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42화 (242/307)

〈 242화 〉 241화.

* * *

황당한 소재 선정이었고, 고뇌한 기획이었으며, 운이 따라준 진행과 내 노력이 들어간 방송이었다.

그래서 내심 잘 먹히겠지, 라고 생각하며 잠들었던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커뮤니티 반응을 보고 놀랐다.

먼저 일본 쪽 커뮤니티는 게임 관련 기사들이 몇 개 실렸다.

일본인들에게 낯선 RTS라는 장르, 플레이스테이션 1과 2를 거슬러 올라가며 옛날 일본 게임들은 콘솔 관련 발전으로 게임 시장이 형성되서 PC 게임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글들과 함께 아리아가 한 게임에 대해 조명을 했다.

­옛날 해외 게이머들이 왜 열광한 지 알거같다.

­실시간 유희왕이냐고, 빌드를 읽고 카운터치고 심리전 거는 게 똑같잖아

­복잡하긴 한데 관전 포인트대로 보니 또 볼맛이 난다.

­그런데 게임 엄청 오래됬잖아 이거 ㅋㅋ

­그래도 너무 복잡한 듯, 게임에 집중하느라 아리아와 소통 못해서 별로였어

호평이 대다수에 악평도 존재했다.

확실히 게임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게임에 대해 실시간 소통을 못한 건 확실히 실격이었다.

하지만 게임을 하면서 게임에 대한 관전 포인트와 지식을 읊는 건 내 영역이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고, 사람들에게 낯선 게임을 전문적으로 소개시키는 데 능숙한 아카리 선배의 채널을 좀 더 보면서 참조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아리아의 본진이라 볼 수 있는 영어권, 그러니까 레딧 쪽 반응을 살펴보았다.

[올드 게이머의 추억을 자극하는 버튜버]

[우리들의 젊은 시절을 함께 했던 캐스터 울프와 함께 하는 스타 뉴비의 도전기]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게이머 아리아에게 발견한 프로의 자질]

와...

내 방송 클립이 레딧 1페이지에 올라올 날이 있다니 네이버 1면보다 더욱 감동스럽다.

물론 내가 메인이 아니라 블리자드의 회심의 역작인 워크래프트 3의 리포지드 출시일이 다가오면서 블리자드의 옛 게임에 대해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끼어든 포스트지만

그래도 1면에 아리아의 모습이 보인다니 이게 진짜인가?

서양에서 영어로 덕질 좀 해본 나에게 있어서는 정말 꿈과 같은 일이다.

희대의 드립이나 밈을 만들어서 1페이지가 아닌 내 방송으로 1페이지를 가게 되다니...

나의 서브레딧, 그러니까 아리아에 대한 글들이 쏟아지는 페이지에서는 완전히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삼촌팬들이라 할 수 있는 30대 팬들이 아주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었는데, 앞서 언급한 많은 추천 수를 받은 포스트들은 나의 방송과 나의 플레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아리아의 서브레딧에 들어간 나는 빠른 추천수를 받으며 올라온 포스트들을 읽기 시작했다.

[아리아, 도전을 멈추지 않는 버튜버]

선라이즈 GB 특별 기수생인 아리아는 여전히 이 정도 되야 솔로 데뷔한다!라는 느낌을 잘 보여주는 버튜버다.

동시 시청자 숫자는 선라이즈 1위권을 꾸준히 달리고 있는 그녀는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푸른 혜성에 빌어’발표 이후 다양한 분야에 도전을 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현재 멤버들에게만 공개되는 ASMR 방송 이후 ‘다양한 게임 도전하기’분야에 대해 첫 도전작을 스타 크래프트로 시작했다.

우리 같은 –틀­들은 잘 알지만 어린 오타쿠들에게는 어렵고 낯선 이 게임을 주제로 방송하는 것에 우려하는 반응이 많았으나...

“우와, 이 사람 저번에 나 공중방송에 자주 출연해서 스타병 걸렸다고 뭐라 한 사람 아니야?”

