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08화 (208/307)

〈 208화 〉 207화.

* * *

“흐응, 그랬구나… 중학교 탐방이라…”

하루를 보내고 온 나는 나에 언니에게 오늘 일어났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츠무기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호시무라의 이야기라던가, 요즘 중학생들인 이런거를 한다거나 저저런 것 한다거나 하는 그녀들 세상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특히 나 같은 경우에는 중학교 학창 시절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부러운 마음 반, 그리워하는 마음 반 담겨있었다고 말했다.

그런 내 이야기를 들은 언니는 처음에 여자 중학생들과 놀러 다녔다는 말에 살짝 올렸던 눈꼬리를 내렸다.

그러더니 호시무라와 츠무기, 그리고 하야가와의 기묘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거나, 나를 동경하게 된 하야가와의 이야기를 듣고는 웃음을 피식 터트렸다가, 종국에는 스테이크 집에 일어났었던 일을 듣고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자고 열심히 운동하면 가슴이…큰다고?”

그렇게 말한 언니는 자신의 빈약한 가슴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 말의 저의를 파악한 나는 씁슬하게 말했다.

“언니… 그 이야기는… 성장기 소녀 한정이야…”

말한 내가 잔인하게 들릴 정도로 차가운 팩트를 들은 언니의 얼굴은 굳어졌다.

최근 들어서 ‘도마’ ‘납작판’ ‘트리플A컵’같은 자신의 가슴 사이즈를 놀리는 밈이 적극적으로 양산되기 시작하면서, 이에 따른 언니의 격렬한 반응이 새로운 밈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이게 보통의 분노와 광기가 아니어서 그런지 언니는 요즘 들어서 빈약한 자신의 가슴 크기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하였는가

하지만 비극의 배우가 이렇게 귀여워서야, 아침 코미디같은 느낌이 되어버린다.

지금도 충격받은 표정으로 ‘성장기 소녀...’라는 말을 중얼거리는 언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 나쁜 오타쿠 미소와 아빠 미소가 겹치는 괴상망측한 미소를 짓게 된다.

“나... 나는 더 이상 안 되는거야?”

“어, 음...”

솔직히 말해서 가슴 사이즈가 커서 고생은 해봤지, 작아서 고생해본적이 없는 나는 무어라 말을 하지 못했다.

다만 성장기 시기에 균형잡힌 식사와 운동, 적절한 수면시간을 취한다면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지극히 간단한 의학 상식대로 살아온 나는 가슴이 유전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관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기에...

“눈, 피하지 말아줘.”

“하...하하...그, 그래도 언니는 옷만 잘 갖춰 입으면 중학생으로 보이는 동안이잖아요? 그러니까 동안인 얼굴하고 가슴하고 교환을 했다고 보면...”

“요즘 중학생, 나보다, 가슴, 커.”

씹어뱉듯이 말한 언니의 말에, 동기생인 호시무라의 바스트 사이즈를 자연스럽게 떠올린 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은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이었다.

“유나 얄미워 죽겠어! 꼴 보기도 싫어!”

그렇게 외친 언니는 발을 쿵쿵 울리면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고는 문을 잠구고 말았다.

저질러버렸다­그렇게 생각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

“그래서 우리 집으로 도망쳐온거야?”

“헤헤, 선배님 집 밖에 떠오르지 않더라구요.”

“에휴, 유나 너 나보다 나이도 많고 평소 하는 행동이 의젓해서 어른답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나.”

아티스트 니아이자 선라이즈의 유능한 매니저인 마미 선배는 한숨을 내쉬면서 악보집으로 내 머리를 가볍게 내려쳤다.

“모서리로 치면 저도 아픈데요?”

“하는 행동이 유치원생이나 다름없는데, 몸뚱아리는 어른 그 자체니까 부담스럽다. 이 어른이야.”

“아하하하, 선배 앞이니 이렇게 어리광 부린다고 생각하세요. 이런 귀여운 후배 어디 없다구요?”

내 말을 들은 마미 선배의 표정은 풍성한 야채 샐러드를 바라 본 육식주의자의 표정 그 자체였다.

이에 아랑곳않고 나는 선배에게 은근슬쩍 엉겨붙으면서 아양을 떠려고 했으나, ‘귀찮게 굴면 밥 안준다.’ 라는 전가의 보도를 꺼내든 선배의 말에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쳇, 유나는 결국 도망온거네.”

“아하하하, 나도 나에 언니 일이 되면 유치하게 되어져 버리니...”

“음, 쿠로가와 씨, 요즘 들어서 유리아에게 붙은 도마 밈이 너무 인기를 타서 좋아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던데.”

“그런데 가슴 작은 게 그렇게 스트레스야? 학교 생활할때도 딱히 가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서 커서 부럽다는 느낌을 잘 모르겠어. 너무 크면 스타일 잡을때도 조금 징그럽기도 하고, 남자들 시선 때문에 은근히 스트레스란 말이지.”

“나,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러고 보니 버튜버 타마 같은 경우에는 초기에는 가슴이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다가, 버튜버 활동을 하는 동안 점점 더 커진 케이스였다.

