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8화 〉 247화.
* * *
벌써 일년의 절반이 지나왔다.
돌이켜보면 정신없는 세월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버튜버인 나에 언니의 매니저였고, 버튜버 활동이라고는 메이드 라로서 잠깐잠깐 활동하던 나는 회사가 만들어준 개인 채널을 가지고 활동을 하는 버튜버가 되어있었다.
노래를 부르고 게임을 하고 잡담을 한다.
가족같은 다른 멤버들과 대화를 하고 장난을 치며 나의 일상과 생각을 공유하며 시청자들은 나의 팬이 되어갔다.
그러다가 친한 동생과 함께 부른 노래가 일본 유튜브의 실시간 1위를 먹게 되면서 버튜버의 신분으로 지상파에 출연하기도 했다.
성우 훈련을 받은 후 ASMR 영상을 조금 올렸다가 수익화 금지 딱지도 한 번 받아보기도 했고, 게임 캐릭터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년 전 까지만 해도 코로나로 인해서 미래를 걱정하던 한국인 유학생인 유나는 이제 100만 구독자를 보유한 인터넷 방송인이 되었다.
적도에 가까운 탓에 한국보다 뜨거운 일본의 공기에 녹아내린 나는 멍하니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서 달력을 바라보며 올해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았다.
결국 돌이켜보면 회사 집 회사 집을 오고가면서 때에 따라서 방송국이나 성우 사무소에 방문해서 업무를 빡세게 굴렸다.
그 사이사이 운동을 하면서 기분 전환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진작에 뻗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올해 들어서 아예 놀지 않았던 건 아니다.
예전에 함께 놀러간 오다이바에서 즐겁게 쇼핑도 하고 온천도 즐겼고, 일 주일동안 휴가를 받아 보낸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나에게 있어서 학교 마치고 잠시 맥도날드에 들려서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는 정도의 놀이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놀 고 싶 어~!”
심심했다.
물론 인터넷 방송은 즐거웠다.
하지만 의무와 책임이 따랐기에 진정으로 휴식하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일과 건강과 생존을 위한 휴식을 제외하고는 머리가 방송에 집중이 되다보니 지칠 수 밖에 없었다.
이전에 생각없이 즐겼던 게임은 혼자 플레이하는데도 자꾸만 방송각을 보게 되었고
나의 친한 사람들은 요즘 들어서 하나같이 바빴기에 나는 차가운 바닥에 뒹굴거리면서 무료함을 삭히려고 했다.
뭐 어찌보면 100만 구독자를 달성하게 된 배경에는 이런 성실함이 있었으니, 나는 바쁜 일정에 대해서는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
나의 인생은 일본에서 화려하게 피어났고,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성공적인 버튜버 커리어를 달리고 있음에도 이 이국의 땅에서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망할 그럴거면 도쿄 올림픽 한다고 왜 설친건지.”
이러니 저러니해도 일본 사회에 대한 불만은 위대한 수상 각하에 대한 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곱창나고 있었는데 무슨 깡으로 도쿄 올림픽을 연다고 그렇게 난리를 치는 거였는지, 다시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덕분에 일본 국내 여행은 완전히 망해버렸고, 이전이라면 심심치않게 볼 수 있었던 여행 패키지 광고 메일은 우편함에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아마 내가 다니는 헬스장에서 여러 운동 프로그램을 갖추지 않았더라면, 나는 미쳐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시선을 돌린 나의 눈에는 방송도 일정도 없는 오프일에 늦잠을 자다 거실 바닥에서 뒹굴거리는 나의 목소리를 듣고 일어난 언니의 모습이 보였다.
볼품없이 버려진 고장난 인형같은 언니를 작년 열심히 먹이고 재우고 운동시키고 키워서 길을 걷고 있으면 길거리 캐스팅 제의를 받는 미소녀가 되었다.
왜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미소녀 있지 않는가?
잘 관리되어서 밤하늘의 비단같은 머리카락에 부드러운 눈매와 작은 얼굴
앵두같은 입술과 싱그러워지는 미소가 어울리고 많이 쳐줘도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외형의 미소녀 말이다.
“유나, 시선이 이상해.”
아저씨의 음흉한 시선을 느꼈다는 듯 언니는 소름끼치는 것을 목격한 반응을 했다.
뭐랄까
예전의 언니라면 나에게 이런 시선을 보이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나를 신격화하지 않고 인간 유나로 바라봐주는 탓에 요즘들어서는 언니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해졌다.
“언니.”
“안해.”
무어라 말을 꺼내기 전에 말이 잘렸다.
나는 상처받았다.
아니 내가 뭐라 말할 줄 알고?
“일정 없는 날의 유나, 신체를 바라보는 눈빛, GB 선배들과 합동 방송을 끝낸 다음 날.”
게임 캐릭터 아리아 출시 이후 열심히 홍보방송을 하며 숙제 방송을 해치웠다.
중간고사로 바빠진 미우와 마왕군 연합 방송을 하는 건 다다음주로 미뤄졌고, 어제도 멋들여지게 음악 방송을 소화한 나는 컨디션 관리를 위해 2일 정도 일정을 비웠다.
“이런 날의 유나는 항상 나를 데리고 헬스장에 가려고 하잖아.”
피곤한 신체를 이끌고 하는 운동은 짜릿하다.
지친 육신은 쉽게 부하를 받았고, 평소보다 운동하는 게 힘들어진다.
