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화 〉 222화.
* * *
“좋아하는 음식은 뭐에요?”
“초밥에 생강절임.”
“좋아하는 옷은?”
“편한 바지에 넉넉한 셔츠.”
“좋아하는 색깔은?”
“파란색.”
“좋아하는 계절은요?”
“여름인데… 근데 유나야, 갑자기 무슨 50문 50답이야?”
한적한 사무실 안
다른 버튜버들과 다르게 음악과 댄스 트레이닝을 따로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유능하다고 알려진 유나와 그녀의 매니저인 유키하라가 대화를 나누었다.
“그, 혹시 오늘도 유키노 여사님에게…”
“성우 트레이닝 힘들어서 멘탈 망가진거 아니거든요? 그냥 언니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그랬다구요.”
행여나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건만, 전혀 그런 일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라는 듯 유나는 강하게 부정했다.
그러니까 이건 흔히 말하는 ‘인싸들의 문화’같은 종류였다.
호감가는 상대방에게 대해서 알고 싶어하는 순수한 호의 말이다.
“그, 그러니?”
하지만 인생을 세상 진지하게 살아오고 있던 유키하라에게는 그다지 공감가지 않는 말이었다.
유나는 참 다루기 독특한 버튜버였다.
다른 버튜버들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능력
전직 매니저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업무 분석 능력과 수행능력
사회성 또한 그 누구보다도 밝아 지각을 단 한번도 하지 않고,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재깍재깍 보고한다.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오타쿠들이 많은 버튜버들 사이 속에서 이렇게 소통하기 편한 사람이 드물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유키하라지만, 가끔가다 이렇게 엉뚱하게 다가올 때는 솔직히 말해서 당황스럽다.
“원래 사람이 나간 자리는 잘 안다고 하잖아요? 언니가 떠난다고 하니 갑자기 언니에게 잘 대해주지 못한 사실이 떠오르고, 언니를 잘 알지 못한 사실에 괜히 미안해지고…”
“…. 저기 나 운전 면허를 위해 합숙 훈련에 들어가는 것이거든? 어디 멀리 떠나는 거 아니거든?”
“힝, 그치만, 그치만!”
사람 자체가 워낙 요물덩어리인 유나에게 목소리로 연기하는 방법이 장착이 된 이후 그녀는 문자그대로 구미호가 되었다.
성별을 불문하고 보기만해도 눈이 즐거운 미인이 코맹맹이 목소리를 내면서 애교를 부리는 것은 그야말로 심장에 무리가 간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 하다고 생각한 유나의 애교였지만, 성우 훈련의 성과는 너무나도 훌륭했던 까닭에 유키하라는 심장이 살짝 두근거렸다.
이성애자를 동성애자로 만들 것 같은 사람
그것이 바로 유나였으니 말이다.
허나 지엄한 매니저의 위엄을 실추당하는 것은 앞으로의 인간 관계에 불리하다고 판단한 유키하라는 빠르게 표정을 수습해서 두꺼운 종이뭉치로 그녀의 머리를 살짝 내려쳤다.
“아얏.”
“그치만은 뭐가 그치만이야, 그런것보다 유리아 100만 구독자 달성 이벤트나 준비 제대로 하렴.”
업무적으로는 할 일을 다 마쳐두었고, 다음 날이면 운전 면허를 위한 합숙소에 가서 2주일 간 매니저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유키하라는 그 말을 남기고는 쿨하게 자리를 떴다.
**
쳇, 그래도 이 주일동안 얼굴 볼 수 없는 사이가 되었는데, 매니저가 너무 매정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아픈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래도 언니의 100만 구독자 달성을 내 매니저가 신경을 써준다니…
역시 내 매니저야!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무튼 혼자 남겨진 방안에서 스스로 불쾌한 오타쿠 미소를 지으면서 감정을 달랜 나는 노트북을 열어서 선라이즈의 버튜버들 방송 일정을 정리한 사이트를 키면서 사람들을 확인했다.
그중 언니의 100만 구독자 돌입 대기 방송에 들어와준 멤버들을 떠올렸다.
