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28화 (228/307)

〈 228화 〉 227화.

* * *

크다는 것은 무엇일까?

부피와 질량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를 가지고 있는 물체를 정의 내린 개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크기의 비교에는 상대적이라는 개념이 적용된다는 것인데, 일정 크기 이상을 가진 무언가를 보게 되면 절대적인 개념이 성립된다는 것을 츠유는 깨달았다.

그래

가령 자신의 눈앞에 있는 유나의 가슴 크기같은거 말이다.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무방비하게 보여줄 때나

가끔 집에서 몸선이 드러나는 옷들을 입을 때 유나의 몸이 같은 여성이 보더라도 상당히 아름다운 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얕은 수건으로만 가려진 그 가슴을 보고 있자니 우주가 펼쳐지는 게 느껴졌다.

삼라만상을 아우르는 절대적인 진리인 무언가가

우주의 법칙이 눈앞에 성립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츠유는 생각했다.

곡선이란

사람의 몸이란

아름다운 여인이 그리는 몸의 곡선이란 신이라는 절대적인 거장(巨?)이 그릴 수 있는 생명체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이라고 말이다.

타고난 아름다움을 가꾸고 그것을 숨기길 꺼리질 않는 이 미인은 탈의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모든 사람의 시선을 모으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로 만들어버릴 것만 같은 마성의 매력을 지닌 여자

그래 그게 바로 유나였다.

“온천이다 온천~”

자신이 멍하게 바라보고 있던

미우라는 발칙한 여자애가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던

나에 언니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듯 신나게 몸을 씻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나는 것만 같으면서도 화가 풀리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미우와 벌이는 미묘한 신경전

그리고 나에 언니의 알 듯 모를 듯 한 시선을 받으면서 세 사람이 얼마나 수면 아래에 조용히 다투던 간에 자기 혼자서 알아서 웃고 알아서 떠들고 알아서 빛나는 걸 보니 더더욱 복잡한 신경이 들었다.

마치 절대적인 아름다움 앞에서 온갖 속세의 다툼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에 사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신성한 감정이 아닐까? 하는 우스운 생각마저 들었다.

머리가 복잡해진 츠유는 다른 두 사람이 그러하듯 오다이바를 돌아다니는 내내 곤두세운 신경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뜨거운 온천수에 몸을 깊이 담갔다.

따스한 온천이 체온을 기분 좋게 달구고 뇌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일까?

유나가 떼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박박 우긴 탓에 결국 온천에서 1박을 머물게 된 지금, 아주 오랜만에 온천 여행을 겪게 된 츠유는 그동안 자신이 왜 이런 온천 같은 장소를 싫어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한국과 다르게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돌아다니는 일본의 온천에서 수건 한 장으로는 도저히 가릴 수 없는 유나의 가슴을 바라본 츠유는 논파당한 변호사처럼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어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성인 여성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빈약한 가슴 크기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보다 한 살 어린 미우와 비교해도 과장 삼아 말해도 결코 크다고 말할 수 없는 자신의 빈약한 가슴이 드러났다.

아무리 일본 여성의 평균 가슴보다 조금, 아주 조금 작다고 말하고 다니고 있고, 가슴의 크기 따위로는 내 아름다움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츠유지만, 미우의 가슴을 본 순간 ‘졌다’라는 감정이 들고 말았다.

“츠유야 왜 그래?”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기 때문일까?

가까운 위치에서 피곤해진 몸을 달래고 있던 나에가 말을 걸어왔다.

“차라리 언니처럼 귀여웠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이를 먹지 않는 창작물속의 캐릭터처럼

결코 성인 여성으로 보이지 않는 동안을 유지하고 있는 나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객관적으로 봐도 이쁘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이지만...

나에 언니와 다투는 것은 무언가 장르가 달랐다.

유나가 에베레스트면 미우는 킬리만자로, 스스로는 후지산 쯤 된다고 생각하는 츠유는 나에는 괌의 에메랄드 해변같이 비유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오히려 가슴이 작은 게 유나 언니에게 먹히지 않을까? 하는 멍청한 생각을 시작한 츠유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어머 미우야 병으로 아팠는데도 홈 트레이닝은 꾸준히 했구나!”

“에이 뭘요, 언니하고 비교하자니 참 부끄러운 몸이에요.”

