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47화 (247/307)

〈 247화 〉 246화.

* * *

버튜버를 하기 전에 나에게 있어서 오타쿠들은 모두 같은 부류였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게임을 좋아하고 눈 크기가 평범한 그림에 비해서 크고 사실주의 묘사가 적게 들어간 데포르메 캐릭터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의미 모를 그림과 데이터에 큰 돈을 지불하며 저마다의 방법으로 특정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팬심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게임을 좋아하는 오타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오타쿠, 라노벨을 좋아하는 오타쿠 등등 어떤 미디어 형태를 좋아하느냐에 따라서 달랐고, 좋아하는 캐릭터의 취향이나 작품의 취향에 따라서 크게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다른 취향을 가진 오타쿠들은 서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버튜버같은 경우는 확고한 팬덤과 싫어하는 사람들이 극명하다고 해야 할까

버튜버 커뮤니티가 아닌 곳에서는 악성 덧글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콜라보에 문자 그대로 혼을 갈아넣었다.

물론 나는 돈이 들어오면 그에 따라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이번 일에 한정해서는 ‘결국 우리 게임에 버튜버 들어오니 망겜되었네 ㅋㅋ’ 따위의 소리가 나오지 않게 정말 기합을 빡 주고 넣었다.

‘아리아의 캐릭터라면 이 상황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거에요. 그러니까 문장을 이렇게 수정해주세요.’

‘제가 게임을 해봤는데, 이런 진지한 캐릭터에게 처음부터 호감을 가지기 보다는 희롱하고 싶어하는 누나 느낌이 날거에요.’

‘대사가 늘어나서 돈 문제 생긴다구요? 아뇨 걱정하지마요, 제가 읽을 대사 늘어난다고 돈 추가로 요구하지 않을테니까.’

별로 좋아하지 않는 휴대폰 게임을 다운받고, 이미 이 게임을 열심히 하고 있던 동료들에게 스토리를 듣고 캐릭터 해석을 검색해봤다.

충분한 사전지식을 공부한 다음 나는 세계관과 핵심캐릭터, 그리고 내가 등장하는 시나리오에 나오는 캐릭터를 분석한 뒤 가능한 내가 원하는 대로 아리아를 잘 녹여낼 수 있도록 노력했다.

어찌 보면 개발팀들을 괴롭힌 꼴이 되겠지만,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해서 이번 협업을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대망의 캐릭터가 실장되는 날

나는 직접 방송을 켜지는 않았다.

대신 아주 오랜만에 버튜버가 아닌 다른 인터넷 방송인들을 보러 갔다.

“오늘은 이번에 업데이트 된 신규 시나리오 이벤트를 할 예정이다.”

글로벌에서 꾸준히 매출 순위 10등 안을 찍은 게임답게 이미 많은 인터넷 방송인들이 방송을 하고 있었고 적당하게 보이는 방에 들어간 나는 팝콘 봉지를 뜯었다.

그중 제법 많은 실황을 보유한 퓨즈 연구소라는 흔한 일본 문화 좋아하는 오타쿠의 방에 들어간 나는 방송을 차분히 보기 시작했다.

“얘들아, 나는 몇 번 말한 적 있었지만 나는 버튜버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버튜버인 내가 이런 말 하는것도 우습지만

나 또한 버튜버를 하기 전에는 인터넷 방송인들을 싫어했다.

왜 이런 걸 보지? 시간을 왜 쓰지?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워워, 진정해 친구들. 물론 이건 개인적인 견해야. 나는 수익 활동을 하고, 사회에 기여를 하고 있다면 마땅히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해. 팬들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기분이 들지 않는 기분이 든달까?”

할거면 아예 얼굴을 가리고 하는 노페이스(No­face)방식으로 진행해야지 어설프게 모델링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건 2D와 3D 사이의 어설픈 무언가라고 발언한 그는 게임 다운로드가 끝난 후 게임에 들어갔다.

“그래서 이번 방송에는 단순히 에픽 게임을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운영진이 왜 버튜버들을 협업하면 안 되는가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 할 생각이야. 그래서 만약 아리아의 팬들이 있다면 뮤트를 해두거나 이 방에서 나가도 좋아.”

시작부터 나에 대해서 까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 덕분일까?

나는 오히려 흥미가 생겼다.

퓨즈 연구소는 구독자 350만명 가량의 잘 나가는 유튜버 채널이었다.

이런 거대한 채널을 굴리며 운영하는 사람은 과연 버튜버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솔직히 버튜버들은 너무 다양한 거 찍먹하지 않음?

