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3화 〉 232화.
* * *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 흑백의 빗속에서 세상속에 나는 삼켜져 가.”
선라이즈는 물론이고 인터넷 방송인이 낸 앨범 중에서 가장 성공한 앨범인 [푸른 혜성에 빌어]는 총 여섯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듀엣으로 부르는 두 곡과 코모레비가 부르는 두 곡, 아리아가 부르는 두 곡으로 나뉘어져 있다.
“기나긴 여정 속, 나침반을 잃어버린 여행자처럼 나는 끊임없이 떠돌아.”
멸망해가는 세상 속에서 세상 끝으로 사라진 사랑하는 이를 찾기 위한 이야기
코모레비는 세상 끝에서 종말 속에서 그리워하는 이를 기다리는 연모(?)의 노래를
아리아는 세상 끝을 향해 묵묵하게 나아가면서 희망의 노래를 부른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반드시 잿속에서 일어나야 하는 법이니.”
높은 음으로 사랑을 찾고 낮은 음으로 이별의 슬픔을 노래하던 곡은 담담한 어조로 마무리 되었다.
아리아의 팬들이 직접 붙이기를
‘혼자서 2인 역할 해서 저작권 지킨 곡’
‘현실에서 이 곡 부르면 100%아리아임’
‘아리아 인증곡’아라 불린 ‘지평선을 걷다’가 마무리됨과 동시에 앨범의 모든 곡을 완벽하게 노래한 버튜버에게 성대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와아아! 이게 그 소문으로 듣던 곡이군요!”
음악이 끝나고 박수갈채가 끝나갈 무렵 아리아를 초대한 음악 방송 코너의 MC가 호들갑을 떨었다.
몇 번 일본의 방송에 출연해서 이런 반응에 익숙한 아리아는 화면 속에서 행복한 듯 두 눈을 귀엽게 감으면서 인사를 올렸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선라이즈의 GB 소속의 버튜버, 구미호 아리아였습니다.”
“마치 코로나로 인해서 말라가는 현대 사회에 굳건하게 사랑을 쟁취하라는 의미 담긴 곡! 요즘 음악들이 다양한 형태로 나오고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거부감 없이 전달 할 수 있다니, 아리아 씨의 가창력은 정말 대단하네요!”
“좋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송 시작 전에는 ‘그게 뭔데 씹덕아’하는 눈빛으로 아리아를 바라보던 이들이 확연하게 바뀐 것을 본 MC는 버튜버를 초대한다는 터무니없는 기획서를 쓴 PD의 말이 영 틀린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마주 고개를 숙였다.
“마치 아리아 씨를 위해 제작한 이 곡을 듣다 보니 생각한건데요, 아리아 씨는 이대로 가수로 데뷔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저는 선라이즈 소속의 아이돌로서, 이미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도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네요. 이미 다른 음악가 선배들이 온라인으로 활동을 하고 계신 덕분에 저도 이런 선배님들의 흐름에 올라타서 활동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뭐랄까나, 아리아 씨의 이 끝내주는 음악을 공기를 타고 직접 들었으면 좋았겠는데 아쉽겠네요.”
아리아에게 오프라인 데뷔를 방송 전 부터 넌저시 제의하던 탓인지 아리아의 표정은 알 수 없게 변했다.
어찌보면 순간 표정관리에 실패했다고 생각되는 순간이지만, 선라이즈의 아바타가 정교하다고는 하지만. 눈썹이 꿈틀대는 것 까지는 표현하지 않으니 방송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결국 아리아가 내세운 것은 아이돌 실드였다.
“네, 아이돌의 프라이버시는 중요하니까요. 그것은 버튜얼이건 리얼이건 공통된 규칙같아요.”
방송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팬들은 아리아의 말에 ‘선라이즈의 아이돌이 무슨 아이돌이냐! 개그맨들이지!’ 라는 말을 입밖으로 내려던 사람들은 겨우 참았다.
이미 이런 전달사항을 들었던 MC는 생방송 촬영 직전에 인기 있는 버튜버 영상그러니까, 카린이 엄마엄마 거라면서 아기 흉내를 내며 멤버들의 멘탈을 초토화시키는 영상을 보고 온 MC의 안면근육이 복잡하게 뒤틀렸다.
