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56화 (256/307)

〈 256화 〉 2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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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라이즈의 설립 이념은 버튜얼 아이돌의 육성이었다.

말 그대로 가상공간에 활동하는 아이돌을 기르기 위해서 설립된 기술지원 및 인터넷 방송인들을 돕는 프로덕션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설립된 초창기, 2018년에는 가상 현실 기술과 3D 아바타 기술은 완성된 기술들이 아니었고, 사람들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는 가상의 아바타로 라이브를 진행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생방송으로 3D 라이브를 한다는 것은 함부로 도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한 버튜버에게 모든 기술 역량을 맞추고, 집에서 관람하는 게 아닌 실제 소규모 라이브 스테이지에서 버튜얼 기술을 적용하는 제한된 3D 라이브를 진행해왔다.

허나 기술이 발달하고, 3D로 스테이지를 만들고 라이브를 진행하는 게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게 되자 과거에 1년에 한 두 번 하던 라이브를 선라이즈는 ‘생일에 맞춰서 1년에 최소 한 번은 라이브를 하게 하자’라고 했다.

그렇기에 선라이즈 소속의 버튜버에게 있어서 3D 라이브는 굉장히 의미 있고 뜻있는 행사였다.

이러한 연례행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선라이즈 버튜버라는 거대한 그룹의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그야말로 선라이즈만의 전통행사가 된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뜻깊은 3D 라이브를 두 사람이 맡고 진행하는 것은 역사가 짧은 선라이즈에서도 전대미문의 영역이었다.

한 사람의 역량에 모든 것을 갈아 넣어도 부족한 마당에, 두 사람이 스테이지의 주인공이라니?

말 그대로 생일 자체의 의미가 없어지는 듯한 기획이었다.

“진행하자, 정말 재미있어 보인다.”

“주인의 명에 다시 활동하는 메이드라니, 정말 주종관계란 달달한 관계네요.”

“메이드 캐릭터가 이대로 선라이즈 에니메이션에만 활용되는 게 늘 아쉬웠는데 잘 되었네.”

“마침 유나도 당분간 게임 콘텐츠에 힘을 넣고 있어서 시간도 상대적으로 널널하니 괜찮네요.”

이사인 코이즈미 언니와 매니저인 유키하라 언니의 OK 사인에 터무니 없는 기획은 진행 되었다.

스토리는 마계 공주님의 탄신일이니까 메이드가 마계에서 일 하는 것이 당연하니 활동 중지한 적 없는 척 뻔뻔하게 밀고나가자는 취지였다.

정말 공식의 해석을 말아먹는 2차 창작 동인의 해석처럼 보였지만, 저 두 사람이 공식이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유나, 싫은 건 아니지?”

“두 사람 눈에서 깨가 쏟아지는 게 보이는 데 설마 쿠로가와 양의 뜻 있는 100만 구독자 기념 달성과 2주년 데뷔 방송의 라이브에 안 나오는 건 아니겠죠?”

“이미 집에 인가받지 않는 결혼 양식서에 두 사람 이름하고 도장 다 찍어둔 거 알고 있어요.”

내 의사를 말할 틈도 없이 몰아붙이는 두 사람 덕분에 나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게 이렇게 진행해도 될 일인가?

“그러면 스테이지 기획 싹 다 갈아엎고, 라이브 기획 회의에 유나 집어넣어서 두 사람이서 최고의 스테이지를 만들기를 기대해도 되겠네.”

“이참에 옆쪽 소속사의 기술 개발팀도 좀 데려오자. 그쪽 스테이지 연출 기법은 몰라도, 소품 퀄러티 제작은 진짜 변태같은 디테일이니.”

내가 사회인이 되고 난 이후 깨져버린 환상이 있는데

회사의 중요한 일이 가끔씩은 이렇게 터무니 없는 방식으로, 누군가의 폭발적인 아이디어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기획과 혁신을 중요시 여기는 새로운 분야의 회사라고는 해도, 이건 좀 너무한 게 아닌가?

그런데 정작 나는 그 중요한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틀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언니의 첫 라이브는 타마와 함께 진행하는 3D 라이브였고, 그 이후에는 따로 개인 라이브를 가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메이드 라와 공주 유리아의 조합은 명불허전이었다.

마치 국밥에는 다데기가 들어가고, 고르곤졸라 피자에는 꿀이 따라오듯 두 사람의 관계는 선라이즈 캐릭터들 수십 조합 중 최강이라 할 수 있었다.

당연히 공주님이 억지를 부리면 메이드는 여기에 응해야했으니, 나는 메이드 라를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거절하지 못했다.

“좋아요. 까짓거 해보죠 뭐.”

후배 구미호 아리아가 GB 1기생들보다 먼저 라이브를 하는 건 무례지만

선배 메이드 라가 GB 1기생들보다 먼저 라이브를 하는 건 문제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언니가 아침에 그렇게 똘망똘망하고 그윽하게 바라보며 보호본능 자극하는 태도로 나를 그렇게 꼬셨는데, 내가 거절하는 것도 이상했다.

그렇게 나는 정말 오랜만에 언니와 함께 방송적으로 무언가를 진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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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리오넬 메시의 돌파력과 넓은 시야가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를 한들 ‘슈퍼 스타니 대단하다’ ‘언론에 저렇게 언급이 되니 뛰어난 선수다’는 식으로 머리로는 이해하지 피부로는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같은 분야의 선두주자, 혹은 트렌드를 만드는 스타일 경우 피부로 느끼다 못해 뼛속까지 느끼게 된다.

선라이즈 일본 지사의 사원들에게 유나라는 존재는 그런 존재였다.