눈을 감고 있자니 어제의 방송이 떠오른다.
“죽여줬지, 어제 방송.”
4기생의 일원이자 두 번째로 100만 구독자 돌입 대기 방송을 진행한 쿠로시로 유리아의 방송에는 많은 사람이 찾아온 편이 아니었다.
유리아의 방송은 다른 버튜버들과 적극적인 콜라보 방송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번 유리아와 친해진 버튜버들과는 친하게 지내는 편이기에, 그녀의 방송에 시시콜콜한 추억들 하나하나까지 털어놓고 갔기 때문에 그녀가 소외받는 듯한 이미지는 들지 않았다.
유리아를 여전히 있는 그대로 귀여운 마계 공주로 귀여워해주는 버튜버들
유리아의 또다른 인격(?)이라고 할 수 있는 얀데레 혹은 멘헤라적인 모습에 두려워하는 버튜버들
유리아를 연애 대상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버튜버들
다양한 입장과 방식으로 방송을 그녀의 100만 구독자 돌파를 축하해주었던 방송의 끝에 찾아간 버튜버는 역시 나, 아리아였다.
가슴에 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던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방송을 다시 틀었다.
[있지, 이번에 와주는 사람은… 나에게 있어서 정말로, 정말로 고마운 사람이야.]
방금 전에 다녀간 카린의 적극적인 대시를 곤란스러워 하면서도, 그러면서도 ‘카린은 다른 여자들과도 나쁜 소문이 있잖아? 왜 다른 여자들과 연락하면서 나에게도 사랑을 내비치는거야?’라고 말하며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카린을 물리치며 팬들을 빵터트렸던 분위기가 달라졌다.
[나는 이 사람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결코 걸어오지 못했을 거야…응, 그러니까 너희들에게도 이 사람은 은인이라고 볼 수 있겠네?]
[짜잔 여러분 안녕하세요? 아리아에요!]
“아 유나야 눈치 없어 보이잖아!!”
한창 진지하게 감정을 잡고 있는데 들어온거였구나 나!
왜 이랬지?
오후 9시쯤 100만 구독자가 달성될 줄 알았는데 오후 7시에 달성한 덕분에 스케줄을 급하게 조정해서 그랬는지, 방송 상황도 확인 안하고 들어온 게 컸구나!
아무튼 고백대사를 다 완료하기도 전에 답장을 해버린 눈치 없는 애인의 스탠스가 이러할까?
언니가 감정을 추스리고 있는데 들어온 거였구나 나…
그것도 해맑은 구미호 어조로 말이야…
[풉, 아리아 어서 와.]
[선배의 100만 구독자 달성 너무나도 축하드리고요! 무엇보다도…]
당시에 나는 나름 내가 준비했던 축하의 말을 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언니는… 쿠로시로 유리아가 나에게 부탁했다.
아니, 명령했다.
[오늘은, 후배가 아닌 내 지원자로 돌아와줘.]
사람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다고 한다.
언니의 그 말, 유리아의 그 말에는 감히 거역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었다.
듣는 사람을 슬프게 하는 감정과 누군가를 아껴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일게 하는 마력의 문장에 조정당한 나는 방송 최초로 아리아와 라의 경계를 무너트렸다.
[유리아님이 부탁하신다면, 마땅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것은 방송 사고라고 할 수 있었다.
95만 구독자를 보유한 GB 소속의 구미호 아리아와, 50만 구독자를 보유한 선라이즈 스태프 소속의 메이드 라는 엄연히 다른 존재라고, 별개의 존재라고 본인이 그렇게 주장했으니 말이다.
시청자와 방송인이 확실하게 그어 둔 선을 넘었다고 할 수 있는 발언에 가까웠다.
하지만 시청자는 물론이고 나나 방송을 지켜보던 매니저들 또한 이것이 사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유리아의 목소리에는 진심과 마음을 움직이는 절절한 마력이 있었으니 말이다.
