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39화 (239/307)

〈 239화 〉 238화.

* * *

여러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본 나는 친구들의 유형을 어느 정도 분류할 수 있었다.

왜 있지 않는가?

온갖 소식통에 빠삭해서 같이 있으면 시간을 삭제시켜주는 수다 친구

같은 디스코드에 들어가서 게임을 하게 되면 말하지 않아도 플레이로 호흡을 맞춰줄 수 있는 게임 친구

맵시가 좋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같이 돌아다니면서 거의 가이드가 되어주듯 나를 이끌어주는 쇼핑 친구

그리고 최근 들어서 알게 된 같은 덕질을 교류하는 오타쿠 친구까지 분류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쇼핑친구와 만난다고 해서 무조건 쇼핑만 가는 것도 아니고, 게임 친구와도 밥을 먹거나 오타쿠 토크를 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둘이 있을 때 선호하는 활동같은 게 어느정도 정해지지 않는가?

하지만 일본에 와서 정말정말 사귀기 힘든 친구가 있었으니, 하나는 술친구고 둘은 밥친구다.

그래도 술친구는 여러 사람과 친해지면 게임 친구가 술친구가 되는 식으로 발전되기라도 하지, 밥친구는 정말로 구하기 힘들었다.

“히끅…밥…친구요?”

내가 말한 밥 친구(グルメ?)라는 단어가 조금 이상한 어감으로 들렸는지, 자신의 과식을 알아차리고 부끄러워하던 서니 선생님, 아니 서니는 딸꾹거리면서 되물었다.

“네, 밥을 깨작깨작 먹는 게 아니라, 그냥 편하게 밥을 시원시원하게 맛깔나게 먹으면서 같이 밥 먹으면 즐거운 친구 말이에요.”

“그, 그래요?”

그러니까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어제부로 활동을 그만둘 것은 인가받은 내 처음 캐릭터인 ‘메이드 라’와

선라이즈 일본 소속 중 가장 빠르게 100만 구독자를 달성한 ‘구미호 아리아’의 캐릭터 디자이너인 사니 선생님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밥을 먹으러 왔다.

처음에는 여리여리하게 생겨가지고 고기를 많이 시킨 걸 후회했는데 왠걸

그녀는 거의 나와 비슷한 식사량을 선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어지간한 다른 사람들의 4인분을 먹어치우는 나와 비슷한 템포로 밥을 먹고 비슷한 식사량을 자랑하는 사람이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열심히 한 사람이라도 된것처럼 고기를 먹더라도 어느 정도 구워야할지, 어느 소스에 찍어먹어야 적당할 지, 밥과 함께 먹어야 할지, 김치와 함께 먹어야 할지, 생강 절임과 먹어야 할지, 간장에 찍어먹야아 할 지, 와사비에 찍어 먹어야 할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야말로, 야키니쿠 분야에 대해서는 거의 권위자 그 자체였다!

“저는 태어나고 나서 서니처럼 밥을 맛있게 먹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

“놀리는 거 아니에요! 아 좀! 일본 여성들은 왜이리 적게 먹는 거에 대해서 집착하는 지, 사람이 많이 먹을 수도 있죠! 그렇다고 해도 자기 관리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신진대사가 체질적으로 높은 사람이라는 데 뭐 어때요!”

“그렇지만, 이렇게 과식 하는 거…”

“그래서 유키하라 매니저나 코이즈미 이사님이 당신을 이상하게 보나요?”

그랬다.

밥을 먹을 때는 잘 먹어두고는 가게 밖을 나와서 갑자기 울음을 터트릴 듯 울먹이다니 이게 무슨 이상한 상황이란 말인가!

회사에서 볼 때는 아무리 봐도 부잣집 아가씨처럼 교양 넘치고 입을 열면 가슴 곡선과 엉덩이 곡선에 대해서 예찬을 하던 사람이 다른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소심한 오타쿠처럼 울음을 터트리다니 갑갑했다.

“솔직히 많이 먹기는 유나가 많이 먹지.”

“뭐… 그만큼 운동을 많이 하긴 하지만.”

많이 먹고 많이 움직인다.

아무리 바빠도 1주일에 6일은 헬스장에 나가서 1시간 운동을 하고, 여유가 되는 때에는 필라테스 수업에 들어가면서 온갖 근육을 괴롭히는 나는 자신있어하는 이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이 먹어줘야만 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사니! 호랑이로 태어나서 고양이처럼 먹으려고 하지 마요! 사람이 그렇게 태어난 걸 뭐 어떻게 해요? 오히려 순리대로 살지 않으면 아파진다구요!”

그래, 호랑이의 먹성을 가지고 태어나서 고양이처럼 먹으면 병이 든다.

