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화 〉 2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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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캐릭터 시장은 아주 오래전부터 발전해왔다.
고전 애니메이션과 만화, 도트 그래픽의 게임 캐릭터부터 시작해서 라이브 3D로 움직이는 캐릭터에 이르기까지, 만화 대국의 사람들을 매료시키기 위해서 많은 창작자들은 궁리하고 기술을 연마하였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하는 것은 캐릭터의 생김새를 담당하는 디자인, 그리고 그 캐릭터의 깊이를 표현하는 역사, 그리고 목소리다.
캐릭터는 더 이상 소설에 갇혀 지내지 않고 온갖 미디어에 등장하게 된 지금
목소리야 말로 캐릭터를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이자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성우의 위상은 높아져 가고, 유명한 성우 수입은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까지 성장하기 했다.
전문적인 성우를 양성하는 교습소나 아카데미들이 나오고, 성우의 길에 매료된 사람들이 이 길을 걷게 되니…
“그래서, 여기인가요?”
“응, 선라이즈와 공식적으로 협력을 맺고 있는 아우리 프로덕션이야.”
땅값이 제법 비싼 편인 쥬오구에 번듯한 프로덕션을 가지고 있는 만큼 알사람들은 다 알 수 있는 성우들을 많이 양성하고 있는 프로덕션을 팬이 아니라 업계 관계자로 찾아오게 된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 후
프로덕션 안으로 들어온 나는 ‘아 오타쿠 관련 콘텐츠를 진행하는 회사는 다 거기서 거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만 회사 입간판에 회사를 대표하는 버튜버들을 전시하는 선라이즈 프로덕션과 다르게, 아우리 프로덕션에서는 요즘 잘 나가는 성우 사진들을 걸어 두었다는 것이 다른 점이랄까.
사람 사는 곳 다 비슷하고, 일본 사무실 또한 다 비슷하듯 두 프로덕션은 거기서 거기였다.
아무튼 나를 마중해주신 분은 성우 트레이너라는 직함을 가지고 계시는 요시노씨였다.
“안녕하세요? 아리아를 연기하고 있는 유나라고 합니다.”
“호호, 반가워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정말 이렇게 참한 아가씨인줄은 몰랐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시노씨는 헤이세이 초창기부터 활동을 해오신 원로 성우분이었다.
결혼을 하면서 은퇴하신 이후, 후배들을 양성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신 분인데, 이전의 일본 전통 옷집의 할머니를 떠오르게 하는 단아한 분이셨다.
성우 업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왠지 사람에게 느껴지는 포스라고 해야할지, 카리스마라고 해야할지…. 뭔가 마주하는 것 만으로도 업계 정상을 보는듯한 압박감이 들었다.
“사실 저도 아리아의 시청자랍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둠의 메이드 단’이지만요.”
“네!?”
“호호호, 말년에 버튜버라는 재미있는 방송인들이 나와서 또 보는 맛이 있네요.”
역시 일본, 덕질에는 나이가 없다는 건가!?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다니, 내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연이어 감사하다고 한 이후, 본격적으로 나는 레슨에 들어갔다.
“사실 유나 양 같은 경우에는 재능이 있어요. 노래를 잘 부르는 재능과 목소리에 연기를 싣는 재능은 다른 것이지만, 요즘 시장에 추구하는 미성(美?)의 영역에 이미 한 발을 걸쳐 두고 있답니다.”
이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노래를 배우면서 저음 발성법을 통해서 목을 아끼는 트레이닝을 몸에 익힌적이 있었다.
고음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오랫동안 활동하기 위해서는 낮은 음으로도 노래를 불러보거나, 평소보다 낮은 음으로 말하고 다니면서 성대를 다양하게 단련시키는 대한민국 가요 업계의 전승이라면 전승이었다.
여기에 나의 독특한 외국어 교육법이 더해져서, 일본어로 말할 때는 마치 저음 트레이닝을 하듯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게 습관화되었다.
“솔직히 저도 선라이즈의 메이드와 구미호 아리아가 같은 사람일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어요.”
프로 성우분께서 인정하실 정도로 내 목소리 차이가 크다고 했다.
그만큼 목소리의 차이가 크다고 하니, 나는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그런데 저를 찾아오신 배경이 연기하고자 하는 캐릭터와 대중의 해석이 불일치하다고 오신거, 맞으시죠?”
“네, 사실 그 이전에도 제 앞으로 모바일 게임의 콜라보 캐릭터 연기나 게임 보이스 녹음을 의뢰한 것들이 왔는데요. 아무래도 성우 연기가 되어있지 않다 보니 감이 많이 안잡혀서요.”
언니를 통해서 방송의 무드를 전환하며 목소리를 조율하는 법을 배우고, 캐릭터의 연기를 깨달았다.
하지만 목소리 만으로 사람들에게 각인을 시키는 수준의 목소리 연기 실력은 불안정한 부분이 많았고, 실제로 마음먹고자 하는 목소리를 낸다 하더라도 바로 연기가 무너져 내려버린다.
“그래도 발성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분이라 다행이네요.
그러면 실제로 성우들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법에 대해서 조금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볼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나의 성우 트레이닝이 시작되었다.
**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아주 오랜만에 영혼이 탈탈 털린 채 차에 몸을 구겨넣었다.
정말이지
장담하건데
내 인생 중에서 이렇게 혹독한 레슨은 처음이었다.
사람의 목소리라는 게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는지, 오타쿠인 나는 알고 있었는데 이게 또 면전에서 경험하는 것은 또 달랐다.
