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5화 〉 234화.
* * *
“유나 ASMR 방송 압수.”
“맞아요. 언니는 ASMR 하지 마요.”
드디어 아리아 ‘형’ 이라는 단어가 떨어진 다음 날, 회사에 볼일이 있어 잠시 출근한 후에 집으로 돌아가니 나를 반겨주는 두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나저나 나에 언니는 몰라도, 미우 너는 왜 자연스럽게 여기에 있냐.
“뭐에요 그게.”
“아무튼 마왕군의 이름으로 금지한다.”
나에 언니는 치사하게 우리가 새로 짠 유닛, 마왕군 연합의 이름으로 금지했고.
미우는...
“유나 언니의 그런 섹시하고 야한 목소리를 인터넷에 공개하는 건 풍기문란이에요.”
라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ASMR 방송을 막았다.
참 기가 막힌 일이겠지만... 오늘 회사에서도 ‘아리아의 ASMR 방송 중, 성숙하고 유혹적인 목소리로는 하지 말죠.’ 라는 이야기가 나왔기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요시노 스승님... 죄송합니다.
시대가 아직 제 목소리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아요.
속으로 스승님에게 안타까움을 표현한 나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파에 낮잠을 자듯 웅크리고 있는 나에 언니와, 그 언니에게 무릎 배게를 해주면서 소파에서 유튜브를 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내 옛 추억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아무튼, 오늘부터 옛날처럼 3인으로 돌아가는거네요?”
“옛날이라... 라고는 해도 그때는 언니가 매니저 시절에...”
“미우 너는 고3이었고... 나에 언니는 하루 6시간을 방송하던 시절이긴 했네?”
“그리고... 나는 지금처럼 해가 뜰 때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돌이켜보면 먼 세월같아보이면서도 먼 세월이 아닌 것 같다.
자퇴를 하고 나서 과연 이 길이 맞는가? 하는 의심도 제법 했었고,
메이드 라의 아바타를 받고 공식 방송을 맡기 전까지는 언젠가 이 일을 하다가 그만 둬야지... 하는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게요... 생각해보면 겨우 작년이네요.”
“하지만, 지금은... 흐아암... 모두가 잘 나가는 버튜버가 되었는걸.”
정말 내가 오기 전까지 낮잠을 자고 있었던 것처럼 언니는 하품을 하며 그렇게 말했다.
꾸벅꾸벅 조는 언니의 모습이 정말 옛날과도 같았기에 나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언니가 조금 본격적으로 방송 활동에 나선게... 아마 저희가 했었던... 가챠 방송이었죠?”
“윽, 그 이야기는 꺼내지 마 제발.”
가챠!
도부!
한정!
세 단어가 내 머릿속을 바늘로 쑤시듯 박혔다.
정말이지, 이 세상에 온갖 게임은 전부 다 잘하지는 못할지라도 못하는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가챠라니? 3%확률에 하루 식비를 투자한다니?
정말 믿을 수 없는 세상이었고, 나는 저번 원신이라는 게임 방송에 시원하게 가챠를 말아먹은 이후 나에게 모바일 게임 광고를 맡기는 용감한 광고주는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 마왕군 연합의 첫 방송은...”
“아, 제발...”
“유나 언니가 좋아하고 사랑해 머지않는 가챠 방송이랍니다!”
미웠다.
세상이 미웠다!
아리아니키(아리아 형)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를 겨우 벗어던지나 했더니
‘불운 여우’내지는 ‘재앙의 구미호’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가 나에게 붙을 예정이라니!
하지만 기념적으로, 그리고 캐릭터적으로도 결코 나쁘지 않는 조합이 아니었다.
운 돼지 클레스타인과 대박과 쪽박의 대비가 확실한 유리아,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불운을 껴안은 아리아
성녀와 마왕과 구미호라는, 어찌 보면 판타지 장르적으로도 한 계통의 끄트머리에 있는 세 사람의 첫 합동 방송으로 하는 뽑기 방송은 결코 나쁘지가 않았다.
“으어어어...”