어디 영양균형이 망가진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니고, 약간의 술이 들어갔다고는 하나 고기와 밥을 먹는 데 뭐가 문제겠는가?

“호랑이로 태어나서… 고양이처럼… 먹지 마라…”

“여성이 반드시 적게 먹어야한다, 이건 사회적 편견이잖아요? 100만 구독자 버튜버를 다섯이나 만들어 낸 사니가 고작 밥을 많이 먹는 거 가지고 뭐라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요!”

내 말에 감명을 받은 듯 그녀는 내 손을 붙잡았다.

마치 이 말을 쭉 기다려온 사람처럼, 그녀는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나에게 말했다.

“이 말, 꼭 잊지 않을게요 유나 씨! 아니… 유나!”

“앞으로도, 같이 맛집들을 서로 탐방해봐요!”

나에 언니는 소식가다.

미우는 한국 입맛이기는 해도 대식가는 아니었다.

츠유는 워낙 바빠서 같이 식사시간을 잡기 애매했다.

그렇기에 사니야말로, 눈치 볼 것 없이 돈에 대한 걱정 없이 먹을 것에 대한 것을 나누어더 되는 지음(?音)… 아니 지식(??)이었다!

“4인분 씩 시켜서 하나 씩 맛 본다던가!”

“통으로만 파는 케이크를 사서 그 자리에서 뚝딱 해버린다던가!”

“특정 금액을 넘어가면 서비스를 주는 가게라던가!”

“일정시간 내에 완식을 하면 무료로 먹는 챌린지라던가!”

다른 친구들에게는 부탁하지 못했던 것을 부탁할 수 있었다.

세상에, 나의 일러스트레이터가 이렇게 나와 먹성이 맞는 사람이었다니!

“어이구 신났네.”

“저 두 사람의 회식은 업무용으로 제출하지 못하도록 해야겠네요.”

두 언니들의 핀잔을 들으면서, 그 날 나와 사니는 서로 개인적인 번호를 교환까지 하였다.

**

“그, 그런 일이 있었구나.”

집에 돌아오고 난 이후 메이드의 은퇴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하던 언니는 엄청나게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내가 많이 먹어보도록 노력 할게.”

“언니, 언니 활동량으로 저나 사니 선생님의 식사량을 따라잡는다는 건… 고양이가 호랑이 식사를 따라하는 것과 같아요.”

아직도 교복 입히고 지하철을 청소년으로 끊고 타도 나이를 알아차리지 못할 외모를 지닌 언니가 아닌가?

그런 언니가 먹방 유튜버급 먹방을 도전하겠다니,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그치만, 유나가 먹는 걸 좋아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 정도로 많이 먹는 것 까지 좋아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는걸!”

“언니,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용기에요. 언니는… 회전초밥집에 식사하러 가면 몇 접시 드시죠?”

“…여덟 접시.”

딱히 적게 먹는 게 부끄러운 것도 아닌데 언니는 고개를 숙이면서 그렇게 말했다.

들릴락말락한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언니가 귀여워 미칠것 같아서 한 번 껴안아 준 이후 나는 말을 이었다.

“아무튼 메이드의 은퇴는…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에요.

업무를 인계하기 위해서 다른 신인을 데뷔시키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것 같아요.

아마 매니저 출신인 누군가가 활동하게 될걸요?”

“그렇구나…”

“네, 아무래도 저도 언니 덕분에 버튜버 활동을 시작한 거나 다름 없으니까요.”

정말이지

언니의 매니저로 시작을 했다가 목소리로 데뷔를 하고

그 이후 개인 채널을 개설하지 않고 회사 공식 채널을 맡는 홍보담당이 되다가

이렇게 직접 버튜버로 데뷔하게 된다니…

일본 유학의 꿈을 품고 온 한국 여인으로서 참 변화무쌍한 삶이라고 볼 수 있었다.

“…”

“언니 왜요?”

“그냥… 조금 시원섭섭해서… 공주 유리아의 삶을 항상 도와주던 존재는 메이드였으니 말이야.”

말 그대로였다.

나와 언니가 만났을 때는 개인 방송을 방음 부스조차 설치하지 않고

새벽 두 시에 방송을 켜고 아침 일곱 시 까지 한다음, 12시간 수면을 하며 운동과 식사를 걸러가면서 제멋대로 방송을 할 정도로 부족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삶의 폭이 넓지 않아서 오타쿠 토크가 아닌 이야기를 하게 되면 금방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무언가에 끊임없이 집중하는 것 또한 힘들어했으니 말이다.

그런 언니의 방송의 부족함을 방송내외로 같이 존재해준 버튜버의 방송 도우미, 메이드 라는 언니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이런 결론을 내었다.

