리는 언니가 방송하면서 가끔 보이는 카리스마 넘치는 공주님의 목소리였다.

캐릭터를 오래 연기한 배우는 그 캐릭터에 잡아먹힌다고 했던가?

내 머릿속에는 그런 말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새삼스럽게도 언니는 쿠로가와 나에임과 동시에 쿠로시로 유리아였다.

그 사실을 떠올린 나는 ‘버튜버가 팬들을 만나러 간다는 데 길을 막아서 되겠는가?’ 하는 마음과 ‘오늘만큼은 언니를 독점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충돌했다.

그런 내 생각을 읽은 듯한 언니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내가 방송하러 가는 걸 막는다면, 나 정말로 너 싫어할 거야.”

그 말을 들은 나는 문에서 물러났다.

방송 시간에 5분 늦은 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 방을 나갔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이성이 돌아오면서 내가 했던 행동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받아들일 수 없는 이상의 정보를 얻은 나는 그대로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던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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