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26화 (226/307)

〈 226화 〉 225화.

* * *

언니가 100만 구독자를 가진 골드 버튼 소유의 버튜버가 되어도 내 일상은 바뀌는 게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대화를 나누고, 같이 회사에 출근하거나 개인 일정을 보낸다.

집에서 일을 처리할 수 있다면 회사에 나가지 않는 날에는 같이 장을 보러 가거나, 집안일을 나누어서 했으며 둘이서 게임을 같이 즐겼다.

방송이 있는 저녁에는 시간을 쪼개서 같이 키리누키 영상을 보면서 놀았고

방송이 없는 저녁에는 일에 관련된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거의 신작 게임이나 만화, 혹은 업계 유명인들의 근황에 대한 오타쿠 토크였다­를 나누었다.

“아참, 유나의 성우 레슨은 어떻게 되어가니?”

요시노 여사님에게 성우 교습받기 위해 출근 준비하는 평범한 날, 언니는 나의 입가에 묻은 소스 자국을 닦아내면서 물었다.

최근 들어서 온갖 색기있는 캐릭터들을 연기하면서 세심한 연기톤을 잡고 있는 일상을 잠시 떠올린 나는 잘 되어간다고 대답했다.

“슬슬 다음 일에 들어갈 때도 되지 않았어?”

그렇게 말한 언니는 최근 GB 1기생들이 해외에서 인기 있는 ‘천사의 타워’라는 모바일 게임에 콜라보 캐릭터가 발표되었다는 소식을 집어 들었다.

“아, 언니 그거 알아요? 저 디코방에서 알아낸건데, 이 게임 광팬인 엘리야 선배는 나레이션 녹음까지 들어갔대요!”

“우리 유나는?”

“저야 뭐... 매니저도 아직 운전 연수중이고, 저는 콜라보 게임에 등장하기에 아직 이르지 않을까요?”

언니는 내가 다른 해외 선배들의 ‘커다란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는 서양의 점유율 3위 안에 들어가는 게임에 참여하지 못한 게 몹시 아쉽다는 듯, 무언가 못마땅한 시선으로 화면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유나의 완벽주의도 참...”

분석 결과 아리아의 인지도는 결코 1기생의 선배들에게 비교해서 결코 밀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성장세만 본다면 1기생의 마나 선배 이후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실제로도 100일도 지나지 않아 95만 구독자를 달성했으니 말이다.

뭐 최근 들어서 구독자 증가 추세가 꺾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버튜버로 먹고 살만하다고 판단을 쭉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평소 추구하던 바와 같이 완벽하지 않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을 거라는 한국인 다운 마음가짐을 포기하기 싫었다.

“어휴, 내가 너를 어떻게 말리겠니?”

“후후 언니, 아리아의 인기는 건재하답니다.”

“차암... 서양 감성은 알다가도 모를 것 같네. 자, 아무튼 조만간 레슨도 끝나지?

그러면 언니랑 같이 오다이바나 놀러 가지 않을래?”

오다이바라고 하면 일본에서 아주 유명한 관광지다.

쇼핑과 레저, 관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복합 신도시인 이 도시는 대학생 시절에 몇 번 가본 적이 있는 근사한 장소다.

한국으로 치면 홍대와 강남을 섞어둔 듯한 장소였기에 나는 귀가 번쩍 뜨이는 걸 느꼈다.

외출, 외식, 파티, 관광, 쇼핑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울리기 시작했다.

“오, 오다이바...”

“응, 코로나 덕분에 밖에 나가는게 조금 그런 시기가 되어도... 이번 도쿄 올림픽이 취소되었잖아? 그래서 그때를 대비해서 재고를 준비해둔 가게들이 많아서 행사도 이리저리 많이 여는 편이야.”

“언니... 언제부터 이런 조사를 하셨어요?”

“글세, 유나가 요즘 언니보다 바쁘니까... 유나가 옛날에 나에게 해줬던 것처럼 같이 힐링시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

그 말을 들은 즉시 나는 휴대폰을 켜서 친구들의 일정상태를 확인했다.

목요일 오후, 기적적으로 방송 스케줄이 비어있는 타이밍이 있었다.

그것도 내 레슨이 끝나는 수요일 직후였기에 나는 간만에 학교 다닐 적의 그리운 느낌이 살아났다.

우르르 몰려가서 우르르 노는 것

코로나 이전에 내가 제일 좋아하던 친구들과의 외출이지 않는가!

언니의 그 말 덕분에 나는 하루종일 힘이 나는 기분이 들었다.

잠시 후

어느덧 막바지를 앞두고 있는 단기 성우 수업에서 다른 성우 연습생들과 합을 맞추고 녹음에 들어간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헤드셋을 벗었다.

“유나 양, 수고 많으셨어요.”

결코 70대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아한 이미지를 가지고 계신 나의 스승이신 요시노 여사님께서 부드럽게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셨다.

요시노 여사님의 부드러운 미소의 깊이가 깊은 것을 본 나는 저도모르게 침을 삼켰다.

