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41화 (241/307)

〈 241화 〉 240화.

* * *

그것은 전대미문의 방송이었다.

방송을 구성 요소로 분석해보자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로 나눌 수 있었다.

일본인이라고 평가되는 선라이즈 소속의 100만 구독자인 아리아가

1998년에 출시 된 유명한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당시 전성기를 함께 하게 했던 게임 해설가인 ‘울프’를 데려온 후 스타크래프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방송을 하듯 게임을 했으니 말이다.

과거에 비해 한층 원숙한 해설가가 되고 온갖 밈에 해박한 그는 추억을 회상하듯 게임을 중계했다.

“이 맵은 과거 프로게이머들의 승산 비율로 보자면 프로토스의 패배 비율이 높은 지형입니다. 지형으로 인해서 전략이 어느정도 강요 받거든요.”

“지상전 파워가 초반에는 나쁘지 않지만 중반으로 넘어가면 테란이 더 유리하게 됩니다. 그래서 공중전으로 풀어나가야 하는 압박을 받습니다.”

“그래서 빌드라는 개념이 중요하죠. 얼마나 상대방의 초반을 흘려낼 것인지,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지 심리전이 중요하죠.”

“그래서 아리아도 그렇고 상대방도 그렇고 정찰로 상대방의 전략을 보려고 하네요. 일종의 가위바위보를 하기 전에 상대방이 내려는 패를 읽는 느낌이라고 보면 됩니다.”

마치 손주에게 하나하나 알려주듯, 어떤 것을 봐야할지 어떤 플레이가 좋은지 하나하나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을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방송의 주역은 어찌 보면 아리아가 아닌 울프라고 볼 수 있었다.

방송인이 직접 소통하지 않고 게임에 집중하는 현상은 보기 드문 개념이었지만 시청자들은 그것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게임을 보는 데 집중했다.

땅따먹기, 심리전, 자원을 녹이면서 상대 병력과 부딪히는 RTS의 관전 요소를 세세하게 설명해주는 울프 덕분에 스타크래프트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도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아, 그러니까 초반 아이템 빌드와 전직을 하듯 건물을 어느 순서에 올리느냐가 있구나

­마나 관리가 아니라 3 개 자원을 봐야하는구나 그것도 타이밍을 봐서

­복잡하네 ㅋㅋ 그런데 재미있긴 함.

한편 그들과 다르게 이미 이 게임에 익숙한 세대들은 다른 것에 집중했다.

­아니 미친ㅋㅋ 아리아 빌드 뭐임? 99게이트?

­이녀석 완전 옛날 빌드잖아 ㅋㅋ

­초반,,,질럿 러쉬,,,제가 중딩일 때 쓰던 빌드네요,,,

­상대방 입구 막는... 어 저게 막는건가?

­아 이거 질럿 들어갔다ㅋㅋㅋ 뉴비대전 야해 ㅋㅋㅋ

그들은 일단 아리아가 꺼낸 빌드부터가 옛날에 쓰이던 빌드들이었기에 추억을 자극당해 열광했고, 그 후에는 게임에 익숙하지 않는 초보들과 게임을 오랜만에 켜서 조작이 미숙한 게이머들이 등장하면서 서로의 실수가 남발하는 화끈한 뉴비 대전이 일어났다.

“하하, 이거 상대방의 플레이가 예사롭지 않는데요? 역시 이 게임은 오래된 게임답게 고인물들이 많아요.”

“저런, 허가 제대로 찔렸네요. 사실 아리아의 게임 이해도는 나쁘지 않아요. 다만 이미 이 게임을 이십년 가까이 하면서 온갖 상대법을 아는 사람이 있는 터라 고생하고 있네요.”

당연히 아리아의 승률은 좋지 않았다.

그녀의 실력을 비유하자면 아버지가 쓰던 옛날 스타크래프트 노트를 펼치면서 빌드를 하나하나 연습중인 뉴비였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얻어터지는 것은 또 아니었다.

“어... 아리아는 손이 굉장히, 굉장히 빠르네요.”

협곡에서 기본 소양인 카이팅으로 저그의 자폭 유닛을 잡아낸다거나

“그리고 굉장히 정교해요.”

멍청한 AI와 조작감으로 악명높은 드라군으로 일점사와 칼끝딜을 하는 점

“그리고 유닛이 놀지 않네요.”

전투가 일어나게 되면 당연히 생산이 느려진다.

