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5화 〉 244화.
* * *
“변태, 바보, 멍청이.”
이전이라면 내가 이런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인가? 하며 진지하게 고민했을 단어들이 들려온다. 나는 변태도, 바보도, 멍청이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타마 한정으로는 그런 소리 들어도 좋아.”
“유나! 어쩌다가 이런 답이 없는 사람이 된거야!”
“내가 나쁜 게 아니라 타마가 나쁜거야.”
“제발 방송할 때 아닐때는 평범하게 이로하라고 불러줘!”
최근 들어서 다른 버튜버들과 함께 타마를 놀린 적이 있어서 그런가?
바보처럼 느껴지는 타마의 멍한 눈과 현실의 이로하의 눈이 겹쳐 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유나 사람이 너무 바뀌었어.”
타마, 아니 이로하가 하는 힐난과 비난은 분명히 사람을 매도하는 기색이 있었으나 불쾌하기는커녕 입가에 미소만 지어졌다.
오타쿠가 되면 될수록 타마에 빠져드는 사람들을 알 수 있다고 해야할까
나에 언니처럼 숨막히게 사람을 조여오는 스타일도 좋지만, 이로하처럼 심술궂은 초등학생 남자아이마냥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괴롭히고 싶어하는 마음이 드는 건 낯선 기분이었다.
“조금 더 업계 사람이 되었다고 해줄래?”
“아악! 뺀질거리지 마! 정강이 차버릴거야!”
“차보던가.”
방구석 폐인인 이로하의 발길질은 나에게 있어서 초등학생의 귀여운 투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사실을 본인도 잘 알고 있는 모양인지 씩씩거리면서 고개를 픽 돌리는 게 정말 귀엽다.
이전에 카린이 타마를 딸내미 삼고 싶다고 말한 기분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 우리집에 온 이유가 정말... 그게 다야?”
“응, 메이드 기분 내보려고 온 게 다야.”
내가 선라이즈에 입사 한 이후 방송의 세계로 처음 발을 내딛은 캐릭터인 메이드 라
그녀로 활동할 적 살았던 사이타마의 쉐어 하우스는 더 이상 나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래도 언니의 최고의 친구라고 할 수 있는 타마의 집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지냈던 경력이 있었으니 나 또한 마미 선배에게 음악을 중심으로 방송기획과 진행에 대한 여러 가지 것들을 배우면서 방송인으로의 준비를 한 장소가 여기다 보니 집만큼이나 정감이 갔다.
4인 가족이 살아도 넉넉하다고 느껴질 집이기 때문일까?
하나카와 가(家)의 두 자매는 나의 방문을 꺼리질 않았고 나 또한 이곳으로 놀러오는 것을 꺼리질 않았다.
그만큼 이 저택에는 그녀들만큼은 아니지만 나의 기억과 애환 또한 서려있는 장소였다.
“바보같아, 귀중한 쉬는 시간에 남의 집에 방문해서 청소하거나 빨래를 한다는 사실이.”
예상대로 구석구석 숨겨둔 과자 봉지나 아이스크림 막대기들을 찾아낸 나는 이로하의 투정거림을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한 핀잔으로 들었다.
“친구끼리인데 뭐 어때.”
“친구끼리니까... 부끄러운거야...”
“으음, 하긴 가리가리군을 먹고 난 후 침대 밑구석에 둔 건 좀 부끄럽기는 해.”
다 큰 어른이 아이스크림을 침대에서 먹고 난 후 쓰레기를 치우지 않다니, 살짝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래도 귀여우면 다 용납이 되는 건가?
부끄러운 듯 입을 꾹 닫고 무릎을 껴안으며 얼굴을 붉히고 있는 이로하의 모습을 보니 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팔아넘기고 싶다는 사악한 욕망이 차올랐다.
얘는 뭔데 나와 나이가 같은데 사람이 이렇게 귀여울 수 있지?
아 볼 잡아당기고 싶다.
다른 사람들, 그러니까 호시무라나 미우같은 여자애가 방을 이 꼴로 만들고 저런 자세를 취했다면 엉덩이를 걷어차며 치우라고 말하겠지만, 이로하는 뭔가 특별했다.
오랜만에 제대로 보는 이로하가 왜 이렇게 귀엽게 느껴지는 지
뭔가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무방비한 백치미가 흘러넘치는 그녀의 태도에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좁기도 좁고, 언니 또한 건강을 되찾은 후 그동안 못한 가사일에 재미를 붙인 듯 나보다 집을 더 깔끔히 관리한 이후로 치울맛이 사라진 나의 집 대신에 워낙 넓은 까닭에 치울 맛이 남아있던 청소를 끝낸 나는 여세를 몰아 부엌일까지 해치웠다.
“뭐랄까, 영광이네. 100만 버튜버가 해주는 요리 먹는 거.”
닭 껍질에 꿀을 바르고 속에는 서양 향신료 주머니를 때려 박아넣어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로스트 치킨을 한 입 먹은 마미 선배가 그렇게 말했다.
“에이에이, 뭘 그렇게 치켜 올려주시나요? 그냥 평범한 요리에요 요리.”
“나에 언니가 서운해하겠다.”
“언니는 지금 애니메이션 녹음 중이니 밥은 그쪽 사람들과 회식할걸요?”