“아니야, 이렇게 습관화 시켜서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게 만들어 두면 알아서 단련이 계속된다니까?”

온천에 들어오고 난 이후 묘하게 텐션이 올라간 유나와 그녀에 맞춰서 같이 텐션이 올라간듯한 미우가 서로의 몸을 꾹꾹 눌러가면서 트레이닝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서로 휴전하기로 했던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던 츠유는 풀어진 몸을 일으켰다.

“언니, 그러고보니 저 최근에 근육이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유나 언니가 가끔 말하던 ‘한국인은 이길 수는 없어도 뒤처지는 건 납득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한국인의 정신을 지금 깨달은 츠유는, 미우의 가슴 크기를 보고 꺾였던 의지를 다시 세우고 유나에게 다가갔다.

**

“크으으, 이거지, 이거지! 세상에 바나나 우유가 일본에 있을 줄이야.”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편의점의 바나나 우유가 일본의 편의점에 존재했었다.

그 덕분에 나는 매번 마시던 딸기 우유 대신, 조금 비싸지만 바나나 우유를 마시면서 온천 후 우유땡을 할 수 있었다.

마치 흡연자가 담배를 핀다면 이런 맛일까?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며 나는 참지 못하고 국룰인 ‘1인 1병’의 규칙을 어기고 두 병째의 바나나 우유를 마셔버리고 말았다.

온천에 들어오고 난 이후 나를 쭉 관찰하던 미우가 그 모습을 보더니 말했다.

“언니는 참... 특이하네요. 저번 온천 여행때도 느꼈지만 온천에는 사람이 좀 달라지는 거 같아요.”

“내가 씻는 걸 좋아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연습생 시절에는 힘들게 연습한 후 밤에 목욕탕 가서 목욕 즐기면서 아주머니들과 수다 떠는게 내 인생의 낙이였거든.”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몸을 극한으로 움직이고 난 이후 온천수에 몸을 담가서 지친 근육이 비명을 지르다가도 잠잠해지는 듯한 그 묘한 자기파괴적인 감각을 말이다.

집 근처에 온천수가 올라가는 목욕탕이 있던 탓에 나는 중학생 시절부터 꾸준히 몸을 가꿀 수 있었다고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때 일을 이야기를 해도 괜찮은 거에요?”

츠유의 걱정 가득담긴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딱히 비밀 유지 조항에 저촉되는 항목은 아니거든. 어찌보면 트라우마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긴 한데... 너희들 때문인지 아니면 버튜버 활동을 하면서 그때 기억을 많이 떠올리다 보니 이제는 뭐...”

“유나가 힘들다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뇨 언니, 그 시절 힘든 순간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래도 제가 노력했던 세월과 그 힘든 시절 속에서 웃었던 게 사라지는 게 아니니깐요.”

내 과거를 알고 있는 세 사람 사이에 있기 때문일까?

자연스럽게 추억한 중학생 시절의 이야기에 다른 사람들의 분위기가 조심스러워지는 게 느껴진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얼마나 나를 아끼고 배려해주기에 이런 분위기가 되는 건지, 나는 이토록 나를 좋아하고 아껴주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게 축복받는 일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좋아요, 일단 온천도 했겠다. 주린 배를 채워 주는 게 온천장의 규칙이겠죠? 이 테이블에 다들 먹고 싶은 거 사서 오죠!”

나의 힘찬 말에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야끼소바, 타코야끼, 오코노미야끼, 이카메시, 야끼토리... 등등

일본의 축제 음식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대로, 가게가 있는 대로 먹을 것을 싸그리 긁어온 나는 세 사람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돌아갔다.

내 요리를 먹으면서 한식을 좋아하게 된 미우와 그 옆에서 생강 절임 돼지 고기 구이 정식을 가져온 츠유, 맞은편에서 여러 빵을 사온 나에 언니 옆에 앉은 나는 품에 든 음식들을 풀었다.

“역시 식사량이 대단하네요.”

“헤헤헤.”

도저히 익숙해지지 못하겠다는 듯 나의 식사량을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 한마디씩 했다.

“많이 먹고 많이 움직인다는 게 언니 지론인 건 아는데...”

“그래도 어지간한 성인 남성을 압도하는 식사량을 챙기라니 저는 그렇게는 못할 거 같네요.”

