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화 〉 224화.
* * *
정신을 차려보니 가장 먼저 두 눈에 들어온 것은 누군가의 엉덩이였다.
말로 이루어 표현할 수 없는 황당한 감정이 든 것도 잠시, 어제의 일을 떠올린 나는 유메미의 부담스러운 몸을 슬쩍 밀어내면서 자리에 일어났다.
격렬한 전투가 지나간 이후의 병동이 이러할까
미성년자인 까닭에 진작에 자기 방으로 돌아간 츠무기와 츠유를 제외하고는 모두 엉망진창이 된 채 좁디 좁은 방안에 부상병처럼 쓰러져있었다.
생일의 주체였던 나, 100만 구독자 달성을 축하받던 나에 언니를 중심으로
제각기 파티를 즐긴 모습을 한 체 누워있었다.
세상에, 지금이 따스한 봄날이라 다행이지...
다들 몸 건강이 중요한 사람들인데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내몰려도 되는지...
그렇게 한탄한 나는 그녀들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거실을 가로질렀다.
“멀리서 온 유메미 씨나 말리아나 아사히는 그렇다 치더라도, 왜 친애하는 이웃들은 여기서 뻗어있는지...”
레고 블록을 피해 가듯 조심히 방을 가로질러 부엌에 도착한 나는 커피를 내리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깨달았다.
어제 온 인원 중 나처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활동하는 사람이 한 사람 더 있음을 말이다.
“후후, 유나 언니는 술을 그렇게 마셔도 아침에 잘 일어나시네요?”
언젠가 한 번 내 앞에서 어른티를 내겠다고 우유와 설탕을 넣지 않는 블랙커피를 마시다가 인상을 찌푸린 소녀가 우아한 숙녀가 된 체 우유와 설탕 그리고 바닐라 시럽이 들어간 바닐라 라떼를 홀짝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우!”
“언니가 그동안 잘 지내시다 못해, 아예 버튜버로 데뷔하실 줄 몰랐네요.”
“그간 잘 지냈니?”
“그렇다고는 말 못하겠죠? 코로나는 생각보다... 고통스러웠거든요.”
경험과 쓰라림이 사람을 성장시킨다고 했던가?
그런 의미에서 선라이즈 버튜버 중 최초로 코로나에 감염된 이후 45일 넘게 휴식 기간을 가진 아사다 클레스타인을 연기하는 사케이 미우는 쓰게 미소지었다.
“대학 들어간다고 장기간 휴식을 가진 제가, 코로나로 인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방송을 쉬게 된다니, 나에 언니에 앞서 100만 구독자를 달성한 제가 코로나로 인한 방송 부재라니, 정말 회사에게도 다른 동료들에게도... 그리고 제 팬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했어요.”
“하지만 인후통으로 인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호흡이 가빠지고, 미각을 상실하는 코로나인데 무엇보다도 휴식이 중요했지.”
“네,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이대로 누군가에게 잊혀지는 느낌이 자꾸만 들어서 짧은 영상이나 근황 보고 방송을 조금씩 해서 잊혀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인터넷 방송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목소리라는 자원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에 목소리를 내는 데 지장을 주는 발성 기관의 통증과 폐의 기능 저하를 초래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심각한 질병임이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회사는 물론이고 그녀의 팬들 또한 목소리가 갈라지고 방송 중 기침을 자주 하는 미우의 건강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사람을 만날 수도 없지, 기껏 계약한 집에는 들어갈 수도 없지, 학교 오리엔테이션에는 참가할 수도 없지... 그야말로 지옥이었어요.”
“고생이 많았어.”
사회 초년생이 겪기에는 확실히 가혹한 성질의 것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만족스러운 고양이처럼 내 손길을 즐기던 그녀는 눈을 반짝 빛내면서 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저를 힘들게 한 건... 세상에, 제가 병가를 낸 동안 언니가 버튜버로 데뷔를 했는데 제가 거기에 끼지 못했다는 거에요!”
“음... 그러니?”
“음... 그러니? 가 뭐에요! 얼른 귀엽고 섹시하고 멋진 아리아와 성숙하고 성스럽고 성(?)스러운 클레스타인하고 콜라보를 하겠다!부터 나와야죠!”