“그, 그렇군요.”
“앞으로도 선라이즈의 버튜버들의 활동, 잘 지켜봐주세요.”
관객들을 압살한 음악 실력과 대비되는, 말과 행동에서 철저하게 사람들을 매료시키기 위해 훈련한듯한 손동작과 말투로 일본 대중이 좋아하는 ‘귀여운 여성’의 이미지 어필을 제대로 한 아리아는 상큼한 인사와 함께 사라졌다.
이전부터 버튜버에 대한 언급이 게임과 만화 미디어에서 다루어졌지만, 이번 기회로 처음으로 ‘사회현상’이 아닌 ‘아티스트’로 음악 방송국에 등장한 아리아와 코모레비는 TV아사히의 뮤직 스테이션의 출연을 마지막으로 공중파 순회를 마쳤다.
이것을 가장 먼저 체감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오늘 우리 반 인싸가 나에게 말건 썰 푼다…feat.코모레비
여동생이 맨날 나 이상한 음악만 듣는다고 싫어할 줄 알았는데, 아리아 음악으로 대동단결했다 ㅠㅠ
이상한 일본 음악이 아니라, 아리아의 곡인 ‘방랑자’는 영어 100%의 팝송이라고 오타쿠 취급 피한 썰 품ㅋㅋ
다름아닌 아리아와 코모레비의 팬들이었다.
음지라고 불리는 서브컬쳐, 즉 오타쿠 영역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양지로 올라오면서 대중 문화로서 향유할 수 있게 된 아리아와 코모레비의 음악은 그녀들의 조용한 팬들에게 관심을 가게 했다.
물론 그녀들이 꾸준히 방송에 나타나지 않는 이상 반짝 하고 사라질 관심이었겠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타인에게 주목 받을 일이 적은 팬들이 주목 받는 건 꽤나 흥분되는 일이었는지 온갖 이야기가 올라왔다.
그 중에는 당연히 꽤 많은 조작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야기는 ‘아리아와 코모레비에게 감사한다’라는 식의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리고 그렇게 유튜브의 선택을 타고, 입소문과 소문을 타서 어찌 보면 인터넷 방송인, 그것도 버튜버로는 달성하기 힘들만한 음악 방송 출연을 달성한 두 사람은…
“드, 드디어 끝이다.”
“수, 수고하셨어요….”
선라이즈의 사무실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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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여행을 갈 때 반드시 정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이동 방식에 대한 타협이다.
하루 1만보를 꾸준히 걷는 사람과, 일주일에5천보를 걸을까말까 한 사람과의 여행은 당연히 파국으로 치닫는다.
발이 불어터졌는데도, 여행을 같이 온 사람이 너무 신나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걸어주는 기분… 내 기분이 딱 이랬다.
“언니 그래도 뮤직 스테이션까지… 언니까지 출연을 하다니 저는…저는….”
서로 각자 다른 방송국에서 음악 방송을 마친 우리는 오후 9시 퇴근을 하는 대신에 사무실로 돌아와서 업무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체력에 정말로, 진심으로 자신이 있고 자부심마저 있었던 나지만 이동과 노래, 그 와중에 30분~1시간 단위의 짧은 방송을 이어나간 나는 너덜너덜 해졌다.
그런 나와 대비적으로, 어릴 적부터 이런 삶을 꿈꿔 온 코모레비는…
“언니언니! 이거 봐요! 저희 검색 순위 올랐어요!”
“언니! 세상에 타모리 상이 굉장하다고 말해줬어요! 꺅!”
“언니언니언니! 우리 이러다가 라이브, 라이브를 하게 되는 게!”
그야말로 첫 눈을 본 강아지 꼴이었다.
왜,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따라갈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게 딱 지금이었다.
연습생 생활을 그만두며 직접 아이돌이 되는 길을 포기한 나와 다르게, 츠유에게 있어서 코모레비로 활동하는 건 자신의 꿈을 직접 이루어내고 있는 과정이니 말이다.