­맞아, 게임의 팬으로서 리스펙 하는 무언가가 좀 부족해. 대다수의 스트리머들이 그렇긴 하지만 버튜버들은 좀 더 그래

­컨셉 스트리머라면 컨셉을 끝까지 좀 지켰으면 좋겠어.

­모델링 기분 나빠 ㅋㅋ

­그래도 모든 애들이 나쁜 건 아닌데, 버튜버들에게 너무 공격적인 거 아님?

­모 회사 되도치않는 청초 컨셉은 좀 우스운 듯?

아 저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선라이즈 버튜버들의 세상에 청초의 도리가 땅에 떨어진지 오래인데, 불쌍한 우리 사장님은 아직도 조각나버린 청초를 찾아서 헤매고 있으니 우습다 못해 안구가 습해진다.

아무튼 방송하는 사람의 의견에 따라 ‘어디 한 번 걸려볼 테면 걸려 봐라’라는 식으로 방송은 진행되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겠지만 이번 여름 시나리오를 개최하면서 운영진에서는 유래없는 사료를 뿌려댔기 때문일까?

“아, 그러고 보니 살짝 늦은 1.5주년 이벤트를 겸한 서머 이벤트의 서막이라고 했던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름 시즌 게임에 살갗을 노출한 수영복 캐릭터와 함께 가챠권을 뿌려대는 건 국룰이다.

거기에 주년 이벤트로 호화 패키지를 팔기 좋은 명분을 쌓으면서, 유저들에게 거부감 없이 패키지를 팔 수 있는 기회는 잘 없었기 때문에 이번 내 시나리오 이벤트를 준비하며 꽤 많은 이벤트 재화를 뿌리기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오, 짠돌이들이 왠일이야?”

최고등급 캐릭터를 가져올 수 있는 티켓을 이벤트를 출석 이벤트를 하면 얻을 수 있기 때문일까? 가지고 있는 돈이 많은 중과금러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내 생각에는 이번 이벤트 재화는 아꼈다가 이거 다음으로 업데이트 되는 수영복 이벤트에 지르는 게 좋아 보여. 뭐 버튜버 캐릭터가 한정으로 나오긴 하겠지만 아무리 좋게 나와도 이 캐릭터를 위해 돈을 쓸 것 같지는 않네.”

대형 업데이트를 확인한 그는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눌렀다.

에피소드는 일행이 아이가 여우에게 홀려서 금지된 여우의 숲으로 사라졌다는 의뢰를 듣고 수색하러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군데군데 사악한 부정형(不??) 괴물들이 봉인되어있는 여우의 숲을 탐색하며 이곳에서 만난 수수께끼 여인과 함께 과거 진행했던 이벤트에서 애매하게 던졌던 떡밥을 회수하면서, 옛날에 일어났던 끔찍한 재앙의 진실에 대해 다가가는 게 이야기의 핵심이었다.

“잠깐, 이게 버튜버의 목소리야? 성우가 아니라?”

스토리를 진행하던 퓨즈가 갑자기 진행을 멈추고 그렇게 말했다.

게임 캐릭터로 나온 아리아가 이야기 하는 부분을 듣던 그는 오랜 오타쿠 생활을 겪으며 단련된 귀로 식별하지 못한 성우의 목소리에 살짝 당황했다.

“갓, 지세스! 진짜 보이스 액터가 아리아잖아? 그녀는 미국인 아니었어? 어떻게 이렇게 일본어에 흠이 없지?”

그거야 호흡과 발성을 조금만 틀려도 매섭게 지적하던 요시노 선생님이 깎아주신 성대이기 때문이지.

연기 경력만 쌓는다면 성우도 도전해도 괜찮다고 허가를 받은 게 나라고.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일단 그녀는 다른 버튜버에 비해서 연기가 아주 괜찮다는거지. 너희들도 알잖아? 끝내주는 보이스가 어떻게 캐릭터들을 데려오는 지 말이야.”

잠시 방송을 멈춘 그는 레코딩 프로그램을 켰다.

아무래도 방송의 녹화와 별개로, 게임진행 자체를 기록하려는 모양이다.

“오 주님 맙소사, 이 유혹하는 음성 보이스가 통과 되었다고? 그들은 심의가 걱정되지 않는가?”

어딜 가나 있는 어설프고 정의로운 소년 주인공을 홀리려는 누님 캐릭터의 연기는 먹히는 법이었다.

