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05화 (205/307)

〈 205화 〉 2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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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휴가다 휴가

직장인이라면 마땅히 누리는 사내의 복지이자, 현대인이라면 싫어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축복이다.

그것도 월급이 딸려 나오는 유급 휴가다.

그리고 인생 처음으로 휴가를 맞이한 나의 첫날은...

삭제되었다.

진짜다.

언니에게 ‘저 잠 좀 잘게요’라는 말을 하고 난 이후 침대에 누웠다.

언니에게 자겠다고 말할 때가 밤샘 업무를 하고 오전 7시였으니, 나는 낮잠을 잘 생각으로 3시간 정도 자려고 했다.

하지만 일어나보니 오후 7시였다.

무려 열두 시간을 잤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는 나는 망연자실한 탈력감을 느끼고 일어나려던 몸을 다시 침대에 뉘었다.

그리고 스르르 잠기는 눈을 느끼면서, 내가 그동안 힘들긴 했구나…. 하는 감상과 함께 다시 일어나면 뭐 하지? 하는 생각을 했다가.

다시 눈을 떠보니 오전 7시였다.

정확하게는 오전 6시 30분에, 내 품에 파고들어 온 언니 덕분에 잠이 깼다.

휴대폰을 보니 메일이나 메시지가 열 건은 넘게 와 있었고, 확인하지 않는 SNS 메시지 또한 스무 건이 넘어갔다.

평소 메일이나 메시지가 오면 바로바로 읽다가, 이렇게 몇십 건씩 쌓인 것을 보고 나서야 내가 진짜 휴가를 왔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키마쿠라처럼 내 품을 파고들어 온 언니를 껴안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 휴가 첫날에 뭐하지? 아니지, 둘째 날이구나.”

돌이켜보면 매니저 시절부터 워커홀릭 비슷한 경향이 있었다.

나 그러고 보니…. 매니저 시절 때에도 휴가를 하루도 안 갔구나?

다시 생각해보면, 아니 하다못해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미친 사람 소리 듣기 딱 좋았다.

방송하는 게 즐거워서 휴가를 가지 않는 버튜버들을 걱정해서 휴가를 도입했건만, 정작 일하다가 쓰러진 적이 있는 내가 ‘병가’를 제외하고는 휴가를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아직 팔팔한 20대 초반이라 그런지 몸을 막 쓰는 기분이 적잖아 들긴 하는데…. 솔직히 내 몸에 조금 미안했다.

바빠진 것도 바빠진 건데,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해외 선배님들과 합동 방송을 하느라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어서 그런지 나날이 힘들어 가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몸이 이렇게 24시간 수면을 요구한 것도 그동안 잠을 억지로 줄여가며 일을 했다가 휴가 기간에 보상이라도 받듯 한꺼번에 잠을 몰아서 자게 된 거 아닐까 싶다.

누군가가 비유하기를 잠을 줄이는 건 ‘잠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고 부채가 점점 쌓이면 이자 폭탄이 되어서 부족한 잠들을 한꺼번에 수급하려고 온다고 하더니, 그게 딱 내 꼴이었다.

그래도 아직 팔팔한 젊은 육체와 영양적으로, 운동적으로 관리가 부족하지 않은 내 육체에 24시간 수면이라는 ‘부활 의식’에 가까운 폭면(??)을 겪고 나니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따라서 나는 언니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언니를 내 품에서 밀어낸 후, 가볍게 옷을 갈아입고 집 밖으로 나섰다.

완연한 봄의 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부드러운 봄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이 나를 반겨주었다.

한국보다 일출이 한 시간 정도 빠른 일본에 살고 있는 까닭에 4월의 오전 7시 정도면 부드러운 봄의 색감을 누릴 수 있었다.

한국인 다운 패션으로 얇은 후드와 조깅 바지를 입은 나는 밖을 거닐기 시작했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게 아닌, 순수한 산보 외출을 얼마 만에 하는 걸까?

비록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지금이라고 하지만, 봄의 햇살을 받아 깨어나는 식물들의 녹 빛 냄새를 맡으며 길을 걷고 있자니, 방에서 방송만 하느라 알게 모르게 심적으로 피폐해진 내 정서가 치유하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 저녁에는 아무런 일정도 없고 내일도 아무것도 없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 삶에 휴식이란 게 참 드물다고 말이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부족한 공부를 때우느라 열심히 공부를 해왔던 나에게 방학이란 곧 기숙학원의 생활이었고, 사교육을 하는 시간이었다.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했던 게임을 제외하고는­그마저도 동생이 프로로 합격하고 프로 게임단에 입단한 이후 하게 흥미가 떨어졌다­ 이렇다 할 취미생활도 없었다.

아이돌 연습생에서 일본 명문대학교의 유학생으로 삶을 드리프트하고 난 이후

1년간 현지인들이 쓰는 일본어를 터득하고, 취업을 위해 비즈니스 일본어를 배웠다.

학교생활을 편하게 하려고 교수님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녔고, 상대적으로 빡세다고 할 수 있는 수능 영어를 공부하면서 다져진 영어 실력을 끌어올려서 ‘영어 잘하는 한국인 유학생’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애당초 연습생 시절에도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죽자 살자 영어를 공부한 것도 있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에도 영어로 내신 관리를 했고 대학교에 와서는 동기생들 사이에서도 손꼽히는 영어 구사자가 되었다라….

