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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50화 (250/307)

〈 250화 〉 249화.

* * *

여행길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흥겨웠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차량 내부의 환경

4일 렌트 비용으로 어지간한 사회 초년생의 월봉을 요구하는 차량답게 내부 시설은 ‘이게 자동차야?’라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로 훌륭했다.

TV, 에어컨, 냉장고, 의자와 테이블, 침대를 겸하는 좌석까지 갖추어진 이 환경은 마치 호텔에 온것처럼 화사한 분위기를 자랑했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마치 놀이방에 처음 온 어린아이들처럼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TV가 자신의 집에 있는 것보다 크고 훌륭하다고 떠들던가, 에어컨의 리모컨을 달라고 서로 실랑이를 벌인다던가, 냉장고에 식재료들을 보관하면서 과자를 야금야금 집어먹는다던가, 차 안에서 누워보는 게 소원이라고 냉큼 누워버린다던가, 최애 버튜버의 방송을 봐야 한다면서 노트북을 켠다던가 하며 시끌벅적하게 굴었다.

그런 소란을 들으면서 나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누군가는 나에게 있어서 좋아하는 버튜버의 인물이었고, 누군가는 나에게 있어서 소중한 친구였고, 누군가는 나에게 있어서 인생을 같이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운전이라는 궂은일을 나 혼자 하기에 지루할 법 했지만 그녀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만 들어도 나는 기뻤다.

그리고 운전대에 앉아서 네비게이션을 보면서 운전을 계속하는 건 정적인 행동이고 지루한 행동인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심심한 것도 아니었다.

“우와아아, 이게 고속도로인거야?”

마치 이세계의 문명을 처음 접한 사람처럼 지루한 고속도로에도 굉장한 흥미와 감동을 느끼는 이로하가 조수석에 있었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도쿄에서의 이동은 전철과 버스로 거의 해결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정 안될 때는 택시를 타면 되었고, 택시가 고속도로로 나오는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자동차의 계기판을 보면서 차가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구나 하면서 연신 감탄사를 터트리는 이로하의 반응은 뭐랄까.

위험했다.

친구에게 가져서는 안될 마음이 생겨버린다고 해야 할까?

언니와 완전 다른 의미로 귀여움을 발산하고 있었던 이로하를 껴안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는 나의 볼 옆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이로하 선배님! 유나! 과자먹을래?”

나의 상념을 끊고 나타난 카기는 나에게 반으로 자른 쿠키를 들이대었다.

수줍게 고개를 끄덕거린 그녀는 쿠키를 햄스터처럼 야금야금 먹기 시작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에, 유나 배 안고파? 아니면 칼로리 문제?”

“그런 건 아닌데, 운전석에 과자 부스러기 떨어지는 거 싫거든.”

그리고 무엇보다도 곁눈질로 이로하가 쿠키를 먹는 것만 봐도 기분이 좋아졌다.

홀로 사는 인터넷 방송인들이 애완동물을 기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뒤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사람들 일부가 불쑥불쑥 얼굴을 내밀면서 심심하지 않게 말을 걸어줬기 때문에 나는 기타를 치면서 노래부르는 그녀들의 소음을 배경 삼아서 바다로 나아갔다.

도쿄에 동남쪽으로 차를 타고 쭉 내려오면 치바현에 도착하게 된다.

도쿄 디즈니 랜드, 나리타 국제공항, 마쿠하리 멧세 등 도쿄 시내에는 지을 수 없는 거대한 시설들이 자리했기 때문에 도쿄에서 치바현으로 넘어가는 건 경기도를 돌아다니는 정도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중심부를 지나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게 되면 미나미보소시(???市)에 도착한다.

호이오 해변, 오키노시마 해수욕장, 하사마 해수욕장 등 피서지로 괜찮은 해변에는 최근 유행하기 시작한 캠핑을 위한 캠프장이 존재했고 내가 예약한 곳 또한 그런 캠프장이었다.

기업들의 합숙 내지는 컨벤션을 위한 장소로 신축된 곳이지만 코로나로 타격을 입은 그곳을 예약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놀 수 있었다.

뭐 그렇다고 해변 자체에는 우리들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얼핏 보기에는 100명 이하의 관광객들이 있다고 해야 할까나...

허나 탁 트인 공간에 인구 밀도가 낮다는 것은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를 눈치 덜보고 벗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우와 바다다!”

비명을 지를 듯 가장 환호성을 지른 사람은 이로하였다.

방구석 폐인 오타쿠에게 있어서 바다라는 장소는 일종의 환상에 가까웠기 때문일까?

우물쭈물하고 소심하고 겁많고 내성적인 그녀답지 않게 그녀는 짐을 정리하기 무섭게 바다를 향해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하하, 이로하 선배는 바다가 처음이에요?”

