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화 〉 221화.
* * *
성우 교습을 받기 시작한 이후 내 버튜버 삶은 조금 달라졌다.
일단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새벽 방송이 많이 줄었다는 점이다.
일단 나를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이 업계의 거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신 탓에
이런 분의 수업을 받는 데 최선의 컨디션을 하러 가지 않는 건 개인에 대한 실례이기도 하지만 회사의 이름에도 먹칠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기에 나는 이전에 음반 준비를 할 때 보다 더욱 몸을 관리했다.
새벽 세 시를 넘겨서 방송하는 경우는 줄어들었고, 휴가 전후로 GB 1기생들과 정규 합동방송을 여러 번 한 까닭에 다시 마이 페이스대로 혼자서 방송하는 일이 많아졌다.
다른 멤버들의 방송에 보이스로만 출연해서 가볍게 합동 방송을 하는 일이라면 모를까, 오프라인 합동 방송처럼 스케일 큰 공동 스케쥴을 잡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 정도 해야지 겨우 가르침에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성우의 길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나같은 경우 특정 작품에 대한 해석과 대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 않는, 어찌 보면 또 다른 나 자신이라고 할 수 있는 버튜버를 연기하는 일이었기에 조금 독특하다고 볼 수 있었다.
성우들이 애니메이션 행사나 성우 라디오 방송에서 특정 캐릭터의 연기 톤으로 노래를 부르거나 상황극을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런 경우는 그 캐릭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바탕으로 성우가 재해석한 캐릭터를 목소리로 연기하는 일이다.
즉 캐릭터에 대한 해석이 이전처럼 ‘컨셉’을 잡고 하는 것이 아닌 진짜로 임할것을 요구받는 진지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의 성우 교습은 목소리를 활용한 실전도 실전이지만, 캐릭터 해석을 위한 철학 공부까지 들어가는 심오한 교습이었다.
“도, 돌아왔어요…”
“유나야 어서와.”
집에 돌아오니 앞치마를 두른 상태로 요리를 하고 있는 나에 언니가 나를 반겨주었다.
작은 키에 요리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텐데, 어느 새 작은 발판을 밟고 올라가서 다정한 미소를 지으면서 요리를 하고 있는 언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 집에 천사가 산다.
속세의 찌든 때를 단번에 벗겨내줄 따스함을 가진 천사가 나를 위해 요리해준다.
이 무슨 오타쿠 망상적인 순간이란 말인가?
하지만 코를 간질거리는 부드러운 톤지루 냄새는 이게 꿈이 아닌 현실임을 끊임없이 자각시켜준다.
“왜그러니?”
“언니가 천사처럼 보여서요.”
“얘는 무슨.”
부드러운 미소를 조금 더 진하게 짓는 것으로 내 헛소리에 응답해준 언니는 다시 요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가사일이 이제 몸에 익기 시작한 언니는 어찌보면 초보 주부라고 할 수 있는
그러니까…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신부 수업을 막 마친 여성이라고 볼 수 있었는데
이런 사람들은 대게 하나에 집중 하느라 다른 하나를 잘 처리하지 못했다.
언니의 곁으로 다가간 나는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한 후라이팬의 불을 낮추었다.
“아…!”
“국에 간 맞추는 건 나중에라도 할 수 있으니까, 일단은 구이부터 끝내고 하는 게 좋아요.
일정한 열을 가한 이후에는 후라이팬의 잔열에도 익으니까요.”
“그…으!”
자신의 실수가 분하다는 듯 볼을 부풀리고 발을 동동거리는 언니의 모습을 본 나는 정말이지 미치는 줄 알았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모든 행동이 사랑스럽고 예쁠 수가 있지?
그야말로 언니의 모습은
그러니까…
“유리아 그 자체잖아?”
나는 무심코 그렇게 중얼거렸다.
언니의 버튜버 캐릭터인 쿠로시로 유리아
세상 많은 일에 낯설기만 한 마계 공주님
위엄을 갖추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많은 마계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말괄량이 공주님 말이다.
나는 무심코 유리아라는 캐릭터가 만약 요리를 한다면 언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고 말았다.
“언니는 언제부터 이렇게 귀여웠어요?”
“나, 나는 원래 귀여웠거든?”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부끄럽게 말하는 언니의 모습에 나는 내면에 거친 충동이 살짝 일어나는것을 느꼈다.