간결한 문장과 신문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들로 보아 어느 언론사에 속한 저널리스트라고 생각하는 레딧 유저가 ‘결국 이런 주제를 소화하는 건 방송인의 몫이고, 아리아는 훌륭하게 소화해냈다’라는 글을 쓰다니 참 기분이 이상하다.

그나저나 나 완전히 스타 크래프트 전성기를 보고 자란 북미 게이머라고 생각되는구나.

하긴 영어 방송에, 울프 씨도 내 국적을 내가 밝히기 전에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그러려니 하는데...

­그래서 아리아 나이가 몇임?

­오이쿠츠데스까?

­빨간약 여부를 떠나서 빌드들이 냉장실이 아니라 냉동실에서 꺼내온 빌드들이라 궁금함ㅋㅋ

­투게이트 전진질럿하는 버튜버가 있다? 삐슝빠슝

옛날 게임을 능숙하게 해서 그런지 나이에 대한 글들이 엄청 올라왔다.

[아리아의 나이 분석­여태까지의 노래와 게임 픽을 미루어 볼 때…]

[아리아의 언어습관으로 보는 정체파악 5탄­ 그래서 그녀의 나이는?]

한국 대형 아이돌 프로덕션에서 길러진(…) 대 오타쿠 결전병기부터

유명 아이돌 BTS의 친척 동생이라던가

한국계 미국인 교포 출신의 아시안 3세라던가

유명 프로게이머 황제의 사촌이라던가 하는 온갖 추측글들이 올라왔다.

뭐 사람들이 내 정체를 추측하는 글들을 즐겨 보는 편인 나지만, 그래도 내 나이가 추정 30대라는 글들은 정말 너무했다.

아직 파릇파릇한 20대라고!

그래도 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찬 글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수익도 수익이지만 이런 글들이야 말로 내가 정말 이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심지어 블리자드 트위터에서도 스타 크래프트를 다시 찾는 유저들이 늘어났다는 재미있는 통계를 보여줘서 그런지 (물론 이건 한국의 트위치의 유명한 전­프로게이머의 대결같이 다른 인터넷 방송인들이 힘써준 것에 운이 따라주긴 했다) 스스로에게 뿌듯했다.

뭐랄까, 다른 사람들이 유행하는 무언가를 하지 않고, 내가 먼저 선구자가 된 이런 느낌?

“아, 버튜버 할 맛 난다!”

무언가를 이끌어 나간다.

나만 가지고 있는 매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누군가는 관종이라고 부를 이 감정이지만, 나의 콘텐츠로 나의 행동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는 것은 무언가 짜릿한 쾌감을 선사했다.

선라이즈의 기획을 받아서, 시류를 타고 운이 좋아서 100만 구독자가 된 게 아닌

순수한 내 능력만으로 해낸 기분이 든 나는 팔을 하늘로 번쩍 들었다.

“아 맞다. 한국 커뮤니티도 확인해봐야지.”

안 그래도 어제 동생과 통화할 때 ‘누나 한국어 좀 너프 당한거 같은데?’라는 말을 들어서 모국어를 잊어버린듯한 기분이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제 방송에 한국인 시청자들이 많이 찾아와주었는데,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 커뮤니티에 홍보가 제대로 먹힌 것 같았다.

더듬더듬 한국어로 버튜버 아리아를 검색한 다음 제일 먼저 채널에 들어간 나는…

“뭐, 뭐야 여기?”

[한국인의 자랑스러운 딸 아리아]

[미국으로 건너간 스타 프로게이머 근황 모음집]

[대형 기획사에 들어간 미국계 혼혈들을 조사해보았다]

미국 커뮤니티에서는 미국인이라고 여겨지는 아리아가 한국인으로 정해진걸로 모자라, 스타 크래프트를 하던 프로게이머들의 근황들을 조사해가면서 나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하는 무시무시한 현장을 확인해버리고 말았다.

**

“그래서, 한국인 구독자가 엄청 늘었던 게… 그 방송 때문이야?”

“네, 제가 한국어로 도네이션 채팅을 읽는 선라이즈의 버튜버긴 해도, 한국인 구독자들은 기존의 키리누키 번역이 많이 되는 선배들에게 많이 갔거든요.”