화를 낸다.
마시던 커피잔을 거칠게, 그러나 실수로라도 식탁 위에 쏟지 않게 내려둔 미우가 벌떡 일어난다.
만약 그녀에게 고양이 꼬리가 있었더라면 분명히 공중을 향해 솟구쳤을 것이다.
그러나 숨기지 못한 장난스러운 눈꼬리를 알아챈 나는 짐짓 미안한 척 사과했다.
“미안해, 미우야.”
“흥, 언니 다음번에는 가만두지 않을거에요. 아시겠어요? 클레스타인하고 합동 방송하기 이전에는 다른 애들하고 방송하지 마요!”
“술냄새 풀풀 풍기는 이 언니가 괜찮다면 언제든지 합동 방송해줄게.”
“정말이죠? 꼭이죠? 믿어도 되죠?”
“그래, 코로나라는 지독한 전염병에서 돌아온 너에게 그 정도도 못해줄 것도 없지.”
미우는 ‘해냈다!’라는 표정을 짓고는 기쁘게 폴짝거리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언니와 합동 방송은 내가 먼저 하게 될거 같네.”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현관에서 거대한 냄비를 들고 온 츠유가 조심스럽게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미우에게는 미안하지만, 나하고 유나 언니하고는 이미 음반 발표가 확정되었거든? 아마 다음 주면 언니와 나 단둘이서 부르는 앨범이 나올 거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냄비를 가져온 그녀는 엉망진창이 된 부엌 사이로 가져온 후 전자레인지에 불을 붙였다.
열이 음식에 전달되면서 부엌에 익숙한 향이 가득차기 시작했다.
코를 가볍게 찌르는 고추 냄새 속에 감추어진 감칠맛나는 향기를 알아차린 내가 외쳤다.
“육개장이다!”
대한민국 유나통계법에 의하면 술마시고 난 다음 베스트로 땡기는 국이 세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콩나물 국이고 다른 하나는 복어국이고 다른 하나는 육개장이다.
소주에는 콩나물, 양주에는 복어국, 맥주와 과실주에는 육개장이 땡기는 법인데 이국 땅에서 이런 알싸하고 매콤한 육개장 향기를 맡을 수 있을 줄이야!
지금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내 눈가를 찌르는 고추의 알싸한 자극 뿐만 아닐것이다!
“풉, 언니 왜 글썽이고 그래요?”
“어, 어떻게?”
“어떻게 하기는요? 한국인 시청자들에게 물어서 일본에 있는 육개장 하는 음식점 중 가장 한국인이 좋아하는 곳을 추천해달라고 했죠.”
“아!”
“언니의 매니저분에게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를 들었을 때부터 생각했죠. 우리 언니라면 분명히 권하는 술을 피하지 않을 것이고, 한 번 술을 마시면 끝까지 마시는 언니니까, 분명히 아침에 숙취를 할 것이다. 라고요.”
어제에 이어서 오늘까지 이런 감동을 받을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나는 그대로 츠유를 껴안았다.
세상에, 육개장이라니!
숙취로 머리가 찌끈거리는 와중에 이런 육개장이라니!
냄새만 맡아도 매콤한 맛이 짐작되고, 국물 사이에 존재감을 과시하듯 풍성하게 들어간 콩나물을 보니 벌써 입가에 침이 고인다.
“하루 늦었지만, 생일 축하한다는 의미에서 준비해봤어요.”
“정말 고마워...”
어제의 생일 파티도 기대하지 않았고 오늘의 이런 환대도 기대하지 않았던 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목이 잠겨버리고 말았다.
잊을만하면 가끔씩 떠오르는 그리운 고향의 맛을 향기로나마 즐긴 나는 기운을 차리고 파티로 엉망이 된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 일어났다.
“좋아 그럼 그대로 아침을 부탁할게. 나는 사람들 좀 깨우고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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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전까지만 해도 그리운 고향 맛에 눈물을 글썽이던 감정 표현 풍부한 집주인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짓던 두 사람은 그녀가 사라짐과 동시에 입가의 미소를 지웠다.