“유나가 이럴 때 말했지... 꼬우면 뭐다...?”
“나에 언니 미워...”
이전, 나에 언니의 게임 실력을 놀릴 때 썼던 말이 그대로 돌아오는 것을 들은 나는 눈을 또다시 감았다.
망할, 일본 사회는 어쩌자고 이런 가챠라는 잘못된 문화를 받아들이고 말았단말인가?
통탄스럽다.
**
유리아는 메이드를 만나기 이전에는 합동 방송을 자주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의 그녀를 본다면 믿을 수 없겠지만, 초창기의 그녀는 굉장히 낯을 가리는 사람이었고, 방송 시간 또한 새벽 1시에 켜고 아침까지 밤샘 게임을 하거나, 스케쥴을 인터넷에 올리기는 하지만 워낙 제멋대로였던 버튜버였기 때문에 약속을 잡기 꺼려지는 사람이었다.
메이드를 만나고 나서 엄청나게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에 비해서 합동방송을 진행한 인원이 적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유리아의 합동 방송의 제1의 게스트는 당연히 클레스타인이었다.
메이드를 만나기 이전부터 ‘친한 친구 텐션’을 보인 두 사람은 여전히 죽이 잘맞는 마계 공주와 성녀였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 어느사이에 등장한 메이드 라는, 어린 두 사람을 돌보는 보호자이기도 하면서 줄곧 폭주하는 두 사람을 잘 달래주다가도, 분위기에 휩쓸려서 같이 폭주하는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아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는 트리오가 다시 결합했다는 말에 그들의 오랜 팬들은 커다란 기대감을 보였다.
그리고 대망의 합동 방송일, 익숙한 두 모습과 낯선 한 모습이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가운데에 위치한 클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야, 이 조합은 정말 오랜만인데?”
“유감스럽지만 클레스타인 선배님, 저희는 초면인데요?”
“에이, 알거 다 알면서 왜 그래요? 아리아 씨. 우리 공주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려나?”
분명히 클레스타인과 아리아의 만남은 처음이다.
하지만 처음이지만 처음이 아닌 듯,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다 알고있는 캐릭터 조합에 클레스타인은 그녀를 ‘후배’라고 부르지 않았다.
왜냐면 성녀에게 있어서 메이드는 듬직한 방송 도우미였으니 말이다.
“으음, 그리우면서도 낯선 그대.”
그리우면서도 낯선 그대라, 마치 환생을 한 애인에게 하는 표현처럼 달콤한 표현이었다.
메이드인걸 알면서도 그것을 부정하려는 척 하는 아리아의 모습에 정말 걸맞다 못해 심장이 두근해지는 표현이였기에 채팅창은 물론이고 클레 특유의 ‘어머어머어머’ 가 연이어 나왔다.
ㅋㅋㅋㅋ그리웠다. 이 조합
찐따 공주님 돌보던 메이드는 어디 가고, 이제 셋이서 친구처럼 지내내
당시에는 멋진 메이드 누나였는데, 지금은 사람을 홀리는 폭스가 되어서 나오네
이거 그거지, 자신을 돌봐주던 듬직한 집사가 알고보니 초절정 미녀였다는거ㅋㅋ
현실은 언제나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일이 일어나는 법이지ㅋㅋ
때문에 방송은 첫 합동방송이 있는 인원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편안하게 흘러갔다.
어찌나 편안한 분위기였냐면, 본래 방송은 뽑기 방송이었지만 옛날 생각에 빠진 세 버튜버와 시청자들이 분위기에 타서 그녀들의 잡담 방송에 길게 빠져들어갔다.
“그러고보니 수행은 어떠셨나요?”
“수행이요? 말도마요. 정말이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두가 다 아는 대학 공부를 위해 방송을 휴방하고 입시 공부를 한 클레의 이야기.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니 내가 기르는 여우가 방송에 출연한거 있지? 얼마나 뿌듯한지…”
“저, 저 유리아님에게 길러지고 있었어요!?”
