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57화 (257/307)

〈 257화 〉 256화.

* * *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콘서트를 기획하는 일은 단순히 열의만으로 진행되는 일이 아니었다.

대학교에서 조별 과제를 이루어 교수 앞에 선보이는 것만 해도 보통 신경이 들어가는 게 아닌데, 자신의 모습을 보고자 찾아온 이들에게 무언가를 선보이는 게 쉬울리 없었다.

“무대 위의 주인공은 다른 배역들과 함께할 때 빛나죠.

실제로도 선라이즈에서 기획하는 라이브는 다른 버튜버들의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많죠.”

“응, 사전에 마음이 맞는 멤버들과 연락해서 무대에 부를 곡을 같이 연습하거나 서로 연출같은 걸 생각하니까.”

“시청자들에게는 다음에 누가 올까, 설마 이 사람이 올까? 하는 식으로 기대하게 하면서 게스트들이 난입하죠. 축하 인사를 나누고 같이 노래를 부르며 정겹게 놀죠.”

사실 선라이즈의 숙련된 버튜버라면 한 시간정도 되는 라이브를 진행하는 건 무리가 아니었다.

그녀들은 실제로 3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인터넷 방송을 거의 매일같이 진행하면서 시청자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인터넷 방송인이기 때문에 괴물같은 일정들을 소화해나가며 체력을 기르는 진짜 아이돌들이나 가수들에 비해서는 부족했다.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른다는 영역을 넘어서 노래 하나로 대중의 감정을 지배하는 음악

혹은 대규모의 인원과 같이 콜을 넣거나 합창하며 분위기를 지배하는 춤과 무대 연출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얻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까 말이다.

“나도 그게 좋은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어, 그런데 왠지 그렇게 하기가 싫었어.”

하지만 쿠로가와 나에가 그 방법을 거절한다.

선라이즈의 다른 선배들과 동기들이 사용했던 그 방법에 의문을 가졌다.

“왜냐면 나는 정말, 진심을 담아서 아이돌이 되고 싶으니까.

3D 캐릭터 아바타를 빌려 쓰며 컨셉 아이돌이란 소리를 들어도

거대한 무도관이나 라이브 회장이 아닌 가상의 스테이지 위에 오르는 것이라도

나는 정말로... 그러고 싶으니까.”

적당히 현실과 타협한 형식의 온라인 라이브가 아니라

모니터 너머로 강렬한 열기를 주었던 현실의 아티스트처럼 훌륭한 무대를 보이고 싶었으니까

“유나랑 같이 무대 위에 서는거잖아.

그래서 타협하기 싫어.”

유나의 표정이 변한다.

무대가 두렵고 무서워 내려온 이후 다시는 누군가의 앞에 춤을 추며 어릴적 꿈꾸었던 아이돌처럼 될 수 있을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 작고 고운 여인의 손에 바뀐 이후,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그녀가 같이 무대위에 최고의 무대를 보이고자 했다.

“현실적으로는 힘들어요. 언니도 알죠?”

인터넷 라이브는 현장에 비해서 집중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울리는 휴대폰 소리, 집 밖에서 들리는 소음, 흔들리는 의자, 엉겨붙는 애완동물 등 집중을 흐리게 하는 요소는 너무나도 많았고, 한 대당 백만 엔이 넘어가는 고급 기계로 음향 스테이지를 차리는 현장과 다르게 사람들은 제각기의 이어폰으로 시청을 한다.

“그래서 저희는 타협을 하는거잖아요.”

“응...”

“하지만.”

유나는 빙긋 웃었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 남들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에 도전하는 것이 그녀의 인생이었다.

어른이니까 타협을 한다.

현실을 인지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한다.

“그 타협점을 끝까지 높여버리자구요.

선라이즈의 전설 한 번 찍어봐요.

언니와 제가 아주아주 끝내주게 정점을 찍어버린 후, 다른 사람들에게 ‘너희들 이렇게 할 수 있겠어?’라고 주장해버리죠.”

