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화 〉 2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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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졸업하고 난다면 자신의 행보에 대해서 평가받는 일이 드물어진다.
물론 회사에 들어가고 나면 근무 평가라던가, 아니면 자격증 시험 같은 것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평가받을 수 있지만, 이는 성적표처럼 확고하게 눈에 보이는 케이스가 아니다.
그 때문에 누군가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는 이상, 나 자신이 어떠한지, 나의 행보가 어떠한지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
하지만 인터넷 방송인, 그러니까 버튜버는 다르다.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나는 방송을 항상 아카이브로 남기고, 언제든지 다시 돌려볼 수 있다.
그렇다는 말은 내 인생의 일부가 영상화가 되어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형태로 온라인에 기록이 남는다는 말이고
그들의 평가가 덧글로 달리는 게 당연한 인생이 되었다.
때문에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리아의 범죄 소질]
[은행털이 동물들]
[가자! 다음은 로스 엔젤레스로!]
[돈에 정직한 구미호]
[은행 경비를 사살한 후 무전 신호를 가로채는 하이라이트 feat.아리아]
아리아의 최근 행보가 내가 생각했던 것에 비해 상당히 과격해졌다는 것을 말이다.
오죽하면 5기생 합동 방송 다음 날에 불렀던 노래 방송마저 ‘범죄 후 축하연’이라는 이상한 별명이 붙었단 말인가!
“너무 신경 쓰지 마 유나야, 어차피 밈이라는 거 금방 생기기도 하지만 금방 잊혀지게 될 거야.”
그런 나의 마음을 잘 읽은 듯 나의 매니저인 유키하라 언니가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
하지만 나의 최애 캐릭터라고 할 수 있고 나의 또 다른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리아의 이미지에 저런 강력 범죄자같은 이미지가 붙게 되다니, 존잘님의 캐릭 해석이 불일치하다는 사실만큼 속상한 일이었다.
“우아하고, 재능 넘치고, 예쁘고, 유쾌하고, 청초하고...”
내가 생각했던 아리아는 그런 이미지다.
하지만 그런 내 말이 이상하게 들렸는지, 유키하라 언니는 시종일관 유지하던 미소를 살짝 일그러트렸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 표정 변화를 읽어버렸다.
“언니, 왜요?”
“유나야, 그... 한국이라면 모를까, 일본에서는 FPS 고수와 전쟁 게임 고수를 청초하다고 하지는....않아...”
“왜요! 사람이 순진하게 게임만 잘 할 수도 있지!”
“그런 이미지를 원했더라면 공포 게임을 할 때 유리아나 다비처럼 비명을 질렀어야지, 누구처럼 에임을 머리에 맞추고 클릭하지는 않단다.”
아프다.
팩트가 너무 아프다.
이럴 수가, 과거의 행보가 지금의 나를 붙잡는단 말인가?
한국 아이돌들도 뒤에논 소주 까고 족발에 쌈을 볼에 묻혀가며 싸먹지만 미디어에서는 청순가련한 모습이 어필 되건만, 버튜얼의 세계에서 이런 분리가 되지 않다니!
“...잠깐, 유나 너 정말 장난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스스로를 그... 청초, 하다고 한거야?”
“저기 언니?”
아무리 저라고 해도 그런 말을 들으면 상처를 받아 버린다구요?
아니 적어도 언니만큼은 유나 청초설, 아니아니 아리아 청초설은 믿어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 저기, 그 음... 어...”
“저, 저저저 아리아 정도면 충~~분히 청초한 캐릭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글세다... 잠시만, 방송 복귀 후 아리아의 행보와 평가에 대해서 작성한 레포트가 있었는데...”
담당 버튜버에 대한 레포트 작성은 매니저가 의무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다.
필요한 일이 있을 때 그때그때 작성하는 게 전부이고, 버튜버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일이 있을 때 공을 들이는 작업이다.
아리아의 채널은 계속해서 성장세를 이어나가고 있었고, 곧 100만 구독자를 보이는 기록을 노릴만한 위치에 도달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레포트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나는 눈이 살짝 커졌다.
유키하라 언니의 노트북을 슬쩍 바라보자, 거기에는 매주 작성된 보고서들이 있었다.
내가 아리아로 데뷔한 이후,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기록된 레포트의 양을 본 나는 기겁했다.
“자, 잠깐 언니 설마 매주 기록을 하신거에요?”
“어, 응? 맞아. 잠시만... 여기있다.”
이윽고 그녀는 파일을 열었다.
[2020년 4월 1주차 및 방송 복귀 후 반응 1차]
아무리 사진과 그래프, 표가 들어가서 분량이 늘어났다고 하나 20페이지에 가까운 레포트를 보니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읽어야 할 양 보다, 이런 레포트를 매주 작성한 나의 매니저의 정성을 느낄 수 있었기에 감동이 목에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화면을 스크롤해서 내려가며 자료중 하나를 보여주었다.
[아리아의 새로운 밈 – 아리아니키]
“아리아니키? 아리아 형님이요?”
일본어로 형(?)을 의미하는 아니키와 아리아가 합쳐져서 나온듯한 단어였다.
아리아니키리나, 무슨무슨 형님! 하는 건 약간 용과같이 같은 야쿠자 물에서 나오는 단어가 아니냐고!
이게 왜 청순가련하고 여신같은 아리아에게 붙어있냐고!
발끈한 나는 첨부된 자료들을 읽어 나갔다.
[공포 게임 진행 도중 머리를 날려버리는 이미지]
이전부터 느꼈지만, 아리아의 에임에는 소울이 있다.
‘그럴 줄 알았다’하면서 좀비 머리를 날려버리는 아이돌이라니, 쏘 쿨!
