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36화 (236/307)

〈 236화 〉 235화.

* * *

아아

결국 일이 이렇게 되는가?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런 제안을 받았을 때부터, 그 글을 읽었을 때부터 일이 이렇게 흘러갈 것이라고 나는 정말로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그래, 정해진 운명이었다.

나에게 운명이란 두 가지다.

바꿀 수 있는 운명이 있고, 다른 하나는 결코 바꿀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게 있었다.

내 모든 노력과 시도가 허망하게 조각나고

내 모든 의지와 희망이 폭풍속의 등불처럼 꺼져버린다.

나는 결코 보고싶지 않았던 것을 보고 말았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다.

내가 누군가와 소통을 하는 이상… 이건 피할 수 없었다…

정말이다.

트위터 인시 태그

8위

불운여우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시청자들이 밉다! 너무나도 밉다!

증오스럽다!

이 가증스러운 오타쿠들!

남의 불운을 틈타서 자신의 행복을 누리는 사디스트 녀석들!

어떻게 이딴 해쉬태그가 일본에서 8위를 할 수 있지?

하다못해 3인 유닛 명인 #마왕군연합 같은 멋진 해시태그가 있는데도!

어째서 다 재쳐두고 불운 여우가 트랜드지?

어째서??

왜?

떨리는 손으로 태그를 눌러보자 그곳에는 내 방송 화면을 보이게 촬영 한 후 자신의 성공한 가챠 결과를 업로드 하는 시청자들이 존재했다.

그래!

나의 쓰레기 같은 가챠 결과를 제물 삼아서 자신들은 행운을 누리는 이들이 있었단 말이다!!

“하? 선라이즈 가챠 최약체? 이딴 말 하지 말라고!!”

SNS를 하다가 생전 처음으로 열이 머리 끝까지 뻗친 나는 휴대폰을 집어 던졌다.

그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언니는 고개를 흔들었고, 미우는 터질듯한 웃음을 참느라 끅끅거리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내 주변에 나를 제물삼아 가챠에 성공한 두 사람이 있었지?

얄밉다!

너무 얄밉다!

평소에는 더 없이 사랑스럽고 소중한 나의 가족들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사랑하는 만큼이나 얄밉다!

“언니 진정해요. 덕분에 언니 인지도가 훨씬 올랐잖아요?”

“솔직히 선라이즈 버튜버 중에서 행운사자라고 기만하는 루미에보다 훨~씬 좋은 반응이니까 유나야 신경 꺼.”

그렇다.

캐릭터적으로 보면 행운아가 넘쳐나는 이 세상에 불운(300연차 기준 SSR 획득갯수 5회)하다 못해 액막이가 되듯 타인에게 행운을 나눠주는 존재는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게임을 하면 이겨야하고 가챠를 하면 성공을 해야지!!

이런 캐릭터를 받아들여버리면 나는… 나는!

“옳지, 옳지, 유나야 진정해, 주먹 풀고~ 호흡 들이키고~”

내 심리상태를 누구보다 빨리 파악한 언니가 서둘러 옳지 옳지~ 를 해주지만, 그래도 게이머로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한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에이 언니, 그럴수도 있죠. 언니야말로 가챠계의 불운으로 종점을 찍어버리는 게 어때요? 솔직히 언니 확률이면 말이 안된다구요.”

“맞아 유나야, 왜 그거 있잖니, 애매한 승자가 될 바에 아주 끝내주는 패자가 되라고…”

“맞아요! 다른 사람들은 아무나 못하는 구미호의 행운 나눠주기! 여러분들의 불행은 제가 다 떠맡아 드릴게요~ 여러분들은 제가 가챠돌릴 때 편하게 가챠 돌려주세요~”

“그래그래 유나야, 이건 오직 너만 할 수 있단다. 네가 나의 마음을 바꾸는 게 너만 가능했듯이, 이런 일도 오직 너만 가능한 일이야.”

이게 무슨 삐친 유나 달래기 시뮬레이션도 아니고

두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서 머리를 쓰다듬거나, 등을 어루만져 주면서 위로해주는 게 진심으로 느껴졌다.

