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화 〉 218화.
* * *
동생이 깨워주고 나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던 유키하라 유이는 고민했다.
자신의 담당 버튜버의 체력이 무식하게 많기 때문에, 그녀를 따라가는 내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말이다.
기본적으로 매니저는 담당 버튜버가 방송을 하면 혹시나 하는 사건을 대비해서 방송을 모니터링 하는 게 기본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아리아의 방송 패턴이었다.
오후에서 저녁 시간대에는 일본인들을 위한 방송을, 밤에서부터 새벽까지는 서양권 시청자들을 위한 방송을 하는 까닭에 그녀의 방송 페이즈를 따라가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매니저들 사이에서는 우스갯소리로 ‘교수님 진도가 너무 빠릅니다.’라고 하는데, 유나가 딱 그 꼴이었다
심지어 자신은 아리아의 매니저이면서도 라의 매니저이기도 했다.
특히 매주 그녀가 방송하는 선라이즈 뉴스 같은 경우에는, 공식에서 지정해주는 정보를 자신이 대본을 만드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거의 주간 숙제급으로 일이 꼬박꼬박 생성된다고 할 수 있었다.
“언니 괜찮아? 눈이 쾡해, 썩은 동태 눈깔이야, 어시장에 전시되면 바로 저주받을 듯한 생김새야!”
자신을 거칠게 흔들어 깨운 여동생이 재잘거렸다.
“누나 요즘 정말 너무 바빠보여, 괜찮아? 블랙 기업에 고용당한 거 아니지?”
최근 들어서 가사 일을 맡아주고 있는 남동생이 걱정했다.
건방진 여동생을 한 대 쥐어박아 준 다음 남동생을 쓰다듬어 준 유키하라 유이는 피곤함을 일절 숨기지 않는 얼굴로 식탁에 앉았다.
조신하기 짝이없는 자신의 남동생이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나서야 하루를 이겨낼 힘이 생긴 그녀는 뜨거운 수건으로 얼굴을 마사지했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여동생, 유키하라 미에가 깔깔거리면서 말했다.
“언니 요즘 그래도 얼굴과 눈깔이 상하긴 해도 즐거워 보인다.”
즐거워 보인다고?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 받은 유이의 두 눈동자는 크게 떠졌다.
“언니 왜? 오늘따라 이 여동생이 예뻐보여? 사실 나, 어제 마스카라 바꿨지롱!”
요즘 들어서 그녀에게 주는 용돈이 늘어나서 그런지
한층 더 화사해진 화장품으로 자신을 가꾼 유키하라 미에는 미운 정 가득한 시선으로 봐도 귀염상 있는 미인이었다.
은근히 달변가 기질이 있는 미에의 입을 틀어막은 유이가 물었다.
“즐거워 보인다고 내가?”
“훕, 후웁! 누가 그렇게 무식하게 숙녀의 입술을 손으로 틀어막아요!”
“야, 말 바꾸지 말고 똑바로 말해, 내가 즐거워 보인다고?”
“아니야? 야, 아키하, 요즘 유이 언니 즐거워 보이지 않아?”
즐거움이라는 감정은 소녀 가장이 된 이후로 포기했다고 생각한 유이의 두 눈동자에 불신이 가득했다.
하지만 유키하라 집안에서 가장 침착한 성정인 유키하라 아키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유이 누나 확실히 예전에 비해서 피곤한건 맞고, 일과 수면을 반복하기는 해도 이전보다 즐거워보여.”
남동생의 말까지 듣자 완전히 긴장이 풀려버린 유이가 매일 아침마다 마시던 영양제를 쓰레기통에 집어 던지면서 말했다.
“역시, 돈이 만능이긴 해, 이런 비싼 영양제도 사먹고 말이야.”
“아니, 돈 때문에 그런 건 아닌거 같아.”
“뭐? 아키하, 너도 내 수입 통장 봤잖아? 내 또래 여자 아이들 중에서 나만큼 돈 버는 사람 드물다고.”
날카로운 어조로 말하는 큰 누나의 기세에 잠시 짓눌린 그가 당황한듯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아 누나 그게 아니라…”
“예전에는 세상 진지함 밖에 모르던 언니가 요즘 들어서 감정 표현을 잘 해주신다고요.
취업 준비생일 때도 그랬고, 이전에 다니던 회사도 그렇고, 언니가 일찍 들어오긴 했어도 무슨 일하는 기계처럼 우리들 얼굴 제대로 보지도 않았잖아.”
그렇다.