역시 이 모습 메이드가 맞다니까 ㅋㅋ
[에이펙스 게임을 하면서 거칠게 오더를 내리는 하이라이트 클립 장면]
오더 미쳤다. 이런 하이퍼 슈팅 게임 방송 보면 가끔 시청자만 알 수 있는 구도들이 보여서 답답하는데, 메이드는 화끈하네
메이드가 아니라 아리아지만
아무튼 닥치고 돌격하는 거 좀 멋지다, 1:3 드리블하면서 어그로 핑퐁하는 게 보통이 아닌 듯
가끔 화난 목소리로 찐텐으로 오더하는 거 카리스마 넘침
ㄹㅇ루, 진짜 트루 아니키라니까 ㅋㅋ
아리아 형님? 어감 좋은데?
[페이데이 2 하이라이트]
무전 탈취나 탄약 습득같은 게임 기본기 모르는 거 보면 초보가 맞는데...
ㅋㅋ 아 전략이고 스텔스고 나발이고 fps는 에임이 다구나 시발ㅋㅋ
선배님 어떻게 해요? 하면서 패닉걸리면서 3초안에 헤드 4명따는거 도대체 뭐냐?
이 게임 하다보면 좀 잔인한 장면 나올 때도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지?
애초에, 아리아는 공포 게임 할때도 겁에 질린적이 단 한번도 없음
크; 이런 아리아랑 같이 은행 털고 싶다.
생긴건 누나인데 하는 거 보면 완전 형님이라니까 ㅋㅋ
등등
커뮤니티에 등장하기 시작한 ‘아리아 형님’이라는 단어가 시청자들의 코멘트로 남겨진 것을 보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여, 여자아이가 총 게임 좀 잘 할수도 있고, 공포 게임에 면역일 수도 있지!
그렇다고 바로 형님이 되는 게 말이 되냐고!
“이, 이나라의 성인지(???)문화나 성차별 문화는 도저히 익숙하지 않네요.”
“유감이지만, 그 코멘트 모음집은 영어권과 한국권 커뮤니티에서도 가져온 반응이야.”
황폐해진 내 마음에 확인 사살을 하듯 유키하라 언니는 한국어로 검색된 ‘아리아 형님’에 대한 단어를 보여주었다.
[지리는 아리아 남체화 일러 가져옴]
복근 뭐임? 오우야
여자로도 가슴이 크니 남캐로도 가슴이 크네
헤으응, 아리아 형님 나 게이될거같에
솔직히 샷건 무장 든 채 전진 오더 내리는 아리아 허스키한 목소리에 난 가버렸음
“가긴 뭘 가 미친놈아.”
“그, 영어권 레딧 반응도...”
“언니... 그만해요....”
완전히 참패당한 나는 사무실의 소파에 몸을 내던졌다.
나름 색기 넘치는 캐릭터를 연기한답시고 언니에게 지도까지 받았는데
정작 커뮤니티의 반응은 fps 고수의 이미지로 단련되어버린 형님이라니...
아니 뭐 내가 평소에 걸크러시같다, 쿨하다 소리는 많이 듣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초절정 귀여운 여우귀 동양풍 미인 캐릭터에게 형님 별명 붙이는 건 악질적인 거 아니야?
잠시동안 현실 부정을 하다가, 나는 번뜩이는 지혜로 돌파구를 찾은 듯 말했다.
“저 fps 이제부터 대충해서 못하는 연기를 하면...”
이 이미지를 벗을 수 있을까요?
“너 진짜 그럴 수 있니? 게임을 하면 이겨야한다며? 너보다 못난 애들이 널 이기고 ‘ㅋㅋ’ 하는 거 참을 수 있어?”
하지만 이런 얄팍한 생각을 미리 대비했다는 듯, 유키하라 언니는 fps의 비매너인 티배깅을 직접 연기하면서 ‘EASY’를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발끈하며 외쳤다.
“절대 못참죠!”
“거 봐.”
“이럴수가!”
이미 유키하라 언니에게 내 행동패턴은 모두 분석당한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좌절하는 포즈를 지으면서 소파에 다시 몸을 파묻었다.
이런 내 추태를 바라본 언니는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왜요? 유키하라 ‘누 나’”
“나에겐 이미 훌륭한 남동생이 있기 때문에 너의 ‘누나’소리에는 아무렇지도 않단다.”
우와
너무하다!
원래 선라이즈 매니저라면 버튜버가 힘들어 할 때 멘탈을 나데나데 하면서 케어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 아닌가? 내가 매니저일때는 그랬던 거 같은데...
“드디어 유나에게 부족한 점이 생겼네, 정확하게는 강점을 더욱 살릴 수 있는 부분이 생겼다고 해야할까.”
“네?”
“뭐 이대로 중성적인 구미호 이미지를 유지해도 되지만 그러기 싫다면 말이야... 하나 방법이 있는데.”
“그, 그게 뭔데요?”
“바로 이거야.”
나의 이런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했는 듯, 유키하라 언니는 가방에서 서류철을 꺼내 나에게 보여주었다.
아주 오랜만에 문서 자료에 두근거림을 느낀 나는 그 서류철을 열어서 읽어 보았고, 나는 감탄을 터트렸다.
유키하라 언니에게 행동 패턴을 쭉 분석 당해서 살짝 분한 마음도 있었는데
이렇게 성심성의껏 나를 나보다 더 생각해주고 케어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인지 나는 언니에게 100% 파악당하는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 최고.”
나의 진심어린 칭찬에 언니는 빙긋 미소지었다.
나에 언니와 확연하게 다른 연상의 미소에 나는 심장이 조금 두근거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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