장담하건데, 그녀는 지금 자신의 어릴 적 꿈을 이루고 있는 행복한 순간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언니…”
“츠유야…”
“미안해요, 저만, 저만 너무 신났죠?”
평소라면 머리를 쓰다듬어줄 귀여운 츠유의 반응이었지만 완벽하게 지친 나는 그녀의 손 위에 내 손을 살포시 올려두는 것으로 내 마음을 대변했다.
“하지만 네가 꿈꿔왔던거잖아. 유리구두를 되찾은 신데렐라가 행복하게 춤추는 걸 뭐라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
그와 동시에 나는 걱정했다.
그 꿈은 곧 깨어나게 된다고 말하기에는… 내 입으로는 조금 미안했다.
아마 그녀가 다른 아이돌이었다면, 이제 예능에 출연을 하고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을 하면서 방송 분량을 하며 인지도를 쌓다가 라이브를 하는 식으로 한 명의 아티스트로 성립할 것이었다.
만약 투자를 받아 낼 프로덕션과 시스템 등등이 준비되어있었다면 말이다.
성공이 더 큰 성공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A급 스타가 되는 레일에 올라탈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버튜버가 아닌, 진짜 아이돌이었으면 말이다.
“츠유야…”
“아 그래도 진짜 아이돌처럼 사는 거 정말 보통 힘든 일이 아니네요. 저희는 그래도 악수회나 촬영회 같은 거 없어서 좀 편하긴 하네요.”
“뭐, 그런 편이겠지?”
“정말 좋은 체험이었어요. 제가 동경했던 삶이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 게 참 신기했어요.”
좋은 체험이라…
그 말을 들은 나는 쓰게 웃었다.
아마 그녀도 인터넷 신문의 메인 홈페이지에 올라간다거나, 검색량이 늘어난다는 뉴스를 접한다거나, TV에 지난 프로그램을 재방송 하는 코너에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언니는 이제 일정 다 끝났으니 어떠실거에요?”
“나? 나는 일단 클레하고 합동 방송을 당분간 할 거 같아. 가끔씩 유리아 언니 껴서 3인 조합으로 다시 말이야.”
이미 기획된 프로그램이 있었다.
성녀와 마왕, 그리고 구미호라는 판타지 조합으로 이것저것 토크쇼를 하는 유닛을 짜자고 이를 갈고 있었던 미우가 나와 나에 언니를 잡아먹을듯한 기세로 ‘같이 하자! 무조건!’이라는 말과 함께 추천했으니 말이다.
“쳇, 뭐에요 그게? 저랑 계~속 활동해줄 줄 알았는데.”
“유감이지만 언니는 이런 삶을 계속 이어나갔다가는, 해외 팬들에게 너무 미안해 죽을 거 같아서 무리야 무리.”
내심 일본의 공중파 진출을 노리는 츠유와 다르게 나는 인터넷 방송이야말로 내 자질을 온건히 살리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기에 나는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무엇보다도, 지금 일본의 지상 방송에 나온다고 해서 외국 쪽 방송을 나흘 간 쉰 나에게 있어서 이 가혹한 일정이 끝난 후 돌아가야 하는 곳은 일본 방송국이나 회사 스튜디오가 아닌, 나에 언니 옆자리의 내 컴퓨터와 내 팬들의 곁이었다.
츠유는 살짝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이내 안색을 회복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쿨한 여자다.
하긴 미성년자 나이에 도쿄로 홀로 올라와서 아이돌을 하겠다고 활동하던 츠유였는데, 내가 빠진다고 그녀의 꿈이 꺾일리 없지 않는가?
괜한 걱정을 한거 같아서 나는 볼을 긁적였다.
“두 사람 모두 고생! 고생 많았어!”
피로로 나가 떨어진 두 사람이 있던 방에 코이즈미 언니가 들어왔다.
손에는 케이크와 샴페인을 든 채 들어온 그녀는 우리가 뻗어있건 말건 혼자 세팅을 마치고는 샴페인을 터트렸다.