부모님을 여의고 일찍 사회에 뛰어든 자신의 정서는 삭막했다.
물론 사람인 이상 집에 돌아와서 즐기는 취미 같은 건 있었지만, 그래도 오타쿠 특유의 문화인 까닭에 집에서 여기에 대해서 떠들다기 보다는…
“덕질을 한다는 것을 숨겼지, 너희들을 돌봐야 하는 내가 이런 걸 해도 될까? 하는 죄책감 같은 게 들었으니 말이야.”
“역시 쓸데없이 진지한 언니, 그런 언니가 어떻게 사람 매니징 하는 회사에 들어갔는 지 몰라… 아얏!”
“역시 재앙의 주둥아리가 어디 가는 건 아니구나.”
툭만 하면 자신에게 시비를 걸 듯 말하는 건방진 여동생의 볼을 잡아당긴 유이는 아예 위아래로 흔들면서 장녀이자 가장의 위엄을 세웠다.
하지만 미에는 아파서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히히 거리면서 언니의 지엄한 처벌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그 모습이 참 기분 나쁘기도 했지만 뭐랄까, 감정을 건드리는 말랑말랑한 무언가가 느껴진 유이는 반사적으로 손을 땠다.
“우리 이러니까 예전같다. 그치? 나 어렸을 때에도 언니에게 많이 대들었잖아.”
기어코 눈물 한 방울을 쥐어짜면서, 얼얼한 볼을 어루만진 미에가 히히 웃으면서 말했다.
과거를 바라보는 그 눈동자를 본 유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누나가 행복해져서 다행이에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천직이라고 하잖아요? 누나가 특히 그… 유나? 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마다 웃음꽃이 활짝 피기도 하면서, 걱정 어린 한탄을 내뱉기도 하고, 바보같이 혼자 이죽거리기도 하고 이상한 형광봉 흔들기도 하잖아요?”
남동생의 시선으로 자신의 행동을 확인할 수 있었던 유이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아리아를 지켜보고 돌본다, 그 과정에서 아리아에게 빠져드는 것은 당연했다.
유나라는 사람은 매력적이었지만 그녀가 혼신을 다해서 연기하는 아리아 또한 매력적이기 그지 없었기에, 자신은 어느 새 아리아의 ‘찐팬’이라고 할 수 있는 ‘음표’가 되었다.
처음에는 일을 하면서 의무적으로 아리아의 방송을 보았다면, 지금은 그녀의 매니저이기도 하지만 찐팬으로서 그녀의 방송을 지켜보았으니 말이다.
심야에 방송을 하는 아리아의 라이브를 방안에서 혼자 지켜보는게 일상이 된 이후, 아무래도 이 좁은 집에서 완벽한 프라이버시가 지켜지지 않는 듯 남매가 자신의 추태(?)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자 부끄러움이 확 올랐다.
“에이 언니 명함만 봐도 대충 어떤 회사인지 아는데, 그런거 가지고 뭐… 아, 그래도 음악 라이브 한다고 형광봉 흔드는 건 조금….”
가증스러운 여동생이 아리아의 팬클럽에서 전파된 형광봉 무브를 어설프게 따라한다.
그 모습에서 주책없이 덕질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던 유이는 사회인이 되고 난 이후 단 한번도 높여본 적 없는 목소리가 절제를 잃고 말았다.
“야!!!”
“이크! 나 학교 늦겠다.”
완벽하게 자신의 언니를 놀리는 데 성공한 미에는 허겁지겁 현관문으로 뛰쳐나갔다.
아침 잠이 달아나는 여동생의 짓궂은 놀림에 없던 힘도 생긴 유이는 그녀를 붙잡으려고 성큼성큼 걸어나가려다가, 아직 머리를 정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주저앉았다.
화를 가라앉히면서 머리 빗으로 머리를 정리하는 유이의 눈앞에 학교로 간 줄만 알았던 미에의 얼굴이 현관문 사이로 빼꼼 튀어나왔다.
“아 맞다 언니, 아까 언니 세안할 때 휴대폰이 울려서 받았는데, 언니가 담당하는 유나? 라는 사람의 탤런트가 오늘 탈이나서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데!”
가장 중요한 사실을 그제야 말하다니!의 의미가 담긴 빗이 현관문 사이로 날라가 미에의 넓은 미간을 강타했다.