쿠로가와 나에는 유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 또한 유나의 미소에 넘어간 다른 선라이즈의 스태프들과 마찬가지로 지옥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유나가 쿠로가와 나에를 ‘초등학생과 맞짱을 떠서 질 수 있는 신체 조건’을 가졌던 당시 그녀를 사랑과 정성으로 길렀던 그 때처럼 유나는 그녀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언니, 키가 작은 아티스트들이 무대를 열 때 어떻게 행동하는 지 아세요?”

“열심히 움직이기?”

“네, 키가 작다는 것을 인지하는 그들은 정신없이 무대를 돌아다녀요. 특히 여자 같은 경우 폴짝폴짝 뛰어다니죠.”

“그렇다는 건...”

“일단 심폐력부터 끌어올려보도록 하죠. 폴짝폴짝 뛰어 다니면서도 팔을 크게 그리면서 작은 존재감을 크게 보이자구요.”

체력 단련

“당신은 여기서 나갈 수 없어! 여기는 마왕성 가장 깊은 곳, 당신은 나만 바라보면서 살게 될거야!”

“언니 제가 뭐랬죠? 감정을 담아서 노래 부르면서도 호흡이 흐트러지면 안된다고 했죠.

감정에 잡아먹히지 마요. 목소리가 떨리면 안 돼요.”

“당신은 여기서….”

“언니 집중해요! 제가 뭐라고했죠? 움직이면서 노래를 부를 때는 항상 호흡을 정교하게 분배하라고 했잖아요. 3분 쉬었다가 다시 할게요.”

노래 훈련

“이 때쯤 조명이 반짝거리니까 춤의 템포를 늦추고, 빛이 꺼졌다가 켜지면서 절제된 움직임을 선보이면 이렇게 연출이 되니...”

“그러면 여기서는 얼굴을 3번 카메라 쪽으로 봐야하는구나.”

“네, 제가 언니 맞은편에서 있을테니...”

“클로즈업이 된 카메라가 멀어지면서 우리들도 다시 가운데로 들어오고...”

무대 공부에 이르기까지

배워야 할 게 너무나도 많았다.

회사에 잘 나오지 않아서 회사 사람들 사이에서 ‘환상종’취급받던 유나가 매일같이 회사에 온다.

낮에는 회의를 하고 오후에는 나에를 지도하며 같이 훈련한다.

필요하다면 트레이닝 사이에 짧게 방송시간을 가진다.

그녀와 같이 트레이닝 실에 들어가는 강사들마저 고개를 저을 정도의 강행군이었다.

“정말 독하긴 독하네요.”

보컬 트레이너인 타무라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처음에는 아마추어라고 볼 수 있는 유나가 쿠로가와를 가르친다고 했을 때 내심 우려를 표하던 그녀는 유나의 교습법이 일류 아이돌 양성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기에 질렸다.

“사실 그 정도로만 타협해도 잘 모를텐데 말이죠.”

유나가 추구하는 완벽함은 사실 그 정도까지 될 필요 없었다.

온라인에서 노래하는 이상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장비의 퀄러티는 한계가 있었고, 음 이탈이나 박자가 틀리는 커다란 실수가 아닌 이상 음량이 줄어드는 정도의 실수는 용납하는 분위기였다.

무엇보다도 그녀들은 진짜 아이돌이 아니라 인터넷 방송인을 겸하는 버튜얼 아이돌들이 아닌가?

“저게 유나라는 사람이에요.”

알거 다 아는 업계 사람은 가장 효율적으로 털어먹는다.

그 진리를 최근 들어서 뼈저리게 체험하는 전직 한국 대형 아이돌 프로덕션 출신인 이진아는 지친 모습을 숨기지 않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말이 댄스 트레이너지 몸치에 가까운 그녀들을 이끌면서 체력 단련도 시키고 안무도 만드는 그녀는 선라이즈 소속 버튜버의 라이브 중 8할을 함께했다.

하지만 ‘진짜’인 유나가 라이브를 준비한다고 자신의 트레이닝 실에 온 순간 지옥이 열렸다.

‘그루브 조금 더 유연하게 해보죠? 가상의 머리카락이 화려하게 휘날리니 조금 더 해도 될거같아요.’

‘어차피 손 움직이는 디테일은 현대무용에서 오는게 많잖아요? 혹시 발레 자료들 가지고 계신가요?’