그렇기에 이것을 이겨냈을 때 엄청난 쾌감이 몰려오기에 나는 정신적인 부담감이 줄어든다고 생각할 때 헬스장으로 달려갔다.
“유나랑 운동하는 거, 집에서 하는 거 아니면 더 이상 무리야.”
“너무해요.”
“너무한 건 유나 아닐까? 보통 버튜버들은 그렇게 운동하면 사람 죽어.”
“죽지않아요. 단지 죽을만큼 힘들 뿐이지.”
내 말에 언니의 표정은 변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여름철 상한 음식을 바라보는 표정으로 변했다.
“옛날이라면 유나의 말에 곧이곧이 따랐겠지, 하지만 헬스장에서 평균 트레이닝을 받은 나는 유나의 말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어.”
아아 역시 그게 컸다.
언니의 방송이 작았던 시점에서야 일정도 상대적으로 널널했고
무엇보다도 내가 버튜버 활동을 하지 않아서 언니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 언니를 내가 직접 트레이닝을 지도했었다.
당시 초등학생과 맞먹는 신체 컨디션을 가지고 있던 언니를 평균 일본 여성의 건강수준으로 끌어올린 건 내 덕이 크긴 한데, 아무래도 나에 대한 사랑으로만 버티기에는 조금 가혹한 일정들이 많긴 했다.
“에이 그래도 필라테스는 최신 의학이 적용된 운동으로서, 근육을 최대한 키우지 않고 균형잡힌 체형을 가꾸는 데 제격이라구요. 무엇보다도 일상 생활에 안 쓰는 근육들을 써서 녹슬지 않게 해서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저희들에게 제격이라니까요!”
“그거, 죽을만큼 힘들어서 싫어.”
헬스는 일상생활에 어느 정도 쓰는 근육들을 자극하고 찢고 재생시킨다면
필라테스는 헬스보다 조금 더 사용빈도가 적은 근육들을 괴롭히기 때문에 강도는 몰라도 고통은 큰 편이었다.
“그, 그렇다면 에어리얼 요가는 어때요? 척추에 쌓인 부하를 줄여주고 중력을 거스르는 그 느낌은 재미있다구요!”
“…”
아아
이제는 언니와 함께 운동하러 가는 건 무리인가?
하긴 몸이 아픈 편이라 차마 권하지 못한 카가와 어린이인 츠무기를 제외한 모두에게 권했으나 모두 3회차를 못 버티고 포기했으니 그럴법도 한다.
“유나는 늘 그런 생각 뿐이야? 일, 근육, 운동, 방송, 트레이닝.”
“언니 누가 들으면 저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 찬 여자로 생각하겠는데요?”
“흥.”
삐친 언니를 본 나는 속이 쓰렸다.
우리 언니 예전에는 안 이랬는데…
운동하자는 말에 응! 하고 쫄래쫄래 따라오던 언니가 살짝 그리워진다.
아무튼 같이 단 둘이서 트레이닝 받는 운동 데이트 코스가 거절당한 나는 최근들어서 생각한 것을 입에 내뱉었다.
“흠흠, 그러면 이번에 휴가 삼아서 해변에 놀러가는 거 어때요?”
6월
여름
바다
이것은 공식이다.
작년이야 뭐 나도 일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사회 분위기가 많이 나빠서 여행가자는 이야기가 안나왔지만
지금은 바쁘기는 해도 여행을 하지 못할만큼 사내에서의 위치가 낮지도 않았고, 사회적으로도 분위기가 많이 완화되었다.
애초에 지금 정부에서부터 ‘국내 여행좀 가세요 제발!’이러고 있으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인 이유?
한국에 살던 나는 산 보다 바다가 더 보기 드물었으니까!
“바다… 바다?”
“네, 버튜버들 왕창 꼬셔서 바다로 놀러 가자구요. 가는 김에 방송같은것도 좀 켜보고, 사진도 왕창 찍기도 하고.”
“그, 그러니까 친…친구랑 같이 바다에 놀러…가는거지?”
예전에 언니는 내게 말한 적 있었다.
외톨이었던 언니는 다른 사람들이 마땅히 즐겼던 불꽃놀이나 신년맞이 축제같은 행사조차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고.
그랬던 언니였기에 친한 사람들과 바다에 놀러가는 경험 또한 없다고 보는 게 맞겠지.
착하고 귀엽고 예쁜 사람인데 안쓰럽기도 하지
그렇게 생각이 이어진 나는 언니를 쓰다듬었다.
“저랑 같이 수영복도 보러 가고, 캠핑카도 대여하러 가고, 바베큐 파티도 구매한 다음 신나게 먹고 놀아요.”
갑갑한 도심의 숲을 빠져나오면 볼 수있는 드넓게 펼쳐진 하늘과 푸른 바다
더위를 날려버리는 시원한 물놀이에 머리를 강타하는 차가운 팥빙수
노점상이 구워주는 오징어 구이와 야끼소바
모래성짓기 같은 내성적인 놀이부터 비치발리볼 같은 활동적인 놀이에
밤에는 모닥불을 피우고 바베큐 파티를 하고 타들어가는 모닥불에 호일에 감싼 고구마를 던지면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기까지…
여름의 바다 놀이는 유나오피셜 일본의 국민 70%가 좋아하는 놀이일것이다.
나의 설명에 눈이 돌아간 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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