아, 아무튼 다르다고
역시 주인님의 명령이라면 어쩔 수 없지ㅋㅋ
캐붕인데 캐붕이 아닌
아 유리아님 울지마요 ㅠㅠㅠㅠ
진짜 찐텐으로 우는 거 봐 ㅠㅠ
그리고 그런 메이드의 목소리를 들은 쿠로시로 유리아는 울음을 터트렸다.
초창기 방송이 힘들어서 몇 번 운 뒤로는 거의 낸 적 없다던 진짜 울음을 말이다.
[미안해, 얘들아 미안해… 이런 경사스러운 일에 웃어야 하는데… 웃어야 하는데…]
괜찮아요. 울지 마
아이고 유리아님 ㅠㅠ
확실히 초창기 생각하면 ㅠㅠ 나도 울음이 나오네 ㅠㅠ
메이드 뭐하냐? 빨리 달려가드려
방송에 관록이 붙으면서 나지 않았던 방송 사고가 연이어 터져 나온다.
다르게 말하자면 엉망진창인 방송이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언니의 진심이 담겨있는 반응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무너진 모습만큼이나 진심이 담긴 방송인 까닭에 방송을 진행한 버튜버가 엉망진창으로 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그것이 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이 방송을 지켜보는 25487명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들은 나와 언니가 같이 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달래지 않는다고 나를 추궁했다.
그렇게 경사스럽게 시작한 유리아의 100만 구독자 돌입 대기 방송은 웃음으로 진행되었고 눈물로 끝났다.
방송을 이어나가지 못할 정도로 감정이 폭발한 유리아를 같이 살고 있는 메이드 라가 달래 주면서, 울고 있는 유리아를 달래면서 차분한 어조로 시청자들에게 유리아의 울음 섞인 말을 번역해주면서, 담담한 어조로 마무리를 지은 유리아의 100만 구독자 돌입 대기 방송은 메이드의 방종 멘트로 끝이 났다.
그야말로 유리아의 방송 성장기를 함께 한 메이드와의 기념비적인 마무리라고 할 수 있었다.
실제로도 유튜브에서도 ‘엉망진창의 100만 구독자 돌입 대기 방송’ ‘마왕성은 둘이서 하나’ ‘그 공주님이 100만 구독자가 되는 순간’ 등등
꽤나 긍정적인 키리누키 영상들이 많이 나왔으니 말이다.
“크으으으…. 아, 다시 눈물 나오네.”
노트북을 닫으면서 나는 그렇게 말하며 일어났다.
아무래도 어제의 방송은 끝 부분에서 문제가 많았던 편이기에, 언니는 지금 100만 구독자 감사 방송을 진행하면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최근 들어서 노래 실력이 올랐다는 평가와 함께 인기가 부쩍 늘어난 유리아의 음악 방송이 곧 있으면 시작된다고 하니, 나 또한 어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나저나 언니에게 무슨 축하 파티를 해주지?”
아라비아 숫자로는 1,000,000 라고 표기되는 이 숫자가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유튜브는 100만 구독자를 달성하면 골드 버튼으로 장식 되어있는 상패를 수여한다.
그 상패에는 편지가 동봉되어 있는데 아래와 같은 문구를 담고 있다.
‘벤쿠버보다 크고 베니스보다도 큽니다. 게다가 라스베이거스 보다 큽니다.’
일 백만이라는 인구 숫자는 어지간한 도시보다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
그야말로 한 도시의 1인 미디어라고 봐도 될 정도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 말이다.
실제로 매니저 시절 봐왔던 자료에서도, 우리 회사에서 100만 구독자를 달성한 버튜버와 그러지 않는 버튜버간의 사회 인지도 및 캐릭터 파워가 조금 남달랐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어나더 클래스’라고 부를 수 있는 영역이 바로 100만 구독자다.
물론 선라이즈의 버튜버들을 구독자 숫자로 높고 낮음을 따지는 것 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은 없지만, 아무래도 돈이 오고가는 비즈니스 사회에서는 이런 지표 하나하나가 가지는 힘이 크니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을 기점으로 합숙 훈련에 들어가는 유키하라 매니저와 마지막 미팅을 끝낸 지금 온전히 언니에게만 시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돌아가면 뭘 해주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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