초보자들은 자신의 본진에 자원이 바닥나는 것도 모를 때도 있고, 생산이 멈춰서 자원이 1천단위가 넘어가는 속칭 ‘지폐’현상이 일어나기 마련이었으나 그녀는 잘못된 빌드를 밟거나 전환이 느릴지언정 컨트롤 적인 부분에서는 답답함이 없었다.

물론 모르는 만큼 얻어 터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래도 마법 유닛들을 잘 쓰고 고수들이 와도 화끈하게 저항하는 일이 잦았기에 볼 맛이 있었다.

울프 해설의 띄워주는 해설과 더불어서 그녀가 직접 말을 하지 않더라도 채팅으로 종종 시청자들을 향해 메시지를 썼기 때문에 방송의 템포가 느려지는 일도 없었다.

­미친, 얘 10년전에 프로 했으면 먹혔겠는데?

­피지컬 괴물이 어디 가는 건 아니구나ㅋㅋ

­이건 다이아몬드 원석이잖아 미친; 깎으면 그대로 프로 되겠는데?

­응 이미 100만 버튜버야, 프로 안해

게임 집중력이 뛰어나고 조작이 정교하다.

어느 게임을 하나 게이머의 소양이 되는 토대가 탄탄한 탓에 빌드 차이로 지는 일이 있고 8판 중 3판만 이기는 일이 일어났음에도 사람들은 아리아의 플레이에 열광했다.

그런 까닭에 방송에 집중을 잃는 사람들이 생겨서 동시 시청자가 줄어들기는커녕 소문에 소문을 타서 동시 시청자가 4만 5천명까지 치솟는 일이 일어났다.

­와 미친 진짜 스타 방송이네

­버튜버? 저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사람인가요?

­근데 얘 미국인 아님? 왜 일본인이라고 함?

­2020년에 스타 방송을 4만명이나 보고 있다니 미쳤냐고 진짜 ㅋㅋ

채팅은 이미 눈으로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붐볐고 사람이 많은 만큼 흥이 나는지 점점 더 말이 많아지는 울프 덕분에 오디오도 비지 않았다.

그렇기에 사전에 정했던 8판을 마친 후 마이크를 다시 켠 아리아의 등장에 사람들은 돈으로 환호를 해주었다.

“여러분 반가워요~ 후, 게임 하느라 지치네요. 그래도 재미있었죠?”

비록 현재는 게임 방송중이라 도네이션을 하나하나 읽지 않았지만 시청자들은 채팅창을 가득 채우는 화려한 슈퍼챗들을 보며 전염되듯 돈을 쏘았다.

평소라면 이런 과한 도네이션 러쉬에 부담감을 느끼며 쏘지 말라고 말하는 아리아지만, 아직까지 게임의 여운에 빠져있는 그녀는 게임에 집중하느라 그동안 못한 소통을 채우기 위해서 열심히 말을 이어 나갔다.

“이 게임이야말로 한때 e스포츠를 지배했고 지금도 여전히 두 번째 시리즈로 e스포츠에서 현역으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게임이랍니다.”

“직접 하기에는 정말 어렵지만, 관람만 한다면 마치 사이버 바둑이나 체스처럼 심리전이 보이고, 보는 맛이 쏠쏠한 게임이죠.”

“그래서 제가 몇 살이냐구요? 비밀이랍니다.”

옛날 게임 방송을 떠오르게 하는 스페셜 게스트의 초대부터 시작해서

게임을 모르는 팬들을 위한 친절한 튜토리얼부터 시작해서 지식을 채워줄 전문 해설의 멘트

게임 경험과 지식은 부족할지언정 상대방의 턱끝까지 쫓아오는 피지컬로 접전 내지는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수를 보이는 공격성

오래된 게임이라도 진심으로 임하고 진지하게 방송하고 게임에 대한 존중을 보이는 자세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낯선 게임이라도 즐거움을 가지고 볼 수 있게 하는 그녀의 방송은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

“수고하셨습니다!”

“아리아 씨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재미있었습니다.”

“어유, 저 대신에 시청자들에게 재미있게 해설해준 울프님 덕분에 제가 살았죠.”

방송이 끝난 직후 나는 울프 씨에게 계속해서 고맙다고 말했다.

시작 전에는 완벽해보이는 플랜이었으나, 정작 버튜버가 되어서 팬들과의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하다니…. 노련한 울프 씨가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버튜버라는 오타쿠 장르에 낯선 방송인이 말을 걸었는데 흔쾌히 받아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돈을 받고 게임의 관전을 돕는 게 제 일이니 고마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오타쿠라고 하니 저도 게임 업계에 종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너드가 되었습니다.

