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화 〉 260화.
* * *
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투자로 끝나지 않는다.
자본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그 경험에서 얻어야할 점과 고쳐야할 점을 분석한 후 보다 나은 다음 단계를 위해 그 경험을 보존하고 보완하는 게 중요한 포인트였다.
그렇기에 나는 라이브가 끝난 후, 나에 언니의 지상 최고로 완벽하고 우아하고 세련되고 신세계의 지평을 열어재낀 위대한 라이브의 기술을 선라이즈에 제대로 남기기 위해 병원에서 링거를 맞아가며 뒤처리를 도왔다.
그 결과, 선라이즈의 공연 기획팀과 연출팀들은 크나큰 발전을 이루었고, 버튜버 본인들이 원한다면 빡세게 굴려서 언니처럼 카메라에 맞게 연출을 할 수 있도록 라이브를 짤 수 있는 기초적인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친애하고 좋아하는 유키하라 언니로부터 3일간 방송 휴식 ‘권고’를 받았다.
보는 사람 심장 떨어지게 일 했으니 제발 좀 쉬라는 언니의 절규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권고를 받아들였다.
쳇, 이럴 것 같아서 일부러 링거 맞으면서 부족한 에너지 채웠는데
나에 언니에 대한 사랑으로 열심히 일해서 그런지 그렇게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단 말이다.
가볍게 투덜거린 나는 커뮤니티 반응을 살펴보았다.
당연히 나의 언니이자 최애인 유리아에 관한 것이었다.
“흐흐흐, 헤헤헤헤.”
칭찬 일색
찬미 일색
일본 인터넷 엔터테인먼트의 40%를 차지하는 버튜버 계에서 하나같이 유리아에 열광했다.
당연했다.
사실 가상의 3D 캐릭터가 현실의 무대처럼 춤추는 건 옛날 일이 아니었다.
한국의 유명한 톱 클래스 아이돌 그룹인 BTS조차 한 때 보컬로이드에 불과했던 SeeU의 백댄서 활동을 한 적이 있지 않았던가?
최초의 버튜버인 키즈나 아이는 물론이고 우리 회사 소속의 버튜버인 우미 또한 실제 사람이 찾아오는 스테이지에서 버튜얼 아바타로 실감 나는 라이브를 한다.
뭐 기술적으로 분류하자면 이쪽은 가상의 공간을 기술로 구현하는 가상 현실(Virtual Reality)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그쪽은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차이가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그러한 실제 무대를 볼 수 있는 것은 티케팅에 성공한 팬들 뿐이고, 그래서 버튜버가 뭔데 씹덕아? 라고 묻는 사람에게 그냥 유튜브 영상 하나만 보여주고 입문시키면 되는 버튜얼 무대 쪽이 확실히 홍보하기 좋았다.
게다가 이번 라이브는 무료였다!
회사 입장에서는 꽤 큰 지출을 한 셈이지만 그 덕분에 ‘요즘엔 이런 것도 가능해?’ 하는 식으로 버튜버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알고는 있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고 찾아올 정도였다.
오죽하였으면 언니의 라이브가 끝난지 4일이 지난 지금 언니의 구독자가 30만명이나 늘었겠는가?
“흐헤헤헤.”
언니의 성장은 나의 성장
언니의 행복은 나의 행복
참을 수 없는 오타쿠 웃음소리가 방안을 울린다.
유리아의 찰랑찰랑거리는 은색 머리카락에 코를 박고 격렬하게 향기를 맡고 싶다는 상상을 하는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언니.”
문을 열자 나를 찾아온 이는 정겨운 이웃이자 나의 총애하는 동생
미우와 츠유였다.
그리고 그녀들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머리를 박으면서 외쳤다.
“저도 끝내주는 라이브 하고 싶어요!”
“언니 저 코모레비에요. 선라이즈 라이브 베스트 아이돌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구요!”
“제가 유리아의 대적자인데! 유리아의 친구이자 라이벌 포지션인데! 유리아의 라이브에 처절하게 발려버리면 제 150만 팬들에게 체면이 서지 않아요!”
“언니 저 알잖아요? 제가 얼마나 아이돌에 대해서 진심인 지 알잖아요? 코모레비도 마찬가지에요. 그런 끝내주는 무대를 보고난 이후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 지 언니는 이미 키리누키를 봐서 다 알고 있잖아요!”
한 명은 나에 언니와 함께 입사하여, 초창기 정신 건강 상태가 안좋았다고 할 수 있는 언니를 적극적으로 돌봐주면서 내가 언니를 만나기 전 까지 언니를 잘 챙겨준 은인에 가까웠고
다른 한 명은 내가 걷지 못했던 길을 걸어가면서, 최고의 아이돌이 되기 위해 전신전령으로 노력하는 기특한 동생이었다.
기백이 느껴졌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투지가 느껴졌다.
두 사람 다 입장이 있었다.
유리아와 친구이면서도 라이벌 구도를 이어가면서 2년 넘게 캐릭터 메이킹을 하고 있는 클레스타인의 라이브 실력은 솔직히 선라이즈에서 특출난 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던 유리아가 저렇게 멀리 날아가버리면 더 이상 라이벌이라고 자처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나기 때문에 그녀의 2주년 기념 라이브는 포기할 수 없는 성질이었다.
반면 코모레비같은 경우는 선라이즈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노력하고 그에 걸맞게 노력을 이어온 캐릭터다.
캐릭터 이전에 본인 또한 아이돌에 정말 진심이고 아이돌처럼 되고 싶어서 선라이즈에서 제일 연습량이 많은 괴물같은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자신이 아이돌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공중파에서도 출연하고 방송에서도 끊임없이 아이돌이라고 주장하며(물론 이쪽의 아이돌은 도끼를 휘두르고 샷건을 좋아하긴 하지만) 캐릭터와 서사를 쌓아온 입장이었다.
