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화 〉 2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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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건 내가 회사를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있는 일이다.
내가 선라이즈에 입사를 한지 일 년이 다 되어가고, 회사가 스튜디오를 갖추기 이전부터 이 건물에 들락거리면서 매니저 활동을 했으니 나는 이제 회사에 근속하고 있는 스태프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람이다.
하지만 회사가 본격적으로 버튜버들에게 방송 편집 교육, 보컬 트레이닝, 댄스 트레이닝, 콘텐츠 녹화 및 콜라보 굿즈 제작 활성화 등의 이유로 기존 방에서만 활동하던 버튜버들을 회사에 출근시키게 하기 시작한 기점으로 방송에서는 모를까, 오프라인에서는 상당히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들이 회사에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버튜버들 중에는 내 외모를 보고 겁에 질리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나와 부딪히고 나서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주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벌벌 떨고 있는 눈으로 나를 올려보고 있는 이 사람처럼 말이다.
언니와 비견되는 작은 체구
아무리 좋게 쳐주어도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앳된 피부
입고 있는 옷들도 보면 유니클로에서 팔법한 아주 평범하고 무난한 의류에
가방이나 신발을 보면 이리보고 저리봐도 아직 학식 보다는 급식을 먹을만한 여자아이였다.
휴대폰을 보면서 길을 걷다가 나와 부딪히며 넘어지고는, 내 손을 잡을 생각도 하지 못한 체 바싹 얼어있는 그녀를 보니 내가 다 무안해졌다.
의외로 이 세상에는 언니같은 사람이 아예 없는 건 또 아닌 모양인지라, 나는 오랜만에 느끼는, 그러니까 내가 무슨 마치 무서운 괴물처럼 된 것같은 이 기묘한 기분을 다시 느끼며 쓰게 미소지었다.
“괜찮아요?”
세 번 째 되묻는 말에 그제야 패닉이 가라앉은 듯, 그녀는 맹금의 아가리에 손을 집어넣는 미숙한 사육사처럼 벌벌 떨면서 손을 뻗었다.
“선라이즈 소속의 김유나라고 합니다. 그쪽은 5기생의 헤카테 맞죠?”
“네? 네!? 헤,헤헤헤, 헤카테요? 저 그런 버튜버 아닌데요?”
변성기를 갓 거친 어린아이 목소리를 저렇게 당황한 연기 톤으로 말할 수 있는 배우라면 연기대상감이라고 생각한 나는 피식 웃으면서 벌벌떠는 그녀의 손을 마주 잡고는 강하게 일으켜세웠다.
“고, 고맙습니다.”
“네, 다음부터는 휴대폰을 보면서 빠르게 걷지 마세요. 그러다가 소중한 버튜버가 다치면 큰일이잖아요?”
“그, 그러니까 저, 저저는!”
옛날에 낯을 심하게 가리던 언니가 자주 짓던 이모티콘인 @,@를 연상하게 하는 곤란함과 당황스러움, 현재 상황에 대한 패닉을 이해하지 못해서 멘탈이 무너져가는 기이한 표정을 짓던 소녀를 구원해준 건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야! 아즈사! 잠깐 화장실 다녀온다면서!”
그녀의 뒤편에서 화가 제법 난듯한 샤야 씨가 감정을 숨기지 않는 채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이내 울음을 터트리기 일보 직전인 ‘아즈사’라는 버튜버와 나를 바라보고는 심히 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길 가다가 부딪혔어요. 쓰러진 그녀를 내가 일으켜 주었고...”
“유나 씨, 이번에는 믿어도 되는 거 맞죠?”
“어라, 저 샤야 씨 안에서 그렇게 신용이 안 좋은 사람이었나요?”
우습게도 울먹거리는 아즈사 씨는 화가 잔뜩 난 샤야보다는 내가 더 안심이 가는 모양인지 나에게 바싹 붙었다.
“후, 실례하게 되어서 미안해요. 이쪽은 미도코로 아즈사, 저희 5기생의 컨셉상 리더긴 한데 말이죠...”
“확실히 5기생은 숲속의 마녀 헤카테와 네 명의 동물 수인들이었죠?”
“네, 그런데 사실상 안의 사람이 아직 철이 좀 덜 들어서... 실제로 어리기도 하고요. 가끔씩 회의를 할 때 휴식 시간을 빌미로 화장실을 간다고 말하고는 뺀질거리다 보니...”
그 말을 들은 나는 5기생들의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컨셉으로는 한 명의 마녀와 그녀가 마법으로 변화시킨 네 마리의 동물 친구들이지만
사실은 네 명이서 한 명의 아동을 돌보는듯한 기묘한 분위기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야, 아즈사, 정신좀 차려봐. 네가 지금 붙어있는 사람이 네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사람이잖아.”
“네!?”
복도를 오가던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비명을 지른 아즈사가 나를 다시 바라봤다.
그러고는 벌벌 떠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메,메메이드 씨? 그, 그리고 아리아 언니?”
메이드는 ‘씨’고 아리아는 ‘언니’구나
제멋대로인게 진짜 아이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내성스러운 사람이 감격스러움과 죄송함이 섞이면 어떤 표정이 되는지 얼굴로 열심히 보여주었다.