어찌 보면 치열하게 살아온 어린 시절을 지금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영어로 하는 게 레딧 드립을 치면서 마나랑 구구까까 하고 게임하다가 FAQ를 외치는 거라니….”

생각해보면 우스웠다.

그토록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했던 삶이 버튜얼 유튜버의 삶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니, 역시 사람 사는 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입사 초기에 느꼈던 ‘이런 일을 하는 데 돈을 받는다고?’ 하는 감각 또한 다르게 생각해보니 치열했던 과거의 삶에 비해서 지금 받는 대우와 삶이 말 그대로 꿀이 떨어지는 삶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메이드로 살아갈 때는 방송 호스팅도 안 하고 버튜버들 게임하는 방에 들어가서 같이 게임하고 그 사람들이 준비한 기획을 진행만 해도 평가가 오르고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통장에 돈이 꽂히다 보니 ‘정말 나 이렇게 일해도 되?’하는 생각을 자주 한 편이니 말이다.

아무튼 이런저런 감정 정리를 하면서 멍하니 뇌를 비우고 거리를 걷고 있자니 힐링하는 기분이 들었다.

일본에 살다 보니 놀란 게 있다면 단아한 거리 주택 디자인과 튀지 않는 간판 디자인, 그리고 정말로 보기 드문 거리의 쓰레기와 불법 주차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깔끔한 거리였다.

그냥 이대로 좋은 카메라로 사진 한 장만 찍어도 감성이 넘치는 여행하러 온 기분을 낼 수 있다고 해야 할까….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현지인이 아니라서 느낄 수 있는, 그러니까 생각을 비우고 아무 데나 걷기만 해도 운동하는 기분보다는 여행 온 기분을 낼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낯선 아침 거리를 거닐었다.

2년 동안 지속된 코로나라도 막을 수 없는 봄기운이 완연해지어 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본 까닭인지 가끔 아침 산책을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초등학생들은 술래잡기하며 등교를 하고 있었고 신호등에서 보이는 중학생들은 커다란 스포츠 백을 등에 멘 상태로 휴대폰을 보면서 재잘거리고 있었다.

‘아아 부럽다, 파릇파릇한 저런 젊음, 소속사에서 학교도 안 가고 연습하고, 야자를 하고 학원에 다니느라 누리지 못한 저런 젊음이 부럽다.’

에너지 넘치는 젊고 어린 사람들 옆에 있어서 그런가?

나는 속으로 이런 한심한 생각을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그들 사이에서 서서 신호를 기다렸다.

그러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나를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호, 혹시 유나 언니세요?”

옆을 바라보니 나의 이웃인 츠무기가 보였다.

얼굴이 워낙 작은 츠무기라 마스크를 쓰니 얼굴 절반이 보이지 않았고,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어서 알아볼 수 없었던 나는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츠, 츠무기 안녕?”

“언니야말로…. 이른 아침에 학교 가는 길에 보게 될 줄 몰랐네요.”

츠무기가 말을 걸어서일까?

그녀 옆에서 재잘거리던 여학생들의 시선이 나에게 모이는 게 느껴졌다.

아침에 세수도 안 하고 화장도 하지 않은 생얼에다가 요즘 들어 머리 관리도 안 해서 염색이 부자연스럽게 빠져서 신경 쓰이는 외모였기 때문에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아니 이런 낯선 길에서 지인의 여동생을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냐고!

“하, 학교 가는 길이네? 그, 근데 방학을 한 게 아니야?”

“아, 초등학생들은 몰라도 중학생들은 4월 개학인데 전 오늘 테니스부 애들 연습 도우러 가는 길이에요.”

“그렇구나, 교복을 입고 가서 그냥 등교 하는 줄 알았어.”

방학인데 부활동을 하려고 학교에 간다니, 한국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일본에서는 이런 일이 흔한 모양인지 츠무기는 나에게 부활동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확실히 대학 1학년 시절에는 ‘나는 중학교 때부터 쭉 검도를 해왔어.’ ‘나는 야구부에서 소속되었어’라는 식으로 부활동 경력을 바탕으로 자기소개를 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이런 게 보편적인 문화라고 봐야겠지?

공부와 수능 성적에 대한 걱정을 중학생 때부터 시작하는 한국과 막연하게 다른 모습에, 나는 내가 누리지 못했던 학원 판타지 같은 그녀들의 삶의 방식에 살짝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 싱숭생숭한 내 마음을 알까 모를까?

나를 더더욱 조심스럽게 바라보던 츠무기가 나에게 제안했다.

“호, 혹시 언니 괜찮으시면 부활동 견학 오실래요? 어, 언니는 제 친언니는 아니지만, 그 약간 보호자…. 같은 자격으로….”

살짝 안절부절못한 어조로 나에게 그렇게 물어오다니, 하물며 츠유의 여동생이 하는 부탁인데 나는 거절할 이유를 딱히 못 느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내 휴가 둘째 날은 중학교의 부활동 견학이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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