그야 그렇지
이렇게 귀엽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미치게 만들겠는가?
“자꾸 이상한 소리 해서 언니 집중 흐트러지게 하지 말고 얼른 옷이나 갈아입고 나오렴!”
살짝 화가 난듯한 언니가 국자를 난폭하게 흔들거리면서 나에게 경고했다.
그제야 정신이 든 나는 스스로가 변태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이건 그러니까…
캐릭터 연기법에 미쳐있는 스트레스 때문이겠지?
그런생각을 하며 나는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
“그러니까, 요즘 그런걸 배우고 있구나.”
“네… 어차피 버튜버로 활동하는 이상 다른 게임에 콜라보 캐릭터로 만들어진다거나, 선라이즈에서 공식적으로 제작중인 애니메이션에 녹음을 들어가는 일이 생기는데 대비를 안 할 수는 없죠.”
“음, 그거야 유나가 워낙 다른 쪽으로는 레슨이 필요없는 사람이잖아?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어지간한 아마추어들은 물론이고 프로들과 비교되는 유나는 상대적으로 집중적으로 투자를 해도 되는거지.”
“그… 그건…”
“언니 앞에서는 굳이 겸손하지 않아도 된단다.”
다 이해한다는 듯 언니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작은 손이 나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자니 복잡했던 머리가 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늘 말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내 머리에 손을 대는 걸 싫어한다.
하지만 언니의 손길은 뭐랄까…
내 복잡한 상념을 잘라낸다고 해야할까
그 따스함에 지친 눈동자에 빛이 돌아온다고 해야할까
신비한 힘이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그래서 간만에 무언가에 도전할 일이 생겨서 기쁘네요. 대학교에서 배웠던 ‘아 언젠가 사회에서 쓸 일 있겠지?’하고 생각했던 애매한 공부들이 아니라, 실제로 제 생활의 질을 올려줄 수 있고 답답했던 무언가를 소화시켜줄 수 있는 공부니까 너무 기쁜거 같아요.”
“흐응, 그렇구나…”
“네, 그리고 캐릭터 연기 몰입법에 대해서는 언니에게서 배운 것들이 실제로 도움이 많이 되고 있어요.. 요시노 여사님께서도 ‘이게 버튜버의 연기법이구나’하면서 감탄하셨어요.”
성우 교습을 받기 전까지 나와 언니는 서로 가르침을 주고 받았다.
나는 언니에게 보컬 레슨을, 언니는 나에게 오타쿠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언니의 버튜버 방송 요령(캐릭터 발성법과 생각하는 법 등등)레슨을 진행했다.
1주차의 아리아는 재능이라는 무기를 휘두르고 다녔던 인터넷 방송인이었다면
2주차의 아리아는 자신의 구미호의 재능을 깨닫고, 만약 진짜 구미호가 존재했다면 이런식으로 말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녹아들어가기 시작했다.
3주차의 아리아는 개인 방송 뿐만 아니라 여러 합동 방송에서 그런 구미호 캐릭터를 살리기 시작했으니, 이는 다 언니의 덕택이었다.
“그 요시노 선생님께 내 엉터리식의 버튜버 연기법이 인정받다니 기분이 묘하네…”
“에이, 사실 언니야말로 확고부동한 1위잖아요?”
“얘는…”’
요즘 언니의 방송은 물이 올랐다.
가장 깊은 팬들을 보유한 유리아의 방송은 구독자 증가 추세는 선라이즈의 하위권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느린 편이었다.
하지만 합동 방송을 하지 않고, 최근의 유행에 빠르게 따라가기 보다는 자기 페이스데로 방송을 진행하는 언니의 방송에는 너무나도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언니의 팬들, 그러니까 마계 시민들은 다른 버튜버들에 비해서 충성심이 엄청 강했다.
내가 말한 1위라는 것은 흔히 말하는 ‘매출’순위다.
유리아의 이름을 달고 나온 선라이즈의 공식 굿즈와 도네이션 총합이 다른 버튜버들을 제치고 1위를 달성하였다.
뭐 도네이션 총합이야 유튜브 통계 사이트에서 순위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유리아를 활용한 공식 굿즈가 나오는 대로 매진을 찍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익이 많아졌다고 해야할까…
최근 들어서는 ‘수금(??)의 공주님’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뭐 그런 언니의 조언 덕분에 빠르게 감을 잡았죠.