“코로나 때문에 아직 몸을 가누는 게 힘든 거 아니야? 조금 더 쉬다 와도 되지 않았어?”
“저는 이미 충~분히 휴식기를 가졌답니다. 츠유 언니. 그나저나... 제법이시네요? 먹을 거 좋아하는 유나 언니의 마음을 이렇게 찌르시다니.”
냄비에 담긴 육개장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자, 아주 익숙한 동작으로 냉장고 문을 열어서 유나가 구석진 곳에 놓아둔 청양고추를 찾은 츠유는 서투른 가위질로 그것을 육개장에 넣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복잡한 열기가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던 미우는 혀를 가볍게 찼다.
아무래도 복귀 방송이니, 대학 입학이니, 오리엔테이션이니 뭐니 하면서 바쁘게 돌아다닌 까닭에 유나의 곁을 떠나는 사이에 새로운 언니의 집을 그녀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게 반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인정한 뛰어난 음악가적인 기질을 가진 덕분에 주방의 소음과 서투른 조리 과정에도 용케 그 소리를 들은 츠유는 가볍게 미소지었다.
“선배, 괜찮겠어요? 선배 분명히 여동생이랑...”
“어머? 걱정해줘서 고마워. 하지마 우리 츠무기는 엄청 야무진 아이라서 나랑 같이 일어나서 이미 학교에 갔단다. 그러는 미우야 말로 고대하던 대학교에 들어갔는데 출석해야하지 않겠니?”
“공강이에요.”
사실 오늘은 공강일이 아니었지만, 츠유의 이죽거리는 듯한 미소를 본 순간부터 그날은 공강일이 된 미우는 씹어뱉듯 말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비운 사이에 그냥 평범한 ‘음악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이렇게 유나의 일상으로 녹아들 것이라 생각 못한 미우는 대적(大?)을 앞에 두고 힘을 모으듯 숨을 골랐다.
“그나저나 괜찮겠어요? 언니는 ‘다 같이’하는 식사를 좋아하는 데... 그렇게 매운 고추를 많이 넣어서야 싫어하겠는데요?”
나에 언니를 골릴 때를 제외하고는 한국인의 악문화인 ‘매운 거 잘 못먹는 사람들에게 매운 거 먹이기’를 싫어하는 유나를 알고 있는 미우가 말했다.
이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츠유는 당황해서 손을 바둥거렸고, 그 결과 조금씩 잘라내고 있었던 고추가 냄비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이, 이건 언니를 위한 특제 요리니까...”
“어머? 언니는 항상 국 요리는 인원수에 맞게 대접했는걸요? 언니가 혼자 무언가를 먹는 걸 본적이 있나요? 이렇게 새로 이사한 집에서조차...”
낯선 주방이지만 이곳을 다루는 사람은 결국 유나였고, 유나가 대충 어디에 무언가를 두는지 사이타마에서의 숙박 경험을 통해 잘 알고있는 미우는 익숙하게 찬장을 열었다.
“이렇게 많은 국그릇을 보유하고 있는걸요? 둘이 사는 집에 이렇게 많은 식기구가 있다니 참 놀랍지 않아요?”
이렇게 다른 사람 대접하기를 좋아하는 유나가 맛있는 요리를 두고 그녀 혼자만 먹을 리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듯 미우가 말했다.
“후후후.”
“후후후.”
서로 한 대씩 주고받은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낮게 웃었다.
그 때였다.
“얘들아 미안! 아무래도 유메미 씨가 오늘 낮에 회사 가야하는 데... 일을 저지른 모양이야, 나는 일단 유메미 씨 회사에 바래다주고 올게! 나머지 사람들 잘 부탁해!”
사람을 깨우러 갔던 유나가 다시 부엌에 들어오며 급하게 냉장고에 넣어둔 물을 챙겼다.
그러고는 술에 깨지 않아서 아직도 헤롱거리는 유메미의 입에 거칠게 물병을 물리고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으면서 밖을 나갔다.
그야말로 폭풍같이 나타나 허리케인처럼 사라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두 사람은 이마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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