“응! 엄청 두근두근거려!”

“잠깐만, 일단 돗자리정도는 챙기고 나가자구!”

이동하면서 고조된 감정은 바다를 보는 순간 터졌다.

지긋지긋한 코로나 속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느낀 그녀들은 바다로 달려나갔다.

탁 트인 시야와 맑은 하늘, 끼룩거리는 이름 모를 바닷새와 듣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맥주를 들이킨 것 같은 파도 소리에 나 또한 마음이 맑아졌다.

“어휴, 사람들이 매정하네.”

차 안에서 돗자리나 음료, 모래놀이 기구나 공을 챙기는 사람은 나와 카기뿐이었다.

제법 어른답다고 생각한 말리아는 여행이 오면 사람이 아주 바뀌는 모양인지 코토나시의 손을 잡고 바다로 달려나갔고, 이로하의 광기 비슷한 것에 전염된 나에 언니 또한 달려 나갔다.

미우 또한 나에 언니의 손에 잡힌채로 카메라를 든 채로 끌려나갔다.

내성적인 오타쿠를 저렇게 바꿀 수 있다니

바다의 매력이란 참 묘했다.

“운전 고생했어, 유나.”

“나야말로 같이 짐 챙겨줘서 고맙지.”

여기 모인 인원 중 사회인이었던 사람은 그녀 때문일까?

그녀의 위로에 나는 피로가 가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철없는 아이들의 보호자가 된 기분을 느낀 나와 그녀는 같이 짐을 들고 바다로 나갔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나아간 나는 이미 신나게 놀고 있는 그녀들을 볼 수 있었다.

해양 운동의 강국인 호주 출신답게 파도로 흔들리는 물 사이에서 우아한 수영을 뽐내는 말리아의 모습을 변태 같은 시선으로 촬영하고 있는 코토나시의 모습에는 희열이 가득했고

누군가의 장난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 나에 언니와 이로하, 미우는 서로에게 물을 열심히 뿌리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버튜버들이 방송이나 스케줄같은 골치아픈 생각에서 떠나 신나게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특히 해변에서 놀고 있는 나에 언니의 모습은 정말이지... 천사 같았다.

수영복을 겸하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 채 차가운 물을 맞으며 나에게 손짓하는 언니의 모습을 본 나는 카기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카기! 우리도 얼른 놀러가자!”

“나, 나는 짐을 지키고 있을게!”

이 땡볕 아래에 오돌오돌 떠는 카기의 손

아까부터 살짝 긴장한 것 같은 그녀의 태도

그리고 묘하게 아까부터 파도로부터 멀어지는 몸놀림

백사장에 들어왔음에도 덥지도 않는지 꽁꽁싸맨 몸

그것을 본 나는 무심코 말했다.

“설마, 카기는 맥주병?”

“아, 아니거든!”

아니긴 뭐가 아니야?

딱 봐도 물을 무서워하는 고양이처럼 쫄고 있구만!

유동 인구와 우리가 가져온 짐의 가치를 계산한 나는 씨익 웃었다.

나의 악동같은 미소를 본 그녀의 표정은 비명을 지르는 고양이로 변했다.

“유나, 너 설마?”

“바다에 왔으면 놀아야지, 어딜 내빼려고!”

그녀를 번쩍 들쳐맨 나는 바다로 우다다다 달려갔다.

애초에 파도가 강한 해변도 아니고, 키가 가장 작은 나에 언니의 종아리 정도가 잠기는 수심(??)이기에 나는 거리낌없이 행동했다.

“신병 받아라!”

“꺄아아아악!”

성인 여성이 바다에 풍덩 빠지면서 물벼락이 튀었다.

그것을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한 이로하와 미우의 눈동자에 장난이 깃들었다.

“선배에게 덤비다니~”

“물세례를 받아라!”

그리고는 어푸어푸 거리는 그녀를 향해 물벼락을 끼얹기 시작했고

선라이즈의 버튜버를 통틀어서 가장 욱하는 성격을 가진 카기는 몸의 균형을 회복한 후 자신에게 물벼락을 뿌린 선배들에게 대항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 언니는...

“나도! 나도 해줘!”

“뭐를요?”

“풍덩 하는거!”

“좋아요!”

누구의 부탁이라고 거절할까?

언니의 부탁을 들은 이후부터 나는 유나가 아니라 기계가 되었다.

번쩍 들어올려서 사람을 바다에 다이빙시키는 놀이 기계 말이다.

**

“아하하하, 그러면 카기가 정말 수영을 못해서 두려워했던 게 정말이야?”

“응, 바다에서 물놀이는 수영하고 크게 상관없는 데 말이지.”