요시노 대사(大?)님이 말씀하셨다.
명심하세요. 유나양이 연기해야 할 버튜버라는 영역은, 단순히 대사를 외우는 수준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 캐릭터 자체가 되어서 완벽하게 연기를 해야합니다.
대본에 따라서 말해야하는 캐릭터와 버튜버는 다르다는 가르침
대본에서 실수가 용납 되던가요? 선라이즈의 버튜버들이 캐릭터 컨셉을 지키다가도 잃어버리는 게 또 매력이라고는 하지만, 한 가지 이미지를 만드시려고 하는 유나양은 절대로 그 실수를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새로운 이미지를 위해서는 절대로 방송을 위한 캐릭터 붕괴를 일으키면 안된다는 가르침
그래서 당신은 조금 더 일본어를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어체에서 말하는 어미(??) 사용법’, ‘일본 표준 발음 개론’ ‘계급 사회 일본어’라는 책은 좋은 가이드 라인이 될것입니다.
그리고 외국인 치고 일본어를 잘하는 수준이 아닌, 진짜 일본인 배우들이 요구하는 ‘본토 이상의 일본어’에 대한 가르침
영어에 대한 걱정을 하지 마세요. 앞서 말한 도서를 터득한 뒤 ‘상류 계급 영어’에 적힌 단어들을 응용한다면 충분히 괜찮아 질거에요.
‘저 주로 영어로 방송하는데’라는 질문을 차단하는 듯한 영어권 소속 성우들을 위한 가르침까지
그야말로, 한 사람이 초보 성우가 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지식을 나에게 주입시켰다.
여기까지는 그래, 납득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 다음에 이어진 목소리 조율은 그야말로 가혹행위에 가까웠다.
간드러진 여성은 지나치게 천박해보입니다. 비음을 넣되 지나치게 넣지 마세요.
나에게 딱 맞는 ‘성숙하고 매력적인, 농염하면서도 순진한’ 목소리를 위한 가르침을 새겨넣은 뒤, 나는 아리아의 인사말인 ‘좋은~ 아침 점심 저녁이에요. 선라이즈의 구미호, 아리아입니다.’를 일백 마흔 다섯 번 동안 말하게 하였다.
전부 다 다른 연기톤으로 말이다!
‘다시’
‘음이 너무 높아요. 이러면 성대에 무리가 간다고 말했죠?’
‘다시’
‘제가 비음을 줄이라고 했죠?’
‘다시’
‘비음을 줄이라고 했지 빼라고는 하지 않았어요!’
‘다시’
‘당신이 가진 미성(美?)의 재능을 믿어요!’
아!
힘들다!
고되다!!
할머니 무서워!
“유나가 완전히 오돌오돌 떠는 건 또 처음 보네.”
내 조수석에 앉은 유키하라 언니가 나의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어찌 보면 나를 저 무서운 할머니에게 갖다 바친 사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의 부족한 점을 찾아준 매니저였기 때문에 나는 아기처럼 웅얼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유키하라 언니…”
“그래그래, 오늘도 고생 많았다.”
그러고보니
언제부터인가 유키하라 언니는 나에게 말을 놓고 있었다.
이전이라면 유나 씨~ 유나 양~ 이런식으로 말을 하고
가끔씩 당황할 때 나를 편하게 불렀는데
이제는 나를 편하게 부르는 것을 보니, 드디어 친해진 거 같아서 안심이다.
나에 언니와 다른 매력을 가진 유키하라 언니의 쓰다듬을 받으면서 멘탈을 채운 나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원래대로라면 이대로 회사에 다시 가서 내 앞으로 들어온 광고 협찬을 검토해야 하지만
성우 훈련이 완료될 때 까지는 기존 업무 말고 추가로 하지 말자는 언니의 제안서에 따라서 당분간은 자기개발에 열심히 할 예정이었기에
나는 회사가 아닌 회사 역 앞을 향해 출발했다.
“그니저나 유나는 운전을 어디서 배웠니?”
“저요? 아버지가 자동차 딜러라서요.”
고등학생 시절부터 중고차 고지에서 찔끔찔끔 드라이브를 연습해보았다고는 말을 못하겠다.
단지 아버지가 가르쳐주셨다, 라는 투로 말했다.
“그렇구나, 사실 언니도 이제 운전을 배울 예정이라…”
“앗, 언니도요? 그럼 합숙 훈련 가시겠네요?”
조금 특이할 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는 운전연수를 위해서는 합숙 비슷하게 자동차를 막 굴려도 되는 도외 지역에서 합숙을 하면서 단기간에 숙성 코스를 밟는다고 한다.
“응, 사실 유나에게 성우 훈련 스케줄 잡은 거에는, 나도 운전 연수를 다녀오려고 해.
언제까지나 유나 차를 빌려 탈 수 있는 노릇도 아니고, 설령 타더라도 운전대는 내가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
스피드와 질주감은 저의 드라이빙 소울을 자극하는, 국가가 제게 허락한 약이에요라는 개소리를 말하려고 한 나는 언니의 진지한 눈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 이 사람은 진짜 나를 위하고 있구나…. 라는 것이 느껴지는 신념이 담긴 눈동자를 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응원할게요.”
“응, 배려해줘서 고마워.”
우리 사이의 대화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듯
우리는 역 앞에 도착할 때까지 운전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나누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는 학창 시절에 좀 꼬였다고 말할 수 있는 인복을 선라이즈에서 제대로 돌려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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