오늘 두 사람의 가챠 방송이 아주아주 성공적이었다는 거 둘째 치더라도, 확실히 이렇게 어리광 받는 게 얼마 만인지 생각해보니, 언짢았던 기분이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유나가 지는 건 게임 회사도, 유나의 욕망도 아닌… 그냥 망할 행운인거야.

왜, 복권에 당첨되지 않았다고 화내는 것과 같지 않을까?”

“맞아요 언니, 정 게임회사에 지는 기분이 든다면 돈을 박아서 정가를 쳐버리세요! 나는 너희들의 방해작업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내 욕망을 성취해냈다!”

으음…

듣고 보면… 그랬다.

그래, 내가 지는 기분을 드는 게 착각이지 않겠는가?

가챠야 뭐, 결국 확률놀음에 불과하고, 나는 그 가챠의 확률을 뚫어버릴 재력을 이제 손에 넣지 않았는가?

그렇게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기분이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아… 불운 여우 트랜드가 4위로 올라왔네요.”

“와, 버튜버 트랜드로 이렇게 빠르게 올라간 거 나 처음 봐.”

“으아아악!”

하지만 불명예 그 자체인 불운 여우라는 별명만큼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나는 귀를 막으며 소리질렀다.

겨우, 한참을 노력해서야 ‘형’이라는 이미지를 벗어 던졌는데, 이어지는 불운이라니!

흑흑흑 세상이 참 얄미웠다.

그날 밤

나는 머리를 비우고 내 이름을 트위터에 검색했다.

지상파에 등장한 노래 잘 부르는 멋진 여우

목소리만으로도 3만명을 홀린 이 시대의 섹시한 구미호

이런 것들이 사라지고, 멸망한 가챠화면을 붙잡고 발광하는 망가진 이미지의 아리아를 본 나는 눈물을 흘리며 잠들었다.

**

다음 날

완전한 복귀를 선언한 나는 이전에 이어나갔던 스케쥴들을 이어나갔다.

이전에 했던 게임들을 하나 둘 씩 다시 하고, 기존에 정기 스케쥴을 예약했던 GB 소속의 멤버들과도 교류를 다시 시작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합동 방송 대상은 클라티에 선배였다.

물론 선라이즈 GB 소속의 멤버 중 가장 화제성과 포텐셜을 끌어올릴 수 있는 대상은 마나 선배다.

하지만 영어와 일본어 방송을 송출하고, 이제는 1주일에 한 번씩 활동하는 메이드의 활동을 고려한다면 방송 시간은 선라이즈 톱 3안에 들어가는 나는 항상 내 모든 것을 보여주는 방송을 하는 게 어려웠다.

때문에 부담 없이 누군가와 평상시 하듯 머리를 비운 듯한 아무말 쇼, 가령 어제 끓여 먹은 해물 라면에서 다시마가 두 장 나왔다던지, 불닭볶음면을 먹다가 소스가 눈에 들어갔다는 아무말 대잔치를 늘여놓을 수 있는 방송은 오직 클라티에의 합동 방송이었다.

시청자들도 대다수가 이런 분위기를 선호했고, 나는 문외한이었던 그림 분야를 차분히 배우면서 장난도 가끔 쳐가면서 방송 중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클라티에와의 방송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클라티에 선배는 뭔가 조금 달랐다.

평상시라면 우~하 하는 느낌으로 듣는 것 만으로도 미소가 터져나오는 귀여움과 느긋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나를 반겼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달랐다.

“선배, 혹시 제가 잠시 동양에 다녀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요?”

동양에 다녀온다는 표현은 아리아가 일본 쪽에 힘을 줄 때 하는 일종의 밈이다.

그녀와의 해후를 이렇게 표현한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응? 아냐… 아냐…”

아무리 들어도 수상하기 그지없는 선배의 반응에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여자, 오늘은 조금 수상하다.

살짝 안절부절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나에게 무언가 해주었으면 하는 그런 분위기가 방송 너머로 느껴졌다.

“제가 너무 오랜만이라 그… 긴장, 하신건가요?”

긴장이라는 단어는 세상만사가 느긋하고 태평하기 그지없는 그녀에게 있어서 엄청나게 거리가 먼 단어였지만, 나는 혹시나 싶어서 물었다.