언니는 이런 광경이 익숙한 모양인지 내가 사 온 오징어구이에 시선을 주는 이상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나는 잔뜩 사 온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아까 이야기하다 만 중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말이지 나는 말이야...”

중학생 1학년 시절

성장과 발육이 남달랐던 나는 갓 초등학교를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또래보다 훨씬 큰 편이었다.

그래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아이돌 제안을 받았고, 그와 동시에 아이돌의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재능이 있었고, 당시 일찍 찾아온 중2병 때문인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게 좋았던 나는 목숨 걸고 아이돌이 되기 위해서 노력했다.

독종

천재

미친년

재능충

마녀

중학생 소녀에게 붙이기에는 다소 흉흉한 별명들이 연습생들 사이에 따라다니기 시작했고, 그들 말대로 나는 숱한 연습생들을 제치고 1년이 되지 않아서 A급 반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아이들의 재능도 재능이지만, 아이돌이 되기 위해서 벌이는 경쟁 속에서 가장 꼴보기 싫은 애들과도 팀워크를 맞춰야 하는 프로의 마음가짐을 심사받기 시작했다.

“잠깐, 경쟁이라구요?”

“응, A급의 12명 혹은 15명이 있다고 치면, 아이돌로 뽑힐 수 있는 사람은 3인조 1팀 4인조 1팀 정도, 즉 절반의 인원이니까 말이야. 만약 회사가 조금 더 적은 인원으로 데뷔를 하겠다고 한다면... 지옥같은 연습생 시절이 더욱 길어지는 거지 뭐.”

그래서 치열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자기 실력을 어필하기 위한 사교성

그리고 정치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리고 나는 이걸 몰랐지, 애들하고 친하게 지낸다고 친하게 지낸 줄 알았지만... 내 뒤에서 그렇게 나를 험담하며 정치질을 할 줄 몰랐어.”

노력이 기본인 이 사회에서 재능이 있고 자신감 넘치는 나라면 무조건 성공할 것이다.

막말로, 내가 제일 노래를 잘 부르고 춤도 바르게 배우고 잘 추는데 나를 포기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거기에, 나의 노래 재능을 일찍 알아보고 가요계의 선배들 사이에서 ‘재능 테스트 해보기’라는 명목으로 여러 트레이닝을 1년 가까이 거친 나는 연습생들 사이에서 독보적이었다.

“그래, 너무 독보적이었지. 아이돌은 팀워크가 맞춰줘야 하는 데, 알고 있으면서도 ‘설마 리더인 나를, 센터인 나를?’ 생각을 하다가...”

‘너하고 있으면 숨이 막히는 거 같아.’

‘그렇게 자신을 뽐내는 게 좋아? 어정쩡한 나에게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게 그리 좋아?’

‘선생님들 사이에서 이쁨 받으니 세상이 다 네 편인거 같아?’

‘친한척 하지마!’

‘그래, 재능 없이 아등바등 발버둥 치는 나를 비웃었다면서? 어머 모른척이야? 그래 니 말대로 나가 뒤져줄게.’

생각해보면 철이 없던 시기였다.

엔터테인먼트에 있던 어른들, 선생님들의 모든 칭찬을 독차지하고

그들의 열렬한 서포트와 지원이 있으면 아이돌이 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만약 내가 조금 더 진심으로 연습생들을 대했고, 나에 대한 그런 뒷소문이 퍼진 줄 알았더라면... 그렇더라면...

“울지 마, 뚝,”

어느새 생각의 고리에 빠진 내 몸이 눈믈을 흘리자 내 옆에 있던 나에 언니가 슬쩍 닦아주었다.

이전처럼 그 당시를 생각하면 숨이 답답해지거나 그런 건 없었는 데, 몸에서 눈물을 흘릴 줄이야.

다시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밥을 다 먹은 세 사람의 표정이 슬픈 기색으로 바뀌어져 간다.

방송을 하기 때문인지 그 분위기를 빠르게 읽은 나는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이제는 괜찮아요. 정말이에요.”

이제는 괜찮다.

정말이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에게 치유받은 나는 지금 그 어떤 누구보다도 정서적으로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정말이에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요.”

다시 한번 나는 진심을 담아서 그렇게 말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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