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화 〉 231화.
* * *
와…
텔레비전에 내가 나온다.
물론 내가 아니라 아리아지만, 아무튼 아리아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이니까 텔레비전에 내가 나온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최근 들어서 화제에 오른 인물이죠? 하지만 그녀는 현실에 분명히 존재하나 실존하지는 않습니다!]
[네, 이 말만 듣고도 누구인지 떠오른 분들이 계시군요! 자, 그렇다면 등장해주세요! 혜성처럼 나타난 버츄얼 아이돌이자 인터넷 방송인인 버튜버 코모레비 씨와 아리아 씨입니다!]
평소 유명한 연예인이라던가, 화제의 인물들을 앉히는 좌석에는 의자 대신에 거대한 스크린 두 개 가 세팅되어 있었고 거기에 아리아와 코모레비가 등장한다.
유명한 만화가 선생님이 코스프레를 하고 나오거나, 유명한 성우분들을 분장시키고 등장시킨 적이 있는 포르그램이지만 TV 프로그램 속에 또 다른 화면이 세팅되고 거기에 버튜버가 등장하는 일은 방송사상 없던 일이라 그런지 살짝 어색해보였다.
그래도 버튜버들은 얼굴이 나오지 않고 얼굴을 인식해서 나오는 가상 캐릭터가 등장한 덕분에 얼굴이 굳어 있는 모습이 드러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옆에서 같이 촬영을 하던 츠유는 얼굴이 어찌나 하얗게 질리던지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런지 경력으로 보면 코모레비가 한참 위지만, 내 쪽이 나이가 많은 탓인지 내가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언니가 말했다.
“어이구 장하다 우리 유나, 드디어 일본 지상파에도 나오게 되네?”
“뭔가 한 때 아이돌이 되어서 방송에 나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이게 이렇게 이루어질 줄은 몰랐죠…”
아무튼 텔레비전 속의 나는 버튜버가 생소한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 후에는 우리들이 평소 하는 활동에 대해서 소개하고, 회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인터넷 방송인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로그램은 정말 무난하게 흘러갔고, 긴장이 풀린 코모레비와 아리아는 평소 합동 방송을 자주 하지 않았지만 워낙 오프라인에서 자주 떠들며 놀았던 사이였기 때문인지 예능이 루즈해지지 않게 오디오를 채워 나갔다.
하긴, 혼자서도 1만명이 흥미를 가지고 방송을 보게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게 우리인데, 남이 맛깔나게 차려둔 밥상의 밥을 먹지 못할 만큼 어리숙하지는 않았다.
인터넷 방송이건, 방송은 방송이니 말이다.
하물며 생방송도 아닌데 이 정도야 뭐… 하는 느낌으로 세트장의 촬영은 무난하게 흘러갔고, 메인 MC 또한 만족스러운 듯 매끄러운 진행을 이어나갔다.
나와 츠유는 딱히 무리해서 방송에 존재감을 과시하려고 하지 않았다.
버튜버는 물론이고 인터넷 방송인이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냥 ‘화면 속의 사람들이 사람처럼 웃고 떠드는구나’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정도에 만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화제의 곡인 앨범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MC의 요구에 못이기는 척 노래를 시원하게 하이라이트 부분만 부른 후 우리의 코너가 끝났다.
어찌 보면 선라이즈 본사에서 하는 스튜디오 촬영과 비슷한 분량이었지만, 이것은 엄연히 일본의 프로그램에 나오는 촬영이었고, 이런 촬영이 어떻게 방영될까 궁금해하던 나는 꽤나 많은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와, 이게 지상파군요”
“왜, 어떤 느낌이야?”
“30분의 재미있는 파트를 촬영하기 위해 1시간 30분을 녹화하는군요?”
즉 우리가 보는 예능 프로그램은 실전 3배 압축의 무언가였던 것이다.
현장의 MC와 촬영을 돕는 스태프와 게스트의 센스도 중요하지만, 녹화본을 이렇게 텐션을 올리면서 기승전결 깔끔히 편집을 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원래 업계의 프로란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선라이즈의 버튜버 대다수는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고 그것을 거의 매일 송출한다는 점을 본다면… 지상파의 출연은 딱히 힘든 일이 아니었다.
과도하게 나가면 알아서 컷 당하고, 수줍게 말하면 보정 효과를 넣어서 귀엽게 어필해주고 애매모호한 표현은 자막의 힘으로 커버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흐응, 그렇구나.”
“그래도 프로그램 기획이라던가 MC역할을 맡게 되면 어떻게 말을 이끌어내야할 지 좀 알 것 같네요.”
내가 나온 코너가 끝나자마자 흥미를 잃어버린 듯 휴대폰으로 고개를 돌린 나에 언니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나는 스케줄은 바쁘겠지만 업무 강도는 그렇게 높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기획하고 송출하고 분량을 걱정하고 재미를 신경쓰다가 여러 전문가들의 손길에 맡겨지니 확실히 부담이 적다는 생각을 숨길 수 없었다.
“그건 유나만의 생각일걸? 오타쿠들은 유나처럼 평범하게… 사람들과 그렇게 대화를 못 나누어.”
“에? 인터넷 방송인들인데요?”