타마의 나이가 나랑 똑같은 거 보면 확실히 여성의 가슴 성장기는 키에 비해서 조금 오래간다고 볼 수 있었는데...

언니 나이에 적용이 되는 지 모르겠다.

아무튼 간에 가슴이 큰 편인 나와 타마는 자연스럽게 이 방에서 가슴 사이즈가 언니에 비견되는 마미 선배에게 향했다.

“언니들 왜 나 바라봐요? 눈 빨리 돌려요.”

눈꼬리를 사납게 올리면서 드물게 감정을 100% 드러내면서 말하는 마미의 말에 우리들은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빈유는 스테이터스라는 이상한 말을 하는 마미 선배 앞에서 가슴 이야기를 다시는 꺼내지 않으리라 다짐한 나는 헤드셋을 착용했다.

그것을 신호 삼아서 타마 또한 헤드셋을 착용하고 조심스럽게 게임을 켰다.

부모님 몰래 컴퓨터 게임을 하는 학생처럼 우리는 화가 잔뜩 난 마미 선배의 눈치를 보면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나 : 근데 타마... 아니 이로하야 쟤 너 여동생이잖아...]

[이로하 : 미쳤어?]

[이로하 : 쟤 앞에서 가슴 이야기 꺼내지 마.]

[이로하 : 초등학생에게 순수하게 ‘저 언니는 왜 저보다 가슴이 작아요? 형 아니에요?’라는 말 듣고]

[이로하 : 그 이후 트라우마 됬어, 그거 관련해서 곡도 하나 썼는데.]

[나 : ...]

[이로하 : 쿠로가와 언니에게 혼나고 왔으면 큐나 얌전히 돌려]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편하게 게임을 돌렸다.

나는 평소처럼 방송을 하기 위해 억지로 텐션을 높게 잡지도 않았고, 말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내 노력이 무색하게, 비슷한 게임 실력을 지닌 친한 친구와 게임을 하는 건 즐거운 일인 모양인지, 우리들은 방송을 할 때보다 더욱 신난 텐션으로 게임을 이어나갔다.

“게이트 설치 완료!”

“롸져! 낚아올게!”

“난입 해온다! 적당히 치고 빠져!”

“잠깐만! 나 뒤 잡혔어 끼야아아악!”

“살려주세요 타마땅!! 살려주세요!!”

“야 내가 개돌격 하지 말랬잖아 이 킴치 워리어야!!”

그렇게 나의 인생 첫 휴가 2일 차의 날은

같이 사는 언니에게 가슴 이야기 했다가 혼나고 친구집으로 도망쳐 온 다음 게임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다음 날

보답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주방으로 가서 식사를 차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들어오는 주방인데도, 쓰던 조리도구들의 배치나 구성은 변함없이 늘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별 어려움 없이 아침 준비를 진행할 수 있었다.

요즘 들어서 양식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하더니, 수프를 만들기 위한 가루, 이전보다 다채로워진 향신료, 그리고 당연하게 구비되어있는 빵들을 본 나는 간만에 솜씨를 발휘해서 서양식 조찬을 차리기로 했다.

특히 수프같은 경우에는 기존의 파우더도 괜찮지만, 용도는 모르겠지만 마침 준비 되어있는 닭고기가 있어서 치킨 스톡을 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요즘 들어서 푹 잔 덕분인지, 이전처럼 아침 6시 정도에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서양식 육수라 할 수 있는 치킨 스톡을 위해서 닭고기와 야채를 커다란 냄비에 집어넣고 약불에 달이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는 게 맞다면, 이 집의 식구들은 여덟 시부터 일어나서 활동하기 시작하니, 지금부터 준비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평소라면 평범한 아침을 위해 두 시간씩 준비하는 일도 없지만, 휴가인 나는 시간의 압박에 있어서는 천하무적이었다.

나머지 요리들의 밑준비를 마친 후, 치킨 스톡이 우려나는 동안 집에서 대충 들고 온 아이패드를 꺼내서 업무 메일을 잠시 훑은 후, 업무 관련 이메일에 답신하는 글을 쓰려다가 휴가인 것을 깨달은 나는 회사 이메일을 닫은 후 중얼거렸다.

“무섭다 직장인의 본능! 아무런 생각 없이 메일을 받자마자 답신을 보낼 뻔했네.”

그래도 메일을 무시하는 건 예의가 아니기 때문에 ‘현재 휴가 중이기 때문에 나중에 이야기 하죠.’라는 형식의 미래의 나에게 일을 토스하는 메일을 보낸 후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달그락거리기 시작한 냄비를 가끔 휘휘 저어가면서 바닥에 재료가 눌어붙지 않게 유지하면서 요즘 자주 들어가기 시작한 한국 버튜버 커뮤니티와 키리누키 영상들을 보면서 시간을 때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가끔씩 알고리즘이 던져주는 요리 레시피 영상들을 보고 있자니, 기왕 휴가를 가지게 된 겸 언니에게 그동안 부족했던 맛있는 식사나 차려주는 것으로 휴가를 마무리하자는 계획을 대충 세운 나는 나머지 요리를 마친 후 두 사람을 깨우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로하 왜 이렇게 가볍냐.”

