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15화 (215/307)

〈 215화 〉 214화.

* * *

아즈사는 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솔직하게 생김새가 이상형이라서

아니면 내가 못하는 걸 척척 해내는 모습이 멋져서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목소리가 너무 취향이라서

머리를 긁적이거나 다리를 꼬거나, 커피를 따르거나, 커피에 설탕을 젓는 스푼의 손동작마저 마음에 들 정도로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이 마음에 들어서

열거하자면 정말 끝도 없이 말할 수 있을 자신이 있었다.

“고생이 많네요. 아즈사 씨.”

“네에에!!”

자신의 일상 속에 다가온 이상형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마음을 들었다가 놓았다.

언제나 모니터 화면 속의 2D가 3D보다 훨씬 낫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아즈사는 자신의 이상형인 아리아의 안의 사람, 그러니까 한국인 매니저 출신 버튜버 탤런트인 김유나를 보고 자신의 생각이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같은 공간에 숨만 쉬어도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미인은, 존재 자체로도 축복이고 인생을 정화시켜주는 무언가였다.

선배들이 우스갯소리로 말하던 ‘유나 매니저의 스캔들 및 염문설’이 어쩌면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진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온라인에서는 ‘전생이 100만 버튜버’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능숙한 방송인이었고,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2천대1의 경쟁률을 뚫고 선라이즈에 5기생으로 입사를 한 아즈사는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비록 오프라인에서는 방송에서 하던 것처럼 분위기를 빨리 읽는다거나, 버튜버의 귀여운 아바타 얼굴을 활용해서 곤란한 상황을 넘기는 등의 테크닉을 발휘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알게 모르게 매니저나 동기생들 사이에서 원하는 것을 다 얻어내고 있었던 아즈사는...

스스로가 바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러니까, 어제 회의를 통해서 5기생들에게 생긴 후배라고 할 수 있는 아리아와 오프라인 합동 방송을 하고 싶다고 하셨고… 저희 매니저도 그것을 수락했다 이거죠?”

“네!”

유나라는 여인은 규중의 아가씨 같은 존재는 아니었다.

손동작이 섬세하거나 기품이 넘친다기보다는, 타고난 매력을 아름답게 가꾸고 그것을 숨기지 않는 당당함이 묻어나왔다.

자신의 인생에 당당하게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카리스마를 숨기지 않으면서, 대접을 받는 데 익숙한 레이디 보다는 누군가를 배려하는 게 익숙한 신사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아리아 또한 여우과라고 말할 수 있는 구미호, 즉 동물의 분류법을 가지게 되었고, 설정상 숲의 마녀 헤카테는 동물들에게 지배력을 행사하는 느낌이니…”

“그, 그렇죠. 일단 휴, 휴가 복귀 방송을 하신 다음에 진행하려고 하는 데, 아무래도 유, 유나 씨가 굉장히 복잡하다 보니…”

메이드 라와 구미호 아리아

한 쪽의 활동을 그만두면서 아예 ‘전생(??)’이 되는 것이라면 모를까, 이미 기존의 팬들이 좋아해 주고 있고, 실제로도 심심하면 다른 사람들의 방송이나 회사의 미디어에 출연해서 ‘회사의 대변인’ 내지는 ‘유리아에 관련된 일 빼고는 절대적인 중립자’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 메이드 라는 회사의 간판 캐릭터는 아직까지도 현역이었다.

때문에 아리아를 마냥 다른 선배들이 후배 놀리듯 기강을 세게 잡는 것은 메이드 라에게도 편하게 강짜를 부릴 수 있는 4기생까지의 선배들이라면 모를까, 메이드 보다 후배라고 할 수 있는 5기생들은 그러기 참 애매했다.

버튜버라는 것은 결국 캐릭터 연기와 컨셉을 잡고 방송을 하다가 언젠가는 그 탈을 벗어던지면서 캐릭터가 망가지는 것을 보는 것 또한 재미라고 할 수 있긴 한데, 그렇다고 해도 첫 만남의 캐릭터 설정을 대충 설정하면 다음 기수들이 피곤해질 수 있으니 확실히 못을 박자는 게 오늘 만남의 취지였다.

“그러면 역시 연상의 후배와 연하의 선배 같은 느낌은 어떨까요?”