스카우트 될 당시부터 버튜버의 재능을 지녔지만, 오타쿠 업계를 잘 모른다는 이유로 매니저로 취업하고

생전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잘 모르던 범생이 엘리트같은 존재가 선라이즈 최초로 계약 해지 이야기가 나오던 유리아의 방송을 살려내다 못해 사람을 완전히 개조시킬 정도로 강한 리더쉽을 보이고

오타쿠들이라면 경원시할 ‘인싸력’을 바탕으로 매니저 신분으로 도저히 생각하기 힘들 다양한 방송들을 성공시키면서도 회사의 이미지 상승을 위해 메이드라는 캐릭터로 데뷔하여 1년간 선라이즈 오타쿠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새긴 그녀는 입사 1년만에 매니저로 ‘정점’을 찍으며 전설이 되었다.

그랬던 그녀가 매니저를 그만두고 정식으로 버튜버에 데뷔하여 첫 수익 방송으로 단일 방송 역대 최고 후원을 갱신하고, 기부활동을 시작으로 사회에 ‘온라인 인프라 기부’라는 새로운 기부 방식을 제시하고 버튜버 역사상 두 번째로 빠르게 100만 구독자를 달성

그리고 버튜버 최초로 지상파에 출연해서 인터넷 방송과 현실 방송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괴물이 되었다.

물론 버튜버의 구독자 숫자나 캐릭터력으로 보자면 그녀는 최고가 아니었다.

하지만 회사 돌아가는 구조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는 최고의 매니저 출신이라는 점이 스태프들에게 존경심을 자아내게 하였다.

실상은 귀여운 사람이랑 같이 살다가 그 사람 덕질하게 되고 본인이 덕업일치를 이루었지만, 말을 함부로 걸기 미안할 정도로 대단한 외관의 소유자와 일본의 유명 MC들과도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담대한 심장을 가진 그녀는 스태프들에게 있어서 ‘조금 높은 지위’라는 개념을 가지게 하였다.

거기에 입사 초창기 멤버이자 실권자인 코이즈미 이사와 친하고 캐릭터 디자인계열의 정상이라 할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사니와 친하면서도, 선라이즈 버튜버의 절반을 꼬셨다는 말이 돌 정도로 많은 버튜버들에게 관심을 받는 소설 속 흑막같은 인맥이 더해지니 그녀를 단순히 ‘돌봐주고 관리해야할 버튜버’라는 인식을 가지기 어렵게 했다.

천재, 전설, 슈퍼스타, 미인 등 다른 사람보다 조금 특별한 특성이 많은 유나가 회의실로 들어온 순간 매니저들과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흘렀다.

‘밉보이면 큰일난다. 아직 대출도 다 못갚았는데 절대로 개기면 안된다!’

‘내가 과연 저런 사람에게 말을 걸어도 될까?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기만해도 부담스러운데 나같이 못생긴 사람이 감히...’

‘저, 저사람이 유나! 코이즈미 이사님의 마음과 GB의 경영진들의 호감을 차지하는 최상위 포식자!’

본인이 알았으면 어이가 없다 못해 방바닥을 굴러다닐 정도로 폭소할 생각들이었지만, 트레이닝이 크게 필요 없는 압도적인 재능을 지닌 탓에 매니저 시절보다 회사에 출근 도장을 잘 안찍게 된 유나는 뉴페이스들이 반가웠다.

어쨌든 그녀는 세 차례의 대규모 인력 확충이 일어나기 전 그야말로 사축처럼 일한 경험이 있었기에 선라이즈를 지탱할 사람들이 많은 것에 만족스러웠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버튜버 유리아와 함께 1주년 라이브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할 메이드 라를 담당하는 유나라고합니다.”

가볍게 인사를 한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당장 연예계 데뷔하지 않고 여기서 뭐하냐!’는 생각이 드는 미인의 미소 한 번은 경직된 회의실의 분위기를 풀어버리는 마력을 가지기라도 하였는 듯 소문의 인물을 만나 긴장하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풀어졌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삽시간에 바뀌었다.

“전문가인 여러분들이 보기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나름대로 이쪽 분야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였기에...”

턱!

법학도의 전공서적과 부피와 무게를 견줄만한 어마무시한 서류 덩어리가 책상에 올라왔다.

인쇄비로만 1만엔이 넘어 갈법한 무식한 서류더미를 본 스태프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코로나 이후로 온라인 쇼케이스를 선보인 한국, 일본, 미국의 온라인 콘서트 300개를 보고 연출기법과 곡 스타일, 애드리브 등등이 분석하고 ‘온라인 라이브’에 대해서 심도 있게 연구한 논문 40개를 산 이후 저희 회사 기술력에 쓸만해 보이는 것들을 교차로 조사해보았어요.”

스태프 중 한 사람이 종이를 팔락거렸다.

미국의 영화업계와 미디어학계에서 출간된 논문이 아름다운 알파벳을 자랑하면서 춤추고 있었다.

내용을 확인하던 그는 흉측한 거미라도 본 듯 다급히 종이를 덮었다.

이건 악마의 도서였다.

그렇게 생각한 스태프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아무리 경력이 되고 수당을 받아도 정상적인 인간은 마도서를 읽으면서 일할 수 없었다.

“도와주실거죠?”

하지만 꿈에서도 조형하기 힘든 미인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도움을 요청하는 그 모습에 스태프는 일어날 수 없었다.

자신에게 파멸이 닥칠 것을 알면서도, 미인의 미소 한 번이면 만사가 해결될 것 같은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이성이 속삭였다. 이건 미친짓이다.

감성이 자극했다. 같이 일하면 저 미소를 계속 볼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한 스태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인계는 무적의 전략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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