미소가 짙어질수록 호통이 심했는데, 설마 단체 녹음에서 내가 실수를 한 게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이제 다른 부분이면 몰라도 요염(?), 농염(?), 야염(?)에 대한 이해는 확실히 잡히게 되었군요.”

“가, 감사합니다!”

그간의 빡센 교습에 따르면 업계에 쓰이는 야한 목소리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낮은 음을 바탕으로 성숙한 목소리를 내는 요염한 목소리

비음을 섞으면서 고음을 유지하며 끈적한 분위기를 내는 농염한 목소리

‘난 귀엽고 나는 무적이야!’라는 마음가짐으로 귀여움을 바탕으로 내는 야염한 목소리다.

시나리오 라이터가 원하는 ‘섹시한 연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 세가지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면 훌륭한 성우라고 할 수 있었는데, 나는 다행히 요시노 여사님 기준에서 성우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컷을 넘겼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목소리를 더욱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전문 성우분들에 비하면 부족함이 정말 많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아마추어 레벨로 이 정도면 보통이 아니라고 말씀해주셨다.

“아쉽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아리아에 대한 해석이...”

“그러니까, 백치미 넘치는 빙구 누나 캐릭터...라고요? 완벽주의의 우아하고 재능넘치는 천재가 아니라?”

“당연하죠. 어제만 해도 방송 세팅 잘못 건드려서 방송이 20분 늦어지지 않으셨나요?”

“......”

요시노 여사님의 칭찬도 잠시였고

결국 여사님은 마지막까지 ‘아리아의 캐릭터는 실수 넘치는 도짓코 캐릭터가 어울릴텐데...’라는 안타까움 섞인 목소리로 나에게 말하셨다.

전문 성우가 감정을 실어서 말하니 정말 설득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을 느낀 나는 뺨을 두들기며 가까스로 정신 차렸다.

정신차리자 유나야

아리아는 완벽하고 섹시한 캐릭터야.

요즘 들어서 정신을 놓아서 방송에서 실수 좀 한다고 해서 ‘알고보니 사실 바보’캐릭터 취급을 받는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 아무튼 저는 이제 이 정도면...”

“네, 맞아요. 유나씨는 소리와 울림에 대한 이해가 있으시니 충분히 훌륭한 ASMR 방송을 진행하실 수 있을거에요.”

“그, 그렇다면...”

“네, 제가 버튜버 업계는 잘 모르겠지만 유나 씨의 ASMR 방송을 듣고 ‘아 이 여자 정말 섹시하다’라는 감정이 들지 않을 사람은 없을걸요?

후후후, 제가 50년만 젊었어도 유나 씨에게 대쉬 했었을거에요.”

요시노 여사님은 얼핏 보면은 단아하고 엄격한 일본 전통적인 할머니처럼 보이시지만 알고 보면 장난기가 많아서 대처하기 곤란한 분이다.

장난기 많은 사람이 일상 생활에 성우 연기하듯 목소리에 감정을 실다가 빼었다가 하면서 사람의 손을 혹 빼놓으셔서 이분과 3주째 만남을 이어가는 나는 아직도 여사님을 대하기 어려움을 느꼈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하긴요, 어찌보면 업무의 일환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버튜버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거든요? 기존 성우 업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유형이니, 아무래도 목소리를 연기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저에게 너무나도 궁금한 사람들이었으니 말이죠.”

그래도 업계 최고(?古)영역대의 성우분에 그에 걸맞는 실력도 갖추고 계셨고, 한국인이라고 딱히 차별하지도 않고 나이 드신 분인데도 의사소통이 원활할 정도로 업계에 대한 이해가 깊으신 분이라 나는 정말 배운 게 많았다.

“그, 그렇다면.”

“네, 맞아요. 제가 평소 즐겨보던 버튜버가 성우 레슨을 받고 싶다고 회사 차원에 연락을 넣었는데 제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나요? 사실 유나 씨를 담당하고 싶어 하는 다른 트레이너들이 많았는데...”

요시노 여사님이 가로채셨다는 말씀이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나는 참 묘한 기분이 되었다.

이렇게 업계에 닳고 닳았다고 말할 수 있는 분이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좋아해준다는 게 참 신기했다.

하긴 일본은 에반게리온 보행용 지팡이 같은 게 나오는 나라인데, 나이 많은 오타쿠가 뭐 대수롭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오타쿠 업계의 거목같은 분이 나의 팬이라는 게 참 신기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유나 씨, 앞으로도 만날 일 있었으면 좋겠네요.”

“네! 저도 여러 가르침 많이 받았습니다. 부디 방송에서 제 새로운 모습을 기대해주세요!”

사건의 발단은 FPS 고수인 내가 숨기지 못한 게임 실력

거기에서 비롯된 ‘아리아 형’이라는 굴욕적인 별명

그것을 떼어내기 위한 필사적인 성우 수련...

사실만 열거하자면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이가 없는 사건의 흐름이지만... 이게 사실이고 이게 인생이었다.

아무튼 그동안 신세를 많이진 요시노 여사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회사로 돌아갔다.

