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8화 〉 257화.
* * *
“힘들죠?”
그것은 당연한 물음이었다.
바쁘다.
연습과 트레이닝, 그리고 방송을 이어 나가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한 수준
그나마 쿠로가와에게 있어서 다행이라는 것은
유나가 그녀의 건강을 크게 개선시키고 건강한 습관을 이어지도록 하였기에
그녀의 체력은 중요한 순간에 무너지지 않았다.
“응, 힘들어.”
춤의 동작이 어려웠다.
외워야할 동작이 많았고, 춤선이 예쁘지 않으면 동작이 자연스럽게 되기 전까지 반복해야했다.
단순한 동작 뿐만 아니라 카메라 워크와 영상 포인트를 외워야 했기 때문에 시선과 동작을 끊임없이 의식해야했다.
유나의 지향점은 높았고, 그녀를 따라가는 것은 뱁새가 황새 따라하는 꼴이었다.
이전에 선라이즈 2 주년 콘서트에 이로하와 함께 했던 훈련과 비교 되지 않는다.
노래는 어떠한가?
춤을 추면서도 호흡을 유지해야했다.
동작을 유지하면서 호흡을 바르게 하고 노래는 실수없이 해야했다.
유나는 노래의 역할에서 자신의 지분을 확고하게 정했다.
이번 콘서트는 유리아의 무대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철저하게 보조역할로 그치고, 이끌어 나가야 하는 것은 쿠로가와였다.
엄격한 태도
높은 지향점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훈련
이 모든 것은 그녀를 힘들게 하였다.
그래도 그녀는 웃었다.
“그래도 웃으시네요.”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니까.”
그리고 유나가 있으니까.
힘들때 손을 뻗어주고, 마음이 풀리면 엄격히 다잡아주는 존재가 있으니
그녀와 함께 땀 흘리는 지금이 기적이니까
그녀는 웃을 수 있었다.
“힘들어하면 집에가서 안마해주려고 그랬는데.”
“그러면서 은근슬쩍 만지려고 들지? 변태.”
“저는 언니에게 진심인데, 제가 그런 흑심을 품을 리 없잖아요.”
쿠로가와의 미간이 좁혀졌다.
여름 휴가 이후로 부쩍 자신의 몸에 손을 뻗는 그녀의 달라진 태도를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예전에는 인형을 관리하듯 섬세하게 다가왔다면
요즘 들어서는…
“변태, 변태, 변태”
“그거 언니 팬들 사이에서는 업계 포상인 거 알죠?”
능글맞게 웃는 유나의 표정은 한 대 때려주고 싶은 표정이었다.
이대로는 끝나지 않을 대화에 쿠로가와는 전가의 보도를 꺼냈다.
“미워할거야.”
나이 먹을만큼 먹은 여성이 하는 말이라기 보다는 초등학생이 할법한 말이었지만
그녀의 말은 능글맞은 유나를 침묵시키기 충분했다.
그러다가 ‘진짜 미워하면 어쩌지?’하며 쩔쩔매는 태도로 변한 유나의 모습에 쿠로가와는 배부른 짐승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오늘부로 모든 점검은 끝났네요.”
길고 길었던 여정이었다.
여태까지의 3주는 이전까지의 3주와 차원이 달랐다.
삶의 밀도가 달랐다.
쿠로가와 나에와 유나의 삶은 그런 차이가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해했다.
어째서 유나가 대단한 사람인지
그 대단한 사람이 얼마나 자신에게 신경을 써줬는지 알 수 있었다.
책임감, 의리, 우정으로는 설명 못할 그 무거운 감정에 보답하리라.
그렇게 다짐한 나에는 그녀를 향해 미소지었다.
유나 또한 그녀에게 미소로 화답했다.
팬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다.
회사에 자주 출근하는 버튜버들 사이에서 유리아의 라이브 준비에 대한 언급이 잦아졌다.
데뷔 2주년을 맞이해서 라이브를 준비한다.
특이한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라이브 준비를 하는 데 이렇게 뒷소문이 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유리아의 팬들은 그녀가 원래 라이브 욕심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다른 버튜버들의 목격담이 잦아질 정도로 잦게 언급될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특히 그녀의 불우한 과거 에피소드를 알고 있는 팬들은 적극적으로 그녀를 응원하고, 방송 시간이 줄어들어도 그녀의 라이브를 기대했다.
그리고 대망의 라이브 날이 다가왔다.
선라이즈에서 주최하는 캐릭터 데뷔 기념 라이브, 즉 생일 라이브는 여태까지 자신을 응원해준 시청자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라이브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무료였다.
거기에 이런 저런 소문이 붙어서 시작부터 10만이 넘는 시청자로 시작한 그녀의 생일 라이브가 시작된 순간 팬들은 은발의 마계 공주님이 아닌, 금발의 마계 메이드를 보았다.
???
유리아 어디갔어
메이드 은퇴한 거 아니었음?
활동 정지이긴 해도 그동안 모습을 안보이지 않았나?
메이드 오랜만!
라하!
“주인님의 탄신일에 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언제나 그렇듯 냉막한 목소리였다.
그러면서도 예쁜 목소리였다.
낯설면서도 반가운 목소리다.
그녀의 아바타는 상당히 심플했다.
3D 아바타 중에서는 상당히 낮은 퀄러티였다.
소품의 디테일이나 장식은 요즘 나오는 아바타들에 비해 상당히 떨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메이드이기에
그 안에 들어간 사람의 존재감이 강렬했다.
