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13화 (213/307)

〈 213화 〉 212화.

* * *

남는 휴가일을 모두 보내자, 나는 엄청난 허탈감을 느꼈다.

인생 첫 휴가의 끝에는, 월요병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탈진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코로나를 억제하려는 사회의 분위기가 물렁물렁해지는 지금, 온라인으로 진행되던 굿즈 회의나 트레이닝들이 회사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나는 언니와 같이 회사에 출근하는 몸이 되었다.

이럴수가

출근이라니

출근이라니!!

느긋하게 오전 10시에 일어나서 배를 벅벅 긁으면서 콘소메맛 감자칩을 먹으면서 멜론소다와 함께 선라이즈 버튜버들의 키리누키 방송을 보는 안락한 삶이 끝난단 말인가!

마음 같아서는 보컬 트레이닝을 거부하고, 앨범 회의를 가상으로 진행하죠! 라고 밀어붙이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나, 뒷좌석에 앉은 채 아침부터 꾸벅꾸벅 조는 코모레비를 보니 차마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듣자하니, 요즘 들어서 방송 시간도 늘리고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버튜버에서 벗어나고자 다양한 게임을 시도하고 그 과정속에서 많은 선라이즈 멤버들을 만나면서 방송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고 하는 코모레비는 근래 들어서 ‘열정과 근성의 코모레비’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이전에는 단순히 다른 점잖은 여자 아이들에게서 바라볼 수 없는 화끈하면서도 잔인한 사이코패스적인 면모를 보여주면서 털털한 매력으로 시청자들의 주의를 모으고

그녀에 대해서 한 번 알게 된 시청자들을 인싸 특유의 활발한 화법과 쿨하고 대범하고 화끈한 행동과 유창한 노래 실력으로 한 번 그녀에게 눈길을 보낸 시청자들을 모조리 팬으로 만들어버리는 매력을 지닌 코모레비는

노래와 자신이 잘하던 레이싱 게임을 위주로 한 기존의 방송 틀을 벗어나서, 다양한 토크 쇼에 참여하고 전에는 해본 적 없는 RPG 게임이나 FPS 게임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식으로 새로운 발을 내딛으려고 한다고 하니

그녀의 친한 언니인 내가, 그녀와 함께 부르는 앨범에 있어서 결코 대충할 리 없었다.

빨간 신호를 기다리면서 뒷좌석을 힐끗 바라보자 윗층 이웃이라고 볼 수 있는 샤야 카기가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츠유에게 덮어주었다.

아무래도 몸이 아픈 사람하고 같이 지내다 보니 저런 배려가 몸에 배여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 옆좌석을 힐끗 바라보았다.

100만 구독자를 달성하기 코앞에 둬서 그런지, 요즘 들어서 한층 신경이 예민해진 언니가 편안한 얼굴로 내 옆 좌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야, 이게 힐링이지 힐링.”

“유나 씨, 운전에 집중해주세요.”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기라도 한 듯, 샤야 씨의 살짝 뾰족한 말투가 들려왔다.

쩝, 휴가 끝나기 이틀 전에 그녀 집에 놀러 가서 그녀의 동거인인 사토랑 너무 놀려먹어서 그런지, 그녀는 아침부터 묘하게 삐친 얼굴이었다.

아무튼, 휴가가 끝나서 그런지 평소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것만 같은 차를 이끌고 회사에 도착한 나는 코모레비와 나에 언니를 깨웠다.

회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댄스 트레이닝을 받으러 간 언니와 샤야를 떠나보내고, 나와 츠유는 다정하게 손을 잡고 기획 회의실에 들어갔다.

“여­ 휴가는 잘 보냈냐.”

문을 열자 그곳에는 친숙한 빨간 머리 선배가 나를 반겨주었다.

나와 코모레비가 합동으로 내는 미니 앨범 ‘푸른 혜성에 빌어’의 총괄 프로듀서 겸 작곡가 겸 작사가인 마미 선배, 다르게는 아티스트 니아는 여전히 쿨한 분위기를 내면서 가볍게 인사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내가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뜨겁다 못해 녹아버릴 것 같은 열렬한 시선을 보내고 계시는 일러스트레이터 샤니씨가 나에게 달려드는 것을 내 매니저인 유키하라에게 제지당한 상태로 나를 맞이했다.

내 최초의 버튜얼 캐릭터인 메이드 라는 물론이고, 구미호 아리아까지 디자인을 맡아주신 걸로 모자라 개인 방송에서 대놓고 나를 덕질하고 있다는 발언을 하면서 온갖 아리아 일러스트를 그려주는 소중한 사람이지만…. 뭐랄까, 2D와 3D를 구분하지 않고 나를 너무 열렬히 좋아해주는 팬같은 사람이라 가끔씩 좀 그런 기분이 들때가 있었다.