‘두 사람이 하는건데 걸그룹처럼 칼군무 딱딱 맞출 필요는 없어요. 그래도 춤 선은 살아야하는데... 여기서 허리 활용한 이 동작은 힘들까요?’

계약상 그녀를 도와야 하는 게 맞았다.

그런데 어째서 하루종일 춤을 추며 몸을 관리하는 자신보다 탄탄한 복근과 대흉근을 가진 여인이 날카로운 눈으로 손동작 하나하나 지켜보며 새로운 답들을 찾아내는 게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원래 춤을 추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강하다.

춤이란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고 비트에 맞춰서 노래가 아닌 동작으로 보여줘야하는 게 많았기에 에고가 강한 편이었다.

그래서 진아는 일본어에 그렇게 능숙한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라이즈의 많은 버튜버들을 휘어잡으며 그녀들을 지도했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몸과 지식의 한계를 쥐어짜며 무대를 만들고 있는 유나와

그 여인을 이 악물고 따라가는 쿠로가와의 독기에 짓눌리지 않고 ‘트레이너’라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자신도 이 악물고 공부하고 그녀들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했으니, 최근의 15일은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였다.

동향 사람, 그리고 소문의 연습생인 유나를 가르친다는 사실에 기뻐했던 첫 날의 자신에게 사직서 쓰고 도망가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보컬 트레이너 타무라는 안쓰럽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연출 기획팀의 노다 군 아시죠? 그 스물 일곱인데 탈모가 온 그 청년.”

“아, 네 그 빼빼마른 분?”

“최근 과로를 하다가 회의 도중 쓰러지신 거 알고 계시나요?”

“...”

연출 기획팀 중 75%가 유리아의 라이브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진아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그런데 쓰러진 그 분이 유나씨의 ‘힘내요 오빠’소리 듣고 깨어났다고 해요.

그 상태로 유나가 가져온 캔커피를 마시고 다시 힘차게 일을 이어나갔다고 하더라구요.”

‘이 동네는 미쳤다.’

진아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생각했다.

‘일 하다 쓰러지면 병원 가야지... 아니 그걸 떠나서 힘내요 오빠 소리를 듣고 각성한다고? 인생이 만화야? 자신에게 지옥같은 일거리를 던진 사람의 응원과 캔커피에 힘을 차린다고?’

원래 일본의 팬들은 아이돌의 실수에 비교적 관대했다.

아이돌과 팬은 같이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은 귀여우면 그만~ 이라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진아는 생소한 오타쿠 계열의 회사에 들어가더라도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았다.

불길한 생각이 이어진 그녀는 자리에 일어났다.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다녀도 괜찮을 것 같았다는 생각에 그녀는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들? 최근 들어서 너무 바쁘신 것 같아서...”

그리고 거기에는 유나가 서있었다.

같은 여자가 봐도, 웃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미녀가 말이다.

“그래서 제가 어제 방송 쉬는 틈을 타서 잠시 장을 좀 보고 도시락 만들어왔어요.”

보통 도시락이 아니다.

6첩의 도시락, 심지어 비싸기로 유명한 브랜드의 도시락이었다.

그야말로 드라마 소품에서나 볼법한 고급 도시락통은 책상 위에 올려지며 꽤 무거운 소리를 내었다.

“정말 가볍게 만들었어요. 선생님들의 식사 취향을 몰라서, 일단 한국식 잡채부터 시작해서...”

6명이 앉아도 충분한 테이블 위에 만찬이 펼쳐진다.

잡채, 연어구이, 로스트 비프, 볶은 김치, 김자반, 계란말이, 소시지 꼬지, 야채 절임, 고급 스러운 어묵 말이, 새우장

고급스러운 도시락통의 품격에 걸맞는 호화스러운 만찬이 펼쳐진다.

오후 한 시

식사 시간을 놓친 두 트레이너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식탁으로 향했다.

“제 마음 받아주실거죠?”

자신보다 더 바쁜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쪼개서 이렇게 손수 도시락을 만들다니... 도저히 미워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 진아의 머릿속에는 ‘사직서’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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