“그, 그래도 되지만 아무래도 제 동기생들 중에서…”

“그렇다면 아리아가 계속해서 존대를 쓰면서…”

“그렇게 된다면 저는… 아니 헤카테는…”

뜨거운 음료를 마셔서 긴장이 풀리는 탓인지

아니면 유나가 의도한 대로 일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긴장이 풀려지는 탓인지

처음에는 설레이는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을 가득 담고 만난 유나였지만

아즈사가 유나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헤카테가 아리아를 대하는 태도를 신경 쓰면서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점차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유치원 돌잡이 때부터 동방 프로젝트에 빠져들었다고 말했던 자신의 짧은 인생에 짧다고 할 수 없는 오타쿠 경력을 자랑하는 아즈사와 유나는 두 사람의, 아니 두 캐릭터의 관계를 어떻게 확립시켜야 좋을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내놓기 위해서 진지한 시간을 보냈다.

**

‘부럽다.’

업계에 있다 보면 당연하게도 많은 오타쿠들을 만나게 된다.

이제 와서 그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드는 건 아니다.

이전과 다르게 나는 이제 애니메이션과 만화에 대해서 친밀감을 느끼고, 대작이라고 불리는 일본 콘솔 게임들을 즐기면서 나 또한 오타쿠가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즈사처럼 오타쿠에 진심인 사람들을 보면, 나의 어중간한 덕력에 신물이 날것 같았다!

세상에, 저 어린 아이 머릿속에는 위키 사전이라도 들어있단 말인가?

나름 열심히 오타쿠 콘텐츠를 즐겨왔다고 생각하지만, 헤이세이 시대도 아닌 쇼와 시대 애니메이션들을 이야기하는 것을 본 나는 머리가 아찔해졌다.

아, 아즈사 씨는 ‘진짜’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 시선을 알아차렸기 때문일까?

부지런한 성격으로 방송 준비를 위해서 오후 8시에 진행하는 방송을 위해 오후 3시에 내 집에 찾아온 아즈사 씨는 열성적으로 움직이던 입을 멈추고, 처음에 만났던 모습 그대로 몸이 빳빳하게 굳어갔다.

그 모습은 마치 처음 언니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직후,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서 부끄러워하기 시작한 언니의 반응과 100% 똑같았다.

뭐 아즈사 씨는 그래도 언니보다 조금 외향적인 성격이긴 하지만, 그래도 언니만큼 부끄러움이 많은 소녀였다.

실제로 고등학생 1학년의 어린 소녀기도 했고 말이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가 있나요? 아즈사 씨의 해박한 오타쿠력 덕분에 저도 제 연기 방향을 정할 수 있었으니 말이에요.”

인터넷 방송인이라는 어필을 하기 이전에 아리아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한 연기 가이드라인을 위해서 나는 반드시 캐릭터 연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애매할수도 있는 ‘마계 공주’라는 캐릭터성을 멋지게 해석하다 못해, 특유의 캐릭터성을 방송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깊은 충성심을 가진 팬들을 만들어낸 언니를 매일 보는 내가 그런 일에 소홀히 할 리 없었다.

“특히 아이돌이 되고 싶어하는 구미호 아리아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아즈사 씨가 말해주는 옛날 애니메이션들에 대해서도 흥미가 생겼고, 저를 찾아오는 팬들 중에서도 이런 옛날 만화들을 알고 계신 분들도 많은 편이니 그들과 좋은 소통거리를 할 수 있는 소재를 얻게 된 셈이죠.”

“그, 그래도 제가 너무 불쾌하게 많이 떠벌리지는 않았는지...”

아아

보인다.

‘행여나 유나가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하는 옛날 언니의 모습이 말이다.

사랑하고 친애하는 나에 언니를 통해 이런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해야할지 잘 알고있는 나는 그냥 하던대로, 가능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해주었다.

“오히려 제가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아시다시피 저는 에이아 선배 만큼이나 만화에 대해서 많이 약한 편이거든요. 특히 한국인이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일본인 분들에 비해서 다른 환경에서 자란 편이기 때문에 공감대가 부족할 수도 있죠.”

“그, 그래요?”

“네, 공감대 형성은 팬과 버튜버간 사이에서 중요한 요소인데, 오늘 아즈사 씨의 이야기 덕분에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그 말을 들은 아즈사씨는 반쯤 울먹이는 태도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야말로 과장된 오타쿠적인 반응

이전이라면 ‘기분 나쁘다’ ‘오버한다’라는 생각을 가졌겠지만, 지금은 그냥 귀엽게 보인다.

“네, 아즈사 씨는 저를 도와준 중요한 분이에요.”