“저기 꼬마애도 바다에서 노는데, 정말 의외구나.”

일본의 바다라고 하면 빠질 수 없는 바다의 집에 모인 우리는 시끌벅적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제의 대상은 당연 샤야 카기, 우리의 당돌한 5기생의 대장이었다.

평소 야무지고 사회성이 올바르면서도 적절하게 어그로를 활용하면서 똑부러진 인재로 평가받는 그녀가 바다 앞에서는 물가 앞에 선 고양이었다니...

“고증! 현실 고증이거든요? 원래 사자같은 고양잇과는 물을 두려워해요!”

억울하다는 듯 날카롭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위엄있는 사자보다는 귀여운 고양이었다.

“네에네에, 우리 사자에게 고기를 줄테니 화 그만내요.”

그러면서 가장 물을 열심히 뿌린 미우가 그녀의 입에 닭꼬지를 물려주었다.

츄르를 먹는 고양이처럼 그것을 받아먹으며 우물우물 거리는 카기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선라이즈 제일의 타격감을 자랑하는 버튜버답게 놀리는 맛이 쏠쏠했다.

인터넷 방송인들이 현실에서 만나서 노는 영상이 자주 올라왔는데 이런 맛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우리가 얼굴을 공개하면서 평범하게 방송하는 인터넷 방송인이었다면 오늘 영상을 녹화한 후 방송으로 그대로 틀어주어도 조회수가 좋게 나왔을 것이었다.

그만큼 매력이 넘쳤으니 말이다.

숨만 쉬어도 귀여운 나에 언니, 귀여운 것에 귀여운 것을 더하면 심장 폭격이 되는 것을 증명하는 이로하, 그 둘사이에서 언니같은 매력을 자랑하는 미우는 둘 보다 나이가 어렸다.

서양인 특유의 몸매로 시선을 모으는 말리아와, 혼혈 미인의 정석같은 코토나시는 그런 말리아를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굴면서 모든 모습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 사이에서 샌드백을 자처하는 듯 탱커처럼 어그로를 받는 카기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녀에게 M의 성향이 있나?하고 잠시 고민한 나는 커다란 타꼬야끼를 한입에 집어넣었다.

조금 뜨거워서 입천장이 데었지만 한국인 특유의 체면으로 넘어간 나는 맥주를 들이켰다.

짭쪼름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일본의 소스와, 신선한 문어를 통으로 넣은 타꼬야끼는 정말 미친 듯이 맛있었기에 술이 쑥쑥 들어갔다.

“언니, 벌써부터 술이야?”

“미우도 한 잔 할래?”

“... 난 사양할게.”

참고로 미우는 첫 술방송에서 거대한 사고를 친적이 있었다.

자신의 주량을 아는 미우는 나를 살짝 걱정스럽게 바라봤지만 운전을 한 나에게 있어서 맥주는 반드시 필요한 보상이었다.

“유나, 그만 마셔.”

물론 그러한 보상은 언니의 말에 제지될 수 있었다.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바다를 가리키는 언니의 모습에 나는 어깨를 살짝 들었다.

아무래도 우리 언니는 바다에서 더 놀고 싶어하는 모양이었다.

누구의 명이라고 감히 거역할까?

나는 마시던 술을 내려두었다.

“잘했어.”

언니의 그 말과 함께 달콤한게 입으로 들어왔다.

갈은 얼음에 시럽을 뿌린 일본의 팥빙수, 가키코오리였다.

딸기맛 시럽의 단맛을 느끼며 술을 뒤로한 나는 말리아에게 물었다.

“말리아, 혹시 캠프파이어 하는 데 오래 걸려?”

“어디보자, 지금이 한시 반이니가... 네시 반까지 마무리 하면 될거같아요. 일본의 해는 일찍 지니까.”

이러니 저러니해도 오늘 저녁의 별미는 당연히 캠프파이어였다.

전문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들었죠? 그럼 앞으로 세 시간 빡세게 놀아봐요. 일단, 불쌍한 공이 울고 있으니 비치발리볼 어때요?”

“그거, 유나가 있는 쪽이 이기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저랑 겨뤄서 5점 먼저 따내는 사람에게는 제가 포상을 해드릴게요.”

“어떤?”

“메이드처럼 저를 방송 도우미로 소환할 수 있는 권리 3회요.”

“콜!”

공포 게임 가이드, 노래 듀엣, FPS 게임 파트너, 요리 방송 지도자, 외국어 소통방송 등등

나를 편하게 부릴 수 있는 권리는 내가 생각해도 매력적이었다.

배부른 그녀들의 눈에 깃든 투지를 본 나는 쾌재를 불렀다.

참고로 나는 대학교 배구부의 에이스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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