지금에 이르어서는 음… 요시노 선생님이 제 목소리를 깎아내고 계셔요.
분위기에 따른 세 가지 목소리와, 필살 보이스를 연마한다고 해야할지…”
아리아로 평상시에 말하는 목소리에 조금 음정을 잡아서 방송용 목소리 톤
앞선 방송용 목소리 톤에 흥분, 기쁨 등 텐션이 올라가는 목소리 톤
텐션이 올라가는 목소리와 다르게 울적하고 슬픈 감정을 담은 우울한 목소리 톤
그리고 내가 그토록 정착하기를 희망한 ‘치명적이고 매력적이고 요망한 여우’ 목소리 톤이 필살 보이스다.
그탓에 항상 유지하던 평소의 저음 수련법은 그만두고
목소리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내 목소리 자체가 워낙 특이한지라, 말을 오래해도 성대에 부담이 가지 않는 안정적인 목소리라는 점이다.
“우와, 진짜 생각보다 복잡하구나.”
“네, 요시노 여사님이 제게 거는 기대가 좀… 크신 거 같아요.”
“혹시 괜찮다면 요즘 연습하고 있는 목소리 들려줄 수 있니?”
언니 또한 이쪽 면으로 본다면 이미 이런 스킬이 갖추어진 인재라고 볼 수 있었다.
평상시 말하는 목소리에서 조금 높게 잡은 유리아의 기본 목소리
흥분하게 되면 말하는 속도를 높이고 속사포 말하듯 쏟아내는 흥분한 목소리
그리고 광분 상태에 이르게 되면 괴성을 지르면서 광분하는 분노의 목소리
이와 반대되는 자존감 낮은 상태에서 말하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우울의 목소리
그 우울의 목소리에서 광기를 살짝 섞은 멘헤라 목소리
그리고 우울과 멘헤라를 섞은 광기와 집착의 목소리까지 말이다.
“흠흠, 좋아요… 그러면 일단 가볼게요.”
금전적인 평가로는 업계 최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언니 앞에서 나는 목을 가다듬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언니는 고급 레스토랑의 음식을 음미하는 미식가처럼 섬세한 표정 변화로 내 목소리를 즐겼고, 이윽고 내가 최근에 연마하고 있는 ‘유혹하는 목소리’를 들려줄 차례가 되었다.
목을 어루어만져서 긴장상태를 푼다.
요시노 여사님께서 말씀하시길, 나의 목소리는 타고난 무언가가 있다고 했다.
따라서 성대의 이완을 극한으로 풀어낸다.
하지만 풀어지는 것은 성대지 마음이 풀어져서는 안되었다.
누군가를 홀린다는 것은
그 사람을 나의 것으로 만든다는 소유욕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대상의 마음을 훔친다는 것은
대상의 인생을 지배하고자 하는 강력한 욕망을 은밀하게 품어야 한다.
어찌보면 언니야말로 나의 유혹하는 목소리의 상대로 최고로 적합한 대상일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가슴 속에 슬쩍 차오르는 장난스러운 마음을 억누르지 않고 그대로 말했다.
“언니”
유혹하는 목소리는 애절함을 담지 않는다.
하지만 타인에게서 애절한 마음을 들게 할 정도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앞으로도 저랑 함께 계속 달을 봐 주시겠어요?”
달이 아름답네요.
그러니 이 달을 저랑 함께 봐주실 수 있나요?라는
어느 책에서 본듯한 문장을 나는 말했다.
그리고 그 대사를 끝으로 나는 긴장의 끈을 풀었다.
겨우 목소리 연기 톤을 잡은 유혹하는 목소리로 회화를 이어나가는 것은 나에게는 아직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건… 유나가 나쁜거야.”
“언…니…?”
언니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새색시처럼 신부수업을 받는 아가씨는 어디가고 광분한 상태의…그러니까 집착 상태의 유리아가 내눈앞에 나타났다.
가파른 호흡, 확장되는 동공
그리고 언니의 옆에 나뒹구는… 맥주캔
아…
그러고보니 언니 오늘 휴방이라 술 마셨지 참
그 사실을 떠올린 나는 옷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유나야? 이리오렴?”
“언니 우리 말로 하자.”
“말은 이미 끝났잖아? 유나가 이렇게 나를 꼬셨잖아?”
“저기 언니? 이건 그러니까 연습…”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언니가 술이 깰 때 까지 때아닌 술래잡기를 해야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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