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44화 (244/307)

〈 244화 〉 243화.

* * *

“클라티에 선배님, 이게 뭐에요?”

“이거? 똥게임을 하고 고통받는 아리아.”

웃음기, 정확하게는 비웃음을 머금으며 장난스럽게 와하하 웃는 천사처럼 생긴 악마가 거기 있었다.

이... 이 사악한 심해 생물이!

“명작에 대한 존중이라고 해주죠?”

“그 명작 메타크리틱이... 1점 이하던가?”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장난을 거는 범위가 늘어난다고 했던가?

얌전하기 그지없던 선배가 나를 골리기 위해 이렇게 장난을 치고 있다니 풋풋한 첫 만남이 살짝 그리워졌다.

음반 출시 이후 고정 콘텐츠가 되어버린 게임 룰렛으로 진행한 스타 크래프트 이후 도전한 워 크래프트 리포지드는 처참한 게임 퀄러티로 방송이 반쯤 망가져 버렸다.

그 이후 정기 콘텐츠로 진행한 ‘라스트 오브 어스’에서 순수한 드라마와 엘리의 걸쭉한 욕설 덕분에 재미를 봤던 나는, 그다음으로 진행한 라스트 오브 어스 2의 초반부를 진행하다가 방송 사상 최초로 게임을 꺼버렸다.

1편에서 시청자들과 함께 쌓아 올린 추억이, 조엘과 엘리와 함께 만들어간 서사가...

“골프 채.”

“아아아아악!”

그동안 심해 교주라는 컨셉에 걸맞지 않게 상냥하고 착한 모습만 보여서 반전미를 자랑하던 클라티에 선배였으나, 오늘 따라서 유독 장난을 치고 싶어 하는 지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는 선배의 악랄한 단어 선정에 나는 머리를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하지만 너무 하잖아!

어느새 나에게 ‘똥겜 게이머’라는 오명이 붙어버렸다고!

나보다 더 심하게 망한 고전 게임을 하면서 방송을 하는 아카리 선배는 게임의 버그를 발견하고 불합리한 상황이 오더라도 웃음을 잃지 않고 즐겁게 게임을 하는 반면에

게임을 하면 효율적으로, 이기고 봐야 하는 나는 그런 상황이 오면 절규하고 비명을 질렀다. 즉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놀림감 그 자체였다.

그 덕분에 또 다시 우아하고 완벽하고 아름다워야할 아리아에게 ‘똥 게이머’라는 오명이 붙었다.

“아, 두고봐요! 당분간 동물의 숲 말고는 콘솔 게임 하지 않을거니까! 딱 리스트에 있는 게임들만 할거에요!”

“오호라, 당분간이야?”

“네! 저는 믿고 있어요. 우리의 킹 갓 그레이트 엠페럴 마제스틱한 위쳐 3을 만든 CD 프로젝트의 차기작! 사이버펑크야 말로 저의 오명을 벗겨줄 위대한 게임이란 사실을 말이죠!”

화려한 그래픽을 극한으로 뽑아낸 SF 장르

최근 들어서 아주아주 핫한 키아누 리브스를 초빙해서 모델도 만들고 배우가 직접 홍보까지도 한, 극한의 자유도로 미래 세계를 탐방하게 하는 사이버펑크 2077

그 궁극의 게임에게 거는 기대가 엄청 큰 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래서 당분간 그 리스트에 있는 ‘검증 받은 게임들’만 한다는 거야?”

“물론이죠.”

우리의 대화는 그런 식으로 이어져 나갔다.

그러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나갔다.

클라티에 선배처럼 퀄러티 있는 게임 원화같은 그림을 그리는 건 멀었지만, 그래도 3등신의 캐릭터로 버튜버들의 특징을 표현하거나, 단순한 인체와 머리카락 정도는 그릴 수 있게 된 나는 선배와 잡담을 하면서 그림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말인데, 나와 같이 게임 홍보 하나 할래?”

“네?”

그토록 망한 게이머, 똥게이머라고 놀려두고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선배는 혹시 이번에 들어온 회사를 엿먹이고 싶어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선배는 나보고 따라 그리라는 듯 느릿느릿하게 그리던 그림을 빠르게 완성시켜나갔다.

선과 선이 이어지고 턱선이 된다.

강약이 신들린 듯 조절되며 규칙적으로 그려진 선은 머리카락이 되고

부드럽고 둥글게 그려진 곡선은 아름다운 눈이 되었다.

그렇게 완성된 금발의 미소년과 미소녀는 내 눈에 상당히 익었다.

그러고보니 이런 애들을 본 적이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선배가 조그만 하얀 꼬마를 그렸다.

“아!”

“원신, 저번에 해본 적 있지? 우리 회사에서 이런 거 홍보할 사람이 나 밖에 없었는 데 같이 하면 더 좋을 거 같아서 말이야.”

나는 해본 적이 없는 명작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을 표절했다고 많은 게이머들이 분노하며 화제의 작품이 되었던 그 작품은 모바일 게임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퀄리티 때문에 나는 작품성은 좋다고 생각했다.

듣자 하니 중국의 어마어마한 자본력과 인구력이 맞물려 300명 단위의 개발팀이 돌아간다고 했던가?

그런 힘으로 끊임없이 유지보수와 개발을 이뤄나간다고 하니, 다른 의미로 기대가 되는 작품이었다.

“선배, 솔직하게 말해요. 제 ‘재액의 구미호’를 써먹고 싶어서 그렇죠?”

“에헤헷, 들켜버렸다.”

하긴 선라이즈 GB의 최고 가챠 중독자인 선배가 이 일을 거절할 리 없지.