실로 우스꽝스러운 표정에 상당히 기분이 언짢아 보이던 샤야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풉, 터트렸다.
나야 뭐, 옛날의 언니가 가끔 보여주던 표정을 본 탓에 웃지는 않았지는 말이다.
아무튼 회의가 아직 진행 도중인 것 같으니 나는 시계를 잠시 바라보고는, 이렇게 된 거 그녀의 손을 잡아주고는 회의실까지 바래다주기로 마음먹었다.
“죄,죄송해요! 제가 감히!”
“버튜버 동료들 중에서 저의 팬이 있다니 참 신기하네요. 뭐 이렇게 말하는 저도 다른 버튜버들을 덕질하긴 하는 데...”
“아,아니에요! 저희 5기생들 사이에서는! 특히 저하고 카기 언니가!”
“야! 유나 씨가 아무리 같은 회사 소속의 버튜버긴 하지만 업무 일을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샤야 씨는 다급히 아즈사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아즈사 또한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 모습을 본 나는 확실히 같은 기수에 데뷔해서 친구처럼 지내는 다른 사람들이 살짝 부러워졌다.
“아, 아무튼! 저희는 회의 시간에 늦게 되었으니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유, 유나님! 부디 저에게 라인을! 아니면 개인 SNS 주소라도...”
최근 들어서 힘이 부쩍 세진 샤야 씨가 아즈사를 질질 끌고 가는 만화스러운 모습을 연출하며, 두 사람은 이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나저나 같은 버튜버 동료가 나를 덕질한다라...
뭐랄까, 그냥 나를 좋아해주는 팬이 생긴 것과 다르게 버튜버가 나를 좋아하고 덕질한다고 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나저나 버튜버...라고 할 수 있는 메이드 라의 데뷔는 작년 6월 즈음이고
5기생의 데뷔는 작년 7월 즈음이고
아리아의 데뷔는 올해 2월이니...
버튜버간 선,후배 관계가 어떻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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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유나 언니도 슬슬 회사에 출근하면서 ‘선라이즈 애니메이션’시리즈에 나오거나, 공식 방송에 나올 때 된 거 같은데 말이죠.”
“나도 마음 같아서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어.”
“에?”
“일단 선라이즈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본사에서 주최하는 거고, 나는 GB 소속이니까 말이야.
일본어가 되는 에오스와 셀레네가 선라이즈 애니메이션에 나오지 않는 이유와 비슷한거지.”
그 말을 들은 츠유는 굉장히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언니하고 같은 음악 유닛으로 이것저것 더 많이 해보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응, 메이드 라는 괜찮은데, 아리아로는 그게 안 될 거 같아. 사실 메이드 라도 엄밀히 말해서는 회사 소속의 아나운서 내지는 스태프같은 존재니까.”
개인 방송이나, 너같은 다른 버튜버처럼 일반 동영상에 나오는 건 NG이니까라는 말을 삼켰다.
그래도 대충 내가 맡는 캐릭터들이 다른 캐릭터들과 다른 입장이다 보니 츠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아쉬워라, 개인 인터넷 방송에서 멈추지 않고 언니도 뭔가 회사 공식 방송같은데 나와서 활동하는 거 기다렸는데... 해외에 계신 분들에게 차별이 되니 참 미묘하네요.”
“지금으로선 GB쪽 레이블이 좀 더 커지는 걸 기다리는 수 밖에 없지.”
“흐아아암. 아무튼 전 이만 돌아가 볼게요.”
“응, 잘 돌아가렴.”
회사 녹음도 끝났겠다, 오늘 해야할 일들을 모두 마친 츠유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초에 회사와 사택간의 거리가 멀지 않아서 같이 움직일 때를 빼고는 굳이 내 차를 타고 움직여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기분전환 겸 시내에 볼일을 해치울 겸 나에게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떴다.
나 또한 오늘 회사에서 볼 일이 끝났고, 내 굿즈 제작이나 나에게 들어온 광고 의뢰에 대해서는 아직 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대로 돌아갈까, 아니면 언니를 기다릴까 고민을 한 결과 기왕 이렇게 된 거 언니를 기다리자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노트북을 켜고 휴가기간 동안 쌓인 메일들을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특히 GB 본사에서 나에게 보낸 메일 중에서 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던 터라, 나는 비즈니스 메일 영어 책을 펼쳐두고 꼼꼼하게 읽어나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대충 몸이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일을 하던 나는 일어나서 시계를 보았다.
슬슬 이때쯤이면 언니도 마칠 시간이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자리를 정리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를 찾아왔다.
“어라, 유키하라 매니저 언니, 저 오늘 일 끝난 거 아니었어요?”
“유나야, 혹시 괜찮다면...”
그러고 보니 유키하라 언니 뒤에는 회사에서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매니저 분이 계셨다.
그러니까 분명히 5기생을 담당하는 두 명의 매니저 중 한 분이시던가?
나에게 명함을 건낸 그 분은 나에게 무어라 제안을 했다.
정말 뜻밖의 제안이였기 때문에 나는 살짝 놀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수락했다.
아무래도 내가 휴가인 동안 나와 합동 방송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줄을 선 모양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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