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37화 (237/307)

〈 237화 〉 236화.

* * *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에 언니와 미우와 함께하는 마왕군 연합 방송은 상당히 편했다.

나하고 어찌나 방송을 하고 싶어했는지, 마치 예전 시절처럼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아도 몸만 가도 방송 준비가 잘 되어있는지 방송마다 레전드 클립각들이 우수수 쏟아진 까닭에 정말 정신적으로 편해졌다.

사람들은 우리의 캐릭터들을 좋아해준다.

유리아, 클레스타인, 아리아 셋 다 모두 오타쿠인 내가 보더라도 매력적인 캐릭터임이 틀림없고, 평상시의 그녀들과 방송시의 그녀들 모두 좋아한다.

하지만 이 셋이 모인다면 사람들은 캐릭터 이상의 우리들을 좋아해주는 게 채팅으로 느껴진다.

그런 이유로 엄격한 RP를 딱딱 지키지 않더라도, 가끔식 실수로 일상 이야기나 단어 선택이 잘못되더라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어찌 보면 GB의 클라티에 선배와 합동 방송할 때처럼 편한 느낌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클레하고 유리아, 아리아가 같이 붙어 있는 그림들이 많네.”

외관상 나이 14세 정도의 유리아, 18세 정도의 클레스타인, 그리고 20대의 아리아가 사이좋게 붙어 있는 그림들이 많았다.

그 덕분에 쟁쟁한 선라이즈의 팬아트 비율 중 우리 셋의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

이게 선라이즈가 그토록 강조한 선,후배 기수 제도나 같은 회사 동료들과 합동 방송하며 케미를 쌓고 선라이즈 특유의 버튜버 세계관을 확립하는 과정이 제대로 성립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나는 해시태그에 마왕군 연합을 입력한다음 유튜브에 검색했다.

그러자 인기 키리누키 영상들이 주르륵 나타났는데, 그 중 조회수가 적당히 높아 보이는 것을 클릭했다.

“있지있지, 아리아는 너무 바람둥이인걸?”

“에, 어째서죠?”

“맞아, 아리아는 아무나에게나 친절하니까, 그게 아무렇지도 않게 여자들의 마음을 울려버린다고!”

어제 있었던 음주 합동 방송 중 일부였다.

영상 제목인 [아리아는 사실 알고 보면 하렘 마스터? 전설의 바람둥이?]에 걸맞게, 모든 악의적인 편집과 10의 진실을 90의 선동으로 부풀려 올린 듯한 그 영상은 아리아가 온갖 버튜버들의 마음을 공략하고 다닌다는 뉘앙스를 강조한 영상이었다.

가관인건 아리아가 일정을 잡을 때는 ‘나 바빠, 월수금 바쁘니 화목에 보자’ 라는 말을 마치 ‘너는 n번째 여자야, 누구누구는 n번째 여자야’라는 자막이라던가 ‘월요일 여자’ ‘수요일 여자’ 이런 식으로 바람둥이처럼 일정 빼곡히 여자들과 만나러 다니는 듯한 이미지를 씌워뒀었다.

뭐…. 아리아 같은 경우는 합동 방송이 정말 유키하라 언니가 비명을 지를 정도로 많이 오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응답이 되어버리지만, 아무래도 본인이 느끼기에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그나저나 용케 어제 있었던 취중 방송영상을 잡음을 걸러내고 몇 장면을 이어 붙이니 이런 클립이 나오는구나.”

솔직히 말해서 너무 나를 바람둥이 프레임을 씌우는 듯한 영상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연출이라던가 자막이 너무 재미있게 들어가서 피식 웃은 나는 실력에 감탄했다.

“응, 근데 워낙 유나 이미지가 바람둥이다 보니 이런 이미지 잡기 편하지 않을까?”

“바람둥이요? 제가요?”

언니의 말에 태클을 건 나는 언니의 매서운 눈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마치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하는 줄 알아?’하는 듯한 언니의 눈을 본 나는 다급히 다른 영상들을 돌렸다.

“어디보자, 이건 클레가 유리아에게 어부바 도전해보는 영상이었고, 아리아가 클레랑 악력대결 하는 영상이고….”

그야말로 일상 개그 애니메이션의 한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듯한 온갖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들이 많았다.

인터넷 방송인인 이상 이렇게 연출하면 이런저런 영상 각이 나오겠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시청자들이 좋아해 주겠지­라는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요즘 들어서 키리누키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그런 모양인지 정말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뛰어난 퀄러티의 자막들이 많이 늘어나서 내가 했던 이야기, 예전에 했던 이야기를 둘러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예전에 유나가 매니저일 때 ‘버튜버들 때문에 일상 에니메이션이 망한다’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나는 데 그게 정말인 것 같네.”

언니가 봐도 세 사람이 나오는 영상이 각별한 재미가 있는 모양인지 그렇게 말했다.

몇 개의 영상을 둘러본 우리는 의견을 일치시킨 듯 동시에 말했다.

“역시 미우는 천재야.”

“역시 미우는 대단해.”

막연하게 ‘이러면 좋겠지’라는 단계를 넘어서 계획으로 구체화를 한 미우의 발상­마왕군 연합 유닛은 언니와 나의 마음에 쏙 드는 방송 스케쥴로 확정되었다.

**

“그래서 말인데, 유나 요즘 너무 합동 방송만 챙기고 있는 거 알아?”

“네?”

“여기 통계표.”