기왕 하는 김에, 같이 가챠를 돌리면 운을 분배해준다는 아리아의 ‘재액의 구미호’와 함께 방송하면 가챠 운도 좋아지는 미신이 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일본에서는 저번에 홍보를 해서 그런지, 이번에는 홍보를 받지 않았는데 내가 해도 되는가?

그래도 나름 룰렛 리스트에 있던 게임이기도 하고, 내가 직접 해본 ‘내가 검증한 게임’이기 때문에 나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가 조금 얄밉긴 하지만, 그림을 배우고 난 후 여러 영상들을 찾아본 결과 이렇게 클라티에 선배에게 그림을 배운다는 게 보통 행운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나는 선배에게 당해주는 척 선배의 제안을 수락했다.

“아, 얼른 아리아 만나고 싶어. 껴안아 주고 싶어!”

“으휴, 이 가챠 중독자.”

“에헤헤헤.”

후배가 자신을 놀리거나 말거나, 나와 함께 갓 출시한 게임의 가챠를 방송한다는 사실이 그리 즐거운 모양인지 선배는 높은 텐션으로 그 날 방송을 마무리 지었다.

**

메이드 일을 그만둔 지 어언 3주가 지났다.

처음에는 금요일마다 회사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더 이상 메이드에 관련된 메일들을 정리하는 일이 없어졌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 사라진 것 같은 상실감이 들었던 나는 괜사리 언니의 방에 들락거리면서 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렸다.

알게 모르게 대본을 준비하고, 회사 돌아가는 거 파악하고, 메이드의 이름으로 들어온 일들을 처리하느라 하는 고생이 많았고 여기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이 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알아차린 나는 유키하라 언니에게 정말 고마워했다.

뭔가 관성적으로 일을 했는데, 사실 그 일의 양이 생각보다 내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부담을 많이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마치 병을 초기에 진단한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정신적으로 여유가 많이 남은 나는 그동안 도통 바빠서 하지 못했던 외부 활동들을 슬금슬금 늘려 나갔다.

“그래서, 우리 집에 메이드 일 하러 왔어?”

“네, 겸사겸사 타마랑 놀려구요.”

오랜만에 들리는 타마네 집은 여전했다.

한 때 여기서 언니가 살았기 때문이었을까?

어찌보면 사이타마의 쉐어 하우스보다 익숙한 이 멋진 저택에 들어선 나는 집 상태가 조금 엉망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게, 언니는 요즘 대회 준비하느라 바쁘고, 나는 일이 많이 들어와서.”

“으흐흥, 마미 선배 이제 완전 일본의 인기 작가 다 되셨네요?”

“끄응.”

“이번에 소니 광고 음악 맡으셨다면서요? 축하해요.”

선라이즈 버튜버 중 가장 대외 인지도가 높아진 코모레비와 더불어 작곡가 겸 프로듀서인 마미 선배의 또 다른 이름인 ‘니아’또한 인기가 높아졌다.

지금도 편의점에 들어가면 나와 츠유가 부른 노래들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으니, 인터넷에서 1천만 조회수를 달성하며 온라인에서 인기 있던 과거와 다르게 확연하게 자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보면 되었다.

“늘 말하지만 대단한 건 내가 아니야, 이미 나는 요시즈네 선생님이나, 아야세 선생님이 개척해둔 길을...”

“네에 네에, 그리고 푸른 혜성에 빌어는 저와 츠유의 능력을 살리는 도구에 불과했다고 하는거죠.”

솔직하게 자신의 대단함을 인지하고 자랑하면 좋을 텐데

예술가들은 다들 그런 기질이 강하게 드러나는 편 아니었나?

아니면 온라인에서 작곡을 해서 그런지 뭔가 자신의 감각치를 넘어버린 인기를 자각하면 부끄러워지는 것일까?

마미 선배가 붉게 물들인 머리카락만큼이나 붉어진 볼을 장난스럽게 쿡쿡 찌른 나는 성난 불독처럼 내 손가락을 깨물려는 마미 선배의 이빨을 피한 후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갔다.

원래 타인의 방에 들어갈 때는 노크를 한 후 조심스럽게 들어가는 게 예의지만

생각해보니 오후 두 시에 찾아온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한 나는 장난스러운 마음이 들어 그녀의 방을 살며시 열고 들어갔다.

예쁜 인형 같은 언니와 다른 귀여운 매력이 있는 이 동갑내기의 방송인은 착한 사람마저 사디스트로 만들 수 있는 괴롭히기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령 내가 들어온지도 모르고 헤드셋을 착용하고 열심히 게임에 몰입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 기특해서 미칠 것 같았다.

사람이 바보 멍청이는 아닌 데 하는 짓이 너무 어벙하다고 해야할까

“큿! 큿!”

최근 들어 일본의 인터넷 게이머들이 모여서 한다는 DF배 에이펙스 리그에 참전한다고 혼자서 연습중인 그녀는 자신의 플레이를 돌려보며 실수를 찾아내며 큿… 큿…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사람이 어쩜 이렇게 홀로 살아도 귀여울 수 있을까?

하는 행동이 어벙하고 굼뜬 것 같아서 답답해 보이지만 게임만 하면 거의 프로게이머가 되는 갭모에가 있으니, 그녀야 말로 천성적인 버튜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 어라?”

“드디어 여길 봐주는구나.”

“자, 잠깐만 나 안 씻어서 냄새!”

냄새가 나거나 말거나

무방비로 게임을 돌려보며 지친 그녀를 향해 나는 달려들었다.

“저리가 이 변태!”

“아이고 타마 너무 귀여워!! 토실토실해!”

“꺄아아악! 마미! 도와줘 마미!”

그날 나는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마미 선배가 올라와서 나를 때리기 전까지 타마의 포동포동한 뱃살과 볼살을 거칠게 탐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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