**
에고고
이틀 연속으로 새벽 방송을 하니 신음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휴가동안에 해보고 싶었던 이것저것들을 해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입으로는 험한 말을 하지만 부끄러움이 많은 엘리야와 같이 FPS 게임 듀오를 하면서 그녀에게서 '나 때문에 졌어 미안해'라는 말을 들어본다거나
순진한 모델링과 어린 목소리로 아무렇지 않게 섹드립을 치는 발랑까진 꼬맹이인 마나와 함께 막나가기 시작해서 정상인 포지션이라고 볼 수 있는 셀레네와 클라티에의 멘탈을 흔들어 본다던가
한국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에오스에게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시* 이라던가 개**같이 커뮤니티에 자주 보이는 욕설을 가르쳐보고 싶어했던 나는 아리아를 사랑하다 못해 끔찍하게 아껴주는 GB의 선배들 사이에서 하고싶은대로 다 할 수 있었다.
그 대가로, 시험 기간 때 보다 더욱 지친 몸과 마음 상태가 되어서 결국 오늘 병가 비스무리한 것을 냈지만 말이다.
이전에 한 번 과로로 쓰러진 이후 건강에 더욱 신경을 기울여서 한 달에 3만엔 짜리 고급 영양제를 마시면서 나름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과 신경을 써야하는 방송은 공부와 다르게 나의 실수가 온전히 나의 책임만으로 끝나지 않았기에 아무래도 평소보다 더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리아에게 바보같은 이미지가 씌어져도 상관없지만, 나의 멍청한 짓 때문에 훌륭하게 정착한 선라이즈의 버튜버들의 캐릭터성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아, 엘리야 선배의 죄책감 가득한 울먹이는 소리에 밥 비벼먹고싶다."
혹사당한 뇌가 아무런 말을 내뱉기 시작하게 내버려 두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 나의 매니저인 유키하라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네, 유나입니다."
"유나 씨 괜찮은 거 맞죠?"
"네, 그냥 사람 몸이라는 게 마음대로 잠을 조절할 수 있는게 아니고, 그렇다고 이 나이에 수면제같은 의약품에 의존하기 싫다보니 아무래도... 몸이 뻗어버렸네요."
"휴, 유나 씨의 몸이 그렇게 빠릿빠릿하게 신호를 줘서 다행이죠, 다른 선배들 이야기를 듣다보면 으으..."
"아무튼 오늘은 매니저 씨도 편히 쉬세요."
"라고는 해도 말이죠, 저 이제 메이드 라가 방송할 대본을 쓰고 있는데 말이죠."
그녀 또한 나와 비슷하게 피로에 절은 목소리로 자조적인 어조로 저렇게 말하고 있자니 나는 내심 캥기는 게 있었다.
다른 매니저들에 비해서 나의 매니저는 글로벌 서버의 아리아, 일본 서버의 아리아, 그리고 메이드 라 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업무가 세 배라고 봐도 되었는데
아무리 다른 매니저들에 비해서 금전적 대우가 좋다고 하나, 팀을 이루어서 담당해도 될 나의 매니징을 혼자서 담당하고 있는 유키하라 씨에게는 고마운 마음만 들 뿐이었다.
"흠흠, 이거 유키하라 매니저 언니를 위해서라도 가끔씩 비정기적으로 방송을 쉬어야 되겠는걸요?"
"그래주면... 아니다, 아리아의 방송을 볼 수 없는 게 더 슬프네요..."
의례상 하는 말이 아닌, 선라이즈 버튜버 오타쿠 특유의 열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아리아를 볼 수 없다고 아쉽다고 말하다니
버튜버의 입장에서는 정말 가슴이 동하는 마음이다.
"어라, 그래요? 고마워요!"
"하지만 유나 씨가 건강을 잃는 게 더 슬프니까, 다른 매니저들 처럼 강제 휴가를 조치하지는 않겠지만, 건강 상태가 나빠지면 언제든지 휴가 조치를 취할 수 있으니 유념하면서 방송 해주세요."
"하하, 고마워요."
그 후에는 통상적인 사회인들이 나누는 대화를 하고는 통화를 끝냈다.
휴대폰을 내려두고 다시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는 나의 매니저인 유키하라 씨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적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보니 업무적으로는 이리저리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헬스 클럽에 가끔 얼굴을 마주치기는 했는데 막상 그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확실히 매니저가 아닌 버튜버가 된 이후부터는 인간관계를 조금 덜 신경쓰게 되었다고 해야할까...
일 때문에 바쁜 매니저가 좋아할 선물이 뭐가 있을까...
그녀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버튜버가 누굴까...
그녀의 생일이 언제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는 내 매니저에 대해서 조금 더 신경을 써야할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