어엿한 운전자가 돼서 돌아온 유키하라 언니는 최근 두 달간의 나의 방송 편성표를 보여주었다.

단독 방송을 진행한 날은 녹색, 합동 방송을 한날은 파란색, 그리고 회사의 일로 스튜디오 녹음이나 촬영이 있는 날에는 회색으로 칠을 했다.

공중파에 여기저기 출연하느라 바빴던 시기는 회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나머지 인터넷 방송을 진행했던 날들은…. 거의 푸른 빛이었다.

“물론 합동 방송이 결코 나쁜 건 아닌데, 비율적으로는 확실히 문제가 있긴 하지. 왜냐하면….”

“아직 데뷔한 지 반년도 지나지 않는 새싹이니까요.”

“뭐, 새싹이라면 새싹이지.”

“물론 새싹치고 많이 크긴 하지.”

그렇게 말한 유키하라 언니는 익숙하게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켜고는 나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너도 알다시피 선라이즈에서 가장 합동 방송이 잦은 인원은 이나리, 카린, 루미에 이 셋인 거 알지?”

데뷔 시기가 시기인지라 우리 회사 말고도 다른 회사의 버튜버들과 합동 방송이 잦은 이나리

뛰어난 입담과 아싸의 마음을 파고드는 친화력으로 선라이즈 만담꾼으로 최고인 카린

그런 카린의 방송 스타일을 따라 하려고 노력하고, 회사원 시절의 기획력을 잘 살려낸 루미에

이 셋은 합동 방송이 매우 잦은 인물들이었다.

그녀들의 방송 일정과 지표, 구독자 변화 추이와 콘텐츠 분석을 한 프레젠테이션을 쭉 읽은 내가 말했다.

“아무래도 2중 스케줄이 좀 많이 크네요.”

“그래, GB 소속인데 일본어로 진행하는 방송이 영어로 진행하는 방송보다 훨씬 클 때가 많은 주도 있었으니 말이야.”

“그래서 에오스, 셀레네의 지표하고 많이 비교 되는군요.”

“그렇지, 두 사람은 일본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GB쪽 콘텐츠를 챙기려고 노력을 하니 말이야.”

밤낮이 바뀌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물론 일본에 있다고 해도, 가령 일본의 금요일 오후 7시면 샌프란시스코의 토요일 오후 11시가 되는 정도로 밤낮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때도 있지만, 그녀들의 팬들은 유럽과 오세아니아 쪽에 많이 있기에 오전 3시에 일어나 방송을 진행하는 일이 잦았다.

물론 나라고 해도 그런 시간대에 방송을 안 해본 적이 없긴 하지만...

최근 들어서 내가 편한 시간대에 방송을 자주 한 게 맞긴 하다.

그 덕분에 피해를 보게 된 것은 불편한 시간대에 거주하는 팬들이다.

“너도 느꼈잖아? 유독 5월달을 쭉 돌이켜 보면 시청자들의 도네이션을 읽는 소통 방송 시간이 크게 줄었다는 거 말이야.”

“끄응...”

“잦은 합동 방송과 일본쪽의 활약으로 확실히 팬들이 많이 붙기는 했는데, 아직 네 팬의 비율은 해외가 6 일본이 4이라는 거 잊지 마.”

언니의 지적에 나는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리아의 채널은 놀랄 만큼의 성공을 거두었다.

매니저 출신인 내가 보더라도 아리아 채널은 버튜버적으로 크게 성공한 채널이 맞았고,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게 맞았다.

하지만 인기의 흐름을 타고 있는 버튜버, 아니 인터넷 방송인이 팬들과의 소통을 소홀히 했다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는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아시다시피, 너는 이미 충분히 노력하고 있잖니? 성우 트레이닝을 하는 동안 스스로 단점이라 지적했던 캐릭터 연기나 연기톤 발성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도 많이 개선했고.”

“노래 방송 이외에도 보컬 트레이닝을 짬짬이 받으면서 기량을 보존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그리고 그 괴물 같은 PT도 여전히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야.”

바빠지고 인기 있어지는 만큼 개인 기량 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을 하고있는 나는 정말 바쁘게 살았다.

아마 이대로 스케쥴을 더 늘린다면 저번처럼 쓰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쁘게 돌아다녔으니 말이다.

이것도 커다란 안건이 아닌 이상 유키하라 언니에게 알아서 처리하게 한 일들이 많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시간은 상당히 바빴다.

오죽하면 배달 음식을 싫어하는 편인 내가 최근 들어서 우버 이츠를 자주 시켰겠는가?

하지만 이렇다고 해도 체력적인 이유나 정신적인 이유로 해외 팬들과의 소통을 줄인 건 ‘아리아’스럽지 않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완벽하게 모든 것을 관리하고 싶어하는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잠시 생각을 한 이후에 말했다.

“유키하라 언니.”

“응, 듣고 있어.”

“아무래도 메이드는 이제 은퇴시키는 게 좋아 보이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은 유키하라 언니는 눈을 크게 떴다.

그만큼 내가 한 말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이겠지.

하지만 해외 팬들과 소통을 늘리면서, 일본에 있는 내가 컨디션 관리를 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은 그동안 고수했던 메이드 라의 캐릭터를 놓아주는 것이었다.

나를 버튜버의 길로 인도하고, 방송인의 삶에 대해서 체험시키게 해주었던 고마운 캐릭터인 ‘메이드 라’

이제 그녀를 놓아줄 때가 왔다고, 알록달록한 일정표가 말해주는 것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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