“저 메이드 라, 주인님의 명령을 받아 돌아왔습니다.”
“모쪼록 즐겨주시기를.”
아하, 이런 컨셉이구나
유리아가 부르면 와야지, 공주님이 부르는데 메이드가 어떻게 배기냐고
너무 자연스럽게 있어서 웃긴다 ㅋㅋ 개뻔뻔해
분위기는 자연스러웠다.
팬들에게 인사하며 가벼운 이야기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공주님께서는 오늘 날을 위해 굉장히 많은 준비를 하셨습니다.”
“부디 유리아 공주님의 화려한 모습을 만천하에 알려주시길.”
마왕성의 컨셉에 걸맞게 어두운 배경에 해골이나 양초, 마법진으로 장식된 스테이지
거대한 마법진을 타고 나타난 유리아는 작고 귀여웠다.
[어두운 밤 하늘에 촛불 하나를 켜고 길을 나아가]
라이브 첫 번째 곡은 그녀의 첫 번째 오리지널 곡인 밤 산책이다.
처음 받은 오리지널 곡인만큼 그녀의 개인 음악 방송에서 가장 자주 부른 곡
힘들었던 시절 촛불 하나에 위안을 얻으며 지금의 자신을 이루었다는 곡으로 그녀의 애창곡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촛불은 너무나도 작아]
[하지만 나아가야만 해]
그만큼 그녀의 라이브에 참가한 시청자들도 이 곡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뭔가 달라진것을 느꼈다.
노래를 더 잘부르네?
연습 빡세게 했다.
노력했구나…
노래를 잘 부른다.
주년 라이브에 맞춰서 열심히 노래를 연습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때문에 기량이 올라왔다라고 생각해도 이상할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3D 캐릭터 아바타임에도 불구하고 동작에서 간결함이 느껴진다.
시원시원하게 뻗어 나오는 팔다리는 분명히 짧았지만 박력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의 퍼포먼스에서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춤연습을 열심히 했다는 수준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카메라 워크잖아?
저거 JKB 애들이 하는 그거 아냐?
아냐 더 깔끔해!
그것은 현대 예술의 정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
아이돌이 예쁜 순간은 매 순간 다르다.
춤의 동작이 강조하고 싶어하는 순간
스테이지의 조명이 반짝이는 순간
노래를 부르는 순간
매 순간이 다르다.
그렇기에 카메라는 아이돌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돈다.
숙련된 카메라맨들은 어떤 구도에서 예쁘게 나오는지, 어떻게 해야 임팩트를 잘 주는지 항상 연구한다.
그리고 이것은 카메라 감독의 솜씨로만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정해진 포인트에 정해진 각도로 카메라를 정확하게 바라봐야했다.
몸을 멤도는 7개의 카메라를 어떤 타이밍에 어떤 위치에서 어떤 각도로 바라봐야 적절한지 피나는 훈련으로 그것을 몸에 때려박아야했다.
당연히 선라이즈 소속의 다른 버튜버들도 라이브를 진행할 당시 이러한 기법을 활용한다.
하지만 어설픈 카메라 워크는 하지 않는것보다 못하기에 카메라 맨들이 임의로 카메라를 돌린다.
같은 구도로 바라보는 댄스에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도록 적절하게 주위를 멤도는 식이다.
하지만 이번 라이브는 아니었다.
철저하게 분석한 아이돌 기법으로, ‘안 되면 되게 해라’식의 한국식 정신이 매콤하게 들어가서 무대 기획자와 카메라 맨, 오디오 팀과 조명 팀, 그리고 버튜버 유리아까지 철저하게 갈려나간 지금 그녀는 진짜 아이돌
그러니까 팬심과 ‘귀여우면 그만’식의 어설픈 일본 아이돌이 아니라 ‘최고’가 되어야 하는 한국식 아이돌의 워크를 따라하고 있었다.
[어두운 밤이 내 앞을 가리더라도]
[바람이 내 불빛을 앗아가더라도]
여기에 화려함이 깃든다.
현실의 라이브에서는 10cm 나비들이 날아다니면 예쁘다는 생각보다 공포감이 들것이다.
하지만 붉게 빛나는 나비들이 우아하게 그녀를 감싸는 그 장면은 오직 가상 세계이기 때문에 가능한 기술이었다.
나비들과 춤춘다.
붉은 나비와 은발이 아름답게 휘날리며 가만히 앉아서 보는 시청자들이 황홀감을 느끼게 한다.
모니터 앞에 앉아 있어도 느낄 수 있는 ‘라이브’라는 열기가 느껴진다.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방 안에서 홀로 갇쳐있던 공주는 더 이상 없어]
진짜로 아이돌이 되고 싶은 버튜버가 있었다.
팬들의 사랑을 받아, 동료의 사랑을 받아 방구석에서 일어나 아이돌이 된 그녀의 이야기는 그녀를 알고 있던 팬들에게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일으키게 했다.
버튜버들은 캐릭터성에 맞게 다양한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유리아 또한 인기 있는 버튜버답게 많은 타이틀을 보유했다.
도네이션의 여왕
집착하는 얀데레 여친
게임 허접에 발끈하는게 귀여운 아이
멘탈 약하고 깨지면서도 계속해서 도전하는 인터넷 방송인
선라이즈의 골드 버튼 버튜버
유리아를 표현하는 말은 정말로 많았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녀의 방송을 바라보는 모두가 ‘아이돌 유리아’라는 이미지를 눈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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