의외에도 츠유와 다른 버튜버 미코씨를 담당하는 매니저 하세쿠라 쥬우씨가 나에게 인사를 꾸벅 해오셨다.

잠시 후, 흥분을 가라앉힌 샤니씨가 혼자 얼굴을 붉히면서 부끄러움을 달랠 무렵 인사 교환을 마친 우리는 회의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사실 회의라고 하고는 하지만, 실상은 앨범 디자인 작성과 발매일을 결정하는 일에 가까웠다.

원래대로라면 버튜버가 앨범을 내려고 한다면 작곡가에게 돈을 주고 음원을 사야 했다.

거기에 음반 프로듀서와 협의를 해서 레코딩, 믹싱, 마스터링을 담당하는 녹음 엔지니어와 마스터링 엔지니어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앨범의 분위기를 정해야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음악가들이 참여할 수도 있고, 그들로부터 지적 재산권을 지불하고 임금을 지불해야했는데, 이 과정에서는 회사의 자본과 음반을 내고 싶어 하는 버튜버의 자본들이 들어갔다.

여기에 들어가는 금액이 결코 만만치 않은 금액이라,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버튜버들도 저축을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 오가고는 했다.

그 때문에 집안이 파산하게 되면서 츠무기의 학비가 곤란해진 츠유가 나에게 돈을 빌리는 계기가 되긴 했지만...

뭐 아무튼 그만큼 곡에 대해서 인센티브는 버튜버가 소유할 수 있고, 이렇게 온전히 자신의 곡이 된 음악들은 자신의 라이브 무대에 거리낌 없이 부르고 수익 발생을 챙길 수 있고, 음악에 대한 활동을 꾸준히 팬들에게 어필하면서 ‘팬들의 사랑을 돌려주기’가 가능해지는 구조였다.

하지만 우리 같은 경우 조금 달랐는데, 곡 작업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있지만 나와 코모레비의 목소리를 듣고 ‘작업을 하고 싶다’는 아티스트 니아 덕분에, 그녀는 거의 공짜와 다를 바 없는 금액을 받고 우리들의 작업을 해주었다.

원래대로라면 업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마미 선배는 너네들 돈을 받을 바에 죽어버릴 거야 라는 험악한 태도(실제로 인상을 찌푸리면서 츠무기에게 과자나 사주라며 돈을 주었다)와 난폭한 언행(‘너넨 이런 집 없지?’라고 말했다)을 일삼으면서 자선 사업과 다를 바 없는 재능 기부를 해주셨다.

그만큼 우리들은 자신에게 음악가적인 영감을 주는 목소리들을 악기처럼 마음껏 쓰게 해달라는 마미 선배의 요구에 응해주었고, 근래 들어서 매니저보다는 음악가에 가까운 모습이 된 마미 선배는 이전에 작곡해두었던 음악들을 손보면서 혼자서 모든 일을 해치웠다.

홀로 작업하는 인터넷 프로듀서인 ‘보컬로이드 프로듀서’출신인 탓에 혼자 하는 게 능률이 더 오른다는 그녀의 말대로 우리들은 정말 빠른 시간 내에 음악을 완성했다.

이제 남는 건 회사의 이름으로 우리들의 앨범을 내면서 앨범 디자인을 정하고 수익 분배를 나누고 발표일을 정하고 홍보 이벤트를 정하는 돈과 상품작성에 관한 조율을 해야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와 츠유는 시범 삼아서 회사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불러야 했으니 말이다.

“수익 분배는...”

“그렇다면 회사에서 관례대로...”

“아니죠, 이번 일은 관례대로 처리할 수 없는 게...”

“저는 두 사람은 동등한 권리를 가졌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일단 법적으로 프로듀서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금이...”

회의는 수월하게 흘러갔다.

평소에는 물렁한 모습을 가끔 보이던 선배는 금액에 있어서만큼은 칼같은 태도를 유지했고

나는 ‘돈은 젊었을 때 열심히 벌자’주의기는 하나, 나보다 어린 동생과 재산을 분배하는 데 악착같이 달려들기는 싫었다.

다만 나의 몫을 양보하는 건 그녀에 대한 동정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나에게 떨어지는 정산 비율을 듣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돈에 관련된 회의가 끝난 후, 이윽고 앨범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앨범 자켓을 정하는 시기가 되었다.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는 듯, 나의 어머니(버튜버적 표현으로)인 샤니 씨는 이전처럼 태블렛을 꺼내어 컨셉 아트를 보여주었다.

“제 생각에 코모레비의 퍼스널 컬러는 녹색에 하얀색, 말 그대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같은 따스하고 네이쳐한 이미지죠. 그런 코모레비에 비해서 아리아는 천 년 묵은 구미호 같은 컨셉으로, 퍼스널 컬러가 검은색에 붉은색, 사람을 홀리는 요괴같은 이미지란 말이에요. 그래서...”

[1차 시안]이라는 폴더 내에 띄운 그림들을 프레젠테이션에 띄웠다.