게다가 그녀 같은 경우 버튜버 데뷔 4주년을 기념으로 유료 라이브를 기획하고 있었으니 그녀 또한 간절했을 것이다.
둘 다 소중하고 사랑스럽고 포기하기 싫은 동생들이다.
“근데 나 회사에서 휴가 권고받았는데.”
“언니 괜찮아요. 여기에 있는 세 사람이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요?”
그렇긴 하다.
설마 유키하라 언니가 여기까지 찾아오겠어?
라이브를 켜지 않는 이상에야 그녀가 찾아올 리가 없었다.
솔직히 덕질도 좋긴한데 내 손에서 그런 무대가 피어난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버튜버의 입장에서 버튜버를 덕질하는 사람들은 많긴 하지만, 나의 손에 버튜버가 활짝 피어오르는 느낌은 뭐랄까...
짜릿했다.
유튜브를 점령하는 언니의 수많은 라이브 영상을 잠시 바라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휴가 권고 따위 무시하면 그만이다.
최애인 유리아만큼은 아니지만 클레스타인과 코모레비는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버튜버 캐릭터다.
나는 스태프들이 발표한 자료를정리한 USB를 노트북에 끼워넣었다.
“미리 경고할게. 나에 언니는 이번 라이브를 위해 정말 죽을만큼 노력했어.”
인대가 나간다거나 디스크같은 심각한 부상이 오지 않았지만, 하드 워커들이 많기로 유명한 우리 회사에서도 언니의 독기어린 노력에 고개를 저었다.
언니의 2주년 라이브 수준의 무대를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이번 일을 통해서 선라이즈 스태프들이 크게 발전해서 다음 번 준비할 때는 도움이 덜 필요한 편이었다.
“너희들도 그런 각오가 되어 있지?”
“클레스타인은 언제까지나 유리아를 놀리고 이겨먹는 라이벌 포지션을 잡아야 해요. 그런 포지션을 성립시키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은퇴하고 말거에요.”
“코모레비는 선라이즈 최고의 아이돌이 되어야 해요. 언니가 자주 말하죠? 게임을 하면 이겨야한다고. 저는 라이브를 한다면 최고가 되어야만 해요.”
두 사람의 눈에 투지가 불타오른다.
멋지다.
정말 멋지다.
자신의 캐릭터에 충실하고자, 그에 걸맞는 캐릭터성을 유지시키기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하다니, 정말이지 우리 회사 버튜버들은 너무 열혈이라니까.
“좋아, 그렇다면 3일 동안 너희들을 열심히 지도 하겠어!”
““좋아요!””
그렇게 결단을 내린 나는 회사에서 뽑은 자료를 그녀들에게 들려주었다.
나에 언니가 어떤 운동을 했고 어떤 춤을 췄는지, 어떤 카메라 워크를 쓰고 어떤 라이브에서 영감을 받았는 지 설명이 된 자료를 프레젠테이션 하면서 그녀들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실제로 일어나서 동작을 보여주려는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문을 안 닫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현관쪽을 바라보니 나의 매니저인 유키하라 언니가 보였다.
어라
회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과일 바구니를 든 채 찾아온단 말인가?
모범적인 일본 비즈니스 레이디의 표본같은 언니의 표정이 굳는다.
“쿠로가와 씨 라이브를 돕는다고 링거 맞으면서 일 했다고 했었지.”
여태껏 들어본 적 없는 차가운 목소리에 소름이 돋는 게 느껴졌다.
두 동생과 의기투합하며 달아오른 방의 분위기가 차갑게 식었다.
미우와 츠유는 두려운 듯 뒤로 물러났다.
“그, 그랬었죠.”
“유나는 혹시 과로사라는 단어를 모르니?”
“...”
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나 블랙 기업에 시달린 사람들이 우울증과 수면 부족으로 인해 자살하거나 죽는 일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하지만... 난 진짜 건강한데...
물론 이 말을 입 밖에 내뱉지는 않았다.
“내가 방송 제한 권고를 한 건 쉬라는 목적이었어. 3주간 그렇게 열심히 운동하고 사람들 만나면서 일정 조율하고, 개인 방송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니 너의 수면 시간은 기껏해야 일일 평균 4시간이었겠지.”
사실 덕질하느라 3시간이었다.
“물론 네가 건강한 건 알아. 비록 최근에는 바빠서 3주간 헬스장에 오지 않긴 해도 너는 건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너의 매니저인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
“네에...”
“하지만 유나야, 쉬라고 방송 제한 권고를 했는데 이건 나를 배신하는 행동이 아닐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선라이즈가 이전처럼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는 회사도 아니고, 사고를 방지하고자 휴가 권고 및 방송 제한 권리를 매니저에게 부여하자고 제안한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그런 내가 방송 제한 권고를 받았는 데 일을 하고자 하는 건 조금...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매, 매니저님 아니에요 이건 저희가...”
“쉿, 미우 씨 조용히 해요.”
무어라 변명하려고 하는 미우를 제지한 츠유는 벌 받는 학생처럼 고개를 조아렸다.
“적어도 이런 일이 생긴다면 나에게 먼저 보고하고 상담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유나야?”
나 또한 언니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확실히 쉬라고 했는데 안 쉬는 건 문제가 있긴 했지...
적어도 결단이 난 시점에서 언니에게 보고하긴 해야했다.
“죄송합니다!”
그날 나는 엄청 혼났다.
* * *