그렇게 그녀를 안심시킨 나는 무심코 언니에게 해주었듯이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같은 회사 사람끼리 하는 행동으로는 바람직하지 못하겠지만, 선라이즈의 버튜버 동료이기 이전에 넘치는 재능으로 고등학생 1학년이란 나이에 이 수라장에 들어온 아이에게는 이런 감정적인 터치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 나는 그녀의 자존감을 북돋아 주었다.

잠시 후

감정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아즈사 씨는 드디어 긴장을 풀은 모양인지, 내 집에 들어왔을 때부터 잔뜩 움츠리던 어깨를 펴고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앉았다.

“혹시 커피가 식어서 고민이라면 한 잔 더 하실래요?”

“앗, 너, 너무 실례하는 게 아닐지...”

“괜찮아요. 가끔 제 이웃들이 커피 마시러 자주 내려와서 일부러 커피 기계도 좋은 거 사두고, 원두도 같이 사러 나가기도 해요.”

말 그대로 어쩌다 보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된 나와 그런 나에게 영향을 받은 나에 언니는 아침 10시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낮잠을 잘지언정, 가급적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일어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가끔 정말 중요한 미팅이 아침에 있는 일이 있을 때는, 우리 이웃들은 아침에 깨워주기를 바랄 때가 많았기에 아침에 내린 커피를 들고 그들의 집에 찾아갈 때가 있었다.

“우와, 그거 정말 멋지네요!”

“그쵸? 저도 각막한 현대 사회에 이런 소소한 일상을 꿈꿨는데, 이렇게 살아가는 거 정말 만화속 한 장면 같지 않아요?”

“부러워요! 저는 아직도 매일 아침마다 엄마가 잔소리 하는데!”

“후후, 그래요?”

나는 익숙한 동작으로 커피를 내렸다.

전동 그라인더로 원두가 갈리는 소리, 압력을 받은 기계가 치익 거리면서 내는 소리와 함께 따뜻한 라떼 한 잔이 나왔다.

어제 회사에서 나랑 부딪혔을 때 우유 들어간 커피를 마시는 어린아이 입맛으로 생각됬던 그녀였기에 나는 설탕을 약간 넣은 후 그녀에게 가져다 주었다.

“고, 고맙습니다.”

“뭘요, 거실은 어차피 손님들 많이 오고 가는 장소기 때문에 편하게 있다 가세요.”

그러고 보니 이제부터 뭘 한담?

앨범에 관련된 업무를 끝내고, 츠유와 노래 레코딩을 마친 이후 밤에 복귀 방송을 통해서 팬들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휴가 때는 방송 복귀하자마자 타마처럼 마스터 등반을 노릴까, 아니면 광고로 들어온 숙제 방송을 할까, 아니면 소문의 항아리 맨 게임을 할까 고민을 했었는데, 정작 복귀하고 나니 5기생들과 접점을 만들어 보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나는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는 아즈사 씨를 바라봤다.

달달하고 부드러운 커피가 입에 맞는 모양인지 기분 좋은 표정으로 홀짝거리면서 나를 바라보다가 어설픈 미소를 지은 그녀는 나의 팬이라고 했다.

나에 대한 팬심과 업무에 대한 걱정이 섞인 탓에 통상 두 시간 정도면 끝나는 회의를 위해 방송 개시 다섯 시간 전부터 왔다고 하니, 결론적으로 시간이 붕 뜨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걱정을 날려버리려는 듯, 초인종이 울렸다.

혹시나 싶어서 문을 열어보니, 그곳에는 내 이웃이자 5기생인 루미에를 연기하는 샤야 카기 씨가 있었다.

그녀는 범죄 현장에 수사를 시작하는 깐깐한 형사처럼 거실을 슥 훑어보았다.

방송에서는 모를까, 오프라인에서는 상당히 예의 바른 그녀답지 않는 태도에 나는 호기심이 동했다.

“샤야 씨, 뭐 해요?”

“유나 씨가 또 미성년자 건드리지 않았을 까봐 걱정이 되어서 말이죠.

저희 리더, 유나 씨의 엄청난 팬인걸요.”

“샤야!”

낯가림이 심한 그녀라도 샤야에게는 다른 모양인지 그녀는 마시던 커피를 내려두고 그녀에게 달려갔다.

모양새가 마치 어미 개에게 달려드는 강아지 같아서 상당히 귀엽게 느껴졌다.

“또, 또 유나 씨 이상한 시선.”

“왜요? 귀여운 생물을 바라보는 제 순수한 시선이 어때서요?”

“제, 제가 귀귀귀, 귀엽다구요?”

“아 좀!”

아무래도 방송까지 시간을 보낼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어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나를 힐난하는듯한 샤야의 시선을 받으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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