“응? 아니! 아무것도…아니야!”

“흐으응…”

다분히 일본 애니메이션에나 나올 법한 소리를 낸 나는 질문의 타겟을 바꾸었다.

바로 클라티에 선배의 팬들을 향해 말이다.

“거기 귀여운 새우 분들, 우리 바다의 여신님의 속내를 저에게 들려주실 분은 있으신가요?”

클라티에 선배의 시청자들은 대다수가 충성심이 높았다.

서로 말장난을 주고받고, 밈으로 대화를 하는 느긋한 새우들을 향해 말을 건 나는 선배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너희들! 아무것도 말하지 마! 이건 배신행위야 배신행위!”

두 버튜버가 서로에게가 아닌 채팅창, 즉 시청자들에게 집중되자 채팅의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다.

마치 도배창을 보는 듯한 엄청난 채팅 러쉬 속에서 나는 두 단어를 발견했다.

[가챠]

[불운 여우]

“가챠… 그리고, 불운…여우?”

“이 배신자들! 너희들은 숙청이야 숙청! 새우튀김으로 만들어버릴거야!”

“선배!!”

당황한 목소리를 내지 않기로 유명한 클라티에 선배의 목소리가 올라간다.

왜, 평소 당황해보지 않던 사람이 당황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당황한다고 하지 않던가?

클라티에 선배가 딱 그 꼴이었다.

횡설수설하면서 아무말이나 내뱉은 선배는 결국 나의 집요한 추궁에 시인을 하고 말았다.

아리아의 말도 안되는 가챠 (악)운을 듣고, 일본의 트랜드를 확인했던 그녀는 GB 소속 제일의 가챠쟁이로서 호기심이 동한다고 고백을 했다.

이것은 마치 점잖기 그지 없었던 옆집 아저씨가 알고 보니 작년에 은퇴한 스파이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와, 이 선배가 이럴 사람 아닌데…

남을 상냥하게 배려하기로 유명했던 이 사람이… 겨우 가챠의 욕망에 무너진다고?

이쯤 되니 나의 악운을 소셜 트랜드로 올려버리거나, 자신의 본성마저 이겨버리는 가챠의 욕구가 살짝 두려웠다.

“그러니까 선배는 음… 오늘 제가 그… 가챠,를 했으면 좋겠다…는거죠?”

“소,소솔직히 말할게. 그, 그래!”

거짓말을 하다가 걸린 어린아이처럼 선배는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살짝 차가운 외모의 아바타에 비해 워낙 착한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안쓰러워 보인 그녀를 바라본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휴, 좋아요. 선배가 그렇게 말한다면… 선배에게 그림을 배우고 있는 후배로서 제가…특별히! 아주 특별히! 가챠 방송을 해드릴게요.”

“저, 정말이야?”

연기도 뭐도 아닌 진심이 100% 들어간 저 말에 나는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평소에는 그렇게 방송 프로면서, 어떻게 가챠를 돌리는 이 순간만큼은 순진무구한 어린아이가 되어버리고 만단 말인가?

새삼스럽지만 클라티에 선배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자, 어제의 광란의 가챠쇼에 참여하지 못한 새우들도 휴대폰을 켜고 쌓아둔 재화를 확인하세요. 이 무시무시한 재액(災?)의 구미호가 여러분들의 불운을 삼켜드릴게요.”

이미 확고하게 자리잡은 일본에서의 아리아의 불운 여우라는 이미지를 벗을 수 없다 판단한 나는 조금 더 무시무시한 호칭으로 이 별명을 승화시켰다.

왜, 불운 여우보다 재액의 구미호가 훨씬 무시무시하고 근사하게 들리지 않겠는가?

섹시한 연기나 슈퍼 플레이로 떼어낼 수 있는 별명들과 달리 행운 같은 문제로 절대 떼어낼 수 없는 별명이라면 내가 주도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그래도… 솔직히 ‘시발’이라는 단어를 속에서 10번쯤 중얼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림 방송에서 갑자기 가챠 방송으로 돌변한 그 방송에는

많은 새우들이 행복하게 자신들의 행운을 뽑아갔다고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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