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화 〉 228화.
* * *
“언니 삶이란 무엇일까요?”
“갑자기 왜?”
PV 제작을 위해 수록을 기다리는 대기실 안
메이크업이 망가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책상에 몸을 파묻은 츠유가 말했다.
“갑자기 제 삶에 고난이 찾아온 거 같아요.”
여태까지 위풍당당한 여름의 여왕 같은 분위기를 뽐내던 자신만만한 여인은 어디 가고
지금은 무대 울렁증이라도 찾아온 듯한 초보 배우 같은 분위기를 내는 그녀의 모습을 잠시 바라본 나는 무언가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그녀에게는 음반 수록은 낯선 일은 아니지만 둘이서 하는 일이니까, 평소 책임감이 강한 츠유가 부담감을 느끼는 것이다!
과연, 아까부터 좁은 방 안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흔들리는 건 그것 때문이었나?
“그거 아니? 서양에서는 힘든 고난이 찾아오는 것을 ‘세상이 너에게 레몬을 준다면…’이라고 표현한다는 사실을?”
“…레몬이라구요?”
“응, 쓰고 떫고 신 과일이니까, 인생을 그런 쓰디쓴 맛에 비유를 하는 거지.”
그래서 삶에 관련된 유명한 격언이 이것이다.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삶이 너에게 레몬(역경)을 준다면 그것을 레모네이드로 만들어버려라.
“으음, 일본에도 그런 말이 있는데… 돌 위에서 삼 년…”
“그래서 츠유야, 만약 인생이 너에게 레몬을 준다면 넌 그걸로 뭘 할 거 같니?”
말장난을 활용한 내 물음에 잠시 진지하게 고민을 한 그녀가 답했다.
“삶이 저에게 레몬을 준다면, 저는 그걸 돌려줄 거 같아요.”
“오, 역경을 준 이들을 파괴한다는 거야? 역시 코모레비코페스?”
“아, 그것도 좋긴 한데… 인생에 공짜라는 건 없잖아요? 그러니까 반품 하는 거죠. 뭐.”
…그것도 좋긴 좋은 거구나.
그녀답다면 그녀답다고 할 수 있는 대답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럼 언니는요?”
“나? 글쎄다… 세상이 나에게 레몬을 준다면…”
“준다면…?”
“연어를 왕창 썬 다음에 레몬을 잔뜩 뿌려서 연어 회나 먹고 싶다.”
뇌에 떠오르는 대로 아무렇게나 말한 내 대답이 웃기게 들렸기 때문일까?
무언가 잔뜩 기대한 표정을 짓던 츠유는 웃음을 풉, 하고 터트렸다.
“푸하하, 언니 그게 뭐예요? 언니 머릿속에는 먹을 거밖에 없어요?”
“그치만 이제 진짜 우리 사택 사쿠라장의 인원이 과반수 넘겼으니 정말 코스트코 같은 거대한 매장에 가서 생필품이나 식자재 같은 거 크게 크게 사도 괜찮을 거 같아서…”
“맞다, 언니 우리 도대체 거기 언제 가볼 거예요? 맨날 가본다, 가본다 하지만 결국 일이 생겨서 못 갔잖아요?”
“으음, 그러게 말이다. 이번에 아예 날짜를 정해버리자, 이번 주말이라던가…”
인생에 대한 격언을 하나 읊다가 결국 먹을 걸로 이야기가 빠져버렸지만
뭐 어떠한가? 나는 이상할 정도로 과도한 긴장을 했던 츠유가 다시 미소를 짓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잠시 후
우리는 유튜브 영상에 올릴 PV 제작을 위해 녹음하기 위해 찾아왔다.
원래대로라면 CD에 사용된 그 음원을 사용해도 되지만, 유튜브 특별 영상용으로 따로 녹음해야 한다고 마미 선배가 부탁했기 때문에 나와 츠유는 간만에 회사의 스튜디오에 섰다.
익숙한 음원이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음을 잡고 백 번 넘게 불러서 익숙한 가사를 부르기 시작했다.
타이틀 곡인 ‘멸망한 세상 끝에서’는 아리아의 파트로 시작되는 곡이기 때문에 나는 힘차게 첫 소절을 불렀다.
그 이후 츠유가 노래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변이 일어났다.
“사라져버린 빛, 어둠이 몰려오고 나는 방황하기 시작해.”
호흡이 달라졌다.
발성이 달라졌다.
음정이 달라졌다.
악보대로, 악보의 음정과 박자대로 노래를 부르던 소녀가 아니라, 가사에 담긴 감정을 읽고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세상이 달라졌어, 당신이 없는 이 세상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 하늘과 땅이 팔레트처럼 엉망진창으로 뒤섞이기 시작했어.”