“두 사람 그 동안 고생 많았어! 특히 유나! 네가 영어로 게스트들 입 쩍 벌여지게 만든 그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거야!”
“코이즈미 언니는 방송국 사람들을 싫어하는 건가요 좋아하는 건가요…”
“인터넷 방송인 하는 애들은 인생 조지고 운 좋게 목소리 가지고 뜬 행운아들이 아니냐!라고 지껄이 개자식의 표정이 일그러진 모습을 보는 건 즐거웠거든.”
“저런.”
그러고보니 우리의 방송 일정에는 항상 환대만 존재한 건 아니었다.
특히 ‘존재하지도 않는 가짜’ 라던가(이런 소리에 대해서는 캐릭터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도로 되받아쳤다)
예쁜 미소녀 안에 들어간 존재는 못생긴 돼지들이라던가(이 말을 한 못생긴 남자 게스트에게는 거울을 보라고 말했다)
학교 생활을 대충 한 날라리라던가(언니가 말한 영어 토크와 모 대학 입학 허가서를 찍은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었다)
하는 말들을 하면서 우리를 깎아내리려고 했던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뭐 진짜 악의가 있어서 그랬다기 보다는, 이런 공격적인 토크를 통해서 화제를 만드는 게 이런 방송국의 묘미 아니겠냐? 라는 생각을 했던 나와
‘고작 이정도로 나를 깎아내리려고 했던거야?’하는 표정을 지은 츠유는 몇 개의 악플들을 달아주는 것으로(그도 그럴게, 버튜버 활동을 하다보면 기상천외한 악플들이 많이 달린다)이쪽 일도 만만치 않다고 강하게 어필 해주었다.
회사 차원에서, 혹은 버라이어티 쇼의 탐방으로 버튜버를 알아보는 시간들이 있었긴 했지만 이렇게 공중파에서 버튜버들이 직접 등장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 우리들이 하는 말 하나 하나가 ‘아 버튜버들이란 이런 애들이구나~’ 하는 흐름이 잡혔다.
어찌보면, 최근 들어서 예능 쇼 출연을 시작하게 된 이나리 선배와 더불어 나와 츠유는 이쪽 계열의 선구자같은 포지션이긴 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확실히 우리의 성취가 대단하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무튼 두 사람 덕분에 우리 선라이즈는 물론이고, 다른 버튜버들에게도 사회적인 인식이 조금 달라졌으면 좋겠네.
특히 운이 좋아서 흐름에 탄 날라리라는 표현은, 정말 받아들일 수 없었거든.”
“아무래도 그렇죠.”
“맞아요. 다른 애들이 얼마나 노력하는데 말이죠…”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샴페인으로 건배를 했다.
차갑고 달콤한 알콜이 들어감과 동시에 지치고 예민해진 뇌가 말랑말랑해진 것을 느낀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 이제 드디어 이 기나긴 방송국 일정이 끝났구나!
길기는 해도 앨범 이후 10일 정도의 일정이었긴 했지만…
“그래서 어느 방송국에서는 버튜버들이 꽤나 시청률을 벌었다고 판단했나 봐.
유명한 성우 …씨하고 버튜버하고 코너를 개설해서 인터넷의 유명인들을 모아서 토크쇼를 하는 프로그램을 신설했다고 해.”
애초에 일본은 애니메이션 산업에 일하는 사람들이 공중파에 나와서 유명인이 되는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잠깐만, 뭐라고?
버튜버?
“당연히 현재 지상파에 출연해서 온갖 주목을 끌고 있는 두 사람에게도 제의가 들어왔지.”
그렇게 말한 언니는 술을 들이켜 붉어진 얼굴로 우리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금요일 심야 시간대의 방송이라
쟁쟁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끝나고, 착한 아이들은 일찍 잘 시간이지만
오타쿠들이 가장 뇌가 활발하게 돌아간다는 밤 12시의 시간이라…
인선과 스태프, 나조차도 이름을 들어본 PD가 있었다.
그야말로 이건…
“어떻게 할래?”
언니의 손에 들린 종이는 흡사 금으로 만들어진 티켓처럼 보였다.
샐럽이라는 이름의 금빛 티켓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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