“아, 캐릭터 자체의 완전한 은퇴라기 보다는… 그래요, 메이드는 선라이즈 공식 채널에서 나간다는 거지, 캐릭터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은퇴식을 가지지는 않고, 그냥 공식 무대에서 메이드를 볼 일이 없어지는거죠.”

“그래?”

다른 버튜버가 사라지는 것처럼 완전한 은퇴가 아니라는 말에 언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당연하죠. 일단 메이드가 은퇴하게 되면 저에게 따질 사람들이 많을걸요? 공포게임 겁쟁이면서 절 부르길 좋아하는 아그니라던가, 맨날 나보고 백업 오라고 비명지르는 타마라던가, 차가운 여자에게 도전하는 게 좋다면서 들이대는 카린이라던가….”

아리아로 활동하고 난 이후 옛날 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멤버들의 방송 플랫폼이나 디스코드 음성 채널로 갑자기 난입을 해서 게임의 진행을 도와주는 메이드 활동은 여전히 하고 있었다.

개인 메세지로 오는 도움 요청에 가급적 수락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방송에 들어가서 그녀들과 수다를 떨면서 게임의 진행을 도와주거나 결방이 생기면 적당히 도와주고 나오는 메이드의 존재를 포기하기에 회사 차원에서도 아까웠고, 방송인 측면에서도 아쉬웠고, 나 또한 아리아가 아닌 메이드로 활동하며 멤버들을 도와주는 일을 좋아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언니와 함께 한 캐릭터를 제가 버릴 리 없잖아요?

메이드 라 에게는 언니와 저의 소중한 추억과 이야기가 얽혀있는 캐릭터잖아요.”

“뭐야… 그게 왜 은퇴야 그럼…”

“어라, 언니 울어요?”

“흥, 몰라! 갑자기 은퇴한다는 말을 해서 언니를 아침부터 놀래개 하질 않나! 언니 밥 적게 먹는 거 가지고 눈치 주지 않나!”

어라라

갑자기 삐친 모드가 된 언니는 나의 품에서 벗어나 고개를 돌리고는 방문을 쾅 닫으며 나갔다.

하긴, 유키하라 언니와 상담이 정해지고 난 이후 회사에 출근하기 전 언니에게 ‘메이드 라 은퇴건에 대해서 상담하고 올게요’ 라고 말하고 나갔으니 오늘 하루종일 마음 졸이느라 고생 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막상 밤 늦게 집에 술냄새를 풍기며 집에 돌아오니 메이드 이야기보다는 오늘 먹었던 고기 이야기 라던가, 나와 사니의 먹성에 대해서 이야기만 하질 않나… 확실히 오늘은 내가 좀 밉상이긴 했다.

그래도 고개를 돌기 전 미소 짓는 걸 보니, 아무래도 언니는 메이드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드는 지 완전히 화가 난 건 아닌것처럼 보였다.

정말이지, 사람이 귀엽다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헤드셋을 꼈다.

당분간 회사의 새로운 일이라던가, 메이드의 업무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 상대적으로 정신적인 여유가 남게 된 내가 할 일이 이것 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좋은 아침­점심­저녁이에요 여러분, 오늘은 깜짝 방송! 잠시 후 저번에 시청자분들과 함께 만든 게임 룰렛을 돌리면서 결과를 정할게요!”

대표적인 QnA플랫폼인 마쉬맬로를 통해서 여러 게임을 추천받은 적이 있기에 유키하라 언니가 ‘유나가 할 법한 게임들 중 방송해도 괜찮은 것들’을 간단한 룰렛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서 저장했다.

방송을 켜고 대충 오늘 먹었던 고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끈 나는 룰렛 프로그램을 돌렸다.

마니악한 게임일 수록 확률이 낮고, 대중적인 게임일수록 확률이 높다고 하던가?

메이드를 그만두게 된 기념으로, 기왕이면 마니악한 게임이 걸렸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나는 룰렛을 돌렸다.

빙그르르 돌아간 룰렛이 멈춘 결과, 내가 본 것은…

정말, 정말정말 의외의 게임이었다.

“에?”

­???

­아, 이런 고전게임을 한다고?

­고…전…게임이라니…현역이다!

­아니 이건 좀ㅋㅋㅋ

­웃기긴 하네, 이거 선라이즈 버튜버들 중 하는 사람이 있던가?

이 게임은 일본에서는 몰라도 한국에서는 유행했다.

아니, 복고풍 열풍이 불면서 다시 유행하고 있다.

그도 그럴게, 이 게임을 모르는 한국 사람은 없었고, 한국인 게이머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게임이지 않는가?

“스타 크래프트”

초등학생 시절

게임을 죄악시 여기던 어머니의 눈을 피해서 동생과 내가 안방 TV로 몰래몰래 보던 그 게임의 이름을 룰렛이 가리키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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