“공주님! 저 성녀 클레스타인은 구미호의 자유를 억압하는 당신의 폭거를 강력하게 규탄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아리아를 자기 펫처럼 취급하기 시작한 유리아와, 아리아가 지상파에 나온 이야기를 풀면서 옥신각신하는 이야기
“그나저나 그립네요~ 예전에 아리아와 함께 사랑의 노래 강도단을 했을 때 아리아의 노래 실력을 알고 있었는데…”
“맞아요. 그랬었죠. 그때 카린 씨 방에 찾아가서…”
“앗, 방금 인정했죠? 아리아 씨 방금 인정한거죠?”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버터를 가르는 칼처럼 파고든 유도신문에 메이드 였던 시절의 일을 긍정해버리고 만 아리아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낚아채는 클레의 치밀한 설계가 들어간 이야기까지
아 미쳤다 ㅋㅋㅋㅋ
걸려버렸냐고 ㅋㅋㅋ
부드러운 일상 추억 회상하면서 이런거 하지 말라고 ㅋㅋ
아리아 얼굴 빨개진다
야 우냐? 야 우냐?
유리아 웃다가 사레들린 거 봐 미치겠네 ㅋㅋㅋ
조용하고 얌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톡 쏘는 말과 표현이 강력해서 잊혀지기 힘든 유리아
얼핏보면 완벽해보이고 실제로도 다재다능한 끼가 많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알고보면 허당 기질이 강력한 아리아
특유의 입담과 방송 설계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가지고 100만 구독자를 달성할 만큼 말을 잘하고 공기를 잘 읽는 클레스타인
이 세사람의 조합은 듣고만 있어도 즐거운 분위기를 제공했다.
딱히 자극적인 주제를 들고 오지 않더라도, 대화 기술이 좋고 사이가 좋은 사람들이 아무런 목적없이 이야기를 떠들기만 해도 재미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런 느낌의 방송이었다.
그래, 마치 리미트가 없는 일상 애니메이션처럼 말이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매력적인 캐릭터 셋이서 웃고 떠드는 방송은 듣고만 있어도 일상의 고단함을 씻겨주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도 꿈같은 시간은 무한히 흘러가지 않고, 방송 분량을 챙기는 데 만큼은 아주 확실한 아리아와 클레의 말과 함께 오늘의 콘텐츠가 공개 되었다.
“3명인 만큼, 3이라는 숫자가 의미있는 게임을 준비했답니다.”
“하아…”
“오, 이 게임 나 예전에 만들어둔 계정이 있어.”
잠시 후
방송 화면이 바뀌면서 세 사람의 모니터가 분할되었다.
그리고 게임의 로딩이 끝나며 등장한 게임에, 이 방의 시청자들그러니까, 대다수의 오타쿠들은 모두 ‘아!’ 하는 반응을 보였다.
[프린세스 커넥트! 리 다이브!]
신격의 바하무트로 시작해서 그랑블루 판타지,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시리즈로 이어지는 성공행진은 프린세스 커넥트 리다이브로 이어졌고, 매출 순위에 상위권을 꾸준히 출석하는 사이게임즈의 작품이다.
매출 순위만큼이나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2차창작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회사차원에서도 많은 이벤트를 열어주는 만큼 트렌드한 ‘핫’한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한 프린세스 커넥트를 가챠 게임 중독이라 말하는 클레스타인이 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다행히 이번에 새로 출연하는 캐릭터 홍보 차원에서 사이게임즈에서 광고를 따올 수 있었어요. 거기에 저의 마음이 조금 담긴 이 새로운 뉴비 계정을 아리아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부드럽고 상냥하게, 말 그대로 성녀다운 말로 가챠를 권장하는 그 모습은 따스한 성녀보다는 그냥 사악한 악마 그 자체였다.
“으, 제발… 저에게 이런 거 권유하지 말아주세요 제발…”
“하지만, 아리아가 있으면 불운이 아리에에게 몰려가는 걸?”
“유리아님! 그게 뭐에요! 저를 액막이로 쓰겠다는 건가요?”
“응? 안돼?”
