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09화 (209/307)

〈 209화 〉 208화.

* * *

“언니! 보고 싶었어요!”

“그래 그래 그래.”

집으로 돌아가니 어제 집을 뛰쳐나간 나에 대해서는 걱정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 지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던 언니가 나를 슥 바라보고는 다시 독서에 집중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어제 있었던 일이 참 터무니 없는 일본 코미디같다는 생각을 했다.

가슴 이야기를 했다가 언니의 역린을 터트리고, 화를 내고 있는 언니를 피해서 친구집에서 하루 묵고 오다니...

1년 전의 나로는 상상하지도 못할 계획 없고 느슨하고 대충 사는 듯한 이 일련의 흐름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휴가라는 말에 평소에 가지던 긴장끈을 완전히 놓아버린듯한 나의 태도는 확실히 내가 설명하라고 해도 할 수 없었다.

“왜 웃니 유나야?”

“작년하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제가 웃겨서요.”

“그러니?”

“네.”

대충 옷을 갈아입고 나온 나는 언니가 앉아있는 소파 옆에 앉으면서 말했다.

언니와 그렇고 그런 일이 있는 후라 그런 건지, 아니면 첫 휴가에 그동안 알게 모르게 유지했던 긴장의 끈이 풀어져서 그런 건지 몰라도, 운전하면서 돌아온 길에 나는 이번 기회에 내 삶에 대해서 언니에게 다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작년의 저는 대학생이었죠.

그것도 일본 애들이라면 들어가기를 소망하는 유명한 대학교에 다니는 유학생으로서 하루 하루가 적응이었고 투쟁이었죠.”

당연한 말이지만 초기의 유학생은 일본어를 잘 하지 못한다.

EJU라는 유학 시험에서 쓰는 일본어와 교수님이 실제로 말하는 일본어와는 괴리감이 꽤나 크다.

특히 복잡한 한자들을 많이 활용되고 일본식 서양인 이름 표기법으로 난이도가 두 배로 오르는 철학 관련 교양 수업같이 가볍게 듣는 교양 수업마저 쉬운 게 없었다.

“저는 음, 성적을 잘 내야만 했어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제 유학은 집에서 그렇게 존중받지 못하는 선택이었거든요.

당연했죠. 중학생때는 아이돌 연습생으로 3년 공부를 날려먹었다가, 고등학교에 와서 유학을 결정하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요?

덕분에 제 유학은 최소가 반액 장학금 유치였어요.”

전액 장학금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엄격한 부모님이 정한 선은 반액 장학금이었으니 말이다.

그 덕분에 1학년 1학기때부터 나는 정신없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구들을 많이 알고 사귈수록 일본어가 늘고, 그들에게서 도움을 받아가면서 수업 도중에 놓친 공부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특히 유난스럽게 친절하게 구는 남학생들 덕분에 나는 그들에게서 늘 공부를 배워가면서 1학년 1학기를 마쳤다.

“그 다음에는 정신없이 아르바이트를 했죠. 유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는 1학년 까지는 확정인데 2학년 때는 또 모르거든요. 그래도 1학년 1학기때 다져둔 친목을 통해서 아르바이트는 그럭저럭 괜찮게 했죠.”

“그렇구나.”

1학년 2학기 때는 일본어가 익숙해졌다.

나는 여타 다른 한국 유학생들과 다르게 한국 커뮤니티에 따로 들지 않고, 가능한 일본 사회에 적응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 케이스였기 때문에 빠르게 학부생 수준의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어를 잘 하는 외국인들에게 으레 하는 ‘일본어 잘하시네요’라는 칭찬이 들리지 않게 될 무렵, 나는 내 특기라고 볼 수 있는 영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영어가 부족한 일본인들 사이에서 나름 무기라고 할 수 있는 내 분야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영어를 그렇게 잘 하는구나.”

“네, 요즘 한국 아이돌들은 자기 관리, 노래, 춤, 토크 능력, 개인기는 물론이고 영어까지 탑재되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태생이 타인의 관심과 시선을 즐기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대학교에서도 고등학생때처럼 인싸가 되고 싶었던 나는 최대한 트렌드에 떨어지지 않게 노력을 했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그들이 좋아할만한 사진을 올렸다.

브랜드를 공부하고 패션에 관련된 유튜브들을 보고 많은 잡지들을 읽으면서 나만의 심미안을 가꾸어나갔다.

아이돌 연습생 시절 몸에 새겨넣은 자기 관리법으로 원체부터 타고난 아름다움을 가꿔나갔다.

“그래서 제 삶은 조각이었죠. 공부하고 운동하고 알바를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부족한 잠은 지하철에서 채우면서 열심히 살아왔으니까요.”

“맞아. 유나에게는 자기의 시간을 열심히 보낸 사람 특유의 당당함과 자존심이 느껴졌어.