“그래서 우리 회사의 버튜버들을 회사에서 만났을 때 애들이 사교적이든?”
“아.”
하긴 우리 회사의 버튜버느 방송 상에서는 폭군이었다가, 오프라인에서는 겁쟁이가 되는 인터넷 여포들이 많긴 했다.
“솔직히 코모레비 같은 경우가 특이한 케이스지, 그 아이는 원래부터 아이돌이 되어서 TV에 나오고 싶어했잖아? 다른 버튜버들은 이런 자리를 수락하지 않았을 걸?”
“하긴, 생각해보면 저 이전에도 다른 선배들에게도 제안이 제법 갔겠네요.”
“그래서 코이즈미 씨가 굉장히 반겼지… 너희들은 그, 뭐라해야할까.”
“인싸 캐릭터.”
“그래, 인싸 캐릭터잖아? 회사의 얼굴 마담으로는 이나리 선배가 있긴 한데 그 선배는 워낙 바쁘다 보니 드디어 우리 회사에도! 하는 느낌이 좀 있지.”
하긴 회사의 몸집이 어디 보통인가?
버튜버들의 근간이 인터넷 방송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여러 분야에 발을 담궈보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선라이즈의 스타덤비스무리하게 올라온 나와 츠유의 존재는 코이즈미 언니가 딱 원하던 인재상인 셈이었다.
“츠유가 굉장히 기뻐하겠네요.”
“왜, 유나 너는 그렇게 안 기쁘니?”
“저야 뭐… 방송이 더블이잖아요.”
그렇게 말한 나는 ‘아리아의 100만 구독자 달성을 축하하기 위한 팬 사이트’의 화면을 보여주었다.
전세계 사람들이 다양한 언어로 아리아에 대한 호감을 표하고, 어린 아이의 낙서부터 현역 프로의 그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팬아트들이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는, 그러니까 아리아는… 일본 안에서만 활동하기에 너무 아까운 구미호잖아요?”
나의 자신만만한 말을 들은 언니의 표정은 냉장고에서 막 꺼낸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릴 듯한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내 볼을 장난스럽게 잡아당겼다.
“으이구, 말이라도 못하면 밉지도 않지.”
“흐헤헤헤.”
갖고 놀기 좋은 밀가루 반죽처럼 내 얼굴을 제멋대로 잡아당긴 언니는 나의 얼굴을 놓아주며 헤드셋을 씌워주었다.
어서 방송하러 가라는 언니의 신호를 읽은 나는 바탕 화면에 대기 시켜 둔 화면 송출 프로그램을 키면서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좋은~아침 점심 저녁이야~ 여러분의 구미호, 아리아가 나타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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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지상파에서 나온 버튜버의 방송이 통짜로 번역되거나 하이라이트 영상이 재조명을 받게 되면서 버튜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후끈 달아올랐다.
그와 더불어 100만 구독자를 달성하고도 어영부영 넘어가려는 듯 제대로 티를 내지 않는 아리아가 돈으로 혼이 나는, 즉 돈쭐나는 영상이 올라오면서 그녀의 100만 구독자 달성이 커뮤니티 내부에 퍼지게 되었다.
“춤! 춤을 출게요! 200만 구독자를 달성하게 된다면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춤을 춰 줄게요!”
“뭐 그때까지 제 아바타가 완성되면 말이죠! 여러분들도 아시죠? 아직까지 제 GB 선배님들은 3D 모델 아바타를 다 받지 못하셨다는 거?”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제발 도네이션 멈춰주세요! 얘들아 돈을 아껴줘!’라고 시청자들에게 애걸복걸 했던 구미호는 100만 달성 기념 감사 방송을 따로 챙기지 않는 팬들의 아쉬운 소리에 그런 대처를 했다.
그 후 산더미처럼 쌓였던 슈퍼챗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그녀는 앞으로의 활동 방침을 밝혔다.
버튜버가 되면 가장 도전해보고 싶었던 다른 선배들과의 합동 방송, 음반 발매의 꿈을 이루었으니 당분간 새로운 것에 도전을 많이 해보고 싶다고 말한 그녀는 당분간 연습 방송으로 멤버 한정으로 ASMR 방송을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 의외에도 자신과 합동 방송을 하고 싶어하는 선배들과 꾸준히 방송을 이어나가고
해외에 있는 선배들과 기가막힌 기획을 계획했다고 밝혔다.
그랬다.
TV에 나오건 말건 아리아는 여전히 아리아였다.
여전히 활기차게 방송을 하고, 영어로 대화를 하며 일본어로 자막을 스스로 달며
특별한 위치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청자들을 놀리다가도, 역으로 놀림당하고, 사소한 개그에도 웃어주고 평범하게 대하는 그 모습은 인기 급상승 1위라던가, 성공한 앨범을 낸 아티스트라던가, 일본의 국민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다던가 하는 것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 말이다.
때문에 시청자들은 안심했다.
어지간히 성공한 인터넷 방송인들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교만한 생각을 가지면서 달라지는 모습을 보아 온 사람들은 변함없이 자신의 성공을 은근슬쩍 자랑하면서도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일발 개그쇼를 지켜봤다.
언제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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