“후아아암.”

밤 늦게까지 방송을 하는 경우가 잦은 이로하는 아침이 약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그녀를 업은 후 식탁 자리에 앉혔다.

그사이에 대충 세수를 하고 나온 마미 선배가 졸린 눈을 비비면서 부엌으로 왔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맛있는 냄새냐.”

“한 시간 넘게 졸인 치킨 스톡에다가 크림 넣어서 만든 버섯 수프와 빵 냄새죠 뭐.”

“샐러드도...했네...”

“재워주신걸로 고마운건데 이 정도야 뭐.”

“흐아암, 우리 언니도 메이드 컨셉이라면 이런 거 배워야 하는데.”

평소라면 인공 감미료들을 써서 냈던 맛을 수제로 낸 덕분인지, 그녀들은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꽤나 왕성하게 식사를 해치웠다.

아침을 차려준 입장으로는 기쁜 마음이 들 정도로 그릇 밑바닥이 보일 때 까지 깔끔하게 식사를 마친 후, 커피로 입가심을 했다.

그러던 도중 마미 선배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유나가 입사한 지 일년이 다 되어갔던가? 그리고 지금이 첫 휴가고?”

“네, 얼추 그쯤 되네요.”

“흐아아암, 너도 참 대단하다. 워커 홀릭도 정도가 있지 휴가인데도 우리랑 같이 어울리냐.

나는 너가 한국이라도 방문할 줄 알았는데.”

“하하... 대학생 시절에는 해외 여행가는 게 꿈이었는데...”

“왜, 우리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인싸인 너도 방구석 아싸가 된거냐?”

“윽.”

“윽은 무슨, 어차피 놀러가고 싶어도 코로나 때문에 나가지도 못하잖아? 참 대단하다 대단해, 이렇게 난리법석을 떨고, 결국에는 올림픽도 연기라니...”

밥을 먹은 후 낮잠 자는 고양이처럼 졸기 시작한 이로하에게 담요를 덮어준 후 아침마다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저씨처럼 읽던 신문을 집어치운 마미 선배는 보기 드물게 정치욕을 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도쿄 올림픽 유치를 하기 위해서 상당히 강압적인 정책들을 시행했다.

그중 강력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오후 8시 이후에는 매장 내에서 식사할 수 없고 포장만 하게 하는 식이었는데, 다른 동네도 아닌 일본의 수도에 시행한 이 규제 정책 때문에 올림픽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8시가 되면 가게 내부에서 식사할 수 없는 셧다운제를 겪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올림픽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것 이외에도 초등학교 같은 교육 시설의 온라인 의무화나 특정 식당에 음주를 금지하였는데 그 결과가 내년으로 연기라니, 그것 때문에 정치 욕을 하는 일이 드문 사람들조차 정부의 욕을 하기 시작했다.

“첫 휴가가 코로나 와중이라니, 너도 참 안 되었네.”

“뭐 괜찮아요. 이전이라면 지루해서 미쳤을건데, 버튜버가 되고 난 이후부터는 방구석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우와 그 말 다른사람이 했으면 참 사람 안타깝게 보이는 발언인데 네가 하니 왜이리 기만같은 발언이냐.”

“푸핫, 제가 좀 방에서 썩히기 아까운 사람이긴 하죠.”

너무 얄밉게 말한 까닭일까?

마미 선배는 내 볼을 잡아 늘였다.

“말 한마디도지지 않으려는 건방진 후배의 주둥아리 좀 보게.”

첫 만남에 나를 어려워하고 무서워하던 선배는 어디가고, 이제는 예쁜 후배를 괴롭히는 나쁜 선배만 있었다.

그 배신감에 눈물을 찔끔 보인 나는(하지만 마미 선배는 속지 않고 손에 힘을 더 주었다)마미 선배에 의해 제대로 혼이 났다.

“뭐, 그래도 첫 휴가 잘 보내고, 쿠로가와 씨랑 잘 놀면서 즐거운 시간 보내렴.”

“네, 고마워요.”

“아, 그리고 앨범 작업 이제 막바지에 도달했으니 마지막 수록만 마친 후 두 사람이 알아서 노래 잘 부르고 다니렴.”

“그럼 이제 노래 금지령 풀어주는 건가요?”

“물론이지, 그동안 간섭 많이 해서 내가 더 미안했다.”

다른 선라이즈 멤버에 비하면 빠르다고 볼 수 있는 아리아의 첫 앨범은 다섯 곡이 수록 된 미니 앨범이다.

그중 세 곡을 코모레비랑 같이 부른 듀엣곡이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아리아와 코모레비의 앨범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이번 앨범을 같이 작업해준 프로듀서 겸 작곡가 겸 편곡가인 마미 선배는 내 노래 방송 횟수도 줄이라고 말 할 정도로 빡세게 나를 관리했는데, 오늘부로 그 관리가 끝났다고 말한 셈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두 눈을 빛냈다.

휴가 때 방송을 했다가 혼난 버튜버들의 일화에 아리아의 기록도 하나 더 추가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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