언니가 들으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 정도로 연기톤을 끌어낸 덕분에 반응은 뜨거웠다.

­와, 이 캐릭터 핫 한데?

­아니 이걸 핫하다고 해야하나? 죽을 걸 알면서도 사랑을 나누고 싶은 기분이야

­맞아, 에이즈에 걸린 사람에게 욕망이 일어나는 기분이야

­얘 분명히 사악한 캐릭터가 아니었나?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호감을 보이지?

아리아는 직선적으로 누군가를 꼬시지 않는다.

동양 출신 구미호답게 우회적으로, 가령 오늘 같이 밤 산책 나갈래요?라고 묻는다거나 비밀 이야기를 나눠볼래요? 하는 식으로 친밀감을 높이려는 말을 한다.

물론 오해의 소지를 살 수 있는 발언들을 적당히 하면서 말이다.

아무튼 그 후 방송은 멈추지 않았다.

모바일 게임의 이벤트답게 스킵을 하며 진행하면 15분 정도에 모두 진행할 수 있었고, 스킵을 하지 않을 경우 평소보다 조금 많은 텍스트양으로 인해서 40분에서 1시간 정도를 진행해야 모든 스토리를 볼 수 있었다.

신령한 나무를 중심으로 세상을 혼돈에 빠트린 요괴를 봉인하며 함께 죽어가고 있었던 아리아를 주인공 일행이 구제하는 평범한 구원서사에 가깝지만

아리아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주인공을 밀어내는 모습과 봉인석의 위치를 바꿔가며 주인공을 위험한 환경에 빠트리고 싶어하지 않는 캐릭터 덕분인지 캐릭터와 데이트 내지는 숨바꼭질을 하는 느낌이 나게 연출이 되었다.

마지막으로는 오염에 물든 나무를 제거하며 아리아를 봉인의 나무에서 구원하게 되며 해피엔드를 맞이하게 되었다.

판타지 컨셉의 게임을 하게 되면 한 두 번정도 볼법한 게임 에피소드였지만, 역대급으로 꼽히는 연출 덕분인지 수십번 돌려본 나도 괜찮게 보이는 게임 스토리였다.

그리고 모든 에피소드를 돌려본 퓨즈는 가챠샵으로 향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가챠를 하면 내가 구원한 아리아가 세상 여행을 떠나지 않고 나의 곁에 온다는 것이지?”

­가챠 안한다며ㅋㅋ

­아 근데 못 참긴 하지, 나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친 애를 어떻게 참음?

­언제부터 판타지 연애 시뮬레이터였냐고 ㅋㅋ 결장이나 가라고!

이후에는 즐거운 가챠쇼였다.

안 지를 거라고 말하긴 했지만, 중증 누나 캐릭터 오타쿠인 퓨즈가 그럴 리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시청자들은 그를 놀리기 시작했다.

­버튜버는 좋아하지 않으니 안뽑겠다. 어디감?

­아리아가 그 말 듣고 삐져서 지금 안나오고 있잖아

­허접 유튜버, 결국 자기 자신이랑 한 약속 못 지켰죠?

­솔직히 똥픽이 밀어주기 했지만 결국 보이스에 넘어가버렸죠?

“아, 그래 인정하지! 내가 완전히 오판을 했어, 적어도 아리아만큼은 좋은 캐릭터인 건 인정할게!”

­캐릭터 아리아는 인정

­버튜버는 몰?루겠다

­아ㅋㅋ 그래도 시작 전에 얼굴 썩었을 때와 비교해서는 확실히 좋긴하네

처음의 날선 분위기는 어디 가고, 행복한지 행복하지 않는지 가챠를 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본 나는 만족스러웠다.

그래, 누가 작업을 했는데, 당연히 홀딱 넘어와야지!

언니에게 갈고닦은 캐릭터 분석학으로 만들어진 이 게임 속의 아리아는 내가 봐도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아무튼 나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바뀐 것을 보고 만족한 나는 적당하게 도네이션 채팅을 던지고 나갔다.

[방송 잘 봤어요.]

“아, 붉은 슈퍼챗 감사합니다. 아리아 씨... 네?”

­???

­?????잠깐

­혼모다 혼모노다 ㅋㅋㅋ

­저 사람 진짜 아리아야 ㅋㅋㅋ

­오 그럼 우리가 깐 것도 다 보고 있었던거야?

내 슈퍼챗 이후 빠르게 올라온 시청자들의 채팅을 잠시 보던 나는 방을 나갔다.

아무튼 오늘의 탐방은 대성공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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