밑색이 깔리지 않고, 거친 선화의 러프만 가득한 10개의 일러스트가 나왔다.

“그런데, 막상 곡을 들어보니까 너무 다른 거 있죠. 솔직히 ‘푸른 혜성에 빌어’라는 이름을 들으면 조금 몽환적인 이미지인 줄 알았는데, 별 아래에 속닥거리는 연인들을 떠올렸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떨어지는 별을 딛고 자신들이 날아오르고 싶어 하는 이야기인 줄 누가 알았겠나요?”

[2차 시안]이라는 폴더 안에는 밑색이 깔린 일러스트들이 나왔다.

곡을 듣고 방향성을 정한 듯, 그녀는 세 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1차 시안과 다르게 다듬어진 선들 덕분에 그림을 알아보기 편했다.

“다섯 곡들을 다 들어봤어요. 제가 앨범 자켓 커버를 그린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두 사람의 노래가 너무 강하더라구요. 그래서 제 일러스트에는 힘을 크게 넣지 않았어요. 저도 제 그림의 특징을 최대한 거세하고, 두 캐릭터의 일러스트도 얌전하게 그린 이 작업본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진짜진짜최종]이라는 폴더 안에는, 내 눈에는 거의 완성되어 보이는 일러스트가 있었다.

아무 장식도 없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 아리아와 코모레비가 눈을 감고 풀밭에 누워서 푸른 별이 흘러내리는 밤하늘을 올려다 보는 일러스트였다.

다만 평소 샤니 씨의 일러스트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유의 채색법이나 선의 강약을 조절해서 강조하는 캐릭터의 기교같은 게 없는, 그야말로 샤니 씨의 그림이라고 볼 수 없는 수수한 그림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해야 할까?

거의 매주 클라티에에게 생방송으로 그림을 수업받고 있는 나는 새삼스럽게 샤니 씨가 일러스트 업계에서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정말 멋진데요.”

그런 내 솔직한 감탄사를 들은 나머지 사람들도 이견을 제시할 게 없는 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녀가 가져온 일러스트들 중에서 화려한 일러스트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녀의 말대로 이번 앨범은 내가 들어도 곡들 완성도가 높았고 부르는 우리도 매번 힘들다고 느껴질 정도로 음이 화려했기 때문에 앨범 자켓만은 수수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계약서 작성을 마무리를 짓다 보니 열 한 시였다.

계약서 작성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 나와 츠유의 매니저인 하세쿠라와 유키하라 두 사람은 법무팀으로 떠나면서 풀어진 분위기 속에, 긴장이 풀린 모양인지 츠유가 책상에 엎드리며 말했다.

“아, 생각보다 계약이 일찍 끝났네요.”

“음, 그러게. 평상시 한 사람이 내는 미니 앨범보다 더 빠르게 계약이 끝난 기분이 들어.”

츠유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은 내가 물었다.

“그나저나 마미 선배, 이대로 스튜디오 녹음까지 진행하고 싶은 데 빈 스튜디오 없죠?”

“응, 오늘은 낮 촬영이 있는 다른 멤버들이 있어서 아쉽게도 예정된 시간에 진행하게 될 것 같네.”

“그나저나 샤니 씨는 정말로 괜찮으세요? 왠지 제 업무를 맡을 때마다 참여하시는 거 같은데, 바쁘신 분에게 폐를...”

“아뇨! 이렇게 유나씨 얼굴을 보고 아리아 덕질을 할 수 있는 만족도 높은 작업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답니다!”

어째 볼때마다 이미지가 바뀌는 샤니 씨의 아쎄이라고 말할 것 같은 기합 가득찬 말에 나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 나를 향해 츠유가 퉁명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언니는 인기 많아서 좋겠네.”

“왜, 질투 나니?”

“흥.”

못 본 사이에 애교가 늘은 모양인지, 아니면 마미 선배의 빡센 일정 조율이 끝나서 풀어진 모양인지 츠유는 나에게 가볍게 불평을 터트렸다.

“언니처럼 좋은 파트너가 또 어디에 있다고, 해외 사람들하고 일이 많아지면 언니와 이렇게 둘이서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 게 되잖아.”

그 말을 들은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걱정하지 마, 너와 난 최고의 음악 파트너니까 말이야.”

“정말?”

“물론이지 말고.”

“역시 언니가 최고야~!”

방송할 때처럼 톤이 올라간 목소리로 나를 껴안은 츠유의 등을 토닥이면서 나는 회의 도중 울린 휴대폰을 열어서 메일을 확인했다.

[선라이즈 GB의 협업 제안서]

메일을 열어보니 선라이즈 GB의 대장 ‘마나’에게서 같이 합동 음반을 내자는 제안서였다.

“하하...”

제안서를 읽은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츠유와 내 휴대폰을 번갈아 보았다.

아무래도,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일이 많이 생기는 게 기분 탓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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