이 음악을 만든 마미 선배가 말하기를, 이 곡은 두 사람의 음악적 재능을 한계까지 쥐어짜고 싶어서 만든 노래라고 한다.
호흡을 잘못 잡으면 흐트러지기 일쑤였고, 사람의 귀를 속이는 박자음이 있다고 한다.
발성하다 보면 쉽게 음정이 흐트러진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츠유는 이전과 확연히 다른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었다.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고,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고 세상이 나에게 말했어.”
이건 전율이었다.
첫 소절을 부른 나를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녀는 진심으로 임하고 있었다.
아리아의 파트가 잡아먹힌다.
코모레비의 부드럽고 강인한 음정이, 깨끗한 성량으로 압도하는 노래는 아둔하고 나태한 구미호를 꾸짖는 채찍처럼 내 귀를 찔러왔다.
“그렇지만 굴하지 않아, 나 그대를 향하여 희미해진 등불을 들고 어두운 밤을 질주할 테니, 소란스러운 세상에 고요한 반역을 일으킬 테니까!”
파트를 부른 코모레비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대기실에서 긴장감을 가득 가진 채 부담스러워하던 소녀가 아니라
듀엣곡에서 순진한 얼굴로 나의 파트를 지워버리려고 하는 탐욕스러운 아티스트의 눈빛이었다.
마치 ‘언니 그것밖에 안 되어요?’ 하는 듯한 눈빛에 나는 시끄러운 연주 음악 속에서 두 눈을 감았다.
**
호흡을 가다듬는다.
혀에 새겨진 가사를 노래하기 위해 감정을 끌어올린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몸은 발성하기 위해서 근육을 움직인다.
이 순간만을 위해 단련해온 지식과 기술을 끌어올린다.
PV 제작을 위한 녹음이기에 당연히 수정과 어레인지가 들어가겠지만, 그것은 버튜버 이전에 아티스트로서 용납할 수 없었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모양인지, 츠유의 눈에는 열기가 감돈다.
실수 따위 하지 말자고
우리의 최선을 끌어내자고
혼을 불태우자고 말하는 듯한 뜨거운 시선을 느낀 내가 속으로 물었다.
‘언니 진짜 해버린다?’
따라올 수 있겠어?
그런 내 도발적인 시선을 알아차린 츠유가 입을 꼭 다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저 하늘을 올려다보아, 지금, 이 순간!”
지금은 세계를 무대로 삼는 한국의 거대한 엔터테인먼트에서 가요계 선생님들이 인정한 내 목소리가 거침없이 나온다.
단련된 몸과 성대에서 나오는 우렁찬 성량
평소 집에서는 낼 수 없는 커다란 목소리가 스테이지를 울린다.
“아무리 삶이 우리를 거세게 몰아붙이더라도, 나와 그대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해협을 만들더라도!”
마미 선배에게서 이 곡을 받고 부르면서 느낀 거지만
이 곡은 아이돌다운 곡이 아니다.
사람을 부드럽고 달콤하게 매료하는 곡보다는 사람의 감정을 지배하고, 압살하는 듯한 힘을 가진 노래다.
일종의 락에 가까운 노래라고 생각되는 이 곡은 부르는 이의 에너지를 모조리 끌어다 쓰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사랑으로 점화되어, 두려움을 불태운 이 심장은 끊임없이 나아갈 테니까!”
츠유의 파트를 들은 나는 깨달았다.
그녀는 저번의 음반 녹음에도 그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흔들림 없는 호흡이 탄탄한 발성을 지탱한다.
선라이즈의 가왕(?王)은 나라고 말하는 듯한 아이돌 코모레비 보다는 여왕 코모레비에 가까운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나는 속에서 무언가 치밀고 올랐다.
투쟁, 호승심, 라이벌 의식따위로 표현되는 감정이 말이다.
아리아의 목소리가 잡아 먹히는 것을 느낀 나는 화를 내듯 음을 더 끌어올렸다.
“고통에 몸이 잡아 먹혀도, 좌절에 무릎이 꺾일지라도, 나 그대에게 다가갈 거니까!”
그것은 여타 다른 팝 음악이라기보다는 뮤지컬의 노래에 가까운 강렬한 기세였다.
NG 사인이 내려올 법만 하지만, 이 녹음을 감독하고 있는 사람은 말리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는 나아가리라! 전진하리라!”
“그러니 기다려 줘, 세상의 끝에 있는 당신이여!”
그것은 조화로운 하모니 보다는 다툼 속에서 동조되어가는 군가(??)에 가까웠다.
평소의 나라면 곡의 밸런스를 생각해서 나의 색을 지우지만, 음반 녹음이 끝났음에도 끊임없이 이 곡을 갈고 닦은 그녀의 노력을 생각하면, 그녀의 도전에 응하는 게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삶은 떠도는 바닷속에 담긴 수수께끼가 담긴 유리병에 가까우니”
무엇보다도
도전을 피한다는 건 한국인의 피가 용납하지 않는다.