자본과 규모로 보면 선라이즈는 이제 버튜버 업계에서는 최정상이었고, MCN으로 보자면 일본 내에서도 한 손 안에 꼽히는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버튜버들을 캐릭터로 취급하는 우리 회사의 특성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작년부터 발동이 들어간 애니메이션 제작은 제작 중간쯤 왔고 성우, 그러니까 버튜버들의 녹음이 들어가는 단계에 왔다.
“아 맞다. 애니메이션.”
1년 전 기준으로 보면 타마 또한 선라이즈에 소속된 100만 버튜버로서 최근까지 수록 일정을 빡빡하게 잡은 편이니 그녀도 자연스럽게 이야기 했다.
“애니메이션은 솔직히 잘 쳐줘야 A급이고 아무래도 팬서비스 위주의 B급이야.”
“아, 그래?”
“응, 약간 팬서비스 애니메이션 같은 느낌이 강해.”
애니메이션이라... 2년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할 단어였지만 이제는 오타쿠로서 살짝 동경심을 갖게 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선라이즈에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더라도, 다른 게임에 아나운서 녹음으로 출연을 한다거나, 이벤트에 등장해서 활약하는 선배들도 있으니 나도 언젠가 성우와 유사한 경로로 일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나는 애니메이션보다는 아이돌 콘서트나 오디션 프로그램이 더 빠르겠지만.”
그런 내 생각을 읽고 있다는 듯 행복한 얼굴로 닭 다리를 뜯어먹기 시작한 이로하가 말했다.
마미 선배는 그런 이로하에게 티슈를 건네주었다.
가끔 보면 누가 동생이고 누가 언니인지 모르겠다니깐.
“그래도 100만 구독자가 되면 여기저기서 일이 들어올걸? 뭐 그러려면 유나가 연기에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걸 암시하는 콘텐츠를 몇 개 진행해보는 게 좋겠지만.”
“그래요?”
“응, 요즘 들어서 여러 선생님들을 만나는 데 겸사겸사 애니메이션 작업하시는 분들도 만나고 그분들에게서 여기저기 듣는 소리가 있으니 말이야.”
버튜버는 전문 성우는 아니다.
하지만 성우 교습을 받아본 나는 버튜버 경력이 긴 사람들중 다수는 성우에 대한 자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기 에니메이션의 성우가 라디오에 나와서 캐릭터 톤으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콘텐츠가 있는데 그것은 결국 버튜버의 방송과 비슷하지 않는가?
해보고 싶은 여러 가지 리스트 중
어느새 나의 가슴 속에는 애니메이션 출연이 생겨났다.
그리고 다음 날
과음을 해서 술자리를 초토화 시킨 언니에게 해장국을 끓여주고 회사에 간 나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유나야.”
“네.”
“메이드를 포기한 만큼 좀 더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하고 싶다고 저번에 말했지?
다른 버튜버들처럼 단순히 방송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를 좀 더 활용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거 말이야.”
메이드를 그만둔 이후 시간과 정신력에 여유가 생긴 건 나 뿐만 아니었다.
나의 소중한 매니저인 유키하라 언니 또한 이중업무에서 해방되어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기에 언니는 지치지도 않는지 방송 의외의 일들을 알아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아직까지도 너에게 콜을 하는 그 음악 프로그램에서...”
최근 들어서 지상파의 몇 방송국에 변화가 생겼는데, 다름이 아니라 오타쿠들이 활발해지는 심야 시간대에 버튜버들이 나와서 일본의 예능인들과 토크를 하거나 활동하는 콘텐츠들이 늘어났다.
버튜버의 팬들이 그만큼 TV만 켜도 시청율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우리 회사 말고도 다른 회사에서도 인기있는 버튜버들을 TV 프로그램으로 데려가는 일이 잦았다.
이쪽 분야의 선두주자를 연 아리아와 코모레비는 어찌보면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었기에 유키하라 언니는 꾸준히 나에게 TV 출연을 권했다.
“죄송하지만 지상파는 츠유에게 맡기려구요.”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그것이 내키지 않았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다른 서류철을 열은 유키하라 언니가 나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 유나도 슬슬 큰 거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네.”
“큰... 큰거요?”
나는 다른 일본 서버의 선배들과 조금 다르다.
100만 구독자를 보유했다고는 하나, 팬층의 절반이 넘는 숫자가 해외에 있으니 말이다.
유명한데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일본에서는 조금 힘이 떨어진다고 해야하나?
슈퍼챗 순위나 방송의 인기도에 걸맞는 캐릭터 파워는 있지만, 프로듀서들이 좋아하는 팬 파워에 대해서 의심을 받을 수 있다 보니 오히려 100만 구독자를 보유해서 이름값이 뛰었기에 콜라보를 주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오... 이 게임이요?”
“응, 심지어 이벤트 스토리도 낭낭하게 챙겨준다는 데?”
게임에 대한 지표를 살펴본 나는 감탄사를 터트렸다.
확실히 북미쪽에 인기 있는 글로벌 게임이라면 느낌이 다르긴 하지.
게임 내 연출과 짤막한 영상을 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애니메이션 연출에 많은 기대를 거는 게임이라, 특이하네요.”
“뭐 그만큼 캐릭터 팔이를 잘 하는 게임이라고 보면 되겠지?”
그렇게 수락의 글을 쓰기 시작한 유키하라 언니를 멍하니 보던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성우 수업을 받느라 수락하지 않았던 다른 플랫폼과의 콜라보, 그러니까 게임으로 콜라보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아리아는 드디어 인터넷 방송과 지상파 방송이 아닌, 다른 형식의 미디어 형태로 나오게 된다.
그 사실을 자각한 나는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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