정식데뷔 이후 방송 지원 활동으로 여기저기 불려다닐 적의 메이드 라 시절보다 잘 오지 않게 된 회사 주차장에 들어선 나는 간만에 스튜디오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선라이즈에서 제공하는 교육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인터넷 방송인이라고 한다면 빼놓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보컬 레슨

이미 사장님의 꿈은 박살이 난 채 변기통으로 흘러내려간 지 오래지만... 일단은 아이돌 지향 프로덕션답게 ‘아이돌’을 꿈꾸기에 진행하는 댄스 레슨

그리고 작년부터 세계화에 발맞추기 위해서 제공하는 외국어 교육

마지막으로, 선라이즈의 방송인들의 데이터를 쌓아 만든 미디어 교육이다.

이중 의무 레슨이라고 대학교의 전공처럼 빼놓을 수 없는 게 보컬과 댄스고, 나머지는 버튜버 개인이 희망하는 대로 교습받을 수 있다.

나머지 둘인 외국어 교육과 미디어 교육은 자율 신청제인데 의외로 인기가 좋다.

외국어 교육은 말 그대로 영어나 한국어, 때로는 인도네시아 언어나 러시아어를 방송인 맞춤으로 속성으로 교육시키는 교육이고, 방송 교육 같은 경우는 말이 교육이지 매니저와 버튜버 둘이서 방송 계획을 설계하는 게 어려워질 경우 회사의 지원을 받는 일종의 도움이나 마찬가지였다.

전자는 자신의 방송에 찾아오는 외국인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버튜버들이, 후자는 ‘오프라인 양조장과 콜라보 해서 내 이름으로 술 만들고 싶어요!’ 라던가 ‘회사 소속의 누구누구하고 듀얼 대회를 개최하고 싶다!’같은 거대한 일들을 만드는, 어찌보면 대기업다운 지원 시스템이기 때문에 인기가 좋다.

그렇다.

선라이즈가 요구하는 선라이즈 소속의 버튜버로 필요한 필수 덕목이 보컬과 댄스인데

나는 이 둘을 훌륭하게 충족시키는 준비된(!) 버튜버였다.

외국어 교육은 한국어, 영어, 일본어가 되는 나는 딱히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고

미디어 교육 같은 경우는 현재 시점에서는 내 개인 방송만 챙기기 바빠서 딱히 기획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회사에 올 일이 줄어들었다.

“뭐야, 유나 언니가 왠일로 회사에?”

의식의 흐름에 따라 버튜버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인 휴게소에 들어가자 막 댄스 레슨을 마친 듯 스포티한 옷을 입고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고 있는 미우와 그 맞은 편에서 물을 마시고 있던 츠유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우 교습이 이제 끝났거든.”

내가 최근에 뭘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은 눈을 크게 떴다.

“그럼 언니가 요시노 선생님에게 인정을 받은 거야?”

“응, 일단 회사와 내가 요구한 목표치에 맞게 교습은 받았어. 이제 이것을 녹여내는 건 내 연습 뿐이야.”

“세상에...대단하다...”

나보다 오타쿠 경력이 길어서 그런지

두 사람은 감탄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나에게 선망의 시선 비슷한 것을 보내기 시작했다.

왠지 낯이 뜨거워진 나는 흠흠 거리며 부끄러움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언니 수료 기념으로 내일 오다이바에 놀러 가려고 하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우가 손을 번쩍 들면서 말했다.

“갈래 갈래!”

“어머, 미우는 내일 수업 있지 않던가요?”

“공강! 공강이에요!”

공강이라...

목요일에 공강을 잡아두다니, 금요일 공강만들기에 실패했구나 미우야...

“잘 되었네, 츠유는?”

“저야 언니가 부르면 언제든지 갈 수 있죠. 맞다 언니 이 참에 ASMR 장비 구입하러 가볼래요?”

“아, 그거는 이미 마녀 선배님이 나에게 맞는 장비를 이미 선물해주셨어.”

“흐응, 츠유 언니는 목소리가 워낙 강해서 ASMR 방송같은 거하고 거리 멀지 않아요?”

“이 언니는 음향 장비라면 뭐든지 관심이 넘친단다.”

뭐랄까

왠지 모르게 친해보이는 데 날을 세우는듯한 분위기가 들었다.

그래도 미우가 기숙사를 나와 사택으로 돌아오고 난 이후 확실히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진 모양인지 최근 들어서 붙어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내일 언니 차 타고 오다이바로 놀러 가자! 그러고보니 넷이서 놀러 가는 건 처음인가?”

“넷, 넷이라구요?”

무언가 잘못 들은 것을 확인하는 목소리로 미우가 되물었기에 나는 당연하게 대답했다.

“응? 나에 언니를 두고 갈 리가 없잖아?”

내 대답을 들은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머릿속에 무언가 번쩍 떠올랐다.

“아, 걱정하지 마, 네 명이면 도쿄의 코로나 방역지침에 어긋나지 않는 모임 인원이거든!”

그런 내 대답을 들은 두 사람은 댄스 레슨으로 지쳤는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이면 놀러 갈 거,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는가?

그런 생각을 한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방문을 나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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