비록 버튜버들의 방송을 보지는 않습니다만,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 후에도 서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주고받다가 자연스럽게 SNS 아이디와 디스코드 아이디를 교환하고 난 이후 나는 통화를 종료했다.

“끄으으으, 힘들었다.”

“유나야 고생 많았어.”

낯선 게임을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열심히 게임을 했기 때문일까?

평소보다 지친 나는 거실로 나와 소파에 무기력하게 엎드렸다.

나보다 먼저 방송을 마친 언니는 내가 엎드리기 무섭게 조그만 손을 말아서 내 허리를 안마하기 시작했다.

“언니 고마워요.”

“고맙긴, 오늘 유나의 방송은 조금 특별해보였는걸.”

“어라, 그래요?”

“응. 이렇게 집중해서 게임하는 거 본 적 없었어. 방문을 아까 살짝 열었는데 무섭더라고.”

아아

확실히 오늘 게임은 여타 다른 게임과 다르게 장난이 아니었다.

자기 수련에 가까운 점프킹같은 게임이 아니고, 사람과 겨루는 PVP 성질이었기 때문에 집중을 해야했다.

그것도 나보다 훨씬 잘하는 사람들에게 무기력하게 패배해서 방송의 텐션을 끌어내리고 싶지 않았기에 최선을 다해야만 했으니, 솔직히 8판이 아니라 4판으로 잡을걸­ 하는 후회도 도중에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방송, 한국인들 굉장히 많이 왔어.”

“아하하하, 역시 한국에서는 여전히 인기가 좋은 장르네요.”

“그래? 그러고보니 유나 동생도 프로 게이머라고 하던데 혹시?”

“아, 스타는 아니에요.”

“그렇구나, 그래도 프로 게이머 동생이 있어서 그런지 오늘 유나 굉장히 멋졌어.

평소 에이펙스를 할 때는 조금 장난기 넘치는 사람인데, 오늘은 입 꾹 닫고 집중하는 게 정말 섹시해보였어.”

세상에

언니 입에서 섹시라는 단어가 나오다니, 가슴이 찌릿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몸은 지쳤지만, 정신은 승천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그야말로 오타쿠 미소를 짓게 하는 기분 좋은 말이었다.

그렇게 언니의 상냥한 보살핌을 받으면서 소파에 누워서 이대로 잘까? 하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휴대폰이 카톡 알림음을 보냈다.

카톡을 열어봐 발신인을 확인해보니 역시 동생놈이었다.

[야 왜?]

[누나 오늘 개쩔었어]

[뭐야, 너 연습 안하냐?]

[연습 안하긴 무슨 ㅋㅋ 오늘 감독님이랑 코치형이랑 같이 누나 방송봤다]

[ㅁㅊ]

[감독님은 스타 감독 출신이고 코치형은 스타 팬이었어ㅋㅋ]

[발설 안했지?]

[응, 내가 미쳣다고 저기 있는 사람이 내 누나라고 말하겠어?]

역시 내 동생답게 선은 안 넘는구나

인스타에 얼짱각도에 보정 왕창 넣은 사진 올리면서 왕자병에 걸린 게시글을 쓰는 동생이 마음에 안들긴 해도 이래서 미워할 수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마저 물었다.

[그래서, 오늘 방송 어땠냐?]

[영알못이라 잘 모르겠는데, 지금 한국 커뮤니티 터졌어]

[뭐?]

[스타 쪽 게시판하고 누나 쪽 게시판 그냥 미쳤는데? 누나 예전 앨범 발표 때 보다 더 시끄러운거같아. 누나 만약 플랫폼이 트위치나 아프리카였으면 실검 올라갔을걸?]

[와... 내일 확인 해봐야겠다. 지금은 도저히 무리야.]

[그래도 누나 부럽다. 나는 장르가 달라서 그런지 울프 쌤이 내 플레이 보고 해설하는 거 듣고싶었는데]

[하긴, 영어 공부한답시고 엄마아빠에게 뻥치고 북미 스타 중계 영상 전자사전에 넣고 돌려보던 우리가 어딜 가겠냐]

[ㅋㅋㅋㅋ]

[ㅋㅋㅋㅋ]

단기간이지만 정말 두뇌를 풀 가동해서 진행한 방송이 내가 느끼기에도 제대로 진행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언니의 마사지를 받아가며 동생과 카톡을 하면서 낄낄거린 나는 시원한 선풍기 바람을 맞으면서 그대로 잠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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