한국인이긴 해도 나의 유튜브 알고리즘은 일본과 미국을 중심으로 추천영상들을 나열해준다.

나는 내 유튜브 구독자 국적 통계와 조회수 1만을 넘어간 키리누키 영상들의 개수를 파악하는 것으로 대충 내 인기가 대충 버튜버 평균 정도라고 어림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생의 말을 들어본 바로는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이야기의 비중이나, 활성화 되어있는 특정 버튜버의 갤러리의 ‘온도’는 생각보다 높은 편이고, 게임을 잘한다는 것으로 한국인에 대한 동질감을 많이 느끼고 해외 팬들에게 ‘아리아는 한국인’이라고 말하면서 소속감을 높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제가 평소에 실수 안 한 덕분에 아직까지 국적이 드러나지 않는 게 좀 크긴 해요.”

“하긴, 유나 너는 시청자들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미국 뉴스까지 읽으면서 종종 미국에 관련된 토픽들을 언급하긴 하지.”

“마나 선배의 조력 덕분에, 좀 더 실감나는 연기가 가능하게 되었죠.”

이것 때문에 내가 마나하고 수다를 많이 떨긴 했지

“아무튼, 스타 크래프트라는 게임을 했다고 이렇게 구독자가 많이 늘다니, 한국은 참 신기하긴 해.”

“그거야, 한국에게 있어서 스타 크래프트는 일종의 민속놀이같은거죠.”

“미, 민속놀이?”

“네, 일본 애들이 학교 끝나고 닌텐도나 겐다마를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한국 애들은 피시방에 가서 프로 빌드 따라하고 애들끼리 PVP하기도 했죠.”

뭐 정확하게는 나는 이쪽 세대는 아니긴 하지만 동생이 들려준 스타 크래프트 출신 프로게이머 선배들 이야기들이 그러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어젯밤 동생과 카톡을 나누면서 알게 된 내용들을 적당히 양념처서 말을 하자 ‘과연 한국은 그랬구나’ ‘그래서 e스포츠가…’ 같은 반응을 보인 언니는 내 설명을 납득한 것 같았다.

“그래도 방송 단 한번으로 구독자가 4만명 가까이 오르다니, 확실히 한국에도 구독자들이 많이 늘긴 했구나.”

“뭐 그런 셈이죠. 요즘 미카엘도 다른 회사 소속의 버튜버하고 자주 게임하지 않아요?”

최근 들어서 미카엘은 ‘레드’라는 슬라브 미소녀 컨셉의 한국인 버튜버하고 자주 합동 방송을 즐기고 있었다.

나에 언니가 포함된 4기생 중에서 근래 들어서 성장이 더딘 미카엘은 한국인 시청자들을 쓸어 담으면서 급성장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스타 방송 한번으로 한국인들의 열기를 크게 끌어올린 모양인지 아무래도 위에서 이것저것 나에게 알아보라고 한 게 많았나 보다.

그렇게 성실히 언니의 의문을 풀어준 나는 트위터를 켜고 녹화 프로그램을 켰다.

다음에 해야 할 게임을 골라야 했으니 말이다.

“방송 소재로 쓸 게임을 룰렛으로 정하다니, 정말 게임을 잘하는 유나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야.”

감탄인지 경악인지 자포자기인지 모를 언니의 목소리를 들은 나는 미소 지었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게임 잘한다는 말은 극찬이니 말이다.

아무튼 의도치 않게 나에게 큰 성공을 가져다 준 룰렛이 다음에 가리킨 것은…

“정말, 이게 운명이라는 것인가요?”

트위터에 업로드 할 룰렛의 결과는 다름아닌 워 크래프트였다.

역시 스타 다음으로는 워크지­라며 운명의 신이 내 귀에 속삭이는 거 같았다.

스크룰을 해가며 여러 일정들을 확인한 내가 말했다.

“다음 방송은 곧 발표하는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 방송으로 가죠.

스타 크래프트와 다르게 판타지 소재에 이해하기 쉬운 판타지 소설 같은 느낌이라 괜찮을거에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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