단순히 예쁜 외모만 가지고 행동하는 게 아닌,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 특유의 단단한 내면이 느껴졌었어.”

“아하, 그래서 처음에는 눈도 마주치지 못 할 정도로 저를 피했군요.”

“응, 유나를 보고 있으면 내 자신이 부끄러웠으니까. 내 자신이 너무나도 하찮아서, 인생을 대충 살아온 나와 치열하게 살아온 너의 간극을 느낄 때 마다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었으니까 말이야.”

“아하...”

“단순히 인싸(?キャ)나 아싸(?キャ)같은 분위기가 아니었어. 달은 태양 앞에서 떳떳할 수 있지만, 그림자는 태양 앞에서 떳떳할 수 없었거든.

그래서 나는 속으로 걱정했어. 유나같이 잘나고 예쁜 사람이 이런 보잘것없고 하찮은 나를 돌보면서 속으로 나를 비웃지 않을까, 그렇게 걱정했어.”

분 단위로 치열하고 밀도 있게 살아온 나와 그러지 못한 언니의 간극은 사회성 이전에 그런 것들이 존재했다고 언니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처음에 만났던 언니의 놀라울 정도로 방어적으로 소극적인 태도는 이런 생각으로부터 나온 셈이었다.

흔히 말하는 인싸에 대한 아싸의 열망 같은 게 아닌, 삶의 밀도가 다르다는 것을 자각했기에 초라해지는 자신을 느낀 셈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니었죠?”

“응, 나를 속으로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따뜻하게 나를 대할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야.”

언니와 나의 관계는 나의 적극적인 접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꿀 직장을 놓치기 싫은 나의 행동이었다.

이렇게 귀여운 사람을 돌보기만 해도 돈을 받는다고? 라고 생각한 나는 언니에 대해서 알아가기 시작했고, 생김새와 하는 행동과 하는 말들이 모두 귀엽다는 것을 알게 될수록 나는 언니에게 빠져들어 갔다.

언니에 대한 감정이 깃들기 시작하면서, 나는 진심으로 언니의 행복과 발전을 원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후 때로는 상냥하게 때로는 엄격하게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진지하게 언니를 대하면서 언니에 대한 다양한 감정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같이 살게 되면서 나라는 존재가 결국에는 언니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언니에게 전달하는 데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리고 나서야 결국에는 우리는 이렇게 눈을 마주 보며 웃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헤헤.”

“계속 웃어 줘, 정드니까.”

언니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언니를 바라보았다.

눈과 눈을 바라보면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으면서 나오는 호감을 확인했다.

그냥 문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쁜 감정이 느껴졌다.

버튜버로 데뷔하고 밤낮이 뒤바뀌면서 그동안 가지지 못했던 감정의 교류를 나누기 시작했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웃음이 나온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희열이 차오른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감에 미쳐버린다.

“좋네.”

“네, 좋네요.”

“휴가가 시작된 이후 유나가 너무나도 편해 보여. 이전이라면 많은 생각을 하고 계산된 행동으로 말했더라면, 지금은 그냥 사람이 생각 없이 행동부터 하는 그런 단순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어.”

언니의 말이 맞았다.

하루종일 자거나, 일어나자마자 길거리를 대충 걷다가 인근의 중학교에 방문을 한다거나

언니의 역린이라고 할 수 있는 가슴 이야기를 꺼내다가, 혼나고 친구의 집에서 하룻밤 자고 오는 건 평소의 나라면 있을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평소의 유나가 세월의 풍파에 맞서는 사회인의 유나라면

지금의 유나는 중학교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활기찬 중학생 유나였다.

“단순한 유나는 싫으세요?”

“바보, 그럴 리가 있어? 어제 못 해준 키스나 해줘.”

이제는 나에게 대놓고 키스해달라는 부탁을 하는구나.

마치 내가 키스를 해주는 게 당연한 의무인 것처럼 말하는 언니의 말에 나는 살짝 심술궂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 내 마음을 귀신같이 읽은 언니가 단호하게 말했다.

“단, 저번처럼 말고 상냥하게.”

“네에 네에.”

나는 언니의 말대로 키스를 해주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인기 좋은 유나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 줄 거 같아서 무서워.”

그 말을 들은 나는 언니가 너무나도 귀엽다고 생각해서 이번에는 내 방식대로 키스를 해주었다.

그 후에는 화를 낸 언니가 책을 집어 던지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아아 또 저질러 버렸다­라는 생각이 든 나는 내 방으로 도망쳤다.

정말이지, 휴가를 가진다고 사람의 뇌가 이렇게 녹아버린단 말인가?

예전이라면 하지 못했던 행동들을 하면서,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대충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나는 침대에 몸을 던지면서 속으로 외쳤다.

‘휴가 만세!’라고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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