ㅋㅋㅋㅋㅋ액막이 여우 ㅋㅋㅋㅋ
구미호 취급이 너무하네 ㅋㅋㅋㅋ
우리들도 돌리자 ㅋㅋㅋ 진짜 개궁금하네
우리의 불운까지 가져가 줘요 아리아님!
유리아의 취급이 은근히 너무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시청자들과 인터넷 방송인의 관계는 항상 우호적이지 않는 법, 시청자들은 이에 가세해서 아리아의 유명한 밈인 ‘불운 여우’의 기세에 탑승했다.
부드러운 토크 방송이 지나가고, 어느덧 본격적으로 가챠 방송이 시작되었다.
잠시 후…
[멋진 동료들이 도착했어요!]
“동료들이 모두 돌이 되었다고! 뭐가 멋진 동료들이 들어온건데!!!”
몇 번 말한 적 있지만 아리아는 상당히 리액션이 많았다.
그도 그럴게, 다른 닳고닳은 오타쿠들과 다르게 그녀는 덕질 경력이 그렇게 길지 않았고, 다른 오타쿠들은 진부한 연출이네, 거기서 거기네 하는 클리셰에 진심으로 환호를 했다.
가챠를 돌리기 위한 튜토리얼에서 조차 ‘이건 신선하네요’ 라던가 ‘작화가 끝내주네요?’라는 말을 연이어 말하고, 스토리 연출을 위해 고작화의 애니메이션을 상당히 갈아넣은 방식 덕분에 뉴비 흡입기라 불리는 구간을 그 어떤 스트리머보다 재밌고 즐겁게 했다.
그야말로 고인물들이 환장하는 뉴비의 반응 덕분에 리세마라를 수십, 수백번 한 사람들이 질리게 본 광경조차 즐기면서 플레이하는 아리아의 모습은 그야말로 보는 맛이 넘쳤다.
그리고 대망의 가챠 파트에서는… 당연히 망했다!
도부 도부 도부 도부 도부
어떻게 레페 기간인데 80연이 노쓰알임?
아니 리미티드도 아니고, 그냥 통상도 안뜬다고?
이게 말이 됨?
조작의심이 된다 ㅋㅋㅋ
아니 누가 도부를 조작하냐고 진짜 ㅋㅋㅋㅋ
아리아의 말대로, 멋진 동료들이 모두 돌이 되었다.
보던 사람들이 ‘농담아니지? 조작 아니지?’ 하는반응이 절로 나왔다.
“오, 예! 드디어 프린세스 페코린느다!!”
“꺅! 네네카와 프린세스 코코로가 동시에 떴어!”
“뭐!? 유리아 언니 그거 거짓말이지?”
그와 대비되듯, 정말로 아리아가 액막이를 제대로 해주는 모양인지 리미티드 캐릭터를 뽑은 클레와 동시에 3성이 나오는 ‘기만’을 달성한 유리아는 평소 듣기 힘든 높은 톤의 비명을 내질렀다.
와 저도 드디어 뽑고 싶었던 크리스티나 뽑았습니다 ㅠㅠ 감사합니다 아리아님
저도 방송보고 30연 돌리니 뉴캐 먹었습니다 ^^ 감사요.
방송보고 가챠하니 내 운도 올라가나보네 ㅋㅋㅋㅋㅋ 정가치는 동안 신캐 셋이나 먹음ㅋㅋㅋ
단챠에 3성뜸ㅋㅋ 오이오이 실화냐고 ㅋㅋㅋ
아는 사람들은 아는 그 조합 유리아와 클레, 그리고 메이드 라…였던 아리아가 모인 방송은 그녀들의 팬들을 추억에 잠기게 할 토크로 시작해서 방송주도 만족할만한 아리아의 플레이 반응과 화려한 무지개들이 터지는 가챠 뽑기로 이어졌다.
뜨거운 시청자들의 반응과 열렬한 버튜버의 반응을 보고 있자면 이번 방송은 축제였다.
“니들 다 미워!”
한 사람… 아니 한 여우를 빼고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