게임을 하면 이겨야 하고, 무언가를 먹는다면 화끈한 맛을 느껴야 하고, 노래를 부른다고 하면 이기지는 못해도 져서는 안 되는 법이니까
“나의 사랑 또한 보답받지 못할지라도, 당신에게 다가가는 것을 멈추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단언하건대
““그러니 부디 당신의 대답(사랑)을 알려줘!””
이것은 내 인생에 최고로 손꼽히는 이중창이었다.
**
안무가 섞이지 않는 녹음이었지만 6분간의 녹음을 위해 60시간의 열정을 때려 박은 나와 츠유는 의자에 주저앉아서 땀을 닦으면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랄까, 이거 용케 컷 안되고 진행되었네.”
“그러…그러게요…”
“근데 츠유야, 너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었으면서 왜 녹음하기 이전에 그렇게 긴장한 거야?”
나보다 일찍 데뷔하고 컨셉 자체를 완전히 아이돌로 잡은 그녀는 이미 선라이즈의 팬들 사이에서는 선라이즈의 음악 대장이라는 이미지가 존재했다.
그만큼 많은 다른 버튜버들과 듀엣을 불러 본 적이 많은 그녀는 분명히 듀엣이라는 면에 있어서는 나보다 경험이 많은 가수일 것이다.
“그거야, 언니랑 하는 건… 조금… 많이…다르니까요.”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다 못해, 다른 선라이즈 멤버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중성적인 매력이 흘러넘치는 평소의 코모레비는 어디 가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를 존경과 호감을 꾹꾹 눌러 담은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소녀가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존재 자체로 귀여운 언니와는 다른 귀여움이 존재했다.
나를 좋아하는 감정을 담는 시선을 보이는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아이돌의 길을 걸어가는… 내가 한때 포기했던 꿈을 걸어가는 소녀가 나를 동경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사람을 우쭐하게 만드는 감정과
내가 이런 시선을 받아도 되는 걸까? 하는 우려스러운 마음과
빛나기 위해 노력하는 소녀가 나를 이렇게 집중해주고 바라봐준다는 특이한 감정이 마음속에서 피어나게 한다.
“그러니?”
“네, 언니는 특별하니까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우리의 앨범을 담당하고 있는 마미 선배가 들어왔다.
“이 사고뭉치들.”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낄낄거리면서 들어온 선배는 악보를 돌돌 말아서 가볍게 우리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누가 보면 노래하는 거 가지고 싸우는 줄 알겠네요. 왜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어요?”
“음… 지기 싫다는 마음이 들었으니까요?”
“유나 언니라면 그럴 줄 알았는데, 츠유는 의외인데요? 평소에 얌전한 줄만 알았는데.”
“저도… 유나 언니에게 지기 싫으니까요.”
방금 전 둘이서 노래를 부르면서 나누었던 감정이 전달되었는지, 츠유의 마음 또한 나에게 지기 싫다고, 둘이서 부르는 음악에서 음색이 묻히기 싫다는 승부욕이 불타올랐다고 대답했다.
이 대답에 마미 선배의 허를 찌른 모양인지, 그녀는 호탕하게 푸하하 웃고는 나에게 말했다.
“이거 봐요, 유나 언니에게 옮았다니까요? 언니가 맨날 말하는 한국인 특유의 지기 싫어하는 어쩌고가 츠유한테 옮은 거 같은데.”
“뭐, 츠유는 원래 살짝 그런 면이 있었어. 얘가 마냥 얌전한 건 아니잖아?”
“그래도 뭐랄까, 유나화(化)되었다고 해야 할지.”
여타 수동적이고 얌전한 일본 여자아이와도 다르고
미우처럼 마냥 활발하기만 한 여자아이와도 다른, 의젓하다 못해 주체적이고, 자기주장이 또렷한 츠유는 확실히 이전보다 더욱 개성이 강해졌다.
특히 음악적으로 말이다.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닐까? 못 본 사이에 실력도 엄청나게 늘었고.”
“음, 솔직히 말해서 전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 두 사람의 음악을 담당해서 너무 좋았어요.”
“아무튼… 방금 녹음은 좋은 거지?”
“솔직히 말해서, 이전에 수록한 녹음 보다 이게 훨씬 좋아서 앨범 CD 다시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예요.”
하지만 아쉽게도 이미 음반은 모두 제작이 끝나고 각종 애니메이션 스토어나 음악 매장에 들어가기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이미 영상은 모두 제작되었고, PV에 삽입할 음악만 녹음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아무튼 나머지 곡들도 이 기세대로 부탁드립니다.”
“오케이! 츠유야 나머지도 힘내자!”
“네! 언니!”
그렇게 내 인생 첫 앨범이 츠유와 함께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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